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60
‘나래 누나가 인절미 과자가 맛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확 일었던 관심도 3일 정도 지나자 잠잠해졌다.
특집으로 나갈 가 방영된다면 또 다시 들썩이겠지만 현재는 그랬다.
태화가 멍하니 병원 복도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이었다.
이름은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하고 화제가 되긴 했어도 그의 얼굴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적었으니까.
발에 난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물었기 때문에 태화는 태연하게 매점으로 향하며 살 과자를 생각했다,
“히익.”
링거대를 질질 끌며 움직이던 그는 옆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묘하게 익숙한 외모를 가진 소녀가 그와 눈이 마주치게 무섭게 몸을 떨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면식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복도 바닥에 누워 큰 소리로 사과하는데 그걸 태연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태화는 자신을 보고 납작 엎드리는 소녀의 행동에 당황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저, 누군진 모르지만 일어······.”
“제가, 제가 정말 잘못 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그러니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괜찮으니까 일어나, 저, 제 잘못이 아닌데, 누가 좀 도와주세요.”
환자이긴 해도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성인 남자 앞에 학생으로 보일 정도의 소녀가 오체투지한 채 제발 용서해달라고 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고 당사자가 된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소녀를 일으키려했다.
“일단 일어나요.”
“먼저 용서한다고 말해주세요! 엉엉!”
“알았으니까······. 하아, 뭔 진 몰라도 용서할 테니 일어나세요.”
용서한다는 말이 떨어지고서야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그에게 두 번 절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구지?’
이런 식으로 사과할 사람은 상식의 가족 정도일 텐데, 일단 그의 가족은 아니었다.
사고 후 죄송하다며 찾아온 이들 중엔 이런 앳된 소녀가 없었으니까.
의아하단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녀는 푹 고개를 숙인 채 저쪽으로 가시지 않겠냐 물었다.
소란으로 인해 모인 시선에 부담을 느끼던 태화는 그러자며 천천히 그곳을 벗어났다.
“전 하승아라 합니다.”
사람들이 없는 계단 근처에 도착하자 소녀는 팔을 눈높이로 들고 정중하게 반절을 올렸다.
“하승······?”
익숙한 이름을 듣고 태화는 멈칫거리며 승아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누군가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누군가’가 떠올랐다.
“설마 하승우 선배의······?”
“일단 여동생입니다.”
“일단?”
보통 가족을 칭할 때 ‘일단’이란 단어를 쓰는 경우는 없다.
‘얼굴이 닮은 걸 보아 피가 이어진 사이일 텐데······.’
이해 안 가는 내용에 태화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녀는 살짝 눈을 내리 깐 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속세와의 인연을 대부분 끊고 작은 동자신을 모시며 전국을 떠돌고 있거든요.”
“······동자?”
그는 설마하는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시선의 의미를 깨달은 것인지 승아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쓴웃음을 지었다.
“쉽게 말하면 무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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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나는 방법
무당이란 소릴 들으면 사람들은 화려한 화장과 붉은 예복, 요란한 금빛 방울, 작두 등을 떠올린다.
태화도 그랬다. 무당이란 단어에 승아의 옷차림을 다시 한번 훑었으니까.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입을 법한 편한 청바지와 조금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무당이란 단어가 그냥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 같은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평범했다.
“아, 원래 밖에서도 정복을 입는 무당은 드물어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컴퓨터도 신으로 모시는 요즘엔 다들 평범하게 입거든요.”
“······컴퓨터를 모신다고요?”
“뭐, 정식으로 신내림 받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의외로 현대 기기나 20세기의 위인을 신으로 모시는 사람이 많아요.”
물론 신이라기 보단 잡귀에 가까우나 모셔지고 받들어진다는 것은 의외의 힘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함부로 가짜라 단정 지을 수 없었으며 기존 신을 모시는 무당들도 경우에 따라 인정하는 추세였다.
“그래요······. 그런데 아까 죄송하다는 건······?”
승우와 그다지 좋은 인연이 아니기에 태화는 빨리 헤어질 요량으로 요점을 물었다.
사람들 앞에서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넙죽 엎드렸던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조언을 좀 했거든요······.”
그의 질문을 듣고 승아는 죄책감 섞인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승우는 원래부터 주변의 악의를 잘 사고 적의를 몰고 다녔다.
그래도 그 중 살의는 없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느 순간 천기가 어그러지고 아주 독한 살이 달라붙었다.
해결할 방도를 찾던 그녀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사용했다.
근처에 있는 상서로운 ‘무언가’를 액막이로 쓴 것이다.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다른 방도를 찾았지!’
보통 인간은 제대로 된 신을 하나 이상 업는 것도 버거워한다.
그릇의 차이인데, 그에겐 적어도 셋 이상의 신이 달라붙어있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기도 두려울 정도로 강한 이들이 말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승아는 그 기백이 자신을 노려본다고 여겼다.
해하라고 사주한 것은 아니더라도 다칠지도 모른다는 걸 뻔히 알면서 유지하라 조언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용서한다고 말해줬으니까 괜찮겠지? 우리 동자님도 엄청 겁먹었는데 나 괜찮겠지?’
승아는 침을 삼키며 힐끔 태화의 얼굴을 훑었다.
잘생기긴 했지만 인상 자체는 흐릿한 외모. 그러나 그런 외관과 달리 느껴지는 기운은 어떤 면에서 승우보다 무서웠다.
바른 듯 보이면서 묘하게 뒤틀린 의기(意氣)가 그러했고 주변으로 흐트러진 천기(天機)가 그랬다.
‘망할 인간. 진짜 오빠만 아니면 버리고 가는 건데······!’
그녀는 울상을 숨기며 승우를 욕했다.
일곱 살 때 무병일 발병해 신내림을 받은 뒤, 끝끝내 반대했던 승우는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저게 팔자니 놔두라했으나 자신을 키워준 열두 살 차이 오빠를, 승아는 쉽게 잊지 못했다.
그랬던 인간이 5년 전쯤 배우가 되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수많은 악의와 더러운 것들을 칭칭 감은 채 말이다.
혈육이라는 게 무엇인지 서로의 모습을 본 순간 그에게 달라붙어있던 업의 일부가 승아에게 옮겨왔다.
결국 그녀는 정말 위험한 순간 오빠를 도우며 공생관계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다치지만 않았으면 안 오는 건데.’
나름 그리워하며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하고 승아는 단 한 번도 승우를 만나지 않았다.
또 다른 것들이 다가올까 두려웠거니와 추억 보정이 있었을 뿐 유년시절부터 별로였던 성격이 최악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동생을 이름이 아닌 무당이라 부른다던가, 얼굴이 반반한데 성격이 별로라서 결혼을 못한다 같은 폭언은 참을 수 있어도 가끔 인연을 타고 몰아닥치는 ‘자연 발생 저주’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얼마나 막장으로 행동하면 그런 것들이 넘치는 건지 정말······.’
그렇게 속으로 승우를 욕하고 있을 때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던 태화는 참 표정이 다양하다며 감탄했다.
입을 오물거리고 눈썹을 찡그리고 볼을 부풀리고 하는 것이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무슨 조언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게 절 해하라는 거였나요?”
“아, 아뇨! 그냥 위험하니까 뭐 건드리지 말고 딱! 보고만 있으라는 거였어요! 저 다른 사람을 부러 건드려서 막이로 쓸 정도로 나쁜 년 아니에요!”
승아는 당황한 얼굴로 양손을 마구 흔들었다.
가끔 그런 식의 주술을 좋아하는 무당도 있지만 그녀는 달라붙은 액운을 언제나 하늘로 승화시켰다.
쉬운 길로 가려고 좀 게으름 부리긴 했어도 그걸 악용할 생각은 없었다.
‘근데 이쪽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의외로 잘 믿네.’
이런 식의 대화를 하다보면 일반인의 10명중 여덟은 사기꾼 보는 눈으로 승아를 바라봤다.
포함되지 않은 하나는 고객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 넓어서 모든 말을 포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태화는 어느 쪽도 아닌 사람으로 보였다.
마치 정말 봤기에 믿는다는 표정.
‘에이, 설마.’
승아는 그가 신들에게 사랑 받는 만큼 그런 미지의 것을 폭 넓게 포용하는 것뿐이라 믿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괜찮아요.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 나을 거라 조언한 것뿐이잖아요?”
태화는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며 연이어 괜찮다는 말을 건넸다.
크게 다쳤다면 약간이나마 관여한 승아에게 화를 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하게 다쳐 수술한 사람은 사건의 당사자인 하승우뿐이었고, 다른 이들은 곧 있으면 퇴원할 수 있을 수준으로 호전됐다.
단순히 조언을, 그것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한 소녀를 미워할 정도로 속이 좁진 않았다.
“고맙습니다! 그 인간은 제가 꼭 때려줄게요!”
“아, 네······.”
완전히 용서받았다 생각한 것인지 그녀는 전에 없는 활발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는 건 여전했다.
* * *
승아와 헤어진 태화는 자신의 병실로 돌아왔다.
1인 병실의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현규가 보였다.
사고 후 외부 반응도 요란스러웠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다.
매니저는 아무리 예능 컨셉때문이라 해도 통신도 좋지 않은 장소에 태화만을 두고 내려왔다는 것을 심하게 자책했고 소속사는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한 방송사와 승우의 소속사, 즉 상식의 직장을 고소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미지를 먼저 챙겨야 하지 않느냐는 태화의 말에 자신들의 우선순위는 소속 배우의 일신이라 단호하게 답했다.
이미지는 다른 기자들이 알아서 포장해주고 있지만 배우의 안전은 지금 제대로 못 박아 두지 않으면 또 다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후 계약서에 추가할 조항을 정리했고 오디션은 힘들어도 촬영일정은 최대한 조절했다.
배우가 죽을뻔 한 사고에, 매니저는 면회가 허가되는 시간까지 병실에서 대기하며 간병인 역할을 도맡았다.
굳이 이럴 필요 없다는 말에도 그는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조금 미뤄진 게 나쁘진 않아.’
태화는 이제 너덜너덜해진 의 대본을 펼쳤다.
원래 오늘 있기로 했던 의 대본 리딩이 3일 후로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