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235
찔릴 양심도 없으면서 사탕발림을 한 그는 그들에게 ‘기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 악기를 정하고 그가 과제로 내준 연습곡을 훌륭하게 통과한다.
모두가 통과할 필요는 없다.
박자에 기본이 되는 드럼.
멜로디 라인인 키보드와 기타 중 하나.
즉, 최소 두 가지 악기가 통과한다면 그 자신도 최선을 다해 그들을 가르치겠단 내용이었다.
“어······. 그럼 베이스는······?”
“베이스는 박자와 멜로디 사이를 이어 주는 가교입니다.”
베이스의 음은 낮기 때문에 연주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눌러야 하는 위치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춰 현을 뜯을 줄만 안다면 다루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악기.
익혀야 할 기본기가 적기 때문에 진입 난이도 또한 낮으며 때문에 여기 있는 초보들이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예상보다 무거울 악기의 무게와 음을 끊는 기술(Mute) 정도라 준성은 생각했다.
물론 그루브 같은 기교를 추가할 수도 있으나, 그는 네 명에게 거기까지 바라지 않았다.
“없으면 안 되지만 있어도 크게 표시가 나진 않죠.”
한 달, 아니, 곡이 나온 후 3주 동안 죽어라 한 곡만 연습시키면 그나마 괜찮은 수준까지 올릴 수 있기에 그는 베이스를 걱정하지 않았다.
“어, 음. 통기타라면 대학 때 조금 쳤는데요······.”
“좋아요. 그럼 최준 씨는 이따가 카메라 돌면 먼저 기타 부분에 지원한다고 해 주세요. 또?”
“축제 때 북을······.”
“리듬감은 있겠네요. 그럼 드럼. 장호덕 씨와 이태화 씨는 연주해 본 악기가 없습니까?”
악기를 고르기에 앞서 이뤄진 숙련도 체크에 태화는 손끝을 톡톡 두드렸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조율한 피아노를 몇 번 쳐 보긴 했어도 그것을 ‘다뤘다’라 표현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음, 난 하모니카?”
“······음계는 좀 알겠군요. 태화 씨는?”
“······요 사흘간 어릴 적 배웠던 피아노 음계를 다시 익혔는데, 그것도 ‘다뤄 봤다’라 말할 수 있다면 피아노겠네요.”
“개털일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의외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준성에 신랄한 말에 네 명은 애매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방송에서는 언제나 ‘좋은 형’인 대표님이었는데 실제로 만나 본 남자는 상당히 제 주장이 강한 독재자였기 때문이다.
시선이 따가울 텐데도, 그는 ‘이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라며 오빈을 재촉했다.
“······형, 저 저 사람 싫어요.”
JB 대표가 무슨 말을 하던 미소를 짓고 있던 준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태화에게 소곤거렸다.
입술이 거의 달싹거리지 않은 탓에 그가 말한 내용을 읽은 이는 목소리를 직접 들은 태화뿐이었다.
“그래요······.”
“말 편하게 한다면서.”
“오늘은 힘들 거 같은데요.”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준이 아쉬운 표정으로 태화를 응시하고 있을 때, 기분 상한 것이 명백하게 보이는 PD가 멤버를 일깨웠다.
순식간에 주도권이 강준성에게 넘어갔으니 총괄 PD 입장에선 자존심 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거 불안한 거 아닌가?’
이미 완성된 예능에 숟가락만 잠깐 얹은 경험뿐이었던 태화는 이것이 첫 만남에서 일반적인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예능에 익숙한 호덕과 아콰시의 복잡한 표정, 그리고 묘하게 가라앉은 주변 인물들을 보며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꼈다.
“박수 치겠습니다.”
눈치 보던 스텝 하나가 메인 카메라 앞에서 손뼉을 치자 아까만 해도 냉랭했던 준성이 상냥한 미소로 네 명을 반겼다.
“자, 여기가 JB의 연습실입니다. 방음 처리가 되어 있고 사옥 보안과 따로 되어 있어서 출입증만 있으면 언제든 와서 연습할 수 있죠.”
아까 했던 설명을 처음 하는 사람처럼 뱉으며, 그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멤버들을 응시했다.
“그럼 이제, 악기를 고를 시간인데······. 일단 다들 처음이니까, 제가 먼저 리듬을 연주하고, 그것을 따라하는 것으로 테스트해 보겠습니다.”
테스트를 위해 오늘은 악기를 2대씩 배치해 뒀다고, 준성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럼 우선 드럼부터 가 볼까요?”
그는 일행들을 보며 뒤쪽을 가리켰다.
부피가 좀 있는 키보드도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으나 드럼은 그 크기 때문인지 중앙 뒤쪽에 홀로 자리했다.
“스틱은 이렇게 엄지와 검지로 잡고 나머지는 감싼다는 느낌으로 둥글게 말아 주면 됩니다. 이제 음을 들려 드리죠.”
그는 기본이 되는 4박자를 몇 번 선보이곤, 곧 스틱을 준에게 넘겼다.
양손을 번갈아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기본적인 동작이었기에 낙오자는 없었다.
“잘 따라오네요! 그럼 난이도를 조금 올려서······.”
과장되게 박수를 친 그는 조금씩 복잡함을 더했다.
손은 좌우를 오가며 현란해졌고, 마지막엔 바닥에 있던 페달이 베이스 드럼을 울렸다.
“이거 손이 좀 꼬이는데······. 준성 씨, 이거 맞아요?”
“네, 잘하시는데 스틱은 좀 더 가볍게 잡아야 소리가 깨끗하고 예쁩니다.”
호덕은 예의 대화를 잊은 사람처럼 머쓱함을 드러내며 준성에게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
준성도 언제 질린 표정을 지었냐며 친근하고 상냥하게 조언을 건넸다.
‘아무리 예능이라고 해도 카메라 앞에선 달라지는 게 맞네.’
능청스러운 둘의 모습에 태화는 긴장을 풀었다.
촬영 중 다른 역할의 가면을 쓰고 누군가를 대하는 것은 그에게 퍽 익숙한 일이다 보니 외려 카메라가 꺼졌을 때보다 편했다.
“그럼 이제 태화 씨.”
최준과 아콰시를 거친 스틱이 마지막으로 태화에게 건네졌다.
준의 경우 그럭저럭 나쁘지 않단 평을 받았고, 아콰시의 실력은 준성을 만족시켰다.
물론 그 때 지은 표정이 진심에서 우러난 표정인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만 하는 거라면야.’
태화는 준성이 알려 준 방법으로 스틱을 그러쥐고 앞에 놓인 드럼을 응시했다.
따라 하는 것이라면, 암기력과 동체 시력을 갖춘 태화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른 태화가 스틱으로 드럼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의 순서는 정확했으며 박자 또한 준성의 속도와 온전히 같았다.
쳐야 할 북을 틀리는 법이 없었고 마지막으로 북을 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물론 초심자 특유의 어색한 동선은 남았지만 문제가 되진 못했다.
“······태화 씨는 꽤 재능이 있어 보이는군요.”
태화가 전부 외워 따라 했다곤 생각지 못하고, 준성은 태화가 리듬을 기억해서 음을 탔다고 여겼다.
그가 익히 봐 왔던 천재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같은 일이 베이스와 기타에서까지 반복되자, 준성은 슬쩍 눈매를 일그러트렸다.
“혹시 태화 씨는 지금 연주들을 다 외우고 있는 겁니까······?”
“······외우는 게 특기라서.”
“우리 형이 암기력도 굉장해요. 책 네댓 장은 쓱 보고 줄줄이 외울 정도거든요!”
아까 전부터 감탄을 터뜨리던 준이 슬쩍 끼어들어 제 일이라도 되는 듯 태화를 자랑했다.
준이 그런 말을 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태화는 어색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Exstar의 임승혁도 그러했지만 최준도 만만치 않게 찰떡같은 구석이 있었다.
‘좀 부담스러운데······.’
방송이라 밀어내지는 못하고, 태화는 작게 고맙다는 말만 중얼거렸다.
악의, 아니, 오히려 호의가 넘쳐 이러는 것 같아도, 훅훅 좁혀 오는 거리감은 그에게 상당히 낯설었다.
“보는 걸 그대로 카피해서 연주한다라······. 베이스와 기타의 지판을 아는 건 아니고요?”
“현악기는 오늘 처음 다뤄 봐서 따라 한 게 전부네요.”
쑥스럽다는 듯 웃는 태화를 보며 준성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훑었다.
태화가 코드를 잡는 모습에선 어떠한 익숙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필요한 코드의 위치를 확실히 눌렀으며, 손놀림 또한 무섭게 닮아 있었다.
‘그래도 한계가 있지.’
악기는 보이는 대로만 다룬다고 같은 음이 나진 않는다.
실제로 태화의 연주는 준성의 것과 현란한 움직임만 같았지, 현을 누르는 힘 조절에는 서툴러 음이 둔탁해지거나 쓸데없이 울리는 일이 종종 있었으니까.
반대로 최준은 하기 힘든 기교 부분은 과감히 포기한 뒤 리듬을 이루는 주요 음만을 잡아내 그럴싸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아콰시는 축제에서 연주했다는 말처럼 드럼 리듬에 흥겨움을 담을 줄 알았고. ······그렇다 해도 기태 말처럼 꽤 욕심나는데.’
현규는 강준성의 목표가 최준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준성이 프로그램 제의를 승낙한 건 태화 때문이었다.
아이돌계의 미다스라 불리는 JB의 실장 김기태가, 놓쳐서 아쉬웠다며 푸념을 늘어놓던 인물이었으니까.
눈 좋기로 유명한 이가 ‘스타성이 돋보여 뭘 시켜도 성공했을 것’이라 말하는 걸 들었으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 키보드는 태화 씨부터 하는 걸로 할까요? 제가 치고 바로 다음에 하는 게 태화 씨의 실력을 보기 가장 좋을 것 같군요.”
“건반은 자신 있죠. 나름 8살 때 피아노를 열심히 쳤거든요.”
태화는 작가가 보드에 적어 준 농담을 자연스레 뱉으며 키보드 앞에 섰다.
준성이 손을 풀 듯 가볍게 음을 치고 기다리자, 태화는 그 뒤를 이어 같은 음을 만들었다.
누르는 힘만으로 강약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일까, 현을 잡았을 때보다 좀 더 닮은 음색이 준성의 귀를 울렸다.
‘한번 장난 좀 쳐 볼까.’
이미 준성의 마음속에선 누가 어떤 악기를 할지 정해져 있었다.
박자감이 좋은 아콰시가 드럼.
기타를 연주해 봤고 코드에도 익숙한 준이 기타.
초심자라도 외우는 머리가 아주 없지 않은 호덕이 베이스.
마지막으로 똑같이 음을 짚어 낼 수 있는 태화가 키보드.
그런 상황이니, 그는 프로그램을 위해 괜찮은 그림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젠 제가 연주한 음을 한 박자 늦게 따라와 보세요.”
그렇게 말한 준성은 하얀 건반에 손을 얹고 가볍게 손가락을 두드렸다.
그의 오리지널 곡인지, 처음 듣는 리듬이 연습실을 울렸다.
‘한 박자라. 불협화음이 되기 쉽지 않나?’
그런 의문을 가진 채 태화는 준성이 시킨 대로 바로 뒤이어 쫒아가듯 그가 눌렀던 음계를 따랐다.
준성의 연주는 교묘했다.
한 박자가 차이 날 뿐 같은 음이 뒤이어 울리는데도 그것은 다른 키보드의 소리와 화음을 이루며 독특한 리듬을 만들었다.
단순히 따라 가는 것뿐인데도 어째서 손을 맞잡고 함께 달려가는 기분일까.
태화는 그 신기한 현상에 홀린 듯, 준성의 손을 쫓았다.
조금씩 빨라지는 것도 모른 채 그의 움직임을 카피했고, 강약을 흉내 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났을 때.
“······와우.”
“형, 굉장해요!”
주변에서 곡을 듣고 있던 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흥분한 주변을 무시한 채 태화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연주가 끝나고서야 자신이 리드당했다는 걸 깨달은 건, 상당한 충격이었다.
‘굉장해······.’
포토그래퍼 장 피엔, 배우 월리엄 록셀에 이어, 태화는 강준성에게서 거장의 냄새를 맡았다.
끝
ⓒ 마늘소금
첫날의 촬영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무리 속성으로 배워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고 해도 코드 잡는 법과 악기별 악보 보는 법 등의 기본적인 지식은 익혀야 본 게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태화와 준의 경우 비슷한 악기를 다뤄 본 경험이 있어, 바로 연습에 들어가도 무방했다.
그러나 악보 없이 감으로 북을 연주했던 아콰시와, 현악기를 처음 다뤄 보는 호덕에겐 필요한 과정이었다.
때문에 악기가 익숙해질 때 즈음 준성은 각 멤버의 역량에 맞춰 과제를 나눠 줬다.
중간에 한 번 더 있던 짧은 휴식 시간에 직원을 불러 무언가 지시했던 건 이를 위해서였으리라.
실제 자료를 찾아 준비한 것은 직원일지라도 멤버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읽은 건 준성의 안목.
태화가 준성에 대해 ‘성격은 강해도 역시 능력 있는 인물’이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있을 때, 감탄하는 멤버들을 향해 준성이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3일 뒤 시험 볼 겁니다.”
“네!?”
“아, 그리고 시험공부에 앞서 어떤 곡을 연주하고 싶은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미지를 잡아 오세요. 숙제입니다.”
“······.”
호덕과 아콰시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준성을 응시했다.
입문자인 둘의 과제는 한눈에 보아도 태화나 준보다 많았다.
더구나 작품이 없어 가벼운 홍보나 광고만 뛰고 있는 두 배우와 달리, 호덕과 아콰시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도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부담이 컸다.
“선생님! 테스트에 통과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아콰시의 물음에 준성의 입가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