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46
“어서 오렴. 아, 매니저 분이 대본 주고 가셔서 책상 위에 올려 뒀어.”
“네, 고맙습니다.”
기본 루틴과 쿨다운까지 한 시간 반의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태화는 선미의 말에 반색하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폰으로 봐도 괜찮을지 몰라 프린트하려 했는데, 가져다 준 것이 기꺼웠다.
‘일단 6개인가?’
전부 영화인 탓인지 한권으로 이뤄진 대본 뭉치 6권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 , , , , 그리고
로맨스가 두 편, 범죄/수사물이 둘, 휴먼 드라마 하나, 마지막은 범죄 스릴러였다.
‘오, 괴물. 이것도 있네?’
태화는 의외라는 눈으로 마지막 대본을 살폈다. 그것은 회귀 전 블루레이로 소장할 정도로 좋아했던 영화였다.
은 재작년, 그의 입장에선 7년 전 있던 사건을 각색한 작품이었다.
30살 중반의 변호사가 전국을 돌며 서른두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는 범인이 봉사 활동했던 노숙자 시설의 남자 노숙자들, 아동, 가녀린 여성, 노인 순으로 많았으며.
그의 의뢰인 일부를 포함했다.
특정한 살해 방식이 아닌 둔기와 약물 등 쓸 수 있는 것들을 유동적으로 사용했고 그 탓에 범인이 잡히고 그가 자백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자료를 가진 경검조차 각각의 살인 사건들이 연쇄 살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 용의주도한 범인이 잡힌 것은 그의 의뢰인 덕분이었다.
평소 피해망상과 편집증을 앓았던 그녀는 변호사가 자신을 죽일 거란 망상 아닌 망상에 빠졌고 그가 선물한 케이크에 독이 들었다며 정밀 분석을 요구했다.
항상 있던 발작이라 여기며 결과를 뽑던 연구원은, 케이크에서 아세트산납이 검출된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를 넣었다.
‘주변 평이 너무 좋아서 더 무서운 사건이었지.’
그의 동료들은 범인 오재빈이 그럴 리 없다며 그를 옹호했다.
주말마다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를 나가던 그가, 타인을 배려할 줄 알던 친절한 그가, 경비원에게까지 상냥하던 그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리 없다 굳게 믿었던 것이다.
변호사의 집에서 각종 약물과 트로피가 발견되기 전까지 말이다.
트로피가 발견되자, 더 이상 발뺌할 수 없던 범인은 무기징역보다 사형이 이뤄지지 않는 사형수 생활을 택하며 태연스레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들에 대해 털어놨다.
학창 시절부터 시작된 살인 기록.
20년 가까이 이어진 살인을 여태껏 몰랐다는 사실에 대한민국은 경악에 빠졌다.
‘그 영화가 나한테 왔다라······.’
여러 번 본만큼 스토리는 선명하게 기억났다.
원래 편집증이 있던 여성은 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여주인공으로 있을 리 없던 형사는 최후의 살인을 저지하는 히어로로 그려진 작품.
일종의 경찰 미화였으나 그런 티가 나지 않는, 아니 꼬집는 이가 적을 정도로 영화는 크게 성공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없던 태화가 흥행 사실을 알았을 정도니 말이다.
‘······일단은 패스.’
이 영화는 이대로가 좋다. 딱히 구멍이랄 배우도 없었거니와 회귀 전 좋아했던 몇 안 되는 한국 영화였다.
굳이 껴서 다르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태화는 가장 위에 있던 를 펼쳤다.
시한부인 여자 주인공과, 그녀와 추억 쌓기를 하는 남자 주인공의 신파 로맨스.
가람과 사랑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모로 어필이 가능할 거란 서연의 코멘트가 달려있었다.
‘완성도 3, 흥행성 3.5······.’
곧 크랭크인 하여 비수기인 9월에 개봉한다고 하니 나름 무난한 작품이었다.
[브라기의 축복을 실행하시겠습니까?] [주의! 출연 미정의 작품은 난이도: 어려움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주의! 출연 미정의 작품은 보상 획득이 불가능합니다]대본 정독을 마치기 무섭게 입장을 묻는 창이 떠올랐다.
익숙한 주의 문구를 넘기며 태화는 Yes를 외치고 극 안으로 빠져들었다.
* * *
“행님! 그 새끼 대갈빡을 뽀사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 즐기도록 냅둬. 프락치 건드려서 자극하는 것보다 덮어두고 뜯는 게 낫다.”
태화는 손톱을 줄로 긁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현재 맡은 역할은 청성파 두목 박성찬.
의 두 거악(巨惡)중 하나이며 경찰과 협조해 다른 경쟁자를 삼키는, 최종 승자다.
‘사투리를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서울 토박이인 태화는 매체로 접한 방언을 흉내 내며 대사를 쳤다.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현재는 이것이 최선이었으니까.
4번째 작품을 연기하며 그는 고민에 빠졌다.
와 가 올 하반기 틈새를 노린 작품이라면 과 는 내년 7월을 노린 블록버스터였다.
잘은 몰라도 BGA가 뽑은 만큼 투자나 그 외 문제는 없으리라.
‘둘 다 완성도나 흥행성이 나쁘지 않아. 않은데······.’
의 완성도와 흥행성은 각각 2.5와 4, 는 3과 4다.
그대로만 완성된다면 무난하게 성공할 수 있는 작품들.
그러나 그들의 경쟁자는 무려 이었다.
‘하필 3개다 내년 성수기를 노린 블록버스터냐······.’
회귀 전 결과는 의 압승이었을 것이다.
그의 기억에 두 영화는 애매하게 남았으니까.
그렇기에 태화는 조금 오만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자신이 껴서 이 영화들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미래가 바뀌어 이들 중 하나가 을 역전할 수 있을까?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실제 사건을 각색한 만큼 은 쉽게 입소문을 타고 인지도를 올릴 테니까.
아무리 청소년 불가 판정을 받는다 해도 매년 나오는 흔한 조폭물, 수사물과 임펙트가 달랐다.
물론 하나가 대박을 쳤다 하여 다른 것들도 함께 대박치지 말란 법은 없다.
관객이 복수의 영화를 즐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 두 배역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너무 흔해.’
매년 무난하게 흥행하는 범죄물의 주연.
운이 좋다면 배우 인생에 길이 남을 대단한 애드리브가 나오거나 명대사가 만들어질 ‘수도’있다.
‘안 될 가능성은 더 높고.’
딴 생각을 하며 태화는 의 마지막 부분을 연기했다.
제단에 도착하자 그는 습관처럼 동기화를 확인했다.
부족한 방언 탓인지 결과는 89%.
지금까지 진행했던 네 작품들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
방언을 가르치는 선생은 없을까 고민하며 태화는 상태확인을 넘기고 현실로 돌아왔다.
아직 둘, 아니 한 작품이 더 남아 있었다.
‘여기서 성과가 좀 있으면 좋겠는데.’
부디 만족스러운 대본이길 바라며 그는 를 펼쳤다.
* * *
“태화야, 아침도 거르더니 점······, 태화야?”
“어, 에? 네. 어머니.”
“······무슨 일 있니?”
슬픔을 참고 있던 그는 노크 후 들어온 선미의 부름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움직인 탓에 고여 있던 눈물이 태화의 뺨을 타고 흘렀다.
“아뇨, 지금 하품해서 그래요.”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그는 밝게 웃으며 슬슬 배가 고파서 나가려던 참이라고 능청을 떨었다.
아들의 태도에 그녀는 더 이상 묻지 못한 채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태화는 자신 앞에 있는 대본을 응시했다.
오디션 보고 싶은 작품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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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좀 부려볼까 합니다
태화는 의자에 앉아 승우와 유라의 연기를 구경했다.
좋아한다기보다 어쩌다보니 계약으로 얽힌 남녀, 태양과 바다.
그러나 만남이 잦아지면서 필요한 부분만 주고받던 둘의 관계엔 조금씩 사랑이라는 싹이 텄다.
‘덥다······.’
주연들에게서 시선을 땐 그는 슬쩍 하늘을 올려봤다.
6월치고 쨍쨍한 햇볕이 촬영 현장을 달궜다.
‘구경꾼이 많아선가? 오늘따라 대기시간이 기네.’
는 일정이 잘 지켜지는 드라마였다.
배우들의 NG가 적을뿐더러 장면 구성이 세세하게 짜인 덕에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거의 없었으니까.
길겐 12시간까지도 늘어나는 대기시간이 1시간을 넘지 않았으며 방영 이후에도 원래의 속도를 유지했다.
그런 순조로운 일정이 오늘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기로 인한 인파가 외부 촬영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스텝들의 만류에도 사람들은 거리만 벌릴 뿐, 흩어질 줄 몰랐다.
녹음에 잡히니 조용히 해달라 부탁해도 그 순간만 유효했고 누군가가 ‘나 하나쯤이야’라 생각하여 작은 소란을 일으키면 그것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다리길 세 시간.
태화는 미니 선풍기를 목덜미로 가져갔다.
그늘 밑이 아니라 차 안에 있는 게 시원했겠지만 신인인 그가 선배들 있는 자리에서 그런 행동을 하다간 밉보이기 십상이었다.
“······저기, 태화야?”
“네?”
더위를 잊을 겸 대본이나 읽자 생각한 태화 막 종이를 펼치려던 순간, 다른 매니저들과 함께 음료수를 사러 갔던 현규가 그를 불렀다.
“서연씨에게 연락오고 있는데. 폰 꺼놨어?”
“아, 무음으로 돌려놔서, 죄송해요.”
“나한테 미안할 건 없고······. 무슨 일 있어?”
“······욕심을 좀 부렸거든요.”
태화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가 내민 스크린을 응시했다.
마음에 든 대본을 결정한 그는 아침이 되어 한 통의 문자를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