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45
“우리 태화씨가 아주 복덩이야 복덩이!”
“하하······.”
그렇게 구석에서 식사를 즐기는 그에게 술에 만취한 PD가 다가왔다.
창식은 부담스럽게 달라붙으며 태화의 잔에 술을 채웠다.
“자, 한잔 쭉 마셔 쭉!”
어떻게 하면 방영 전부터 이렇게 취할 수 있는 것일까.
참 못 미덥다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눈이 승우와 마주쳤다.
‘······저 인간이 원인이네.’
다른 사람이 보면 단순히 시선이 맞아 웃는 것처럼 보였으나 태화는 직감적으로 저 웃음의 뜻을 이해했다.
PD와 대화하기 싫어서 슬쩍 주량을 넘기게 만들고 이쪽으로 보낸 것이리라.
상사 돌리기도 참 교묘하게 한다 생각하며 그는 빈 잔에 술을 따라 창식에게 건넸다.
취할 거면 그냥 아주 취해서 뻗어버리길 바랐다.
“PD님 여기 한 잔 더 드세요.”
“어? 어, 고마워.”
제 주량 생각 못하고 주는 대로 받아먹던 창식은 이내 태화의 등 위로 고꾸라졌다.
무게에 인상을 쓰며 어떻게 치울지 고민하던 찰나, 누르던 힘이 사라지고 자유가 찾아왔다.
“이 배우님 고맙습니다.”
“태화씨 PD님 데려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AD인 승호가 다른 남성 스텝과 함께 창식을 끌고 갔다.
방송 시작 5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오프닝 시작합니다!”
식사와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한 스텝이 TV화면으로 시선을 모았다.
시끄럽던 장소가 순식간에 조용해지면서 모두의 시선이 TV로 집중됐다.
‘아, 이 사람들은 이제부터 시작이지.’
느긋한 배우들과 달리 방송국 관계자들은 바삐 손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확인하는 이들이 많았다.
홍보팀들도 1분 대기조처럼 폰을 노려보고 있었고 일부는 조정실 그래프를 중계했다.
“스타트 분당 3.9%!”
“아!”
“아쉽다!”
안타까워하면서도 다들 안색이 밝았다.
시작이 저 정도면 이미 4%를 넘은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태화의 예상대로 바로 다음 호명된 수치는 4%를 넘어섰다.
예정된 결과였음에도 다들 기뻐하며 서로에게 축하를 건넸다.
“오늘 처음으로 강태양이랑 박가람이 조우하는 날이잖아. 잘 하면 5% 넘지 않을까?”
“에이, 김칫국은······. 근데 나도 그럴 거 같아.”
흥에 취해 키득거리는 동료들을 보고 장부를 관리하던 직원이 벌떡 일어났다.
“내기 들어갑니다! 4-18, 강태양과 박가람의 조우! 두 남주연이 만나기까지 앞으로 10분!”
“나나! 4.5%”
“4.3!”
배우들도 흥미가 일었는지 장난스럽게 장부에 이름을 올렸다. 작가 최나영도 5%에 걸며 사람들의 환성을 샀다.
“조용조용! 나온다!”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드디어 어두운 골목길에서 남녀와 가람이 조우했다.
손목을 붙잡힌 소꿉친구의 모습을 보고 가람은 맹호처럼 뛰어갔다.
-뉘신데 남의 집 귀한 딸을 함부로 끌고 가려하시나?
-남 일에 끼어들지 말고 꺼져.
-그렇겐 못 하겠는데? 여기 맹꽁이는 우리 집 애라.
“아깝다. 다시 찍을 시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둘의 주고받는 대사를 보던 나영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중반부터 보여줬던 케미와 비교하면 지금은 탄산 빠진 음료수 같았으니까.
그녀의 의견에 몸을 떨면서도 제작진은 묘한 공감을 느꼈다.
다시 찍는 건 괴롭지만 확실히 요즘 찍는 것에 비해 둘의 분위기가 약한 게 살짝 미련을 불러 일으켰다.
“······순간 시청률 5.0%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은 한 직원의 외침과 함께 사라졌다.
5.0%.
첫 화 시청률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자 성공분기를 넘어선 숫자였다.
순간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평균으로 따지면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4화만에 5%를 넘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오오!”
“건배!”
“건배!”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것과 같은 함성이 식당을 채웠다.
모두 즐거워하며 잔을 부딪쳤고 댓글을 쓰며 여론을 형성하던 홍보팀도 그 순간만큼은 폰 대신 잔을 높이 올렸다.
‘이 기세면 진짜 대박 날지도······. tvM이 드라마 왕국 소리를 1년 일찍 듣게 되는 건가.’
좀 더 나은 촬영 환경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태화는 마늘을 우물거렸다. 참기름에 적당히 구워진 것이 평소보다 맛좋았다.
[시청률 5% 축하드립니다]담당자 임서연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BGA에서 따로 데이터를 사는 것인지 순간 시청률이 뜨자마자 연락을 보낸 것 같았다.
‘퇴근 시간인데도 부지런하네.’
참 세심하다 생각하며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또 다른 진동이 그의 전화를 울렸다.
또 누구인가 싶어 뒤집힌 화면을 확인한 태화는 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 있던 긴 장문대신 도착한 거대한 용량의 첨부파일.
그 위에 찍힌 문서 제목과, 함께 작성된 짧은 두 문장.
드디어, 태화가 그리도 기대하던 정보가 도착했다.
────────────────────────────────────────────────────────────────────────선택지
“이태화 회원님 일찍 나오셨네요.”
“네. 오늘은 오전부터 할 일이 있어서.”
태화는 휘트니스 센터의 회원증을 건네고 열쇠와 수건을 받았다.
어제 BGA에서 대본 목록을 받은 뒤 바로 탐독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평균 4.3%의 축제 분위기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술 덕에 까무룩 잠든 그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파일을 열려는 손을 억지로 막았다.
지금 잡으면 오늘 하루는 대본만 보며 지내게 된다.
‘그러니 운동부터 일찌감치 끝내자’라 결심하고, 태화는 곧바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채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곧 서울의 공기는 아침 운동에 적합하지 못함을 깨닫고, 폐를 희생하기 싫었던 그는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황지석 트레이너가 출근하지 않았는데 괜찮으신가요?”
“어차피 가볍게 하고 갈 거라 상관없습니다.”
‘선 입금 후 몸매’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육을 키워두는 것이므로 트레이닝 강도는 전문가가 항상 붙을 수준이 아니었다.
‘이번 주 루틴도 받았고, 항상 하던 동작들이라 따로 교정도 필요 없고······.’
신발을 갈아 신은 태화는 런닝머신 위에 올라섰다. 달리는 것으로 웜업을 할 생각이었다.
심심하니 음악이라도 들으려던 찰나 옆에 올라온 여성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은정 엄마, 어제 태양 뭐시기 봤어?”
“당연하지. 요즘 월화에 볼게 생겨서 즐겁다니까? 딸내미가 하승우 나온다고 보자고, 보자고 해서 봤는데······.”
8킬로로 가볍게 뛰던 그는 슬쩍 속도를 줄이고 옆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예상 밖의 장소에서 시청자를 만났다.
“요즘 애들은 알기 어려워. 그런 남자가 뭐 좋다는 건지. 그 소꿉친구 같은 애가 최곤데 말이야.”
“맞아 맞아.”
태화는 올라가려는 입가를 억눌렀다. 소꿉친구라 한다면 가람이다.
단순히 역할일 뿐이지만 응원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었다.
그는 운동하는 척 옆의 대화에 집중했다.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감상이 기꺼웠으니까.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니 자리를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도 이리 가까이에서 비(非) 관계자에게 의견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 * *
대화가 자식들 교육으로 넘어가자 태화는 속도를 올려 5분간 전력 질주를 하고 머신에서 내려왔다.
땀을 닦으며 다음 기구로 향하는 그의 등 뒤에서 소곤거리는 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옆에 남자가 계속 힐끔거리지 않았어?”
“우리 대화 듣던 거 같은데······.”
“그래도 잘 생겼던 걸? 관심 있던 게 아닐까?”
“에이~ 설마.”
미묘하게 뿌듯함이 섞인 음성을 들으며 태화는 얼굴을 문질렀다.
아까만 해도 박가람이 좋다고 했는데 왜 배우인 자신을 못 알아보는 건지 의문스러웠다.
‘······그렇게 다른가.’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가끔 ‘혹시······.’라는 말로 그를 붙잡았다. 비율은 하루 종일 거리를 걸어 다니면 한두 명 정도.
관심에 비해 터무니없는 숫자였다.
‘프로필에 올라간 사진도 나랑 좀 다르긴 했지만······.’
가 방영되고 태화의 프로필은 대한민국 검색 1위 사이트인 위버와 위키 등 사람들이 자주 찾는 사이트에 등록됐다.
새로 찍은 프로필 사진은 과거에 인연이 닿은 사진작가 김창일이 맡았으며 정말 ‘작정하고 찍은 작품’이 완성됐다.
‘아니 프로필인데 배우 본인을 닮아야 할 거 아니야?’
그는 투덜거리며 25라 적힌 아령을 들었다. 상심은 상심이고 짜인 루틴을 진행해야했으니까.
사실 태화의 얼굴이 프로필 사진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선명함이 더해지긴 했으나 여느 사람에게나 있을 법한 보정 정도였고 화장을 최소화로 하였기 때문에 변장 수준의 변화를 보이지도 않았다.
문제는 분위기.
태화 본인이 옆집 청년 같은 친근한 느낌을 풍긴다면 카메라 파인더에 찍힌 태화는 독특하고 묘한 매력을 뿜었다.
옆에 두고 비교하면 바로 본인이구나 알 수 있어도 따로 보면 타인처럼 느끼게 하는 착시.
그러니 카메라 앞에서 작가가 지시하는 분위기를 대책 없이 드러낸 태화 본인에게도 반쯤 잘못이 있었다.
* * *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