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233
“진행을 도와줄 장호덕씨만 따로 놀 수도 있고요.”
“근데 개그맨 넣으면 또 분량 욕심을······.”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하는 것과 진짜 출연하는 것 사이엔 간격이 있지만 이태화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까다롭지 않은 배우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이태화의 소속사는 배우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즉, ‘브레멘 음악대’의 제작진이 작정하고 배우의 심기에 거스르지 않은 이상, 합류는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란 의미다.
“장호덕씨가 개그맨 출신이고 이태화씨 배우니까, 나머지 둘은 개그맨 하나 배우하나 넣는 게 어떨까요? 요새 개그 하는 애들은 MC 하려고 개그맨 된 거라 깨방정 떠는 게 좀 적던데.”
“이런 거 채워 넣긴 아이돌들이 딱인데. 제외하고 고르려니 죽겠네요.”
얼굴 반반하면서 애교 있고 이리저리 써먹기 좋아, 예능은 아이돌을 선호했다.
아이돌이라고 모두 몸값이 비싼 건 아닌 데다, 가수가 아닌 연예인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은 덕에 예능감도 괜찮았다.
“그러게 말이야. 뻐끔뻐끔으로 대체하는 애를 세 명은 아는데 그것도 가수라고 부를 수가 없으니 원.”
작가 중 하나가 빈정거리며 말하자 가운데 앉아있던 오빈이 고개를 들어 그를 쏘아봤다.
“김 작가. 회의랑 관련 없는 말은 하지 마.”
“죄성함다.”
“PD님. 하승우는 어떨까요? 마스크도 좋고 전에 작품 했을 때 이태화랑 브로맨스도 괜찮게 찍혔던 것 같은데.”
옆에서 타이밍을 재던 한 작가 재빨리 끼어들어 제 의견을 개진했다.
음악 하는 남자는 멋지다.
특히 그 외모가 잘생겼다면 더더욱 멋져진다.
눈의 즐거움을 위해 그녀는 하승우가 프로그램이 들어와 화면을 반짝반짝하게 채워주길 원했다.
“하승우? 흠.”
태화와 친하다는 말에 오빈은 고민에 잠겼다.
하승우는 잘생긴 남자 연예인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배우로 성격도 괜찮고 화제성도 나름 있었다.
최근 종영한 예능에서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적당한 예능감을 선보였다.
“박 작가님 미쳤어요?”
경악이 담긴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솔깃했으리라.
“야. 회의 중에······!”
“이태화가 전에 태품 끝나고 병원 실려 간 거 하승우 전 매니저가 산장에 불 질러서잖아요. 친하던 사람들이 그때 일 때문에 연락을 끊은 거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처음부터 친했던 적이 없었건만, 현장에서 보였던 가식들 탓에 태화와 승우가 연락하지 않는 이유를 승우의 전 매니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았다.
양쪽 다 묻으려는 듯 언급을 금하고 있어, 표면만 본 이들은 매니저에 의한 불화설을 믿었다.
“그럼 더 좋지 않아? 둘 다 오해 때문에 연락이 끊긴 거잖아. 그걸 우리 프로그램이 짠! 하고 해결하는 걸로······.”
“박 작가야 도박하지 말자. 그러다가 이태화가 하기 싫다고 하면 우리 나가리다.”
둘 사이가 애매하다는 말에 오빈은 얼른 발을 뺐다.
받았다가 빼앗기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다.
그것이 이태화라는 대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오세진은 어때요? 굳이 남자만 고를 필요는 없잖아요. 아나운서 출신이라서 말도 잘하고 바람달빛에서 나름 괜찮은 예능 인재인 것도······.”
“우리가 아무리 도전을 외치는 음악 예능이라도 오세진은 좀. 박자도 제대로 못 맞추는 애 넣었다간 이번 페스티벌 라인 보고 기대하는 팬들한테 욕 엄청 먹을 거 같은데요.”
아무리 ‘음악을 모르던 이들의, 30일간의 아름다운 도전’을 슬로건으로 걸고 있어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
박치 음치일 뿐 아니라 제멋대로 요상한 음을 내는 인물을 30일 만에 고치기란 당연히 쉽지 않다.
단순히 고치기만 할 게 아니라 무대 앞에서 연주까지 시키려면 한 달은커녕 몇 년간 집중 교육을 해도 부족했다.
완벽하고 전율을 주진 못해도 그럴싸한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제작진의 입장 상, 오세진은 절대 뽑아선 안 될 카드였다.
“어떻게 인재가 없냐.”
“오늘 긍정적인 의사 표했던 이들 체크하고, 다음 주까지 캐스팅 계약 전부 완료해서 8일에 첫 미팅 겸 촬영 시작해야 해. 힘내자고.”
오빈의 말은 ‘오늘 야근이다’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었기에, 회의실에 앉아있던 이들은 검게 죽은 얼굴로 힘없이 대답했다.
***
현규는 언제나 ‘혹시나’하는 상황에 대비해 발을 넓혀왔다.
단순히 드라마국 PD들과 친하게 지낸 것이 아니라 태화와 관련 없을 예능국이나 교양국과도 얼굴을 터놨다.
톱배우의 매니저라는 직함은 꽤 편리해서, 그가 이리저리 친분을 쌓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그런 인맥은 소문을 모으고 정보를 조합하는 데도 유용했다.
친해진 AD를 조금 찔러보다 보면 중요하진 않아도 내부인이 아니고선 알기 힘든 이야기를 툭툭 뱉었고, 개인 연락을 통해 미리 정보를 받기에도 좋았다.
“태화야 여기. 일단 아직까지 회의 중이긴 한데, 참여 멤버는 이렇게 결정될 거 같아.”
현규는 밤 동안 정리해온 자료를 태화에게 내밀었다.
‘브레멘 음악대’에 제작 스텝 중 한 명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문서.
전체적으로 조율이 덜 된 사안이었으나 현규는 가공 안 된 정보에 또 다른 정보들을 입혀 그럴싸한 예측을 완성했다.
“일단 제작진은 멤버 중 한 명으로 유시안을 생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최근 영화 찍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 불발될 가능성이 커. 오히려 2안이라······.”
태화의 시선을 따라 현규는 간소하게 적힌 서류에 설명을 덧붙였다.
추측이 많이 껴 있는 말이었지만 꽤 그럴싸했으며 태화는 며칠 만에 주어진 리스트에 감탄했다.
“대단하네요.”
“뭘. 내가 해야 할 일인걸.”
쑥스럽단 얼굴로 볼을 긁적인 현규는 멘토로 예상되는 프로듀서의 사진을 가리켰다.
“이쪽은 서프라이즈로 하고 싶은지 계속 숨겨서 PD 성향이랑 이번 프로그램 보고 추측한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일단 JB 대표가 낄 가능성이 커. 음악 프로듀서로서 이름도 높고 뮤직 페스티벌 참여하는 아이돌하고 가수 중에 JB 소속이 네 팀이니까.”
JB의 대표 강준성은 가수로서도, 프로듀서로도, 안무가로도 성공한 인물이었다.
사업적 수완도 뛰어나 JB를 한국 3대 기획사 중 하나로 올려놨고 JB 사단이란 말이 돌 정도로 소속 연예인들의 충성도도 남달랐다.
그의 안티들조차 태민이 ‘천재’라는 점은 인정했다.
노래의 넓은 음역을 자유롭게 소화하는 데다 수십 개의 악기를 능숙하게 다뤘고, 음색과 특색에 맞춰 매력을 뽐낼 줄 알았으니까.
그야말로 한국 가요계에 살아있는 괴물.
물론 가요계에 관심 없는 태화에겐 단순히 오랫동안 꾸준히 TV에 나오는 가수, 연예계에 영향력을 지닌 연예인, JB대표일 뿐이었다.
“대단하단 말은 들었는데 그 정도 일 줄은 몰랐네요.”
음악가로서의 준성을 잘 알지 못했던 태화는 현규의 설명에 감탄했다.
4명의 초보를 위한 멘토를 고작 한 명 둔다고 했을 때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한 분야의 거장과 함께하게 된 것 같았다.
“근데 그런 사람이 이 예능에 나올까요?”
단기 프로젝트로 이뤄진 예능은 시청률조차 장담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미 예능에서도 이름값 높은 이가 들어가기엔 급이 맞지 않았다.
“사실 나도 그 부분 때문에 다른 음악 프로듀서가 오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이번 출연 예상 인물들이 널 포함해서 워낙 쟁쟁하니까 인맥 쌓기 용으로도 나올 가능성이 높을 거 같더라.”
대중들에게는 ‘연예계’로 묶여서 불리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직군마다 움직이는 동선도, 만나는 인물들도 한정되어 있었다.
배우에겐 가수가 연예인이고 가수에겐 배우가 연예인이란 말처럼 서로가 만나서 친분을 다질만한 자리는 많지 않았다.
“연기 쪽도 야금야금 진입하려고 하는데 아는 배우가 적으니까 말이지.”
연예계에서 소속사가 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배우면 배우, 아이돌이면 아이돌, 그 분야에 인기 있고 파급력 있는 연예인을 소속으로 데리고 있으면 된다.
태화도 태화지만 이번 출연 예정인 배우 최준의 경우 곧 현재 소속사와 계약이 종료되기 때문에 일종의 스카우터로서 나설 수 있다고 현규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리 그래도 한 기획사 대표가 배우 한 명 데려오려고 그렇게까지 할까요?”
“강준성 대표는 자기 취향에만 맞으면 다른 기획사에서 연예인 뺏어오는 걸로도 유명해. 뭐 빼앗은 다는 게 기획사들 입장이고 연예인에겐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거지만.”
인재를 좋아하는 건 삼국지에 조조를 닮았다며 현규는 악기가 그려진 부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건 네가 필요할 거 같아서.”
키보드, 기타, 베이스, 드럼에 대한 기본적이 설명과 밴드에서 각 악기의 역할 등이 적힌 자료로, 밴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태화를 위해 현규가 따로 추가한 부분이었다.
“고마워요.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괜찮은데.”
“이게 매니저의 일인걸.”
“쭉 읽어봤는데, 계약해도 괜찮은 거 같아요.”
기울어졌던 마음이 완전히 한쪽으로 쏠렸다.
참가해야 하는 이벤트가 생각보다 큰 축제라 걱정이 들기도 했으나 한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에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퍽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악기는 제가 먼저 고를 수 있는 건가요?”
“아, 일주일 후에 첫 미팅이 있을 건데, 그때 멘토가 직접 악기를 골라 줄 거래.”
마음에 드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악기 연주도 마찬가지이기에 4명의 출연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악기를 멘토가 직접 배정했다.
“어머니께선 제가 피아노를 하길 바라시던데 말이죠. 벌써 집 한구석에 두었던 피아노도 꺼내서 거실에 두셨어요.”
“피아노? 아, 키보드. 그거 꽤 다르지 않아?”
“글쎄요. 일단 조율까지 마치셔서 눌러는 봤는데······.”
태화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악보 보는 법을 다시 배워서 연습해보긴 했으나 기초도 다 잊은 입장에서 상당히 어려웠다.
동영상을 보고 동체 시력과 암기력, 순발력 등을 통해 기본적인 곡은 손을 따라 움직일 수 있었어도, 생각보다 무거운 건반은 쉽게 맑고 정확한 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해보면서 느낀 게, 과연 초보가 30일 만에 악기를 어느 정도 다뤄서 곡 연주가 가능할까 싶더라고요.”
쉽지 않음을 깨닫자 태화는 이 예능이 편하고 순탄하게 가지 못할 것을 알아차렸다.
생초보들을 그럴싸하게 꾸미려면 그만큼 굴리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눈치챘음에도, 태화는 물러서는 대신 계약서에 사인하는 길을 택했다.
목표는 어느 정도 높이가 있어야 즐거운 법.
음악에 흥미를 느끼게 될지는 알 수 없었었지만 무언가에 도전해본다는 것 자체는 그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런 경험도 할 수 있는 연기나 역할의 폭을 다양하게 만들 테니까.’
그런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태화의 머리를 스쳤으나.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간 탓에 태화는 제 생각이 여전히 기승전연기로 흘러간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현규에게 계약 약속을 잡아달라 전했다.
끝
ⓒ 마늘소금
언제나와 같이 임서연이 완성해 둔 계약서는 완벽했다.
태화가 할 일은 완성되어 있는 계약서를 변호사와 함께 확인하고 사인하는 정도.
그 외에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기에, 태화는 사흘 뒤 ‘브레멘 음악대’와 첫 만남을 위해 SBC 예능국 미팅룸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녹음실과 층이 달라서인지, 회의실들이 늘어져 있는 그곳은 여타 회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게스트로만 몇 번 왔던 곳이라서 그런지 낯서네.’
단발성으로 출연하는 게스트가 SBC 예능국의 내부로 올 일은 드물었다.
특히 태화처럼 홍보를 위해 찾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랬다.
계약이 간소화되는 덕에 현장에서 만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제3회의실이라······.’
복도를 따라 거닐던 태화는 학교의 반 번호처럼 늘어져 있는 표지들을 따라 ‘제3회의실’이라 적힌 방 앞에 도달했다.
맞게 왔다는 것을 알리듯, 반투명한 유리문 위에 붙은 ‘브레멘 음악대 촬영 중’이라 적힌 하얀 종이가 태화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오! 안녕하세요!”
태화가 안에 들어서자 최근 지상파 3사를 넘나들며 여러 예능에서 활약 중인 장호덕이 태화에게 인사를 건넸다.
너무 반갑게 맞이해 줘서, 이전에 그와 면식이 있었는지 되짚을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태화는 카메라 밖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도 작게 인사했다.
중앙엔 PD 서오빈이, 옆쪽으론 작가로 보이는 이들이 화이트보드를 든 채 태화와 호덕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고마워요.”
한 스텝이 태화에게 다가와 바지 뒷주머니에 마이크를 연결해줬다.
태화는 건네 받은 마이크 선을 상의 아래로 넣어 목 쪽으로 빼냈다.
그가 위로 삐죽 솟은 마이크 집개를 옷의 목덜미에 꽂자, 앉아 있던 작가 하나가 들고 있던 보드에 글자를 적었다.
[앉아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이태화입니다.”
“와, 역시 배우는 목소리부터 다르네.”
“감사합니다.”
“말 편하게 해요. 이제 30일간 함께 동고동락할 사이인데.”
“천천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살갑게 말하는 호덕에게 태화는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붙임성 좋은 성격이 아니라 그런지, 처음부터 허물없이 다가오면 외려 불편했다.
“왠지 연예인 보는 기분이라 그런데, 이따가 사인해 주면 안 돼요? 친구에게 자랑하게.”
“네.”
“피부가 어휴, 강원이에게 듣긴 했지만 완전 아기 피부네.”
“강원 형님과 친하세요?”
사적으로도 친하게 지내는 배우의 이름이 나오자 태화는 그제야 관심을 보였다.
그 기색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호덕이 과장되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그 친구 결혼식이랑 애들 돌잔치에도 갔는걸요. 말 편히 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태화는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역할을 입고 있을 때만 카메라가 돌아가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예능은 ‘배우 이태화’와 ‘이태화’의 경계를 흐려 가며 그를 다각도로 담았다.
그것은 배우로서 현장에서 일할 때나, 모델이 되어 카메라를 매료시키는 상황과 또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