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58
냄새로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가연성 물질에 포함된 다른 성분에 의한 냄새와 색일 뿐, 일산화탄소 자체는 무색무취의 기체였다.
고층 건물 상층에서 사망하는 이들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화제 시 몸을 숙이고 대피하라 교육시키는 것이다.
무거워서 가라앉는 이산화탄소와 달리 일산화탄소는 살짝 가벼운 축에 속했으니까.
환한 낮에 사고가 났다면 그나마 거뭇한 불완전연소 기체를 통해 위험 유무를 알 수 있지만, 사람들이 잠들고 주변이 어두운 밤엔 그러한 위험 신호를 바로 눈치 채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2층에 잠들었던 이들은 운이 좋았다.
다들 바뀐 잠자리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거니와 인내심이 짧아진 상식이 2층의 불이 모두 꺼지자마자 범죄를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살인 대신 방화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하나를 죽이나 둘을 죽이나 결과는 비슷하니 그럴 바엔 모든 괴롭힘을 회피해 자신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태화마저 죽이는 편이 좋다고 여겨서다.
그 사이에 껴서 같이 죽게 될 사람들이 있다는 건 상식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배려심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사람을 살해하겠다는 마음을 품지 않았을 테니까.
“저기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요?”
“어? 그 쪽도?”
“이거 휘발유 냄새 같은데요?”
잠 못 들고 뒤척이던 이들은 불쾌한 냄새에 방에서 나왔다.
시골에서는 쓰레기 폐기 비용을 아끼기 위해 몰래 쓰레기를 태우기도 하며 그러다보면 바람을 타고 매캐한 냄새가 다른 집에 흘러들어가는 일도 벌어진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 생각하고 환기가 될 동안 1층 거실에서 있을 요량으로 나온 사람들은 서로 같은 이유로 나왔다는 것에 멈칫하며 인상을 썼다.
방에서는 희미하게만 느껴지던 냄새가 복도로 나오자 더욱 심해졌다.
“······설마.”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대낮처럼 환한 1층을 응시했다.
물론 램프를 켠 것은 아니다. 2층 위쪽으로 보이는 샹들리에는 전원이 꺼진 채 칙칙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그러나 그 샹들리에의 유리 장식엔 붉은 빛들이 요란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무, 무슨! 꺅!”
당황한 지아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하다 비명과 함께 엉덩방아를 쪘다.
화재 시 훅하고 올라오는 열기는 실제 위험도보다 무섭게 다가온다. 바로 앞에서 물건들이 타오르는 모습과 냄새가 더해지니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불을 가까이 하는 요리사 같은 직업이면 모를까 기껏해야 라이터 불이나 가까이 할 사람들에게 이런 자극에 대한 내성이 있을 리 없었다.
“유라씨! 유라씨! 일어나요!”
“으음······. 벌써 아침이에요? 킁킁, 뭐 태웠어요? 어? 왜 다들 그런 얼굴······?”
태평하게 자고 있던 유라는 다급한 태화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며 눈을 비볐다.
멍해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과 별개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느낀 것이리라.
“1층에 화재가 났어요.”
“네? 설마 부엌이요? 우리 다 확인하고······.”
“아무래도······. 방화 같아요.”
놀라 동그랗게 눈을 뜬 유라에게서 시선을 내린 채 태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방화가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날 이유가 없는 휘발유 냄새와 거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불길.
커다랗게 피어오른 불을 보자 태화의 속에 지금껏 잠들어있던 한 가지 재능이 속삭였다.
이것은 방화가 맞다고. 불 지르는 법도 모르는 생 초짜가 단순히 안의 사람들을 고사 시기키 위해 지른, 예술미 따윈 없는 저질스러운 방화라고.
‘······아니, 불 지르는데 예술은 무슨.’
그는 살짝 앞머리를 터는 척 머릿속의 작은 목소리를 날렸다.
담뱃불을 산불로 키울 수 있다는 황당한 설명에서도 느낀 것이나 ‘방화’라는 재능은 참 골 때리는 재능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방화 당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는 거지.’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방화범 같은 불과 관련된 범죄자들이 아닌 소방관이다.
화재와 재난의 전문가들.
방화범이 기껏해야 한 달에 두세 번 일을 저지른다면 소방관들이 해결하는 화재 사고는 서울만 따져도 한 달에 500건 이상이며 한 구에서 많으면 이틀에 한번, 적어도 삼일에 한번 화재 사고가 일어나니까.
그들은 불을 제압하기 위해 불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다.
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현재 연소중인 물질은 무엇인지,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화시켜야하는지.
불을 키우는 재능을 가진 태화도, 역설적이지만 같은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실질적으로 제압은 무리니 탈출해야해.’
다시 복도로 나온 태화는 아래층을 유심히 살폈다.
아직 불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거실 이곳저곳에 뿌린 휘발유가 점화제가 되어 건물을 빠르게 태우고 있었다.
산 구석에 콕 박힌 장소다보니 소방차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외부에 있는데다 창은 어린 아이나 간신히 통과할 정도로 작아 탈출은 무리였다.
“일단 2층에도 화장실이 있으니 가지고 온 옷을 물에 적셔서 마스크 대용으로 쓰세요.”
젖은 옷으로 코와 입을 가리는 이유는 물을 흡수한 천이 일시적으로나마 방독면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화재에서 불에 타 죽는 것보다 질식에 의한 사망 비율이 더 높았으니까.
그의 지시에 따라 얼굴을 가린 이들은 침착한 태화를 바라보며 희망이 섞인 눈길을 보냈다.
이렇게 나서는 걸 보면 어떻게 살 길을 아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도 불에 대해 아는 건······.’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넘긴 채 타들어가고 있는 벽을 바라봤다.
물론 불이 어떤 식으로 이 건물을 태울지는 아주 잘 보인다. 2층으로 연기뿐 아니라 불길까지 오는데 5분. 전소까지 대략 5에서 10분 남았다.
일정 임계점을 넘으면 불길은 탐욕스럽게 주변을 먹어치우니 늦어도 2분 안에 방향을 결정해야했다.
‘일단 입구는 불가능해.’
입구는 한 번에 한명밖에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좁다. 게다가 열기 때문에 문고리를 잡을 수 없는데, 문이 아무리 허술해도 몸통박치기 한다고 열릴 수준은 아니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건 덱(Deck) 방향인가.’
태화는 정면에 있는 커다란 창을 응시했다.
이런 별장식의 휴양 건물은 한 면을 유리로 처리해 경관을 인테리어로 삼는 동시에 탁 트인 배치를 통해 심리적 해방감을 노린다.
보안을 위해서 방탄유리를 쓰는 경우도 많지만 장비들을 안으로 들일 때 유리 깨지지 않게 조심하라 말한 것으로 봐서 두껍기만 한 일반 유리일 확률이 컸다.
‘물론 유리라 해도 깰만한 도구가 필요한데······.’
단단하고 무게가 나가는 물건.
그러나 가구들도 전부 원목인데다 둔기로 쓸 만한 의자 같은 소형 가구는 1층에 모여 있다.
또한 촬영하러 오는데 망치 같은 도구를 챙겨올 사람은 없었다.
‘불은 젖은 담요로 대충 덮어가며 전진하면 어떻게 될 텐데······.’
태화는 차근차근 계획을 짰다.
누군진 몰라도 벽에만 중점적으로 휘발유를 발라 거실 한복판에 튀어있는 불은 그리 크지 않다. 완전 진화는 불가능해도 통과할 정도의 틈은 만들 수 있으리라.
발엔 화상을 입겠으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그 정도는 감수해야했다.
“······저, 이걸로 어떻게 불을 2층에 오는 걸 막을 수 없을까요?”
가장 중요한 유리를 제거하기 위해 VJ가 들고 있는 카메라라도 던져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 사이 정신을 차린 VJ 송우한이 머뭇거리며 붉은색 통을 건넸다.
검사한지 얼마 안 돼 먼지 하나 쌓이지 않은 소화기였다.
“고맙습니다!”
“네?”
빛이 보이자 태화는 밝은 낯으로 소화기를 흔들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멀쩡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예비군 훈련이 이런 식으로 도움 될 줄이야.’
예비군 훈련에 크게 도움 되지 않는 뻘짓이 많다는 건 유명하다. 그리고 한창 시끄러운 사회 이슈를 어설프게 껴 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예비군이었던 동안 고의적인 방화 같은 인재(人災)에 의한 사고가 많았던 터라, 소화기 쓰는 법이나 소방 대피 훈련, 테러 대비 훈련 등을 강제적으로 수료해야했다.
조기 퇴소를 걸지 않았다면 어영부영 흐릿한 눈으로 들었으리라.
아무튼 상당히 열심히 경청한 데다 당시 예비군 짬밥이 낮다는 이유로 직접 소화기를 들고 지시에 따라 진화 훈련을 펼쳐야 했다.
물론 받은 지 5년이 넘어가 가물가물하긴 해도 몸으로 익힌 기억은 오래가는 법이었다.
“이대로 돌파해서 저쪽 유리로 나가죠. 발이 좀 다치겠지만 이 편이······.”
“너 미쳤어!”
도주로를 지정한 그가 작전을 설명하려 하자 창가에서 숨 쉬던 지아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까 압도당한만큼 그녀는 저 불길 속으로 뚫고 지나가 창을 깨고 나간다는 계획이 미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 되잖아! 내가 얼마나 잘 나가는데 죽도록 내버려 둘 리······.”
“살수차가 여기까지 들어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오기 전에 전소될 가능성이 더 높아요. 게다가 뚫고 갈 수 있는 것도 불이 벽을 타고 저희 높이까지 오면 불가능하죠.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
태화는 조금 빠른 말투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아슬아슬하다 못해 조금씩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제 행동하지 않으면 회귀 전 그를 찾아왔던 여성을 정식으로 만나게 될지 몰랐다.
“전 갈 거예요.”
유라는 굳은 눈을 한 채 태화가 말한 대로 물을 뒤집어썼다. 불 한복판으로 가는 건 사실이니 화기로 인한 피해를 줄여보기 위한 행동이었다.
젖은 옷이 달라붙어 한껏 몸매가 드러났으나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그런 걸 따질 사람은 없었다.
“저, 저도.”
우한도 물을 껴 얹고 잠시 바닥에 내려뒀던 휴대용 카메라를 챙겼다.
“그거 두고 가는 게 나을 텐데요?”
“이 장비는 개인 책임으로 넘어가서요. 제 목숨보다 비쌉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산 다음의 현실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다 가면 나도 가야하잖아!”
지아는 곱게 정리된 손톱을 물어뜯으며 조급함을 드러냈다.
타죽고 싶지 않다. 이제 다시 제 2의 전성기가 다가오는데 이런데서 죽고 싶지 않았다.
입을 막았는데도 슬슬 매연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두려운데, 홀로 남기까지 한다면 미칠 게 분명했다.
“그럼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제가 앞을 뚫겠습니다. 앞은 안 보일 테니 다들 고개 숙인 채 서로의 옷자락을 꼭 잡고 따라오다가 달리라고 하면 바로 달리세요. 발바닥에 뭔가 박히거나 데여도 신경 쓰지 말고 달리셔야 합니다.”
어쩌면 예상한 것보다 바닥이 뜨거울지 몰랐다. 게다가 맨발이니 항상 관리 받던 사람들의 보드라운 발이 제 역할을 다 할지도 미지수.
그러나 시각적 두려움과 약간의 통증만 극복하면 생존 확률을 높힐 수 있었다.
‘긴장해서 멀쩡하게 느껴지는 거지 나가면 바로 검사를 받아야해.’
태화는 가물거리는 훈련 내용을 떠올렸다.
이미 5분 가까이 소모한 터라 다들 상당량의 유해 가스를 마셨다. 정식 방독면도 아니고 이런 임시방편이 할 수 있는 수준은 정해져있으니까.
그러니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갑니다······!”
순식간에 계단을 내려간 태화는 불이 빨리 번질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최대한 가까이에서 분말을 분사했다.
방화의 재능이 반대로 피어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진압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검고 하얀 연기로 시야가 가려지자 그는 머릿속에 그대로 담은 모습을 복기하며 길을 열었다.
암기력Ⅱ단계는 장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