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39
BGA의 조언이었고 매니저 현규 또한 그 말에 동의하며 포에베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다 충고했다.
슬쩍 유라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담담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사정을 알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리라.
“이런. 사실 태화씨야말로 대단하죠.”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승우도 말을 올리며 태화의 얼굴에 금칠을 했다. 마치 기특한 후배가 자랑스럽다는 듯 가식으로 점철된 태도였다.
촬영장에서 가면을 벗게 된 이후 승우가 태화에게 달라붙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다.
태화가 처음부터 그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로, 그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만 예전의 모습을 흉내 냈다.
그런 승우의 태도와 달리 촬영 스텝들은 그들이 전보다 더 친해졌다고 여겼다. 둘이 함께 카메라에 섰을 때의 박력은 따로 다른 장면을 소화할 때완 달랐으니까.
이용하려던 여인에게 소유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보이는 냉혈남, 그런 푸른 피에게 짝사랑하는 여자를 넘길 수 없다고 버티는 흑기사.
여주인공 모르게 일어나는 신경전은 촬영하는 이들의 마음까지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상으로 월화 드라마 기자간담회를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몇 번의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고 시계를 확인하던 사회자가 끝을 고했다.
누군가 박수를 치기시작하자 배우와 감독도 작게 손을 부딪쳤다.
* * *
“일찍 움직이네?”
“······다음 장면 때문에 트레이닝 일정이 있어서요.”
회장에서 돌아가는 길, 오랜만에 승우가 태화를 붙잡았다.
태화는 그의 옆을 훑었다.
미리 주차장으로 향한 것인지 주변에 있어야 할 매니저가 보이지 않았다.
“요즘은 좀 풀어주고 있어. 실이 너무 팽팽해졌거든.”
슬쩍 주위의 사람들을 보며 승우는 사람 좋은 미소로 태화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저 지금 바로 가야 하는데 말이죠.”
“걱정 마.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안면 있는 이들에게 태연히 인사를 건네며 그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상식이의 행동이 좀 과격해 질 거야. 주변 시선도 의심에서 확신으로 변할 거고.”
상식이 누구인지 생각하던 태화는 그것이 승우의 매니저임을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다.
한동안 조용히 있더니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것 같았다.
“미간에 주름 생기겠다. 아쉽게도 내가 건드린 건 아니야.”
그는 엄지로 태화의 미간을 꾹꾹 눌렀다. 마치 벌레를 눌러 죽이는 것처럼 사감이 듬뿍 들어 간 움직임이었다.
“널 밟는데 방해돼서 상식이를 말려보려 했는데······.”
거기까지 말하던 승우는 잠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신선놀음하느라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더라고.”
태화를 만난 뒤로 뜻대로 쉽게 되던 것들이 하나하나 제 손을 벗어났다.
친절이란 가면을 쓰고 다가선 걸 들켰다.
그대로 처리하려 했는데 어째서인지 통하지 않았다.
신경 쓰여 장난치다보니 가면이 벗겨져버렸고 종국엔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마저 제멋대로 폭주했다.
태화를 마주하고 자신이 그 간 쌓아 올린 탑에 묘한 균열이 일어났다.
‘톱니 사이에 가루라도 낀 것처럼 말이지.’
이대로는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태화에게 한 걸음 떨어져 주변 정리에 들어갔다.
촬영 외에서 드러나지 않도록 가면을 정비했으며 앞으로의 행동도 수정했다.
천재를 보내주는 것엔 실패했다.
그도 몰랐던 이상한 호승심이 친해질 수 없다면 발목이라도 잡으라며 부추겼으니까.
귀엽지 않은 후배를 직접 혼내주자 결심한 승우는 마지막으로 매니저를 정리했다.
아니, 정리하려했다.
“지금 말리다간 내가 다칠 거 같더라.”
매니저에게 차곡차곡 쌓아줬던 폭력에 대한 공포, 억압이 태화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괜찮다고 말한다면 터지기 직전의 화가 승우를 향하리라.
방해받는 것은 싫어도 해를 당하는 건 더 싫었다.
‘그냥 처리할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을······.’
처음부터 깨끗한 인물이 아니었으니 3자를 통해 정보들을 흘리고 과거를 들추면 가볍게 떼어 낼 수 있다.
상식이 돌보던 아이돌 그룹과 자신은 단순한 ‘피해자’가 되어 대중의 동정을 받는다.
괜찮은 시나리오였고 한 통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진행했을 것이다.
-거기 있는 살(殺)은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둬. 함부로 바꾸거나 치웠다간 다른 형태로 너한테 갈 거니까. ······그러니까 좀 똑바로 살라고 말했지! 내가 언제까지 니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점괘를 확인할 때마다 흉이나 원망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정치한다는 년놈들도 너만큼 더러운 새끼는 거의 없거든!
승우가 정보를 뿌리려던 찰나 ‘무당’이 연락했다.
지금하려는 행동을 당장 멈추라고, 그대로 두는 것이 그나마 뒤틀리지 않아 대응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승우는 ‘나보다 더럽게 노는 인간이 있다니 이 나라의 미래는 어둡네’라 장난 쳤으나 헛소리 말라며 혼만 났다.
‘그렇게 성격이 나빠서 어떻게 결혼하려고. 쯧쯧······.’
땍땍거리던 무당을 떠올리고 그는 가볍게 혀를 찼다. 얼굴은 반반하니 괜찮은데 어릴 적부터 귀신에 쓰인 탓에 성격이 너무 괴팍했다.
“······데요?”
“음?”
멍하니 있던 승우는 옆에서 들린 작은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태화가 못 미덥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알려 주냐고요.”
“네가 걔한테 당하면 좀 마음 아플 거 같아서.”
처음으로 흥미가 생긴 먹이이니 자신이 괴롭히고 싶다.
그러다 당하면 어쩔 수 없다 생각했는데, 이젠 아쉬울 것 같았다.
“그렇게 됐으니 부탁할게?”
그의 생각을 읽고 태화는 얼굴을 구겼다.
“진짜 한결같이 최악이네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태화는 승우의 팔을 털어냈다.
카메라 밖에선 더 이상 한 마디도 나누기 싫었다.
“태화야······? 태화야······!”
“네 매니저가 부르네, 얼른 가봐. 매니저한테도 조심하라 전하고.”
“······.”
가볍게 손 흔드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태화는 자신을 찾는 목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 * *
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태화가 도착한 곳은 한 가정집이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보컬 트레이너 제이 리.
드라마에 새로 추가된 노래 부르는 장면을 도와줄 사람이었다.
제이는 새턴뿐 아니라 수많은 가수들을 성장시킨 백전노장으로 기회는 공평해야한다며 대형 기획사에서 여러 차례 보내온 러브콜을 거절하고 소형 기획사의 아이돌들까지 관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말하는 기회는 돈과 인지도를 필수로 하기에 2년 전까진 새턴도 ‘다가갈 수 없는 그대’였다.
‘사실 엄청난 특혜지.’
그런 사람과 시간을 잡을 수 있던 건 전적으로 새턴 덕분이었다. 새턴이 아니었다면 그런 사람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테니까.
MV촬영 이후 그녀들은 자신들의 소속사가 했던 행동을 알고 살짝 전전긍긍하는 면이 있었다.
식사 한 끼로 때우는 경우도 많으니 괜찮다 말해도 듣지 않았고 결국 자신들이 잡힌 예약 일정 하루를 태화에게 양보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들어주다니. 제이 리라는 분, 꽤 너그럽네.’
콘서트 티켓도 아니고 레슨 시간이다.
자존심이 세서 마음에 찰 정도의 인물이 아니면 예약조차 받아주지 않는 트레이너.
아무리 새턴이 양보했다고 해도 흔쾌히 수락했다는 게 신기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서른 살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가벼운 연습복 차림으로 태화를 맞이했다.
그는 살짝 감탄했다. 50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연예계에 있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나이를 안 먹었다.
제이는 마주한 태화를 보고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꽤 잘생겼을 거라 생각했거늘 그의 외모는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유라가 눈이 낮네. ······아니야, 저 정도 커버력이면 속을 만도 해.’
자신의 눈은 못 속였지만 무서울 정도로 잘 먹은 화장을 대부분은 알아채지 못하리라.
연습실로 안내하면서 그녀는 며칠 전 있었던 사고를 떠올렸다.
태화의 예상대로 제이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강했고 어중이를 가르치지 않았다.
자신이 아끼는 제자들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선생니임! 부디 우리 작은 언니의 연애를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우리를 키우느라 늘 고생하던 작은 언니의 인생에 드디어 핑크빛이 돋았는데! 네에? 부탁드릴게요. 흑흑.
-拜托?了~(부탁해요) 흑흑.
매니저 민태가 없는 사이 새턴의 막내 둘이 똘똘 뭉쳐 제이에게 애원했다.
자신들이 투어 나가느라 빌 스케줄에 한 남자를 집어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형평성에 어긋나니 절대 안 된다고 말해도 그녀들은 간식캔을 본 고양이마냥 달라붙었다.
-선생님, 태화씨를 도와줄 사람은 선생님뿐이세요.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너 진짜 연애해? 태화씨? 그게 그 남자 이름이야?
말리는 역할인 유라까지 가세하자 지금껏 장난으로 알고 귀찮아하던 제이도 두 소녀들의 말이 사실인지 의심했다.
-아뇨! 쟤들이 오버하는 거고 저는 그냥 인간적 호감이에요! 그냥 지금까지 도움 받은 것도 많고 신세진 것도 많아서······. 정말 아니거든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얼굴을 붉힌 것을 보며 제이는 봄임을 깨달았다.
제자에게 찾아든 봄.
결국 제이는 소녀들의 요구를 승낙했다.
어떤 인물이 4년 간 연예계에서 구른 노련한 소녀를 홀렸을지 궁금해졌으니까.
‘······아니면 뭔가 다른 점이라도 있나?’
배우라 했으니 뭔가 독특한 매력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풀리지 않을 고민을 하며 그녀는 천천히 지하에 있는 개인 작업실로 향했다.
“시설이 굉장하네요······.”
“돈을 좀 들였어요.”
완벽한 방음시설을 갖춘 그곳은 녹음 장비부터 가벼운 악기까지 구비된 장소였다.
너무 전문적인 도구들의 등장에 살짝 긴장한 그를 제이는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문을 지나자 복싱클럽처럼 한 면이 전부 유리로 된 넓은 연습실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