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61
주연이 다쳐 연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개봉까지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감독도 9시 뉴스에 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한 그에게 얼른 쾌차하라는 말을 남겼다.
‘오늘 어려움 난이도를 깨봐야지.’
태화는 집중해서 대본을 읽었다.
계약서에 싸인 한 이후, 막혀있던 어려움 난이도의 잠금이 해제됐다.
그 동안 보통 난이도로 연습했던 그는 망설임 없이 어려움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완전히 외운 대본과 달리 좀처럼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대사와 행동이 너무 무난한 탓이다.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요리가 라면이라는 말처럼, 정석에 가까운 로맨스는 너무 심심해서 높은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어려움 난이도를 시도했는데도 104%나 108%처럼 간신히 100을 넘는 점수가 떴고, 가끔 제단에선 ‘로키가 후원자나 받는 인간이나 참 비슷한 수준이라고 칭찬합니다’와 같은 야유를 받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태화는 오기로라도 동기화 120%를 넘기고 보상을 수령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건 단순히 자존심 문제가 아니야. 이 무난한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려면 그 정도의 아우라가 필요해.’
스쳐가는 겨울 로맨스로 끝나지 않으려면 관객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임팩트가 필요하다.
단순히 대사가 독특한 게 아니라 그들을 영화 속으로 홀리게 만들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 생각을 품고 태화는 전투적인 눈빛으로 대본의 마지막장을 정독했다.
[브라기의 축복을 실행하시겠습니까?]‘응.’
속으로 대답하자 태화의 시야가 암전됐다.
* * *
주연과 조연의 차이가 있다면 영화에서 주연은 중심이 되는 인물로 처음부터 끝까지 조명된다는 것이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이 장소가 바뀌더라도 그 내용은 그대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채워간다.
로맨스 영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두 주연의 사랑이 주이기 때문에 조연들 비중이 단역에 가까운 그야말로 단 둘만의 이야기였다.
‘어려움은 이런 부분이 참······.’
태화는 닫힌 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원래 영화의 장면은 침대에 누워서 창밖을 바라보는 여주인공이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고 말하는 부분부터 시작한다.
그 장면에 나가지 않을 남주인공의 행동이, ‘오현수’ 역의 시작이었다.
“아가씨 접니다.”
-들어와요.
병실에서 들려온 가녀린 목소리에 태화는 망설임 없이 문을 밀었다.
침대에 앉아서 웃고 있는 파리한 안색의 여성이 보였다.
영화 는 연약한 부잣집 아가씨 이혜련과 운전기사인 오현수의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이혜련은 항상 약을 달고 살았으며 겨울엔 병원에서 계절을 보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눈을 직접 본 적이 없다. 항상 따뜻한 실내에서, 창밖으로 만질 수 없는 아름다운 냉기를 바라봤다.
가족들은 그녀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금전 이외의 감정적인 교류를 최소화했다.
마치 돈을 제공한 것으로 혈육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는 냥, 그들은 겨울 동안 병원에 갇혀있는 그녀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런 혜련을 정신적으로 돌본 이가 그녀의 전속 운전기사 오현수였다.
그는 입주 도우미의 자식으로 어릴 적부터 이혜련을 봐왔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도왔고, 그녀의 운전기사로 취직했으며, 일이 없는 겨울엔 간병인을 제외한 그녀를 찾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왔어요, 현수 오빠?”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편하게 말하세요, 아가씨.”
“항상 하는 말이지만 싫어요.”
태화의 말을 똑같이 돌려준 그녀는 잠시 웃음을 짓다가 곧 마른기침을 뱉으며 침대에 엎어졌다.
그는 급하게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따뜻한 물을 건네고 그녀의 가느다란 등을 쓸어주었다.
“방이 너무 건조하군요.”
“······그런가?”
“이번 간병인은 아가씨를 너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주인어른께······.”
“내버려 둬요. 아버진 그런데 관심 없으시니까.”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따뜻한 유리잔을 응시했다.
곧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슬픈 얼굴이었다.
“그래도 나한테 현수 오빠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
“근데 사왔어요?”
혜련은 얼굴을 가렸던 그림자를 거두고 기대된다는 얼굴로 태화를 응시했다.
“······저 보다 젯밥에 더 관심 있으신가봅니다?”
“아잉?”
“여기 있습니다.”
“와! 고마······! 콜록! 콜록!”
그의 손에 있던 검은 비닐 봉투를 빼앗은 그녀는 환하게 웃다가 또 다시 기침을 내뱉었다.
이번엔 쉽게 가라앉지 않아 간호사를 불러 처치를 받고서야 간신히 진정됐다.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겨울이 유독 심한 것뿐이에요. 봄이 되면 호전 될 거고 벚꽃을 보러 갈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이 겨울이 끝나고 흐트러지게 필 꽃에 대해 떠들었다.
조금 더 건강해지면 단순히 꽃길을 걷는 것 뿐 아니라 함께 꽃놀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서 말이다.
요 근래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네. 그럼 제가 어머니께 말씀드려 맛있는 도시락을 싸가겠습니다.”
“후후, 아주머니가 해 준 밥은 정말 맛있는데.”
즐거운 화제 덕인지 그녀의 병약한 얼굴엔 약간의 생기가 돌았다.
태화는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기분을 띄워주고 그녀가 약 기운에 잠들 때쯤 병실을 벗어났다.
────────────────────────────────────────────────────────────────────────불완전한 헌신
‘······또 실패했네.’
제단 기둥 위에 동기화 수치를 확인한 태화는 거칠게 머리를 털었다.
이번에야 말로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숫자는 여전히 110을 넘지 못했다.
‘행동을 바꿔야하나? 크게 고칠 부분은 없어 보이는데.’
어려움 난이도는 ‘작품을 얼마나 완벽하게 따라하느냐’보다 ‘작품 속 인물을 얼마나 잘 파악했느냐’가 중요했다.
따라서 작가가 장면을 때우기 위해 대충 넘긴 대사도 인물의 성격에 맞춰 다시 구성해야했으며 의 어려움 난이도를 깰 때도 태화는 일부 대사를 원래 대본과 다르게 진행했다.
물론 큰 차이가 아니기에 촬영 당시엔 원래대로 갔지만 말이다.
‘어떤 면에선 가람보다 더 힘들어.’
가람의 경우 특징이 너무 많아 그 특징들 표현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껄렁한 태도, 거칠면서도 능글맞은 말투,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나가지 못하는 성정.
대사 이외에도 신경 쓸 부분들이 많아 ‘가람답지 않다’라는 지적을 받는 일이 많았으며 그로 인해 실패가 잦았다.
그와 반대로 ‘현수’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자였다.
고용주의 딸을 좋아하다보니 어릴 적부터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왔고, 폭발한 뒤에도 그녀를 너무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슬픔은 감췄다.
그래서인지 이혜련은 태화가 조금 다르게 대사를 읊어도 ‘이상하다’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의 다른 모습들을 단순히 ‘인간 오현수’의 모습이라 넘어간 것이다.
태화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보상을 넘겼다.
작품 당 받을 수 있는 보상 횟수가 한 번으로 정해져있으니 만족할 점수가 나온 후에 수령하고 싶었다.
[현실로 돌아가시겠습니까?]“어.”
대답하기 무섭게 시야가 바뀌고 병원 특유의 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혜련이 있을 위치에 있으니 기분이 묘하네.’
“다 외웠을 텐데 차라리 푹 쉬면서 몸 회복에 신경 쓰는 편이 낫지 않아?”
침대에 앉은 태화가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멍하니 대본의 끝자락을 응시하는 사이, 어느새 깬 현규가 걱정 섞인 눈으로 태화를 바라봤다.
매니저인 만큼 그는 태화의 기억력을 잘 알았다.
단순 대본 암기는 한번 읽는 것으로 충분하고 대사에 감정을 넣는 것도 두세 번 읽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경이적인 재능.
누구든 그런 능력을 가졌다면 적당히 요령 피울 텐데, 그의 배우는 다 외운 대본도 수십 번씩 정독했다.
‘하지만 일단 쾌차 후에 해주면 좋겠는데······.’
자신의 일에 대충인 연예인은 곤란하지만 열정이 넘치는 것도 보는 입장에서 걱정된다 생각하며 현규는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힘 줄 영화도 아니잖아. 포커스는 대부분 여 주인공에게 맞춰져 있으니까.”
극중 인물의 시선으로 작품을 분석한 태화와 달리 현규는 지극히 상업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했다.
주 관객인 여성들이 몰입하기 좋도록 카메라는 여자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췄고 남자의 경우 흔한 로맨스 영화의 수동적인 주인공, 그 자체였다.
‘심심하지만 경쟁작도 없어서 흥행 면에서 나쁘지 않고 이미지에도 플러스면 플러스지 마이너스는 아니라 찬성했지만······.’
처음 를 읽었을 때 현규는 이 영화가 BGA에서 엄선해서 보내준 것 치고 심심하다 여겼으나, 그 시기 함께 개봉하는 작품들에 대해 듣고 납득했다.
조금 일찍 개봉하는 가 추석과 묘하게 겹쳐 경쟁할 만한 작품이 두어 작 있다면, 10월 개봉 예정인 는 그 어떠한 기념일, 휴일에도 해당하지 않아 고만고만한 영세 작품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돋보이는 영화였다.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동시에 괜찮은 이미지를 어필하여 도움닫기 역할을 확실히 할 작품.
여러모로 도움이 되니 태화가 선택했을 때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몰입할만한 매력이 있는 영화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잠깐, 형. 포커스가 여 주인공이라 하셨죠?”
“어? 어. 너도 느끼지 않았어?”
“아니 알고는 있었는데, 잠시 만요······.”
태화는 손을 휘휘 저어 주변을 조용히 만들고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잡힐 듯 말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포커스······. 주도적으로 나가는 입장······. 그러고 보니 고백하는 장면 말고 현수가 자기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이 있던가?’
그는 대본을 빠르게 훑었다.
아픈 혜련에게 고백하고, 병원에서 해방된 그녀를 데리고 함께 여행하고, 봄꽃을 보며 그녀가 떠나기까지.
현수가 그녀의 앞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부분밖에 없었다.
‘······왜 몰랐지?’
이런 사소하면서 알기 쉬운 부분을 지금껏 몰랐다는 사실에 태화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뭘 했다고 벌써 배가 불러서······.’
를 받았을 때, 그는 정독을 하면서도 작품에 집중하지 않았다.
다섯 작품을 확인해야하는데 그 중 흥미로운 작품이 처음부터 있었으니까.
안 할 거라 말하면서도 내심 신경 쓰게 되는 작품이 말이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에 빠지면서, 앞서 연습했던 작품들에 대한 인상이 흐릿하게 변했다.
하고 싶은 작품 목록에 올렸던 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