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38
아역 출신 인기 배우 한지아가 태화와 비슷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서브 여자 주인공 포지션인 그녀가 참석하니 서브 남자 주인공인 태화도 덩달아 가게 된 것이다.
‘질문도 세 명이 받겠지.’
사실 그가 가서 할 일은 숫자 채우기 간판이다.
나영에 의해 비중이 늘고 남자 주인공의 라이벌 비슷한 위치에 섰다 해도 그는 여전히 ‘무명 배우’였으니까.
부디 풀샷에서 잘리는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그는 창밖을 응시했다.
짙은 선탠 너머로 오늘 회담 장소가 보였다.
* * *
태화의 대기실은 1인실로 배정됐다.
원래라면 조연인 지아와 한 방에서 대기해야했겠지만 안 되면 자기 돈으로라도 개인실을 쓰겠다는 그녀의 고집에 홍보팀은 비용을 좀 더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태화는 작은 방이나마 홀로 쓰게 되었고 조용한 가운데 나래의 손질을 받았다.
“들어오세요.”
“태화씨, 안녕하세요?”
작은 노크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던 그는 드러난 얼굴을 보고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유라씨. 민태씨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주역답게 곱게 차려입은 유라는 태화의 얼굴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평소보다 더 멋있게 느껴졌다.
“같이 가려고 들렸어요.”
옆에서 매니저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그녀는 모른척하기로 결심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진 일정 속에서 자신도 정신적 휴식이 필요했다.
‘게다가 변명도 훌륭했는걸.’
촬영 내내 유라는 태화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시간에 쫓겨 이론 쑤셔 넣기에만 바빴던 연기 선생과 달리 바로 앞에서 연기를 보던 그는 그녀의 부족한 부분이나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을 차례차례 집어줬다.
덕분에 유라는 한명의 어엿한 여배우로 인정받았고 다른 배우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은혜를 입었으니 친한 모습을 보여 그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핑계를 대자 민태도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하고 ‘연애는 절대 안 된다’란 말만 중얼거렸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녀는 며칠 전 보았던 태화와 승우의 연기를 떠올렸다.
분한 마음을 바로 잡은 이후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여전히 멀리 있었다.
그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유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하기 싫었다.
태화는 오늘도 활기찬 유라를 보며 대단하다 생각했다.
통통의 말을 들어보면 전국을 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확실히 숙달된 사람은 달라.’
좀 더 정진해야겠다 생각하고 그는 유라와 함께 대기실을 벗어났다.
* * *
회장으로 향하며 태화는 근황을 물었다.
촬영장에서 만나도 연기를 교정해주기 바쁘다보니 이런 식으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유라는 멤버들 사이에 있던 이야기나 행사장에서의 사고, MV의 반응 등을 떠들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엔 즐거움과 애정이 스며있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답변 준비는 많이 하셨어요?”
주연이니까 질문이 쏠릴 텐데.
그는 염려 섞인 눈으로 유라를 응시했다.
어렴풋이 알았던 바쁜 일정에 대해 듣자 과연 준비할 시간이 있었을까 걱정됐다.
“조금요. 그런데 대부분 승우 선배님을 향하지 않을까요?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제 별명이 그렇잖아요.”
“······아.”
쓰게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태화는 그제야 인터넷에서 봤던 댓글을 떠올렸다.
언제나 연기를 봐왔던지라 그녀가 어떤 소리를 듣는 지 잊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한 명의 주연을 뽑으라 한다면 대부분 주 시청자들이 감정을 이입하는 여 주인공 쪽을 선택한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연보다 월등히 앞서면, 그런 일반론도 깨졌다.
현재 가 그러했다.
연기력에 의문 부호가 붙는 아이돌과 상당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언제나 젠틀한 역할을 하긴 했어도 승우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일부 네티즌들은 차라리 한지아를 여 주인공으로 넣으라 떠들었고 새턴의 팬클럽 포에베만이 최선을 다해 그들을 막고 있었다.
“걱정 마요. 방영시작하면 그런 말도 전부 들어갈 테니까.”
“걱정 안 해요. 이미 각오한 바인 걸요.”
오히려 지금 눈에 띄지 않아 편하다며 유라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 말이 사실이었다면 이리 웃지 못했으리라.
이제는 과거가 된 이야기이기에 그녀는 그 평가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아니지?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되지!’
잠시 뿌듯해하던 유라는 머리를 흔들어 스며든 자만심을 내보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겨우 출발 선상에 선 걸로 웃으면 안 됐다.
“어어, 유라야 머리 흐트러져!”
“아.”
민태에게 지압당하 듯 머리를 잡힌 유라는 붉어진 얼굴로 태화를 바라봤다.
놀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그를 보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 벌레가 있어서요!”
“아, 네······.”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은데 왜 맨날 이러는 걸까.
그녀는 울고 싶은 마음을 참고 정말이라 우겼다.
태화는 안쓰러움을 감추며 진중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다보면 저럴 수 있다.
그도 회귀 전 재활운동을 받았을 때 가끔 이해 불가의 행동을 하곤 했으니까.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그럴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그들은 회장에 다다랐다.
────────────────────────────────────────────────────────────────────────둘 셋!
사회자의 부름에 회장으로 들어서자 드라마의 제목과 함께 4명의 얼굴이 프린트된 스크린과 조명으로 밝혀진 무대가 눈에 띄었다.
차례대로 PD, 승우, 유라, 지아, 마지막으로 태화가 무대 위로 올라가는 순간 자잘한 플래시들이 반짝거렸다.
‘작다고 들었는데······. 서른 명은 온 것 같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이들과 뒤에 마련된 책상들에 앉아 랩탑을 편 채 무언가를 적고 있는 이들.
팀단위로 움직인 것인지 보이는 로고 스티커는 대략 10개, 대부분 인터넷 신문사였다.
“총괄을 맡으신 박창식 감독님이십니다.”
옆에 있던 사회자가 가까운 사람부터 한명씩 소개했다.
호명과 함께 박수와 플래시가 터졌고 태화의 배역과 이름이 소개됐을 땐 형식적인 환호만이 작게 울렸다.
‘뭐 당연한 거지.’
딱히 기대하지 않았기에 태화는 덤덤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짧은 포토타임조차 태화는 정면만 보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참 인기와 인지도가 중요한 동네라 혀를 차며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미소 지었다.
플래시가 멎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종이패를 세팅했다. 이름이 인쇄된 것으로 감독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름위에 작게 배역이 적혀있었다.
“안녕하세요. 박가람 역을 맡은 이태화입니다.”
“안녕하세요. 오한별 역의 한지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마이크는 먼저 조연들을 향했다.
의아한 마음으로 포문을 연 태화는 이어진 승우의 말을 듣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안녕하세요. 강태양 역을 맡은 하승우입니다. 강태양이란 인물은······.”
주연들의 인사엔 극중 인물에 대한 소개가 포함되어있었다. 찰칵거리는 소음 속에서 승우는 마이크를 잡고 담담하게 주인공을 소개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설명이 끝나자 그는 유라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안녕하세요, 황바다 역을 맡은 유라입니다. 사실······.”
주연들의 인사까지 끝나고 마이크는 감독에게 넘어갔다.
그는 예정된 질문에 맞춰 작품에 대한 설명과 어떤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했고 카메라 열 뒤에서 차각거리는 자판 소리가 울렸다.
태화에게 올 줄 알았던 오디션 관련 질문은 창식에게 돌아갔다.
4명중 유일하게 오디션으로 뽑은 무명 배우.
PD는 태화의 실력을 칭찬하며 자신의 드라마엔 구멍이 없다 자신했다.
“태양은 차갑고 냉철한 인물이라 들었는데, 새로운 연기의 시도십니까?”
자유질의시간이 돌아오자 먼저 승우를 향한 물음이 날아들었다.
자유라 해도 사전에 합의된 사안들이었던지라 마이크를 잡은 승우에겐 거침이 없었다.
“마지막 질문 받겠습니다.”
대략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대화가 드디어 끝을 보였다.
진행자의 말에 눈치를 보던 이들 중 한명이 손을 들었다.
“데일리퀵의 정명호입니다. 가람 역을 맡은 이태화씨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이름이 호명되자 태화의 앞으로 마이크가 전달됐다.
참 오랜만에 보는 마이크라 생각하며 태화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첫 드라마 촬영인데 많이 긴장되지 않습니까?”
매니저가 예상했던 질문 중 하나로 간담회에서 으레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작품에 집중하는 이들이라 다행이네.’
MV나 유라와 관계된 내용이 아니라 안도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다른 배우 분들께서 도와주는 덕에 특별히 힘든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는 실수로 압존법을 잘못 쓰거나 선배라 부르지 않도록 조심했다.
업계에서 선배, 선생이라 부르더라도 대중들에겐 똑같은 배우일 뿐이니까.
이런 간단한 실수로 미움을 사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특히 승우씨 기백이 대단해서, 눌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태화는 유라를 언급하는 대신 대본대로 승우의 이름을 팔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최대한 유라와 엮이는 것을 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