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43
지상파의 반절도 되지 못하는 높이.
볼 것 없는 월화 드라마 1화 첫 시청률이라 보기엔 너무나 미약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정실의 직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미 4화까지 확인한 이들은 이 드라마가 뜰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상파를 압도할지도 모른다.
아주 허황된 것 같은 그런 믿음이 조금씩 직원들 사이로 퍼지고 있었더랬다.
그랬기에 뚜껑을 열고 나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 저희 바로 앞에 월화 드라마가 쫄닥 망했잖아요.”
모두가 당황하고 있던 그 순간 한 직원이 엉뚱한 말로 시선을 끌었다.
“그게 뭐?”
“그 여파가 저희한데 온 것 같아요.”
“······전이 망한 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우린 편집팀까지 전부 다르다고!”
결국 참지 못한 창식이 성질을 부렸다.
그 직원이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마치 그가 잘 못한 것 마냥 다그쳤다.
“방송사가 같잖습니까. 기대를 덜 하는 거죠.”
한 대 칠 것 같은 분위기에 AD 차승호가 나서서 직원의 말을 받았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가 0.9%로 마감했을 때 이 사태를 예견했어야 했다.
‘기대한다면서 PD한테 바람 불어 넣은 국장이 오늘 굳이 안 온 것도 이미 알아서겠지.’
‘너무’ 무난한 홍보, 기대되는 배우도 있으나 물음표 붙은 주연이 반, 그에 비해 전에 없던 최악의 시청률을 보인 전작.
이런 표면적 악재가 산재해있는데 그들은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고 있었다.
‘냉정해야할 사람들이 배우한테 홀렸어.’
승호는 실수를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배우들은 프로다웠는데 정작 방송국이 아마추어처럼 대응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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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 첫날의 모습이란
얌전히 있던 태화가 갑자기 생각난 사실에 눈동자를 굴려 룸 미러 너머의 현규를 바라봤다.
그가 작게 ‘형’이라 부르자 가라앉은 얼굴로 대기 중이던 현규가 룸 미러를 통해 시선을 마주했다.
“어제 생일 파티는 잘 하셨어요?”
“파티는 무슨······. 그냥 아내랑 케이크만 먹고 끝났지.”
태화의 능청스러운 물음을 듣고 매니저는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젊은 나이에 결혼한 현규에겐 아내와 한 살짜리 아이가 있었다.
종종 가족 이야기를 꺼냈기에, 태화는 둘을 만나보지 못했음에도 그들의 얼굴과 성격 그리고, 가장인 현규가 얼마나 가족을 아끼는 지 잘 알았다.
평소라면 집까지 데려다 줬을 매니저가 에스터에게 설득 당한 것도 가족 때문이었다.
항상 남편 탓에 고생만하는 아내의 생일이었으니까.
태화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함을 토한 후 풀이 죽어있던 현규는 주제가 가족으로 넘어가자마자 다시금 헤실 거리며 가족에 대해 떠들었다.
매니저의 기운이 살아난 것을 보고 작게 웃음 어린 한숨을 내쉬던 나래가 곧 얼굴을 굳히고 인상을 썼다.
이 나사 빠지고 물렁한 집단 속에서 그녀만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오빠, 일 똑바로 해. 난 여기 아니면 또 대기 타야한단 말이야.”
나래는 매니저를 향해 틱틱 거리고 태화의 얼굴을 매만졌다.
유명 뷰티샵 원장과 척을 진 그녀는 개인 고용에 밖엔 기댈 수 없었다.
그러나 자금 없는 신입들이 비싼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고용할 이유가 없거니와 유명 연예인들의 경우 이미 전속 아티스트가 있거나 그녀 정도의 커리어에 만족하지 못했다.
BGA 데이터베이스에 들어있다 해도 언제 괜찮은 고용주가 나타날 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이태화’의 이미지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 미안······.”
“돈 받았으면 받은 값을 해야지.”
축 늘어진 매니저를 타박하며 그녀는 태화의 턱을 붙잡아 위로 올렸다.
남자라도 입술의 선명함을 위해 연한 화장이 필요했다.
“태화 너도 저런 거 풀어 주지 말고 그때그때 말해. 우린 너한테 고용된 사람들이고 조언을 건넬 뿐이지 그 이상의 권한은 없으니까.”
“······조금 더 익숙해지면요. 아직은 적응하는 것만으로 바빠서 실수할까 두렵거든요.”
나래의 손이 머리로 향하자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연기에는 자신이 있어도 연예계의 생리나 이미지 메이킹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적었다.
따라서 의도치 않게 실수 할 가능성이 높았고 그 때문에 태화는 꽤 많은 간섭을 허용하고 있었다.
‘내가 머리가 돼서 부리려 해도 일단 아는 바가 있어야 가능한 거니까······.’
BGA의 지시를 따르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정보를 요구해 마음에 드는 아무 오디션이나 본 뒤 계약서만 던져줘도 괜찮지만, 그들이 깔아준다는 레일을 거부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가만히 있다가 월권이 심해진 후에 나서도 괜찮았다.
“자, 준비 끝.”
태화가 곧 도착할 차기작들에 대해 떠올리는 사이 머리까지 정돈한 나래가 뿌듯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살짝 가벼우면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남자, 박가람이 완성됐다.
화장 잘 먹는 고용주라 편하다 생각하며 나래는 배우의 손에 있던 손거울을 빼앗아 가방에 정리했다.
자잘한 것들이 많은 지라 순서대로 넣지 않으면 가방이 잠기지 않았다.
“얼추 시간도 됐겠다, 둘 다 어여 가.”
보고 있던 거울을 빼앗기고 태화는 매니저와 함께 차 밖으로 쫓겨났다.
얼떨결에 주차장 바닥을 밟은 둘은 다시 차로 돌아가는 대신 천천히 목적지로 발걸음을 향했다.
* * *
“근데 태화야, 방영도 시작했겠다, 스텝들한테 다시 한번 말해보는 게 어떨까? 그, 승우씨 매니저일 말이야.”
촬영장으로 움직이던 현규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얼굴로 태화에게 물었다.
그는 처음 매니저가 되었을 때 상식이 하는 행동을 눈치 채고 관리급 되는 스텝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스텝은 현규의 말을 듣고 난색을 표했다.
실수가 잦은 것은 알고 있으나 그게 악의에 의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피해자라 주장하는 배우는 한 번도 다친 적이 없고 가해자로 알려진 배우와 친해, 매니저가 말하는 만큼 문제가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신인이 그런 식으로 항의해봤자 현장 분위기만 더 나빠질 뿐이니 심하지 않으면 그냥 참으라고 조언했다.
배우가 다치면 어쩔 거냔 말에도 지금처럼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응수했다.
비중과 상관없이 메인스토리의 중심인물이 아니라 일어난 홀대였다.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태화가 빠지면 드라마 자체가 어그러질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늘었으니까.
한 번 더 항의한다면 난색을 표하면서도 조치 비슷한 것을 취해줄 가능성이 높았다.
“글쎄요······.”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던 태화가 모호하게 말을 흐리자 현규는 의아하단 눈으로 그를 살폈다.
“제 생각으론 바뀔 거 같지 않은데. 원래 사람들은 자신한테 피해가 가야 이해하는 법이잖아요?”
태화의 옆에서 빠르게 알아차린 매니저와 달리 스텝들은 상식이 하는 행동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남아 있는 이성으로 남들 앞에서 행동하는 걸 최대한 삼가고 있으니 당연했다.
눈치 빠른 몇몇이 알아차리곤 있어도 그야말로 몇몇. 그런 상태에서 만족스러운 조치가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왕따반 담임 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지.’
모른 척하거나, 참으라 하거나, 한번 중재하거나.
딱히 도움 될 조치가 아니었고 오히려 상대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승우도 마음에 안 들어 하곤 있지만······. 방임에 가깝고.’
승우의 매니저는 어느 날부턴가 두 명으로 늘었다.
인수인계를 하고 교체하려는 의미보다 매니저가 딴 짓을 할 수 있도록 풀어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냥 네 멋대로 해봐라란 분위기.
물론 당사자인 태화만이 그것을 알아챘고 주변인들은 문제 있는 매니저를 치우기 위해 준비한다고 여겼다.
우습게도 또 다른 당사자인 매니저는 시야가 좁아진 탓에 승우의 뜻을 후자로 이해했다.
그는 점점 조급해졌으며 눈치 빠른 이들 몇몇이 그의 악의를 확신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자멸하는데 거기에 한 발 올려서 괜히 장작을 늘릴 필요 없지.’
어차피 위기 대응의 숙련도가 99를 찍어 더 이상 상식의 행동은 위협이 되지 못한다.
꺼지는 불은 건드리지 않고 놔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 태화는 그를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전 괜찮으니까 놔두세요.”
“그래······.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는데······. 혹시 새턴 중에 마음에 드는 멤버라도 있어······? 그, 연애 감정으로 말이야.”
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현규는 슬쩍 다른 질문도 던졌다.
예전부터 궁금했으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 품고만 있던 궁금증이었다.
‘에스터도 그렇고 굉장히 친밀해 보이던데, 설마······.’
사실 이미 사귀는 멤버가 있는 건 아닐까?
어느 날 인터넷 모 사이트에 새턴의 멤버 A씨와 막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L씨의 데이트 사진이 올라간다.
새턴의 소속사는 그런 일이 없다며 부정하지만 증거가 속속히 들어나고 결국 멤버A씨는 열애 사실을 인정한다.
새턴의 팬클럽 포에베는 상대 배우 L모씨를 죽일 듯이 미워하게 되며 결국 열애를 인정해도 망가진 이미지 탓에······.
현규는 떠오르는 상상에 몸을 떨었다. 승우의 매니저에 대해 이야기 할 땐 언짢음이 컸는데, 포에베를 생각하자 두려움이 덮쳤다.
고작 망상일 뿐이었지만 이상하게 현실감 넘쳤으니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응시하는 그를 보며 태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요.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은 몇 번 있지만 걔들 어리잖아요.”
큰 언니인 소연이 스물 셋.
회귀 전 태화와 무려 일곱 살 차이였다.
‘내가 서른을 넘기면 모를까.’
회귀했다 하여 원래 가졌던 정신까지 어려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스물다섯에서 서른을 반복한다 해서 정신이 쑥쑥 크지도 않는다.
그 나이에 걸 맞는 대접을 받으며 성장이 정체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겪었던 시간을 지나, 진정한 ‘미래’가 돌아와야 자신의 시계가 다시 움직일 것이라 믿었다.
‘그러는 너도 스물다섯이잖아······.’
현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태화의 뒷모습을 떨떠름한 눈으로 응시했다.
가끔 나이답지 않게 행동을 해도 그가 스물다섯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하는 말이 꼭 4,50대 아저씨 같았다.
‘물론 아예 연애 대상으로 안보면 나야 편하지만······. 얘 괜찮나?’
서른둘밖에 안됐는데 요즘 아이들이 알기 힘들다.
세상이 참 빨리 변한다 생각하며 그는 태화를 뒤따랐다.
* * *
어제 2.1%란 엄청난 시청률이 나왔음에도 촬영장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분위기가 가라앉긴 했지만 심한 수준은 아니었거니와 말단 스텝과 PD를 제외하면 다들 평소처럼 행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