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57
만약 가 계획되지 않았다면 대기 중이던 다음 드라마가 바로 방영되었으리라.
“으으! 공기 좋다!”
버스에서 내린 유라는 기지개를 켜며 과장된 태도를 보였다. 옆에서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물론 진심이 담기긴 했다.
2집에 이어 3집도 대박 난 덕에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으니까.
한 달 넘게 3시간 수면, 나머지는 차에서 쪽잠으로 해결했던 그녀에게 이런 예능은 단비에 가까웠다.
‘아, 짜증나 왜 이런 산골인거야?’
사뿐하게 내린 지아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못마땅한 기분을 감췄다.
드라마의 성공으로 그녀의 연기 인생은 다시 오르막길에 올랐다. 이미 중국 쪽에서 A급 출연료에 영화 한편 찍기로 계약한데다 광고도 여럿 달라붙었다.
그렇다보니 마음에 안 드는 구성원에도 불구하고 ‘우리 이렇게 친해요~’라는 분위기의 생활 예능을 찍게 됐다.
‘뭐 승우 오빠랑 더 가까워질 계기도 되고.’
한번 더 선글라스를 건드린 지아는 새침한 태도를 유지한 채 PD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거 되게 이상하네요.”
태화는 고작 1미터 앞에서 자신을 찍고 있는 렌즈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첫 예능 출연에 긴장한 모습이었다.
‘신인다운 어리숙함이라······.’
사진작가의 노골적인 시선 앞에서도 담담했던 그다.
당연히 이런 1:1 근접 촬영이 신기하기는 해도 굳을 정도는 아니었다.
‘······확실히 이쪽이 더 친밀하겠지.’
그런 태화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매니저 현규의 조언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의외의 반전미에 열광한다.
특히 뭐든 완벽히 할 것 같던 사람이 사소한 부분에서 서툰 모습을 보이면 호감을 느끼는 이성이 많았다.
그런 사소한 빈틈에서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랬기에 태화는 드라마에서 보이지 않았던 신인다운 풋풋함을 연기했다.
‘내내 화장해야한다는 게 좀 귀찮지만 일이니까.’
예능이라고 해도 의 인기에 힘입어 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고, 여기서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배우들의 진짜 민낯이 아닌 그들이 ‘보고 싶었던’ 배우들의 민낯이었다.
화기애애하고 묘한 인간미가 있으면서도 상상했던 예쁘고 멋진 모습들.
그 탓에 배우들은 서로를 형, 언니, 오빠라 불렀고 태화도 지아에게 ‘태화야’ 소리를 들으며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나이는 위라도 까마득한 선배니 서로 이름을 부르는 걸로 설정한 건데, 정말 말 그대로 설정이었다.
“다들 짐을 배정된 방에 두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가자, 태화야.”
“네.”
오랜만에 친한 척 하는 승우에게 웃으며 태화도 버스에서 벗어나 숙소로 이동했다.
* * *
“······유라씨는 진짜 태평하네요.”
“전 새턴으로 예능 찍으면서 캐릭터가 정해져 있거든요. 뭐, 실제 모습이랑 크게 다르지도 않지만요.”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그녀는 배를 깔고 과자를 집어 먹었다.
앞머리까지 깐 것이 정말 편해보였다.
몇 가지 미션이 끝나자 제작진은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한 명의 VJ만을 남긴 채 자리를 벗어났다.
모든 인원이 숙식하기엔 별장이 좁았던 탓이다.
‘뭐, 방심하고 쉬라는 의미도 있고.’
사람은 누구나 장소나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특히 사람이 많아지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책 잡힐만한 모습을 감추게 된다.
배우들의 평소 모습을 담기 위한 프로그램인 만큼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한 것이리라.
‘분량 확보를 위해 행동 몇 개는 지시했지만······.’
제작진은 떠나기 전 배우들에게 큐 카드 몇 장을 건넸다.
태화가 받은 지시 사항은 다들 따로 놀 때쯤 자진해서 라면을 끓여 대접하기와 중간에 VJ가 게임 미션이 적힌 큐카드를 주면 막내로서 그것을 진행하기.
유라에게 물으니 그녀는 열심히 활동 중인 멤버들에게 약 올리듯 화상 편지를 보내기 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길어봐야 한 시간도 안 걸릴 지시였고, 이미 전부 시행한 터라 다들 알아서 제 시간을 보냈다.
‘······평소랑 딱히 다르지 않네.’
“그러니까 아까 말한 거 다 사······. 아, 왜 계속 끊겨? 내말 들려? 뭐, 안 들린다고? 익······!”
“커피 한 잔 타려는데 호진씨도 드실래요?”
주변에서 쉬고 있는 배우들을 훑어본 태화는 이게 일반적인 예능의 모습인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카메라가 돌고 있음에도 전화로 매니저에게 이것저것 주문하고 있는 지아와 친절이란 가면으로 무장한 채 VJ에게 말을 걸고 있는 승우.
촬영장에서 흔히 보던 풍경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한지아 말투가 평소보다 유순하긴 한데······.’
그래도 찍히고 있다는 자각이 있어서인지 고압적이던 어조가 새침하게 변했다.
원래가 지랄 맞은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단순히 까칠한 수준.
어찌 보면 나름의 매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500이면 할 만하네.’
태화도 소파에 앉아 가지고 온 책을 펼쳤다.
다른 방송에서 현재 준비 중인 영화의 대본을 연습할 수는 없었다.
중국 팬들을 위한 이벤트성 기획이다 보니 이번 출연료는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1박 2일 대략 30시간 동안 촬영하는 것으로 500만원.
잘 나가는 예능의 고정 출연진들이 받는 금액을 준다는데 30시간이 아니라 48시간 풀로 찍는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돈 참 편하게 번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카메라에 신경을 껐다.
이때까지만 해도 태화는 내일 아침 귀가하면 첫 드라마와의 인연도 다 끝나겠구나 하고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 * *
‘시발, 시발, 시발······.’
승우의 매니저 자리에서 잘리고 상식은 서서히 미쳐갔다.
소문을 들었는지 기획사에서는 그를 근신이란 이름으로 대기시켰으며 집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시끄럽게 굴었다.
‘내가 얼마나 잘했는데 개새끼······.’
그렇게 시궁창에 박혔는데, 요새 밖에 나갈 때마다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상식은 직감적으로 승우가 사람을 붙여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한창 드라마로 시끄러우니 잠잠해지면 처리하려는 것이리라.
사실 승우의 입장에선 무당의 말을 기억하고 헛짓을 할까봐 감시했을 뿐이며 루머나 트라우마로 상대 배우의 연기 수명을 죽인 적은 있어도 살인까지 간 일이 없었지만, 이미 공포와 분노에 잠식당한 상식은 시기를 봐서 담구기 위해 감시한다고 여겼다.
이성적인 부분이 완전히 맛간 것이다.
‘내가 혼자 죽을 거 같아?’
운전대를 잡고 어디론가 향하며 그는 벌겋게 뜬 눈으로 뒷좌석에 있는 통들을 힐끔거렸다.
주변 사람들을 이용해서 조금씩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준비한 물건들.
‘개새끼, 너가 그렇게 잘났어?’
감시의 시선이 약해진 틈을 나 밖으로 나온 상식은 PD에게 들었던 장소로 차를 몰았다.
* * *
-고객님, 표적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그따위 소리 들으려고 돈 준 게 아닐 텐데.”
일행들이 2층으로 올라가 잠이 든 그 시각카메라를 피해 밖으로 나온 승우는 미간을 좁힌 채 입술을 비틀었다.
대포 폰으로 온 연락을 받고 그는 설마 하는 심정에 상대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그들의 무능을 확인했다.
‘이래서 돈 받고 일하는 애들은······.’
사회적 위치가 있다 보니 승우는 직접적으로 움직이거나 꼬리가 잡힐 일을 삼갔다.
무언가를 덮을 땐 약점 잡은 이들을 이용했고 힘이 필요하면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맞춰 해결했으며 자잘한 일들은 매니저를 시켰다.
더러운 일을 해줄 매니저가 사라진 이상 현재 그에게 남은 것은 소 잡는 칼들 뿐. 그래서 상식에 대한 감시를 흥신소에 맡겼던 것인데 고작 사람 하나 감시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이 꼴을 만들었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걸 텐데. 장소는 어떻게 알았지?’
이런 생활 예능의 경우 극성팬들이 찾는 것을 막기 위해 위치를 비밀에 붙인다.
제대로 된 주소를 아는 이들은 관계자들로 한정됐고 촬영에 참여하지 않는 말단은 드라마 스텝이라도 위치를 몰랐다.
그런 정보를, 매니저 자리에서 잘린 인간에게 넘길 사람은 없었다.
“언제 사라졌다고?”
-그게······. 대략 3시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된 것 같습니다?”
-잔다고 생각해서······.
노기 섞인 목소리에 건너편에 있던 이는 쩔쩔 맸다.
사람 감시는 의외로 흔한 의뢰지만 24시간 내내 상주하며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자거나 틀어박혀 있는 상태를 감시해봐야 의미가 없으니까.
그래도 이번 의뢰인이 4시간마다 무조건 확인하라하여 대충 애들을 보냈는데, 들린 말은 표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직원의 말을 듣고 승우는 여기까지 걸렸던 시간을 떠올렸다. 차량에 탔던 시간과 도착해서 확인한 시간, 그리고 현재 횡 할 교통 상황까지 생각하면 상식이 있을 위치가 파악됐다.
‘3시간, 길게 4시간. 이미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치워버렸어야 했나.”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그는 인정을 남겼던 과거의 결정을 반성했다.
망가트릴 땐 다신 일어서지 못하게 철저히 부숴야했거늘, 스스로의 규칙을 어긴 것이 꽤 크게 돌아왔다.
‘재수 없으면 건물 앞에서 대기 타고 있을 수도 있겠어.’
오는 길에 마주치지 않았으니 숙소 앞에서 모두가 잠들길 기다릴지도 모른다.
방문객이나 도둑이 올만한 장소가 아니라서 숙소의 잠금장치는 허술하기 그지없었고 모두가 잠든 후에 몰래 들어와 살해한다면 다른 곳에 있을 때보다 성공 확률이 높을 테니까.
상식이 살의를 가졌다고 예상한 승우는 이대로 제작진들이 있는 장소로 내려가야 할지 고민했다.
어두운 밤이니 걸어서 2, 3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대책 없이 돌아가는 것보단 나았다.
‘뭐, 나대신 애꿎은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지만······. 부조금은 많이 넣어줘야지.’
운 나쁘면 일행 중 누군가가 화가 난 상식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으나 그건 운이 나쁜 거지 자신의 탓은 아니다.
내려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승우는 통나무집을 빙 둘러 제작진이 묵고 있는 장소로 가려했다.
별과 달빛이 전부인 어두운 산 속에서 환한 빛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젠장.”
승우는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릴 내뱉었다.
일행들이 있을 방향에서 밝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
동전엔 앞면만 있지 않습니다
화재의 무서운 점은 타죽는 것이 아닌 일산화탄소 중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