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251
최근 남자의 섹시함을 보여 줄 때 골반뼈 라인을 쭉 드러내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았기에 그의 움직임엔 망설임이 없었다.
「훨씬 보기 좋군.」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태화가 고개를 들어 분위기를 잡자, 곧 슬레이트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로메.」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레베카에게 다가간 태화는 천천히 그녀의 가운 끈을 잡아당겼다.
그는 몽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베카의 뺨을 한번 쓰다듬어 준 뒤 양손으로 그녀의 쇄골을 쓸어 가운을 벌렸다.
「······!」
가운이 레베카의 몸을 타고 내려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태화는 순간 멈칫했다.
그녀가 가운 안쪽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떨어진 태화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레베카를 응시했다.
「티에리?」
「······아름다워.」
그러나 흔들렸던 것도 잠시, 태화는 심장을 녹일 듯한 달콤한 미소와 눈빛을 한 채 그녀와 거리를 좁히고 입을 맞췄다.
한 번, 두 번, 세 번······.
횟수가 늘어 갈수록 레베카의 얼굴엔 황홀함이 더해 갔으나 반대로 태화의 눈빛은 점차 얼어붙었다.
살로메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 ‘티에리 도우’의 표정이었다.
‘잠깐 머뭇거린 것 같았는데. 의외로군.’
화면에 비친 남녀를 보며 장마르크는 턱을 쓸었다.
태화는 분명 레베카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는 잠시 혼란스러워했으며, 장마르크는 태화의 눈에 스친 망설임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NG가 날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태화는 곧 티에리다운 모습을 선보이며 인간을 유혹하는 악마로 변했다.
눈에는 냉정을 담고, 입으로 사랑을 속삭이며, 행동으론 정열을 말했다.
그것은 주인공 살로메를 향한 기만이었고 장마르크가 그렸던 티에리의 실체였다.
‘······정말 각오하고 왔던 건가.’
자신이 봤던 망설임이 착각이 아니었을까 고민하며 장마르크는 깊어진 시선으로 격정에 휩싸인 남녀를 바라봤다.
장마르크가 고민하는 그 순간, 태화는 레베카와 키스를 나누며 복잡한 심정을 삼켰다.
‘······진짜 도움이 될 줄이야.’
베드신을 촬영할 때, 한국의 경우 여배우들은 본인의 살색과 동일한 색상의 탱크톱을 입었다.
어차피 가슴골 아래쪽은 화면에 비치치 않기 때문이다.
등이 드러날 경우 접착형 속옷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수위가 높기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에서나 가능한 표현이었다.
‘프랑스의 심의를 얕봤어······.’
태화가 프랑스 영화를 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한국으로 수입되었을 때 작품의 등급은 한국 기준으로 수정되어 있었고, 영화제에 참석해 관람한 프랑스 작품들엔 등급이 나타나지 않았다.
관대한 건 알았어도 설마 한국에서 청소년 관람 불가에 해당하는 장면에 전체 관람가 딱지를 붙였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당황했던 태화가 곧바로 행동에 나설 수 있던 건 축복에서 워낙 시달렸던 탓이리라.
축복 속 살로메는 언제나 더 강렬한 표현을 원했고, 어려움 난이도를 통과하기 위해 태화는 점차 농밀함을 더해야 했으니까.
몸과 정신에 익힌 연습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제 역할을 다해 냈다.
「발밑이 사라지는 것 같아.」
「계단은 언제나 무너지고 있으니까.」
침대에 누운 레베카는 가쁜 숨을 내쉬며 자신 위에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들뜬 그녀의 눈빛을 받았음에도, 태화 얼굴 위의 미소는 그린 것처럼 완벽했다.
레베카의 뺨을 따라 내려가던 그의 오른손은 목선을 지나 어깨를 타고 마침내 그녀의 손목을 눌렀다.
「무서워?」
「무서워.」
「어째서? 네가 바란 거잖아, 살로메.」
열기를 담은 다정한 목소리가 헐떡이는 레베카의 입 속에 스몄다.
그것은 상대의 답변을 원치 않는 자의 음험한 거부였다.
수많은 스텝과 카메라가 있음에도 둘은 마치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격정적으로 서로의 입을 오가고 타액을 나눴다.
어떻게 보면 고작 진한 키스에 불과한데도, 좁은 현장의 온도는 점차 올라갔다.
신음하며 거칠게 헐떡이는 여자와 부서지고 있는 여인을 흥미롭단 눈으로 관찰하는 남자.
「티에리······.」
레베카는 자유로운 손으로 태화의 뺨을 만졌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자신을 매혹하고 있는 푸른 피의 악마에게 매달리려 했다.
그러나 그 손은 곧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꽃처럼 힘을 잃고 미끄러졌다.
***
포르노를 닮았던 장면은 장마르크의 목소리와 함께 끝을 맺었다.
홀린 듯 둘의 모습을 보던 스텝들은 감독의 힘 있는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이것이 관음(觀淫)이 아닌 촬영임을 깨닫고 몸을 굳혔다.
「자기, 경험이 별로 없는 줄 알았는데. 나 황홀했어. 어쩜 좋아······.」
태화가 일어나고 침대에 앉은 레베카는 몽롱한 눈을 한 채 소녀처럼 뺨을 붉혔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난 연기 때문에 사람 안 만난단 소리 듣고 자기가 고자인 줄 알았는데. 미안해.」
「······아니야.」
그녀의 솔직한 사과에 태화는 간신히 회답했다.
축복을 통과하기 위해 올라간 숙련도는 상대 배우를 만족시켰지만, 묘하게 아주 묘하게 서글픔을 남겼다.
끝
ⓒ 마늘소금
침대 위에서 두루뭉술한 대사까지 연기한 태화는 현장에 남아 있던 이들에게 환송을 받고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태화의 입국은 조용히 이뤄졌다.
BGA가 동선 정보를 흘리지 않은 데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 일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동양인 얼굴이 다 비슷비슷하다 느끼는 프랑스에서 통하는 방식이었지, 이미 유명할 대로 유명해진 한국에선 통하지 않았다.
태화가 공항을 빠져나가고 고작 30분 만에 귀국했다는 기사가 연예계 섹션에 올라갔으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해당 행사로부터 시일이 많이 지났다 해도 한국 최초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황금종려상이 일반적으로 배우가 아닌 감독에게 수여되는 것을 생각하면 태화는 배우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을 탄 셈이었으니, 그런 배우를 언론이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어차피 ‘정조’에 대한 홍보도 시작해야 하기에 BGA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곧 단체 인터뷰 일정이 잡혔고 차기작을 고르며 휴식을 보내던 태화는 BGA가 준비한 회장에서 여유롭게 기자들을 상대했다.
프랑스에서 한 달간 무엇을 한 거냐, 친해진 여배우는 없냐, 유럽 쪽 진출을 고려하는 것이냐······.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으나 태화는 무난하고 모범에 가까운 답변들로 그들을 상대했다.
장마르크의 영화에 출연한 사실도 밝혔다.
어차피 개봉하게 되면 알려질 이야기고, 오히려 숨기려 들수록 기분 나쁜 뒷말이 붙기 십상이니까.
가십은 쫓아도 현대 영화사에 관심 없는지 ‘외국에서 촬영 좀 했나 보다.’란 표정을 짓는 기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장마르크의 이름을 알아듣고 작게 탄성을 터트리는 이도 없지는 않았다.
[남우주연상을 말하다]
[이태화! 거장의 영화에 전격 출연!]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의 위상]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실시간으로 올라간 기사들을 보고 태화는 혀를 찼다.
장마르크 감독에 대한 설명은 인터넷에 올라가 있는 내용을 그대로 베껴 넣은 데다, 영화에 대해 말을 아꼈음에도 다들 추측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소설을 쓴 것이다.
‘······도대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의 어디가 남우주연상을 말한 거지.’
게다가 연예부 기사답게 헤드라인에는 ‘전 세계’, ‘전 유럽’ 등 상당한 과장이 섞여 있었다.
과시욕이 심한 인물이면 모를까, 태화는 성공과 드러난 업적엔 담백한 성격이었기에 이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기자들의 엇나간 열정이 미묘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이런 건 괜찮네.’
대다수의 기사는 조회수만을 목적으로 최대한 자극적인 제목을 갖다 붙인 후 틀에 박히고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기사를 채웠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과 그럴듯한 예측을 실은 기자도 적지 않았다.
[현대 영화의 살아 있는 역사, 장마르크 고다르. 그의 작품이 정식 개봉할 수 있을 것인가?]
연예 부서 중에서도 영화 관련 기사만 쓰는 한 기자는 ‘젊은 연인의 노래’가 블루레이가 아닌 스크린으로 데뷔할 가능성을 점쳤다.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장마르크의 영화는 대중성보다 의미, 예술성에 치중했고 잔잔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프랑스인의 작품답게 표현의 도구로써 성(性)적인 묘사를 사용하는데도 거침없었으며 그러면서도 여럿이 함께 관람하기보단 홀로 사색에 잠겨 음미하는 게 어울렸다.
즉, 그의 작품은 오락보다 문학에 가까웠다.
당연히 작품성과 별개로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었기에, 장마르크의 작품은 한국 영화인들을 위해 블루레이 형태로 배급되어 왔다.
한국 영화 산업 문화 진흥회 주최로 소규모 상영회가 열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철저히 비영리로 이뤄졌다.
그래 왔던 관행이 한국 배우의 참여로 인해 깨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과연 태화의 티켓 파워가 손해를 앞지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관심이 모였다.
프랑스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여 영화관에 스크린을 건다는 건 블루레이로 수입하는 것보다 상당히 비쌌다.
영어보다 비싼 프랑스어 번역 비용 또한, 번역 기간이 짧아지는 만큼 값이 올라갔다.
고작 ‘인터넷에 아우성치는 것을 보니 많은 이들이 개봉을 원할 것이다.’란 낙관만 가지고 진행하기엔 부담되는 비용.
태화는 자신이 ‘젊은 연인’을 찍으면서 느꼈던 생각을 그대로 작성한 기사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엉터리’나 ‘이태화 안티냐’는 댓글들이 그 아래를 장식하고 있었어도 기사의 말엔 과장도, 악의도 없었다.
그는 슬쩍 기사 하단의 ‘도움이 됐어요.’ 버튼을 눌렀다.
***
‘정조’를 위한 홍보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태화는 ‘정말 자신의 위치가 달라졌구나.’란 느낌을 받았다.
방송에 참가한 모든 방송국이 최고 대우를 기본으로 깔은 데다, 평소 있었던 짓궂은 질문, 곤란한 돌발 상황 따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방송국 차원에서 보이는 ‘네 기분을 언짢게 하고 싶지 않다.’란 제스처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을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미리 건네진 질문 리스트와 큐카드엔 빠지지 않고 ‘칸’, ‘프랑스에서 찍은 영화’에 대한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태화는 서너 개의 홍보 출연을 거치면서 자신이 앵무새처럼 느껴졌다.
‘정조가 아무리 수상 버프 하나로 끝났다지만······.’
사실 태화가 남우주연상을 탄 시점에서 ‘정조’는 배우들이 나서지 않아도 괜찮은 홍보 효과를 누렸다.
이미 ‘칸 국제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의······.’라는 타이틀이 붙은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것이다.
‘정조’의 흥행 여부에 100퍼센트 영향을 미칠 순 없어도, 초반 유입은 다른 비슷한 작품에 비해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겹다.’
그런 상황이 ‘정조’ 제작진이나 다른 관계자들에겐 기쁨으로 다가갈지 모르나, 태화의 입장에선 공장의 반복 작업과 같았다.
홍보용 출연임에도 출연료가 많이 나온다라는 사실 또한 금전욕이 적은 태화에겐 중요한 포인트가 못 됐다.
“두부야, 형 지쳤다.”
“낑.”
예능에 대해 생각하던 태화는 옆에 끼고 있던 두부를 붙잡고 뒹굴었다.
그가 없는 사이 ‘원숭이기’라 불리는 전신 털갈이 시기를 맞이한 두부는 가장 못생겼던 순간을 벗어나 다시 미모에 물이 차고 있었다.
과거의 뽀송뽀송한 촉감은 잠시 잃었으나 애교와 잔망스러움은 점점 더 늘어, 최근 태화는 집에 있을 때 두부를 끼고 살았다.
“드라마 찍고 싶다······ 사실 형이 미리 봐 둔 작품이 있거든? 형 정조 개봉하기 일주일 전에 대본 리딩 시작하는 드라마인데······.”
갈증에 시달리던 태화는 애먼 강아지를 붙잡고 귀찮게 굴었다.
차기작으로 생각하는 드라마와 영화들을 풀었고, 아쉬운 점들을 읊었다.
두부의 간식을 가지고 부엌에서 나오던 선미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곤 동공이 흔들렸다.
말 못 하는 강아지에게 이런저런 말을 떠드는 행동이, 마치 무인도에서 배구공에게 말을 거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태화야, 많이 외로우니······?”
“네? ······어, 두부야.”
선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의아한 기색을 띠던 태화는 간식을 보고 그의 품을 벗어나는 두부를 향해 허망하단 눈빛을 보냈다.
그 모습이 대답처럼 느껴져, 선미는 더더욱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
태화의 심정을 알아차린 BGA는 홍보 일정을 조정했다.
BGA가 홍보성 출연을 이곳저곳에 잡은 이유는 대중에게 ‘이태화가 돌아왔다’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냈어도 보이지 않으면 관심은 그만큼 줄어든다.
연극, 성우, 독립 영화 등의 활동을 활발히 하지만 TV에는 출연하지 않는 이들이 대중에게 ‘얘 요즘 쉬나?’ 소리 듣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BGA는 작품에 가는 관심만큼 태화에게 향하는 관심도 커지길 바랐으며 그러기 위해선 얼굴을 내미는 게 가장 확실했다.
2주간의 출연으로 목적을 달성한 BGA는 남은 홍보 출연 중 단순 인터뷰 형식의 출연들을 빼 버리고 단 2가지 스케줄만 남겼다.
하나는 호덕이 진행을 맡고 있는 체험형 예능 ‘너를 만나고 싶어’였고, 다른 하나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고향을 가이드 하는 예능 ‘놀러 오세요’였다.
“태화야 잘 왔다! 네가 오늘 우리의 희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