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37
‘······기분 뭣같네.’
그 생각을 끝으로 승우의 얼굴에 씌워져 있던 2개의 가면이 벗겨졌다.
* * *
“······지금 좀 오싹하지 않았어?”
“이거 괜찮나?”
스텝들은 승우의 행동에 몸을 움츠렸다.
‘그럼 어쩔 수 없지’라 말한 그는 당연하다는 듯 태화의 팔을 꺾으며 바다에 대한 소유욕을 드러냈다.
고통으로 기절한 남자를 보고 승우는 시시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옷깃을 정리했다.
드라마에서 은근히 보이는 클리셰였지만 스텝들이 걱정한건 행동이 아닌 승우의 표정이었다.
천진하게 나비의 날비를 찢는 아이처럼, 사람을 죽이며 쾌락을 느끼는 살인마처럼.
사람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면서도 시종 일관 떠나지 않는 미소가 섬뜩했으니까.
‘망할 저 새낀 또 왜 저래?’
처음 태화의 어긋난 대사가 나왔을 때부터 창식은 다리를 떨었다.
머릿속으로 멈추라는 말이 울리는데, 문제를 눈치 챈 사람도 없거니와 아까 내뱉은 말 때문에 쉽사리 컷을 외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승우에게 기대하고 있었거늘, 그는 어째서인지 태화의 연기를 받았다.
‘······아니야, 오히려 태양의 잔인한 집착이 가미되면서 괜찮아지긴 했어.’
그는 떨리는 다리를 움켜잡으며 화면을 응시했다.
씬 스틸로 끝났을 장면의 주도권이 다시 주연에게 돌아왔다.
무력하게 꺾인 조연을 안타까워하며 응원하는 시청자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주인공의 집착에 빠져들 것이리라.
저런 흉포한 남자가 바다에겐 자잘한 장난도 치며 나쁘지 않게 대하는 걸 ‘진정한 사랑’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잘 끝났으니 망정이지······.’
친하게 지내자고 AD까지 보냈는데, 태화는 무슨 앙금이 남았는지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참 속이 좁다 욕하며 그는 컷을 외쳤다.
* * *
컷이 외쳐졌음에도 사람들은 쉽게 현장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이 머뭇거리던 그 순간, 누워있던 태화가 어깨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아, 진짜 꺾으려 했어. 너무하지 않나요, 선배님?”
“귀여운 후배 덕에 당황했으니까 그렇지.”
승우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미소를 지으며 태화를 일으켰다.
“······우와.”
그것이 마법을 푸는 열쇠였던지 조용했던 세트장 밖에서 작은 감탄이 터졌다.
“굉장했어요! 우와!”
“혹시 따로 맞추신 거세요? 와, 진짜 오싹한 게······!”
어떤 스텝은 자신의 팔뚝까지 보여주며 소름이 돋았다고 떠들었다.
스타치고 상냥한 승우이기에 방금 느낀 감동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하, 사실 태화의 애드립에 맞춰본 것뿐인데 제 쪽이 칭찬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한 팔로 태화를 끌어온 그는 사감을 담아 태화의 어깨를 꾹꾹 눌렀다.
‘짜증나는 놈.’
줄곧 재밌다고 표현하던 승우가 처음으로 신경질을 드러냈다.
쳐 맞는 건, 그리고 반격당하는 건 전혀 즐겁지 않았다.
스텝들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그는 좀 씻어야겠다며 태화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태화야, 아주 화려하게 저질렀네?”
“선배님은 좀 맞아야 반격하실 거 같더라고요. 턴 제 게임도 아닌데, 너무 방심하신 거 아닌가요?”
여유롭게 말하며 세안하는 태화를 보고 승우는 입술을 비틀었다.
아직 다 크지도 못한 새끼 괴물주제에 건방졌다.
“······재밌다는 말 취소다. 너 짜증나.”
그는 물로 입을 한번 헹구며 중얼거렸다.
성장 중인만큼 태화는 밟아 줄 구석은 많았다.
더 커서 손이 안 닿으면 모를까, 이번 드라마에서 그 정도까지 성장하는 건 무리일 테니까.
“니가 아주 찌질하게 그려지도록 최선을 다하마.”
그렇기에 승우는 그 사이 천재의 발이나 걸어보자고 생각했다.
과거 느꼈던 감과 경고를 무시한 채 말이다.
“그럼 저도 선배님이 비열한 인간으로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클렌저를 꼼꼼히 닦아낸 태화가 수건에 얼굴을 문지르며 웃었다.
정면으로 승부를 받는 건 그로서도 바라는 바였다.
‘아 후련해.’
태화는 수건으로 히쭉거리는 입가를 가렸다.
묵었던 화가 쑥 내려가자 창식이나 다른 사람에게 받았던 짜증도 가셨다.
이렇게 즐거운 걸 왜 지금까지 참았는지 몰랐다.
‘질러버렸으니 저쪽도 뒤로는 못 가겠고, 정말 재밌어지겠네.’
앞으로의 신경전을 예상하며 그는 승우를 응시했다.
미소 속에 가려진 흉흉한 눈빛이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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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 하나
승우와 신경전이 있은 지 얼마 후.
드디어 태화의 매니저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결정됐다.
키우던 애가 귀농을 선택하는 바람에 졸지에 구직자가 돼버린 매니저 김현규.
밀라노에서 유학하고 3년 가까이 작업했으나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무직으로 지내던 메이크업 아티스트 서나래.
프로필은 못 미더웠지만 실력은 확실했다.
네비게이션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길찾기 능력을 지녔으며 연예인의 컨디션까지 고려해 분 단위 스케줄을 짜는 매니저와 패션쇼의 긴박함으로 단련돼 빠른 시간에 완벽한 화장술을 펼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였으니까.
‘한쪽은 멘탈이 너무 약하고 다른 한쪽은 성격이 너무 강한 게 문제지만.’
매니저의 경우 현장에서 배우보다 더 긴장했다.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청심환을 찾았으며 새턴으로 생긴 악플에 심장을 부여잡았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걸그룹 팬들치고 평범한 반응이잖아. 이걸로 나빠질 일은 없을 거야······.
만약 태화가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었다면 같이 땅을 팠으리라.
반대로 나래는 개성 넘치는 모델들을 제압하던 과거 덕인지 괄괄하고 자존심이 셌다.
-지금 하고 있잖아! 오빠가 5초에 한 번 씩 재촉하지 않으면 2분은 더 빨리 끝나니까 좀 닥치고 있어! 이거보다 어떻게 더 빨리 하라는 건데!
어느 유명 샵에 취직했다가 원장과 대판 싸우고 나온 탓에 그녀를 써주는 뷰티샵은 없었고 때문에 화려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BGA의 데이터베이스에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파라미터가 능력에 몰빵된 거 같은데······. 상관없나.’
상상하던 것과 다른 인물들의 등장에 당황하던 태화는 둘의 실력과 솜씨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고용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일만 잘하면 성격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태화가 BGA에 요구했던 가격, 업무 능력 면에서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게다가 외국어도 틈틈이 익힐 수 있으니 좋고.’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나래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에 유창할 뿐 아니라 일부 독일어도 가능했다. 되도록 많은 언어를 발음하길 원하는 태화에게 안성맞춤인 상대였다.
태화는 후일을 생각하며 ‘딕션Ⅱ’와 ‘언어Ⅰ’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새턴의 중국인 멤버 통통을 통해 보통화(중국 표준어)를 연습했고 영어도 BGA에서 소개해 준 미국 아나운서 출신 여성에게 일주일에 세 번 발음 교정을 받았다.
-나 이 정도로 ??(성조: 중국티베트어족에서 나타나는 음의 높낮이) 잘하는 한국인 처음 봐요! 진짜 처음?
-단어가 부족하긴 하지만 문법도 그렇고 발음도 네이티브랑 똑같네요. 재능 있어요.
고작 Ⅰ단계에 불과한 언어였으나 그것만으로도 찬사를 받기엔 충분했다.
기초 문법책을 보면 구조가 쉽게 이해됐고 나와 있지 않은 규칙까지 은연중에 눈치 챘으니까.
‘확실히 재능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심해.’
딕션을 Ⅱ단계로 올리는 조건에 쓰여 있기에 별 생각 없이 습득한 것인데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나래야, 태화가 오늘은 드라마 기자 간담회 후에 바로 제이 리 트레이너하고 약속 있는데 화장 바꾸기 힘······.”
“차타고 20분 걸린다며? 내가 가면서 준비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니, 네 실력은 믿지······. 응, 미안해.”
뒷좌석에 있던 태화는 앞쪽에 앉은 둘의 만담을 들으며 혀를 찼다.
매니저 쪽이 5살 많은데도 대화만 들으면 반대 같았다.
‘그나저나 아버지께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몰랐어.’
아직 신인 중에 신인인 태화가 차를 리스하고 둘을 모두 고용할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 이우석의 조력이 있어서다.
네가 한 푼도 안 쓴 대학 등록금이 그대로 있으니 쓰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건넸으니까.
통장 하나 툭 놓고 방으로 들어간 그를 보며 선미는 말은 안 해도 네 아버지가 많이 서운해 했다 소곤거렸다.
화났어도 자식을 걱정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모질게 굴면서 자신도 상처 입는 게 부모라고 말했다.
“태화······야, 답변은 다 외웠어?”
생각에 잠겨 있던 태화는 현규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통성명을 마치고 매니저가 7살이나 연상인 걸 안 뒤, 태화는 편하게 말하라고 웃었다.
처음엔 그럴 수 없다 손사래 쳤으나 나래가 쉽게 말을 놓는 걸 보고 현규도 어설프게 어미를 바꿨다.
“물론이죠. 정리해주셔서 살았습니다.”
“그게 내 일인 걸. 하하하······.”
사고가 쉽게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것만 제외하면 그는 여러모로 유능했다.
말실수를 하지 않도록 미리 도착한 질문의 답변을 정리했으며 돌발적인 상황에도 대처 할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다른 사람하고 대화할 땐 사람이 바뀌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런 성격으로 대외 관리가 가능할까 걱정했으나 다른 매니저나 관계자들을 대할 때 현규는 우수 영업 사원이라도 빙의한 사람 마냥 열정적으로 태화의 장점을 떠들었다.
연예인이 스스로의 멘탈 관리만 훌륭하게 해낸다면 이만한 매니저도 별로 없었다.
“태화야 긴장하지 마. 아니 넌 아마 긴장 안 하겠지만······.”
“매니저 오빠만 안 그러면 태화는 걱정 없을 걸?”
“응······.”
불안을 조성하는 언행에 참다못한 나래가 입을 열었다.
타박을 듣고 시무룩해진 현규의 모습은 서른 넘은 사람으로 보기 힘들었다.
투닥거리는 둘을 넘기며 태화는 도착할 장소에 대해 떠올렸다.
의 첫 방송이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그에 따라 홍보팀의 활동도 분주해졌다.
오늘 잡힌 소규모 기자회담도 홍보의 일환이었다.
‘여기 있는 질문 중 몇 개나 나한테 오려나······.’
조연에다 인지도라곤 새턴 MV에 나온 배우 A정도인 태화가 간담회에 참석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