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59
‘아직 네 걸음.’
이런 분사형은 큰 단점은 분사 시간이 아주 짧다는 점이다.
고작 20여초.
그러니 완전 소화가 아닌 몸에 큰 흉을 남기지 않을 수준으로 부분 진압하며 나아가야 했다.
‘제발······!’
정확히 창 앞에 도착한 태화는 압력이 떨어져 비실거리는 소화기를 거꾸로 들어 유리를 내려쳤다.
이제 퇴로는 없었다.
“······깨지라고!”
그는 부러 창틀 근처를 여러 번 두드렸다. 학창시절 장난 좀 해보면 유리는 정 중앙보다 끝 쪽이 약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충격이 분산되는 범위가 다르니까.
그렇게 3번째 시도가 더해지자 금이 갔던 유리가 날카로운 파음과 함께 깨졌다.
잠시 휘청거린 태화는 나머지 부분을 마저 깨 탈출로를 완성했다.
“달려요!”
그는 발이 찔리는 것을 무시하고 앞쪽으로 달렸다. 건물 밖에도 휘발유를 뿌린 터라 서커스의 불고리를 넘는 사자 꼴이 되긴 했으나 그런 행동이 목숨보다 귀하진 않았다.
창문이 깨지는 순간 확 피어올랐던 불길에 소리치던 이들은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앞을 향해 달렸다.
눈 앞의 출구가 공포와 고통을 이겨낼 원동력이 되었다.
‘살았다······.’
도박은 성공했다. 태화는 무사히 나와 바닥을 구르는 이들을 보고 비실비실 웃었다.
긴장이 풀리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멀리서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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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등장
태화가 한창 의견을 모으고 탈출을 결심하던 그 시각.
승우는 어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그 시간 정확히 밖에 나가있었다는 건 운이 좋다로 끝날 수도 있는 문제지만 그 상황에서 바로 도망쳤다는 건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갔다며 지탄받거나 자칫하면 방화범으로 몰릴 수도 있으니까.
“119죠? 여기 불이······!”
그는 다급한 어조로 신고부터 전했다. 주소는 몰라도 대략적인 위치와 있던 사람들을 말하자 건너편에서 출발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쪽에서 먼저 연락했나? 뭐, 중요한 건 했다는 거니까.”
통화 내내 떨리던 음성이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혹시 있을지 모를 비난을 피하기 위해 한 행동일 뿐, 안에 있는 이들이 정말 걱정되어 전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게 방화라고 바로 알아차릴 리 없으니 여기 있는 게 맞지만.’
그러나 고의적으로 불을 냈다는 걸 아는데다 그 범인이 자신에게 큰 악의를 가지고 있는데 ‘같은 장소에 함께 있는다’라는 멍청한 선택을 할 생각은 없었다.
[잠시 밖에 나갔다가 불이 난 것을 보고 다가가 보려 했으나 옆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보고 방화임을 눈치 채 도망쳤다]그것이 승우가 정한 시나리오였다.
‘상식이 성격이라면 아직 숙소 근처에서 튀어나오진 않을까 구경하고 있을 거고.’
험한 연예계에서 상대 연예인을 넘어트려 자신이 키우는 아이들을 위로 띄우려는 매니저가 상식이 혼자일리 없다.
그렇게 많고 많은 후보들 중에 승우가 상식이의 약점을 잡아 데려온 것은 그의 집요함이 쓸 만하다고 여겨서다.
처음엔 자기애들의 인기를 위해, 시켜서 강제로 한다고 해도 먹히지 않으면 열이 받아 더욱 집요하게 노리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틈에······.’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승우가 딱 하나 실수한 것이 있다면 언제 불이 났는지 확실히 몰랐다는 점이다.
그가 119에 연락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사이 이미 안에 있던 이들은 밖으로 나왔고,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상식은 그들 사이에 승우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디론가 사라진 원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움직이던 그는 운 좋게도 도망치려는 승우를 발견했다.
“드디어 만났네. 개새끼.”
“······오랜만에 만나서 할 말은 아닌데, 상식아?”
승우는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상냥한 인간의 탈을 쓴 채 상식과 거리를 벌렸다.
욕 짓거리가 나올 것 같았지만 누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데 본성을 드러낼 순 없었다.
“감히 날 죽이려 들어? 씨발. 내가 혼자 뒈질 거 같아?”
“그러니까······.”
“도착했습니다! 진화 시작합니다!”
그가 대답하려는 찰나 시끄러워진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소방대원들은 현장을 확인하자마자 재빨리 움직이며 진화에 나섰다.
“승우씨! 무사······!”
“저거 상식씨 아니야?”
“왜 저 사람이 여기 있어?”
“······설마!”
조금 늦게 도착한 제작진은 멀쩡한 승우의 모습을 보고 안도의 표하다가, 뜻밖의 인물을 확인하고 의아함을 드러냈다.
개중 눈치가 빠른 몇몇은 이 화재가 상식이 벌인 일임을 알아차리고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안 됐······.”
“하하, 내가 혼자 죽을 거 같아?”
사람들의 등장에 이번에야 말로 감옥에 넣어버릴 생각을 하던 승우는 갑자기 달려오는 상식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품을 내줬다.
그리고 따뜻하면서 차가운 무언가가 그의 몸을 관통했다.
“으아!!”
“도와주세요!”
순간적으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승우는 곧이어 이어진 통증 탓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비명을 듣고 다가온 대원들이 급하게 상식을 제압하고 쓰러진 그에게 다가갔으나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다.
* * *
제압된 상식이 경찰서로 향하고 나머지 다섯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복부에 창상을 입은 승우는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으며 가벼운 일산화탄소 중독과 발에 화상, 자상이 생긴 이들은 처치 후 호흡기를 단 채 응급실에 남았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단 큰 부상은 아니라서 정신 차리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도 된답니다. 네, 네.”
배우들의 상태를 의사에게서 확인한 매니저들은 급하게 위쪽이나 내일 약속된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침이 마르고 지문이 닳도록 움직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요.”
“아무래도 잘린 걸로 앙심을 품고······.”
“근데 여기는 어떻게 안 거에요? 솔직히 이 장소 아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제작진들도 불안이 섞인 얼굴로 발을 굴렀다.
큰돈을 써가며 제작하고 편성한 프로그램인데 배우들이 전부 다친 채로 실려 간데다, 가장 몸값 높고 인기 있는 하승우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저지른 것은 하승우의 전 매니저라도 일이 커진 이상 이렇게 내버려둔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것이 뻔했다.
“나, 나는 아니야! 그 인간에게 몇 번 연락은 왔지만 다 무시했다고!”
“······누가 뭐래요?”
상식이 일하는 동안 친하게 지냈던 스텝에게 시선이 쏠리자 그는 극구로 부인하며 성을 냈다.
매니저 자리에서 잘리고 근신하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스텝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이번 책임이 누구에게 갈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이, 예능 PD는 막 깨어난 VJ와 대화를 나눴다.
“······혹시 찍었어?”
침을 꿀꺽 삼킨 PD는 약간의 기대가 담긴 눈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우한을 응시했다.
는 그가 후배인 창식에게 알랑방귀 끼고 위에다 기름칠을 해가며 간신히 편성한 프로그램이었다.
쟁쟁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게 두려워 ‘저 일하고 있습니다’를 어필하기 위해 만든 예능.
그런데 졸지에 저녁 9시 뉴스에 나갈만한 방송이 되었다.
‘죽은 사람도 없잖아?’
승우의 수술은 경과를 봐야하지만, 의사의 말론 주요 장기를 빗겨나갔기 때문에 오염이 없고 따라서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고도 쓸 수만 있다면야.’
촬영하다보면 가끔 사고도 나고 누가 다치는 경우도 생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이슈가 될지 안 될지.
그리고 이 사고는 누가 봐도 이슈몰이가 확실한 사고였다.
‘벌써 다른 방송국 기자들도 혹시 내부 카메라가 없었냐고 묻고 있고······.’
tvM은 드라마와 예능만을 다루는 방송이다.
그렇다보니 혹시나 자극적이고 쓸 만한 영상이 있으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고 오랜만에 갑의 입장에 선 PD는 알아보겠다 말하며 뻣뻣하게 고개를 들었다.
“저, 찍을 정신이 아니라서······. 카메라만 들고······.”
“쯧! 요즘 애들은 프로 의식이 없다니까. 그렇게 좋은 위치에 있었으면 딱! 각 잡고 따라다녔어야지!”
‘미친 새끼······.’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는 PD의 모습을 보고 우한은 욕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요즘 들어 tvM 예능국은 경쟁이 과열되고 있었다. 쟁쟁한 후배들이 괜찮은 포맷을 연이어 터뜨리고 있었고, 일주 주중 예능의 경우 지상파를 꺾는 일도 늘었다.
기존 PD들은 왜 이 정도를 못하냐고 눈총을 사고 있는 상황.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그들은 자신의 스텝들에게 화풀이하며 너희들이 똑바로 하지 못한 탓이라 나무랐다.
인격이라는 걸 존중해주는 세계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던 것이다.
“저······. 촬영은 못했지만 녹음은 계속 켜고 있었는데······.”
그래도 갚아야 할 할부금을 떠올리고 우한은 어색한 웃음으로 PD를 달랬다.
유언이라도 남길 생각으로 휴대전화의 녹음 기능을 켜고 있었는데, 제발 이걸로 만족하기를 바랐다.
“뭐? 녹음? 흠. 일단 줘봐.”
“네.”
그가 폰을 건네자 PD는 안에 담긴 내용을 듣고 고민에 잠겼다.
음성기록이라도 남았으니 이걸 잘 짜깁기하면 화제몰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영 아쉬웠다.
‘음성에 공포가 담겨서 리얼리티는 사는데, 영상만큼 화력이 있진 않단 말이야······.’
“여보세요? 오진이냐? 혹시 거기 진화 끝났어? 어, 어. 그래. 혹시 거기 설치한 카메라 쓸 수······. 아니, 침수된 건 아는데 데이터 살아있냐고. 뭐? 2층은 괜찮은 것 같다고? 어, 그래. 나 그쪽으로 얼른 갈 테니 전문가들 부르고. 그래 임마, 내가 지금 뭘 건진지 알아? 음성자료다. 음성자료. 이거 잘 짜깁기하면 대박 날 수 있어. 어, 그래. 곧 간다. 알았어. 나 간다, 몸조리 잘해라.”
“네······.”
화재 현장에 남아있던 AD와 대화를 나누고 PD는 영혼 없는 안부 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떴다.
인간을 도구 이하로 취급하는 행태에 이를 갈면서도 VJ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를 보냈다.
* * *
인터넷엔 난리가 일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기 배우들이 있는 곳에서 일어난 방화, 범인은 하승우의 전 매니저.
보기 드문 방화 사건에 지상파 3사는 2분 이상 사고에 대해 보도했으며, 실시간검색 순위는 2시간 가까이 촬영장 화재, 하승우 매니저, 방화, 태양을 품은 바다 등으로 채워졌다.
모든 배우들이 정신을 차린 다음엔 더더욱 소란이 커졌다.
고의로 일어난 화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이 태화의 기지 덕이었다고 말한 것이다.
새턴과 지아의 팬들은 그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나 선물을 보냈고, 덧씌워진 이미지 덕에 광고도 이어졌다.
물론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졸지에 아들이 불타 죽을 뻔한 선미는 울다가 탈진했으며, 마음 약한 매니저는 우울한 소리만 중얼거리다 간호사에 의해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