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42
“······인지상정 아니야? 근데 정만 제대로 발음하네?”
동생들의 바보 같은 대화를 한 귀로 흘리던 소연이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한 채 끼어들었다.
항상 담담하게 방관하던 그녀가 끼어든 것이 기뻤던지 통통은 해맑게 웃었다.
“초코파이에 적혀있었어!”
“하아, 너희 제발 밖에선······.”
“······역시 전 집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재잘거리는 소녀들을 응시하던 태화는 쓴웃음을 지으며 에스터의 손을 때어냈다.
자신을 위해 소란을 피우고 태우려는 건 이해했지만 정신 차리고 생각하니 민태의 말이 옳았다.
4년차이긴 하나 암흑기에서 이제 막 부활한 걸그룹.
운 좋게 주연급 조연을 맡았으나 이제 막 데뷔한 신인 배우.
촬영장 밖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 봐야 ‘쟤들 사이좋네’가 아닌 ‘좀 인기 얻었다고 까부네’ 소리 듣기 딱 좋은 조합이었다.
‘BGA에서도 거리 두는 모습을 보이라 조언했고······.’
여러모로 도움을 준 그녀들을 곤란하게 할 순 없었다.
“어? 하지만······.”
“도와줘서 고마워, 에스터. 좀 곤란하긴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니까. 집에 가도 문제는 없어.”
“······.”
어린아이에게 하듯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그녀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배려하는 모습조차 친구를 닮아 곤란했다.
“태화씨 역까지 태워드리겠습니다.”
“아뇨. 여기서 걸어서 10분 정도 밖에 안 걸리고 또 밖에서 괜히 내리는 모습 보이는 건 안 좋으니까요.”
태화는 손을 휘휘 저었다. 여기는 스튜디오 전용 주차장이라 괜찮았지만 밖에선 누가 어디에 있을지 몰랐다. 불필요한 잡음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 깔끔했다.
민태도 그의 뜻을 이해하고 가타부타 말없이 인사를 건넸다.
잠시 아쉬운 눈빛을 보내던 소녀들은 이따가 문자를 보내겠다며 밝은 얼굴로 태화를 배웅했다.
* * *
“······안녕.”
“······안녕하세요.”
“음······. 공부는 잘 되니?”
“그럭저럭요.”
태화는 뻘쭘한 얼굴로 구석에 앉아있는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모들의 딸 중 하나로 올해 중학생이 된 아이였다.
그의 예상대로 집에 모여 있던 선미의 친구들은 격하게 태화를 환영해줬다. 그가 오랜만에 다 함께 모인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릴 만큼 화목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열기 속에서 태화의 과거사를 읊었다.
덕분에 그는 고작 10살 된 아이에게 ‘꿈이 사람도 아닌 차? 형 바보야?’라는 소리를 들었고 계속되는 수치를 이기지 못해 구석으로 피신했다.
‘드라마 시작되면 좀 나으려나.’
“······오빠 TV에 나온다고 해서 엄마도 엄청 신나했어요.”
“고마운 일이지.”
일반인들이 볼 때는 단순히 케이블 월화 드라마의 서브 남주일 뿐인데, 그녀들은 공중파 남자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호들갑을 떨었다.
그게 애정 어린 관심이란 걸 알기에 태화는 부끄러우면서도 기꺼웠다.
“촬영장 가면 예쁜 사람 많아요?”
“많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인지 그녀는 미묘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툭툭 질문을 던졌다.
“주연들이랑 친해요?”
“왜, 좋아하는 배우라도 있어?”
“오만수요.”
“그래······.”
담담하게 나온 원로 배우의 이름에 태화는 당황스러운 심정을 감췄다.
아이답게 하승우나 유라를 언급할 줄 알았는데, 설마 강태양의 아버지 역인 오만수를 댈 줄은 몰랐다.
‘싸인이라도 받아줄까’라 묻자 소녀는 처음으로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이름을 주고받는 사이 드디어 방송 시간이 다가왔다.
테이블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이들도 거실로 나왔고,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인 아이들도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태화야, 시청률이 몇 프로나 나와야 잘 나오는 거니?”
선애의 물음에 태화는 관계자들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오늘 첫 화니까 3.2만 되도 나름 선방이에요.”
“그렇게나 높아? 몇 년 전 모 웹툰 드라마가 4% 넘었다고 엄청 신문에 났는데······.”
“요새는 각 집에 케이블이 있잖아요. 그 덕에 접근성도 지상파 못지않아서 대략 1.33배 정도 차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정보에 반짝이는 눈으로 응시하는 이모들과 어머니를 보며 태화는 그녀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업계 이야기를 조금씩 풀었다.
그렇게 광고를 흘리고 있자, 곧 화면이 바뀌며 의 오프닝이 시작됐다.
* * *
언제나 똑 부러지게 제 일을 하는 주인공 황바다.
회사 사람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제 내일이면 새신부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룰 예정이었던 그녀.
그러나 어이없게 파혼을 통보받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잘 못한 것이라며 꾸짖었다.
“어머어머, 태화야 너 나온다.”
“화면으로 보니까 확실히 미남이네.”
“······우리 아들 안 같은데?”
“사진 찍어두자, 사진!”
드디어 등장한 그의 모습에 그녀들의 수다 소리가 커졌다.
어머니들이 소란스러워지자 얌전히 있던 아이들도 기세를 탔다.
거실의 분위기가 붕 뜨려던 찰나, 태화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능글맞게 여 주인공의 어머니를 대하던 사람과 동일인물이라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가라앉은 시선.
슬픈 듯, 화가 난 듯. 애틋한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빛.
그 장면은 흩어지려던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굉장하네······.’
조용해진 거실에서 선미는 소파 위에 앉아 있는 자신의 아들을 슬쩍 흘겼다.
익숙하고 항상 봐온 모습인데 어째서인지 TV안의 아들은 다른 사람처럼 낯설었다.
순간 클로즈업 됐던 장면이 전체 화면으로 돌아가자 애틋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장난치는 남녀만이 남았다.
태화는 자신의 연기를 확인하며 아쉬워했다.
이 정도로 클로즈업 될 줄 알았다면 눈빛 연기에 좀 더 신경 썼을 텐데, 10년 넘게 사랑을 품어온 남자의 것으로 보기엔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역시 연기할 때 예상이랑 연출은 다르다니까.’
연출 팀과 좀 더 친하게 지내야겠다 생각하며 부족한 부분을 고민하는 사이 집에서 술집으로 이동했던 배경이 날 밝은 침실로 바뀌었다.
-까악!
-······시끄러워.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난 남자가 언짢은 눈으로 바다를 훑었다.
금요일 저녁 을 보는 시청자들처럼 침 삼키며 다음을 기다리던 그 순간, 둘의 모습이 양단된 화면에 클로즈업되면서 세피아 빛으로 변했다.
“뭐야, 벌써 끝이야?”
“진짜, 약았다니까.”
두 이모들은 투덜거리며 음료를 들이켰다.
드라마에 집중하느라 한 시간 가까이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저번 월화 드라마가 너무 재미없어서 걱정했는데, 이번 건 되게 괜찮다. 내일 모임 가서 떠들어야겠어.”
“태화야, 이모랑 사진 좀 찍자. 낼 가서 자랑하게.”
시끄러워진 공간에서 태화는 일일이 답하며 슬쩍 검색했던 화면을 확인했다.
16부작│시청률 2.1%.
3%도 못 되는 최악의 시청률을 확인한 그는 의외로 담담하게 화면을 끈 채 얌전히 이모들의 인형이 되었다.
* * *
tvM 주조정실.
새턴과 태화가 TV앞에 앉아있던 것처럼 방송국 직원들도 작은 스크린과 시청률이 집계될 모니터 앞에 모였다.
“얼마나 나올까?”
“일단 첫 화니까, 2%로 시작에서 3%?”
“제대로 집어 장부 정리할 거야.”
“내기하는 거야?”
첫 방송이 있을 때는 언제나 활기차다.
다들 이번 방송이 얼마나 성공할지, 자체 시청률 돌파가 가능할지에 관심을 모았다.
“잘 뽑히긴 했지?”
“다들 연기력이 후덜덜했잖냐. 이거 나가면 유라 연기력 논란도 종결 될 걸?”
유라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인데다 다른 중견 배우들이 인정 할 정도로 연기 실력이 올라갔다.
화면 속에선 누가 봐도 명연기일 게 분명했다.
“갠 여러모로 계 탔네.”
“그런 걸로 치면 주연들 중 한지아 빼고 다들 꽤 도움 되지 않았을까? 하승우는 이미지 변신했고 신인은 얼굴 알리고.”
“얼굴은······. 아직 모르지.”
“재수 없는 소리 마라. 이번 거 난 4% 시작에 최대 10에 걸었단 말이야.”
10%란 소리에 옆에 있던 동료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주말도 아닌 월화 드라마다.
지상파마저 10%의 벽을 제대로 넘지 못해 번번이 시청률 1위를 가요대전에게 넘기는데, 케이블이 꿈꾸기엔 조금 과분했다.
“시작 10초 전입니다! 7, 6, 5······!”
시간 체크하던 AD가 큰 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하자 약간의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모니터에 출력되던 그래프가 조금씩 상승한다.
일정 수치를 확대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멀리 있는 이들에겐 올라가는 모습밖엔 보이지 않았다.
‘지금 5% 상한인가? 아니면 10%?’
‘올라가고는 있는데······.’
다들 긴장한 채 모니터 앞의 직원 입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을 때, 드디어 편성팀원의 입술 사이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분당 1.5%.”
“1.5?”
“잠깐만, 그렇게 낮다고?”
다른 방송사의 추이가 함께 나온 화면으로 바뀌자 그 차이는 더 명확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