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273
지금까지 태화의 상황을 알리던 브라기가 이번엔 신계의 상황을 설명했다.
신계는 상당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었다.
성인(聖人)반열에 드는 인간은 턱없이 적었으며, 새로 생기는 문화와 예술, 언어, 그리고 사상 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특히 예술의 경우, 장르의 분화가 너무 심해 신들이 간섭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신들은 골치가 아팠고······ 해결책으로 우상화 당하고 있는 세기의 스타들을 신 자리에 앉혔다.
락의 전설, 애니메이션계의 아버지, 모델 업계의 센세이션 등.
인간들이 우상화하는 이들을 데려와 하급신으로 임명했고, 나름 질서를 유지했다.
“그런데 영화와 연기 쪽은 여전히 연극과 연결해서 우리들이 맡았거든.”
태화 이전에도 싹이 보이는 배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이들은 신의 자리를 거부하고 인간의 삶을 살다가 환생의 길에 들어섰다.
가장 찬란한 순간 인간으로서 남기를 원했다.
“자네만큼은 다른 선택을 해주면 좋겠어.”
브라기의 제안은 Afterlife의 제안이었다.
지금 당장 죽으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번 삶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마치고, 우상이 되어 신의 자리에 올라라.
다리를 잃고 절망하던 배우에겐, 과분한 선택지였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태화는 어느새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고 그 안에 든 차를 음미했다.
따뜻한 온도가, 시련 속에서 경직되었던 그의 몸을 녹였다.
“제 선택은······.”
한참을 고민하던 태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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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카메라 뒤쪽에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대본을 훑고 있는 배우를 힐끔거렸다.
세 명이 달라붙어 얼굴 화장을 정리하고 음료를 대주는 것을 보면 누가 봐도 인기 절정의 대배우거나 허영심이 심한 인물인데, 대본 읽는 남자의 얼굴에선 어느 쪽도 연상되지 않았다.
‘꿈을 꿨나······.’
맑고 깨끗한 외모는 엄청난 미형이라 할 순 없으나 은근히 회가 동하는 맛이 있었다.
그렇게 은밀히 사람을 부추기는 외형과 달리 그의 존재감은 흐릿했다.
모래사장 위의 돌멩이 같았으며, 얼굴을 모른다면 신인 배우나 엑스트라로 착각하기 쉬운 하찮은 아우라를 지녔다.
‘······근데 사실 돌멩이인 척하는 다이아몬드지.’
아까 보였던 ‘기적’이 떠올라, 스텝과 배우들은 중심에 서 있는 배우, 태화를 살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그들은 모두 같은 꿈을 꿨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가 된 것처럼 움직였으며 발연기로 소문났던 배우마저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메웠다.
감독은 필요한 하이라이트들을 놓치는 일 없이 잡아냈다.
본인이 찍어 놓고도 지나치게 완벽한 결과에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태화와 합을 맞춘 경험이 있던 배우들은 그런 상황에 가볍게 흥분하는 정도였지만, 처음 겪는 이들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끊을 수 없는 사람이라더니.’
최근 10년 사이, 연예계엔 한 가지 괴담이 돌았다.
[이태화와 호흡을 맞추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상당히 자극적인 소문.
그러나 직접 겪은 이들은 저런 모호하고 중의적인 표현이 가장 알맞다고 입을 모았다.
태화가 연기로 상대 배우를 휘둘러 자기 자신만 돋보이게 한다거나.
그들을 음해하여 커리어를 망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타인을 발판삼아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연예계에서, 태화는 오히려 타인을 짊어진 채 올라갈 수 있는 능력자였으니까.
‘사실 그게 문제지.’
많은 예술가가 마약 속에서 영감을 찾고 종국에는 중독돼 매달린다.
태화와 호흡을 맞춘 이들도 비슷했다.
작가는 자신이 머릿속에서 구상한 세계가 완벽히 재연, 아니 강림한 것을 보며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감독은 인생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을 보며 감격했으며.
배우들은 대본을 읊는 것임에도 무한한 자유를 느끼며 당황과 해방감을 만끽했다.
그들은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이상향’을 경험한 것이다.
실력이 떨어지는 인물일수록 태화에게 집착했다.
본인들이 백날 노력해도 갈 수 없다 생각한 세계를, 태화는 프리패스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별해지고 싶어 연예계에 들어왔으나 흔한 부속품이 돼버린 자신이, 정말로 ‘특별’해지는 경험.
그 달콤함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실력 있는 이들도 태화를 환영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완숙한 경지에 이른 그들은 적당한 온도의 물처럼 본인들의 빈틈을 온전히 메워주는 태화의 매력을 마음에 들어 했다.
피곤할 때 하는 반신욕과 같이 연예계에 종사하며 느낀 피로가 태화와 함께 함으로써 풀렸다.
물론 태화의 소문을 듣고 이득만 노리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태화는 그런 이들조차 자신의 포로로 만들었다.
무슨 약을 한 건지, 태화와 따로 대화를 나눈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누구보다 열심히 현장에 참여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태화를 보며 얼굴을 붉히는 탓에 엄한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당사자들이 모욕이라도 느낀 듯 바르르 떠는 통에 연예계의 흔한 루머 정도로 그쳤다.
“역시 선배님은 반짝반짝 빛나는 거 같아······. 저 청순한 외모 어쩔 거야.”
“······연기가 엄청 소름 돋긴 했는데, 좀 잘생겨도 연예계 평균 정도 지 않아? 솔직히 상대 배우인 하인찬이······.”
“너 어떻게 그리 말할 수 있어? ······하아, 하긴 선배님의 청순함은 나만 알면 되지.”
배신감을 느끼고 파르르 눈썹을 떠는 여배우가 다시금 몽롱한 눈을 한 채 태화를 응시한다.
친구는 여배우의 변화를 보며 세간에 떠도는 또 다른 소문을 상기했다.
이태화가 사실 인간이 아닌 인간을 홀리는 인큐버스나 뱀파이어일 거란, 판타지가 가미된 소문이었다.
‘얘 하는 꼴 보면 가능성이 있단 말이지······.’
예쁘장한 외모와 좋은 기억력만 믿고 연습을 도외시하던 여배우가 태화와 개인 면담을 한 후부터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대본을 연습한다.
적당히 허영심을 채워주며 옆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주워 먹었던지라, 친구는 여배우의 성격을 잘 알았고 이 변화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도 알았다.
‘나쁜 쪽으로 변한 건 아닌데. 뭔가 세뇌 같은 거 당했나······.’
태화와 관련된 허무맹랑한 소문이 하나 추가 되는 사이, 작은 물체 하나가 태화를 향해 달려왔다.
“아빠!”
앳되고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 뒤, 태화의 바짓단이 무거워졌다.
대본을 확인하고 있던 태화는 고개를 숙였다.
서너 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밝게 웃으며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녕? 누구 아이인지 알아?”
드라마에 아역 배우가 없다는 걸 떠올리며, 태화는 의아하단 눈빛으로 막내 매니저와 주변인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누구도, 아이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하아······. 박루미. 미안해 태화야. 우리 애가 실수했네.”
“아, 누님.”
아이의 뒤쪽에 나타난 배우, 효신이 한숨을 내쉬며 태화에게 달라붙어 있던 아이를 떼어냈다.
4년 전 임신했다며 휴식기를 고했던 김효신은 3개월 전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공백기가 길어 퇴물이 되었을 거란 비방과 달리, 그녀는 ‘내가 바로 로코의 여왕 김효신이다!’라는 걸 보여주며 촬영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너 당장 그 다리 못 놔?”
“안 들리~”
“이게 못된 것만 배워서······.”
반항하던 아이는 저녁에 간식을 안 주겠다는 엄마의 으름장에 부루퉁한 얼굴로 태화의 다리를 놨다.
협박해야 말을 듣는 아이가 골치 아픈지 효신은 구겨지려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러 간신히 폈다.
“야, 박루미. 넌 뭐 보는 사람마다 아빠야?”
“엄마도 참. 오빠가 아빠 되면 아빠가 오빠 되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니야? 아빠 아빠 하다가 오빠 되는 거지. 그러니까 잘생긴 사람들은 다 내 아빠야.”
“너, 너······.”
효신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을 더듬더니 결국 머리를 부여잡았다.
딸의 언행을 따라갈 수 없어서다.
“엄마는 참 swag이 부족하단 말이야. 스웩~”
“아, 그래 스웩······. 넌 예의부터 배워야겠다!”
결국 열이 받은 효신은 장소를 신경 쓰지 않은 채 루미를 무릎에 눕히고 엉덩이를 팡팡 두드렸다.
기저귀 때문에 그리 아픈 건 아니라도 수치를 아는 나이의 아이에겐 서러운 제스처였다.
“으아앙-!”
“엄마가 네 궁둥이 안 까는 걸 고맙게 여겨!”
“찬수 오빠아!”
성내는 엄마에게서 벗어난 루미는 효신의 매니저를 부르며 도망쳤다.
도망가는 아이를 보며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내쉰 효신은 놀라 굳어 있는 태화를 확인하곤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 엄마가 되다 보니 이런 모습도 보이네.”
“······좀 새로웠네요.”
태화는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엄마의 얼굴을 한 김효신을 보는 건 처음이었던지라, 그 변화가 놀라웠다.
그러나 효신은 여전히 효신이었고 아이가 생긴 후에도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을 간직했다.
그것이 묘한 감상을 낳아서, 태화는 가슴이 간질거렸다.
“뭐, 엄마들이 다 그렇지. 근데 태화 넌 결혼 안 할 거야?”
“······일단 여자 친구부터 있냐고 물어주는 게 예의 아닐까요?”
“또 헤어졌어?”
효신은 질렸다는 얼굴로 태화를 응시했다.
이제 40대를 넘은 태화는 여전히 독신이었다.
연애를 기피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서른 중반부터 지인들의 소개를 받아 이런저런 여성들과 교제했다.
하지만 그 관계는 매번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네가 상대보다 연기에 치여 사니까 그렇지. 같이 있다가도 대본 수정 있다는 소리 들으면 메일 확인하고, 휴식기라고 해도 재미있다 싶은 역할 있으면 냉큼 복귀하는 애를 어떤 여자가 좋아해?”
태화가 연기를 일 순위로 생각한다는 건, 그에게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심지어 할리우드의 아이돌 제시 코벤에게 카페에서 물 맞고 ‘그렇게 연기가 좋으면 연기랑 결혼해!!’소리 들은 사진은 타블로이드 1면에 대서특필 되었을 정도.
참고로 물에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는 사진은 마치 섹시한 화보의 한 장면 같아서, 싸구려 황색지 판매량이 2배를 넘기는 초유의 사태를 빚기도 했다.
“네 팬들도 이젠 결혼하길 바란다며?”
“하하하······.”
태화의 열애설이 돌 때마다 ‘오빠······. 이번엔 결혼해야죠.’, ‘6개월 이상 기대해봅니다’같은 댓글들도 흔히 찾을 수 있었다.
못난 데 없는 자신의 배우가 매번 차이니 팬들은 태화가 솔로인 것에 기뻐하면서도 묘하게 분해함을 느꼈다.
‘배우가 연기하면 하면 되지!’라는 쉴드는 40 전에 닳고 닳도록 사용한 탓에 그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오빠를 이해해줄 사람이 분명 있을 거예요! 힘내세요!’와 같은 입에 발린 위로뿐이었다.
“정초이 그 계집애가 세컨드는 싫다고 인터뷰한 거 알아?”
“그 정도로 자극적이면 고소 들어갔겠네요. 제 스텝분들은 좀 엄격한 편이라.”
태화가 차이는 이유는 매번 같았고 모두가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연기에 대한 애정.
태화와 사귀었던 여자 연예인들은 적정선을 지키며 그와의 연애 이야기를 풀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빠지지 않는 소제였다.
잘 해주지 않는 건 아니었는데 항상 두 번째인 거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 차라리 경쟁 대상이 여자였으면 머리채라도 잡아 뜯는데.
연기자로선 존경하지만 연인으론 최악.
카메라 앞에선 언제든 사귀어도 밖에선 정강이를 차주고 싶은 남자 등.
연인으로서 태화가 받는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초이 같은 어린 애라 사귀니까 그렇지. 나이 또래랑 사귀어.”
“······다들 저랑 나란히 있으면 자존심 상해서 싫대요.”
“아.”
태화와 사귀는 이들의 나이는 점점 내려갔다.
그가 어린 사람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외모가 문제였다.
태화의 얼굴은 여전히 20대의 싱그러움을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진짜 어린 남자와 사귀는 건 트로피가 될 수 있어도, 동갑임에도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와 사귀는 건 굴욕이다.
거금을 들여 피부 관리를 해봐도 태화와 나란히 있으면 ‘관리를 어떻게 한 거래?’라는 비웃음당하기 일쑤이니, 태화는 몇 안 남은 또래 여자 연예인들 사이에서 ‘신포도’에 가까웠다.
가장 최근 사귄 정초이의 나이는 스물여덟.
열 살 넘게 차이가 났음에도 함께 찍은 사진에선 태화가 더 어려 보였고, 정초이는 대중들에게 ‘노안’이라며 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