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44
‘하긴 BGA가 예측할 정도면 방송국은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겠지······.’
방영 전부터 1화 시청률이 저조할 수 있으니 그 부분을 감안하라는 말을 들었기에 태화는 담담하게 촬영을 진행했다.
승우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태양을 연기했다.
아니, 오히려 기분 좋아보였다.
“······컨디션 괜찮아 보이네요.”
대기하면서 그의 연기를 지켜보던 태화는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를 보며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채 먼저 말을 걸고 말았다.
“응? 너도 실망했어?”
손을 씻던 승우가 의외라는 시선으로 태화를 바라봤다.
신인답지 않은 얄미운 후배가 첫 시청률로 동요를 일으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누가 알려주던 아니던 말이다.
“그렇진 않지만 첫 드라마 시청률인데 태연해 보이셔서요.”
“난 내 얼굴만 확인했지. 멋지게 잘 나왔더라.”
시끄러운 건조기 바람 소리에 잠시 둘의 대화가 중단 됐다.
승우는 다 마른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며 후배를 응시했다. 젖은 손을 털기만 하는 모습이, 마치 나이의 앞자리를 뽐내는 것 같아 살짝 짜증났다.
“걱정 안 돼요?”
“걱정? 반응이 괜찮은데 어째서? ‘잘 만들었지만 시청률은 저조한 케이블’ 같은 건 옛날이야기잖아.”
나가려 문고리를 잡았던 그는 태화의 말에 몸을 돌렸다.
지금껏 영화만 찍었으나 승우에겐 긴 연예계 생활만큼이나 동료 배우가 많았다. 드라마 쪽 이야기에 문외한이 아니었다.
“재미만 있으면 드라마는 막장이든 명작이든 떠. 그게 현대 사회의 무서운 점이지.”
세계는 세분화되어 가는데 정보 전달 속도는 빨라진다. 시골의 지역 사회처럼 빠른 시간에 소문이 돈다.
거미줄처럼 얽힌 정보망이 흥미 있는 자들을 빠르게 결집시키는 것이다.
“거품이 아니니까. 이 상태에서 홍보부가 여론만 잘 이끌면 올라가는 건 순식간이야.”
그런 의미에서 승우는 tvM의 능력을 믿었다. 케이블 주말 드라마를 지상파와 견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린 건 그들의 솜씨였으니까.
“지아 선배님은 안 그런 것 같던데요?”
태화가 신경질을 부리며 손톱을 뜯던 지아를 떠올리고 묻자 승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걘 시야가 좁아서 그래. 여유 없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해야 하나? 뭐, 너는 몸조심하고.”
그 말을 끝으로 승우는 문을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는 매니저는 새로 온 사람이었다.
* * *
[tvM 태품 보는 사람?]ㅈㄱㄴ
└태품? 그거 뭐임?
└태양을 품은 바다. 원랜 태품바라 해야 하는데 뭔가 어감이 이상해섴ㅋㅋ└거기 애들 노냐? ㅋㅋㅋㅋㅋ 무슨 제목을 그 따위로 지었어?
└나 봄. 잼더라. 솔직히 유라 팬심으로 봤는데 연기력 는거 보고 개깜놀. 지금 대기중이다.
└네다팬. 유라 연기 구린거 다 까발려졌는데 무슨 ㅋㅋㅋㅋㅋ└나도 볼거 없어서 돌리다 봤는데 꿀잼. 근데 가람 역 누구인지 아는 사람? 찾아봐도 안 나오네.
└ㅇㅇ 녹색창에 무슨 변호사 회계사만 뜨더라ㅋ└승우 오빠 ㅠㅠ 나쁜 남자 존멋 ㅠㅠㅠㅠㅠ 침대에 누워 있는데 완전 보배로워 ㅠㅠㅠㅠㅠ 오늘도 본방 볼게요 ㅠㅠㅠㅠㅠ└여기서 이러지 말고 팬깝가서 노세요.
‘확실히 반응 자체는 괜찮아.’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태화는 를 검색했다.
어제 저녁 검색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호평이 이어졌다.
대부분 주연들을 향한 관심이었으나 종종 태화에 대해 묻는 글들도 있었고 위키에 먼저 올라간 프로필을 그대로 복사에 사이트에 옮긴 글도 있었다.
‘위버(Wiver)에도 서류 처리 되는대로 올라간다고 그랬고······. 알아보는 사람이 좀 늘려나.’
대형 사이트들에 프로필 정보가 등록되고 드라마가 궤도를 타면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늘리라.
부디 오늘 방영분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길 빌며 태화는 창밖을 응시했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로 퇴근길에 오른 차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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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카페에 불려온 가람은 사진 속에 찍힌 자신의 친구를 응시했다. 그 옆에 기분 나쁜 얼굴이 함께 있긴 하나 티 없이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당신 그 여자 좋아하죠?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손잡자고요. 그런 품위 없는 여자 때문에 격 떨어지는 일 하는 건 나도······.”
“15살 애들도 안할 유치한 요구하면서 무슨 격을 찾아? 머릿속에 뇌 대신 우동 사리가 들었나.”
그는 비웃음을 지으며 테이블 위에 사진을 톡톡 두드렸다.
건들거리면서도 위협적인 태도가 마치 빚 독촉하는 사채업자 같았다.
“왜? 아가씨라 그런 소리 못 들어봤어? 아. 청순하단 소린 좀 들었겠네. 뇌가 말이지.”
“무슨······!”
“풉. 드라마에 나온 거랑 완전 똑같네. 그래서 이젠 물이라도 뿌리려고? 그런 것만 전문으로 가르치는 교사라도 있어? ‘이 상황에선 이런 대사하고 저 상황에선 따귀를 때리세요’라고 먀먀뮹먀먀뮹 알려주는 거.”
가람이 가성으로 여자 흉내를 내며 얄밉게 말하자 오한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도 잊은 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가씨. 개돼지라 부르던 인간이 재잘거리니까 짜증나? 그러니까 왜 몰래 찾아와서 수모를 당하셔?”
“그 쪽이 먼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지금껏 곱고 나긋한 목소리를 내던 한별이 화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바다의 머리 위에 음료수를 뿌리려던 때처럼, 그녀는 주변을 무시한 채 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너희 같은 하층민은 끼리끼리 붙어먹으라고! 왜 우리 오빠한테 붙어! 더러워! 불결해!”
“와, 무슨 카스트 제도에 머리를 절여왔나. 이보세요, 여기 21세기 대한민국이거든요? 대한민국.”
“다가오지 마!”
어처구니없는 언사에 가람이 몸을 앞쪽으로 내밀며 네 글자를 집어주자 한별은 반지 낀 손으로 그의 뺨을 노렸다.
몸을 뒤로 젖혀 손을 피한 그는 균형을 못 잡고 휘청거리는 한별의 모습에 혀를 찼다.
너무 멍청하게 행동하는 탓에 전의가 죽은 듯 보였다.
“······아가씨 시야 좁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아?”
가람이 손목을 붙잡아 바닥과의 만남을 저지해주었으나 한별은 거칠게 그의 손을 털어내고 씩씩거렸다.
심통 난 어린애 같았다.
“어떻게 내 요구를 거절할 수 있어! 니가 그러고도 남자야!”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처럼 한별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가람을 쳐다봤다.
너무 곱게 자라서 성인인데도 여전히 소녀 같은 여자.
결국 한숨을 내쉰 그는 품속에서 작은 기계를 꺼내 흔들었다.
힐끔거리는 시선 때문이라도 얼른 일을 끝내고 사라지고 싶은 눈치였다.
“일단 머리가 있어서 녹음했거든? 아가씨가 움직이는 게 빠를까, 내가 이걸 퍼트리는 게 빠를까?”
“쓰레기!”
“······말투가 참 저렴하네.”
안쓰럽단 눈빛으로 한별을 쳐다보던 가람은 이내 ‘그 남자 버리고 넌 그냥 네 인생 살아’란 충고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컷! 오케이!”
“다음 장면 들어갑니다!”
AD의 지시에 따라 스텝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조명을 조정했다.
대여시간이 한정되어 있는데다 언제 다시 빌릴 수 있을지 모르는 만큼 예정 장면을 전부 찍어야 했으니까.
태화도 다음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차로 향했다.
“수고했어.”
“아직 두 개 더 남았는걸요. 영상 좀 틀어주세요.”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그는 지금 막 찍은 녹화 영상을 확인했다.
연기 도중 눈치 채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제 눈으로 살피고 싶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연기력은 괜찮아······.’
만난 지 한 달이 되어 가는데도 지아와 그의 사이는 여전히 데면데면했다. 카메라 불이 꺼지면 쌩하고 사라지는 터라 친해질 겨를이 없었으니까.
신경질적이고 짜증 많은 성격이었으나 아역시절부터 갈고 닦은 실력은 거짓이 아니었다. 여배우니 망가지는 것이 싫을 텐데도 그녀는 약간의 개그가 가미된 악녀를 제대로 소화했고 주변 이들의 호응을 샀다.
임팩트있던 첫 등장 이후 지아가 맡은 오한별 역은 조금 안타까운 아가씨로 변했다.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대본으로 기 싸움을 벌인 걸로 작가의 미움을 산 게 원인이었다.
수정 대본을 받아들고 난리칠 것 같았던 지아는 의외로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판에 찍은 것 같은 철없는 재벌 3세, 그러나 머리가 조금 아쉬운 아가씨를 연기했다.
‘근데 설마 이거 조연끼리 연결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오늘 장면이 혹시 복선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태화는 로고가 박힌 모자를 썼다.
는 이제 2주차에 접어들어 어제로 3화가 방영됐다.
재밌으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던 승우의 말처럼 드라마는 매 번 0.6% 이상의 시청률 상승을 보였고, 퍼진 입소문에 궁금해 하며 재방을 확인하는 이들도 늘었다.
그의 어머니 선미도 월화에 볼 것이 늘어 즐겁다며 힘내라는 말을 전했다.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흐름을 기업이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고작 3% 후반 대의 시청률을 지닌 드라마에 PPL이 붙기 시작했고 주연들 의상이나 장신구에도 더 많은 협찬이 들어왔다.
‘슬슬 BGA에서 연락이 올 거 같은데 안 오네.’
도대체 다음 작품 목록은 언제 오는 걸까 생각하며 태화는 차에서 내렸다.
고민과 상관없이 다음 장면을 찍으러 가야 했다.
* * *
“이 배우님,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저야 항상 괜찮죠. 무슨 일이세요?”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려던 태화를 한 스텝이 붙잡았다.
“오늘 방영으로 4%를 넘길 것 같아서 다들 모여 함께 보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배우 분들께도 한분 한분 묻고 있는데, 하 배우님도 잠시 얼굴을 비춘다고 하셨고······. 스케줄이 없으시면 같이 가지 않으시겠어요?”
작가도 곧 도착할 거란 말에 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투어중인 유라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모이는 자리인데, 주요 조연이자 신인인 그가 빠질 수는 없었다.
‘회식······. 나쁘지 않지만 적당히 잡히면 좋겠네.’
상사가 낀 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부디 피곤한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태화는 매니저를 찾았다.
* * *
“를 위하여!”
“위하여!”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가운데 두고 창식이 외치자 주변에 앉은 이들이 제창했다.
전세를 낸 덕에 안에 있는 이들은 전부 관계자들뿐.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편한 얼굴로 고기를 즐겼다.
태화도 느긋하게 앞에 있는 등심을 집었다.
법인 카드로 하는 회식이니 돼지고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소고기가 올라왔다.
고기 집에서 먹는 것은 오랜만인지라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쌈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