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41
“이모가요?”
태화는 반갑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회귀 후 잊고 있었으나 성태 말고도 그에게 잘해주던 이들이 몇몇 있었다.
선애도 그 중 한명으로, 미국으로 이민 갔으면서 혼자가 된 태화가 걱정 된다며 매년 그를 찾아왔다.
-피는 안 이어졌어도 난 네 이모야! 너 이런 식으로 있으면 선미랑 형부가 좋아할 것 같아!
억척스러운 면이 있는 그녀는 정신 차리지 못하는 태화를 다그치는 동시에 장애인 등록과 기타 서류 처리를 도와줬다.
성태가 내적인 희망을 다시 세워줬다면 선애는 그가 살 수 있는 기반을 세워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바보 같았지······.’
우석의 유산이 우민에게 넘어갔다는 소리에 그녀는 기함을 터뜨리며 당장 정정 신청을 하자고 태화를 설득했다.
갑자기 사라진 부모님, 없어진 다리, 가족들의 배신으로 자포자기했던 그는 그런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성태가 준 꿈을 따라 도망쳤다.
제 1 상속자라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바로 잡지 않은 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제 없는 일이라도 한 번 만나서 인사하고 싶었는데 잘 됐네.’
“이모도 같이 보면 되겠네요.”
-······음. 사실 선애가, 다른 애들도 데려왔거든?
“······설마 이모들 전부 온 건가요?”
기뻐하던 태화는 살짝 창백해진 낯으로 수화기 너머의 소리에 집중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어린애 울음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이모라 부르지만 그녀들은 선미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한 친구들이었다.
회귀 전 선미가 죽고 점차 소원해졌어도 그녀들은 생각날 때마다 그를 챙겨주며 안부를 걱정했다.
‘좋은 분들이긴 한데······.’
진짜 이모라는 게 어떤 건진 모르나 돈만 밝히는 숙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
그러나 커다란 문제가 몇 가지 있었는데 이모들은 중년 여성 특유의 오지랖을 지녔으며 남의 부끄러운 흑역사를 함부로 들췄다.
어릴 적부터 알아왔던 탓에 그녀들은 태화의 어린 시절 실수에 대해 그의 아버지보다 더 상세히 알았다.
다 같이 있을 때 만나게 되면 벌써 이만큼 컸다느니, 예전엔 소방차가 꿈이었는데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됐다느니, 길가다 혼자 넘어져서 서럽게 울던 게 어제 같았는데 그립다느니 같은 소리를 면전에 흘렸다.
조금 부끄럽긴 해도 이모들과 자신뿐이라면 괜찮았으리라.
그러나 그녀들은, 그녀들의 아이들에게 무용담처럼 태화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걸 들으라고?’
겉은 스물다섯, 정신은 서른.
초등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감당하기엔 조금 힘겨운 나이였다.
‘게다가 선 자리가 잡힐 지도 몰라······.’
회귀 전에도 괜찮은 아가씨가 있다며 자리를 권했다.
자존감이 바닥을 찍었던 그는 그런 권유들을 날카롭게 쳐냈고 등짝을 여러 번 맞았다.
암울했던 과거를 털어내며 태화는 재빨리 계산했다.
자신이 주인공인 자리이니 분명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 자리에 함께 왔을 초등학생, 유치원생 아이들에게 과거가 낱낱이 알려질 것이다.
그 수치 퍼레이드에서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불가능하지.’
차라리 연배가 비슷하면 좋으려만. 일찍 결혼해서 바로 태화를 낳은 선미와 달리 다른 이모들은 늦은 결혼에 노산까지 겪어 태화 다음 가는 나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선애 이모나 다른 이모들 성격 생각하면 고등학생 애까지 데려왔을 게 분명해.’
머리 다 큰 애 앞에서 과거 있었던 실수가 하나 둘 풀리는 걸 듣고 있어야 한다.
태화는 심호흡을 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죽기 직전의 병사처럼 암울했으나 그래도 수락은 해야 했다.
‘부디 혀 깨물고 죽지만 않······.’
“저 안녕하세요, 어머님! 전 태화 오빠에게 큰 신세를 진 서에스터라 합니다!”
“에스······!”
-어머, 안녕하세요.
그가 창백해진 낯으로 하나뿐인 선택지를 고르려던 찰나 옆에 있던 에스터가 태화의 전화를 낚아챘다.
“어머님 목소리가 미인이시네요! 사실 태화 오빠에게 첫 방영을 같이 보자 꾀려던 참이었거든요! 저희 멤버 중 한명도 함께 촬영해서······!”
마치 잘 알던 사이인 것 마냥 그녀는 경쾌한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그 탓에 주변의 시선이 모이는데도 전화 너머로 티내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끼리 보는 것이 베스트인 건 알지만 저희들도 나름 역사적인 순간이거든요!”
누가 래퍼 아니랄까봐 에스터는 또박또박한 말투로 빠르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닷!”
태화가 자신들과 갔으면 좋겠다고 장황하게 늘어놓던 에스터가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던 건너편에서 곧 작은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래요. 안 그래도 우리 아들이 곤란할 거 같아 걱정했는데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괜찮겠죠. 그럼 태화를 잘 부탁해요.
“캄사합니다!”
허락을 받아낸 에스터는 번쩍 고개를 들고 태화를 향해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는 스마트폰을 받아들고서야 자신의 선택지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
“오빠 얼굴이 도살장 끌려가는 돼지 같아서 끼어든 건데······. 별로였어요?”
“돼······. 아니, 그건 고마운데.”
“그럼 됐어요. 훗. 정 고마우면 항아리 우유 메론맛이면 충분해요.”
그녀는 서부극의 보안관처럼 잘난 척하며 멋있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일을 마친 현규가 둘에게 다가오자 에스터는 자신들의 차를 타고가면 된다며 제멋대로 그를 보내버렸다.
태화가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녀의 손에 이끌려 주차장까지 와버린 상태였다.
“아참, 태화 오빠.”
“어?”
“저 따로 좋아하는 사람 있으니까, 멋지다고 반하시면 안 돼요?”
턱을 엄지와 검지로 집던 그녀는 까르르 웃으며 밴으로 안내했다.
태화는 묘한 눈으로 에스터를 바라봤다.
항상 오지랖이 심하고 수더분하다 느꼈던 모습이 갑자기 믿음직스러웠다.
────────────────────────────────────────────────────────────────────────첫 방영
“오빠 내가 이렇게 부탁해요. 응?”
여자가 매달리자 남자는 매정하게 손바닥으로 쳐내며 소녀를 흰 눈으로 흘겼다.
“안 돼.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비 오는 날 더러운 상자에서 떨고 있는 강아지를 발견한 심정?”
그녀는 살짝 무릎을 구부려 키를 줄인 뒤 입가로 양 주먹을 모았다.
누가 봐도 귀엽고 애처로운 모습이었으나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소녀를 비웃었다.
“절―대 안 돼. 그런다고 허락할 거 같아?”
“흑. 나 울어버릴 거야.”
“얘가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서. 안 돼, 안 돼. 절대 허락 못해.”
남자, 새턴의 매니저 민태는 아까부터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에스터를 쥐어박았다.
태화의 소속사인 BGA로부터 사적인 친목을 지양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데다 계속 이성이 드나들면 새턴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
그걸 모를 애도 아닌데, 오늘따라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폭력 반대!”
“너도 알잖아. 너흰 인기 그룹이고 그런 너흴 보는 시선은 어디에나 있어. 좀 조심해주면 안 되겠니?”
“하지만 이미 태화 오빠 매니저도 보냈는데요? 이대로면 태화 오빤 걸어가야 할 텐데······.”
‘······그 사람 좀 더 똑 부러지는 인간인 줄 알았는데.’
민태는 배우를 버리고 사라진 현규를 욕했다.
매니저의 하루 일과는 자신의 연예인을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으로 끝난다.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업무며 다른 이들에게 맡기지 말아야 할 부분이었다.
집 간다던 이가 사고를 칠 수 있거니와 반대로 당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에스터가 농간을 부렸을 건 아는데······.’
아무리그래도 걸 그룹 숙소에 가려는 걸 방치하다니 프로 의식이 부족했다.
애원이 통하지 않자 에스터는 차 안에 지원 요청을 하려 시선을 돌렸다.
언니들이라면 분명 자신에게 호응해주리라.
그러나 그 시도는 처음부터 막혔다.
“내가 애들 나오지 말라고 으름 놓고 나왔어. 그렇게 봐도 문 안 열려.”
“······치사해! 오빠 언제부터 그리 잔인한 사람이었어요!”
“난 원래 잔인했어. 태화씨도 애가 조른다고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안 되죠.”
“······죄송합니다.”
옆에 있다 혼난 태화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주차장이었지만 그런 말을 꺼내 부스럼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봐도 생각이 부족한 행동이었다.
“숙소로 가면 좋겠지만 안 되면 사내 식당도 괜찮아요! 이 오빠, 오늘 집에 가면 내일의 태양을 못 볼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
에스터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은 민태를 당당하게 응시했다.
사실 그녀의 계획은 매니저보다 일찍 밴에 타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타버린 사람을 내쫓을 정도로 매정한 사람이 못됐고 그렇게 되면 어영부영 숙소로 갈 수 있었으니까.
그랬던 것이, 가족과 함께 본다는 태화의 말에 잠시 취소되었고 다시 결정 내렸을 땐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그래서 이리 혼나게 되었지만 에스터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는걸······.’
태화가 전화를 받았을 때 에스터는 적당히 인사를 건네고 밴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낯빛이 창백해지며 입가의 웃음이 억지웃음으로 변하기 전까진 말이다.
언더에 있을 적 친구에게서 자주 보았던 미소였다. 이유는 명백히 달라도 그런 얼굴을 본 이상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었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며 태화를 이끌었다.
불쌍한 인간을 하나, 아니 언니까지 둘을 구제하자 생각하면서.
“······하아, 에스터. 너희랑 남자 하나를 어떻게 같이 둬?”
“그럼 매니저 오빠도 같이 가면 되죠!”
뇌가 청순한 사람처럼 냉큼 대답한 그녀는 재빨리 차로 다가가 따다다닥 썬텐된 창문을 두드렸다.
언니들을 향한 구조요청이었고 창에 달라붙어 구경 중이었던 그녀들은 지체 없이 문을 열어줬다.
“매니저 오빠! 아무래도 딱딱하게 됐는데 받아 주는 게 人之常情 (인지상정)!”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던 통통이 당당하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마치 판관 포청천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기세였다.
“딱딱하게가 아니라 딱하게여. 허고 렌쯔이뭐시기라 말하지 말고 한국어로 해.”
“한국어로 모르겠는데······. 음, 린치창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