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65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의사는 질식에 의한 후유증이 없을 거라 판단했고 태화에게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태화야 정말 괜찮은 거니?”
“네. 발바닥에 생채기가 좀 남았지만 입원까지 할 필요는 없대요.”
“그래도······. 엄마는 네가 좀 더 쉬면 좋겠어. 꿈이 아무리 중요해도 건강만한 게 없잖니.”
퇴원 수속을 도우러 온 선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연기를 좋아하는 지 잘 알았다. 20년을 부족함 없이 살아왔는데, 연기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모든 편의를 뒤로한 채 5년씩이나 홀로 서기를 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퇴원하고 내일 있을 리허설을 준비하는 마음도 ‘머리로는’ 어렴풋이 알았다.
그러나 아는 것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네 그런 면이 아빠를 닮아서 엄만 걱정 돼.”
남편 우석도 자신의 일을 ‘상당히’ 사랑했다. 회사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사씩이나 돼서도 일선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지시를 내렸고 그만큼 부하들의 존경을 받았다.
선미에겐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 반동으로 우석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병을 달고 살았으니까.
대부분 과로로 인한 것들이었으며, 그녀는 다른 이사들과 달리 너무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몇 번 화낸 적도 있었다.
그런 우석의 외골수적인 면을, 태화도 닮았다.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태도가 말이다.
가정의 평화를 우선으로 선미로선 부자(父子)의 행동이 걱정스럽기만 했다.
“정말 괜찮아요. 문제가 있으면 퇴원 허가가 안 떨어졌죠.”
“그래도······.”
“태화야, 수속 다 끝났어. 어머님도 가시죠.”
그녀의 걱정이 2절로 넘어가려던 찰나, 준비를 마친 현규가 둘을 불렀다.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한 그를 보며 태화는 재빨리 무릎 보행기(Knee walker)에 다리를 올리고 나름 멀쩡한 발로 바닥을 밀었다.
작은 바퀴들이 그의 몸을 순식간에 병실 문 앞으로 데려갔다.
“······그래요.”
도망가는 아들을 보고 선미는 작은 한숨과 함께 그들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태화는 의 대본 연습이 있는 건물에 들어섰다.
대관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 그런지 입구 안내 데스크에는 일주일간의 대관 일정이 시간, 회의실 호 수에 따라 분류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대기 중이던 스텝이 그와 매니저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서인지 준비가 덜 된 연습실이 그들을 반겼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태화는 곧 익숙한 얼굴을 찾아내고 발길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아, 이 배우, 몸은 좀 괜찮아요?”
“예, 걱정해주신 덕분에.”
분주하게 지시를 내리던 감독 김태우가 태화를 발견하고 걱정 섞인 얼굴로 안부를 건넸다. 병문안을 왔을 때도 느낀 것이나 꽤 사람 좋은 감독이었다.
“알다시피 는 남녀 간의 로맨스라 조연이 별로 없어요. 오늘 리딩에 참여하는 배우도 이 배우와 효신씨 외 다섯 사람뿐이거든요.”
한 줄, 두 줄 정도의 대사가 있는 배우는 단역을 쓰는 경우도 있으나 인력소의 엑스트라를 쓰는 일이 더 많다.
중요한 역도 아니거니와 단역과 엑스트라는 출연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온 배우들은 적어도 한 장면 이상 등장하는 배역들이었다.
혜련의 아버지, 현수의 어머니, 병원의 간호사 같은 역할 말이다.
‘확실히 이런 곳에서 주연 티가 나네······.’
감독의 설명을 들으며 태화는 묘한 감상에 빠졌다. 슬쩍 본 자신의 자리도 그랬지만, 감독이 언급하는 방식도 주연과 조연을 갈랐다.
회귀 전 몇 번 참가했던 영화에서 뭉뚱그려지는 쪽에 속했던 그는 이런 대접이 낯설면서도 기뻤다.
‘뭐, 외적인 대접보다 매력적인 역할을 많이 맡을 수 있다는 게 더 즐겁지만.’
아직은 물음표가 붙어 오디션을 요구하는 배역이 많으나 점점 갈수록 중간 과정 없이 들어올 역이 많아지리라.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태화는 감독석 바로 옆쪽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 효신씨. 어서 와요.”
연습 시간이 다가오자 마지막으로 이혜련 역을 맡은 여배우 김효신이 등장했다.
그녀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감독을 향해 다가와 웃더니 시선을 내려 태화를 바라봤다.
“그쪽이 이태화?”
“네,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해. ‘오빠’.”
오빠라는 호칭을 힘줘서 부른 그녀는 곧 자신의 자리, 태화의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괸 채 태화를 응시했다.
입가엔 미소를, 눈에는 흥미를 담고 있었다.
“영화는 이게 좋다니까. 스무 살짜리한테 오빠라고 부르면 내가 다 젊어지는 기분이야. 어머? 너 얼굴 되게 좋다? 에스테 어디서 받니?”
빙글빙글 웃으며 호들갑 떠는 효신을 보고 그는 어색하게 입 꼬리를 올렸다.
작중에서 현수보다 어린 스무 살을 연기하지만 그녀의 원래 나이는 서른하나.
나이도 연기 경력도 많은 선배에게 ‘오빠’라 불리는 것은 여러모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자, 그럼 다들 모였으니 인사부터 나누죠. 의 감독을 맡은 김태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아, 작가인 정아현입니다.”
“이혜련 역의 김효신이에요.”
감독의 인사를 시작으로 주연부터 비중이 많은 순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구석에서 녹화를 하는 탓인지 자신을 소개하는 배우와 박수 소리를 제외하면 회의실 안은 조용했다.
“그럼 연습에 들어가죠. 시나리오 진행 부분은 제가 읽겠습니다.”
인사가 끝나자 태우는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일정이 조금 늦어진 만큼 조급해진 것이리라.
배우들도 별 다른 말없이 미리 준비해 온 역할을 감정을 소화했다.
특히 효신의 경우 ‘내가 바로 로맨스의 여왕이다’라고 외치 듯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이혜련을 연기했다.
* * *
“좋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잠시 쉬었다가 반성회에 들어가죠.”
단 한 번의 미스도 없었기에, 첫 번째 연습은 예정 시간보다 빠르기 마무리됐다.
조연들은 주연들의 열연이 마음에 든 눈치였고 작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태화와 효신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좋은 분위기 속에서 단 한명, 김효신의 표정만은 상당히 미묘했다.
“감독님? 잠시 저 좀.”
그녀는 지금까지 중 가장 완벽한 웃음을 그린 채 감독을 불렀다.
상당히 작은 목소리였기 때문에, 그 부름을 알아차린 사람은 감탄하며 효신을 응시하던 태화와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그녀를 힐끔거리던 감독 김태우뿐이었다.
효신은 아무 말 안 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 연습실을 벗어났다.
그녀가 사라지고 얼마 뒤, 작게 한숨을 내쉰 감독도 터덜터덜 사라졌다.
‘······무슨 관계지?’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태화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신경을 끄고 옆에 있는 배우와 대화를 나눴다.
영화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이들의 사생활에 관심 없었다.
* * *
자리를 벗어난 효신은 얇은 담배를 꺼내들고 깊게 한 모금 빨았다.
애연가는 아니나 그녀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담배를 피는 습관이 있었다.
효신이 한 모금을 더 빨아들이려던 찰나,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광대 같은 웃음을 지은 태우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녕?”
“태우 오빠, 내가 분명이 대본 고치라고 그랬죠?”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질책을 쏟았다.
공개적으로 예의를 지킨 것과 달리 상당히 허물없는 태도였다.
“아하하······. 미안.”
그런 효신의 행동에 태우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사과를 뱉었다.
사실 태우는 오늘 연습이 있기 전만해도 대본이 상당히 괜찮다 여겼기에 그녀의 말을 반쯤 흘렸다.
아무리 수정을 요구했어도 리허설 때 괜찮다고 느낀다면 그대로 넘어갈 성격인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딩에 들어가고 그는 효신이 말했던 요구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녀의 짜증을 잠재우기엔 상당히 늦었다.
“소속사에서 이 영화 급 안 맞는다고 반대한 거 내가 억지로 도장 찍은 거 알죠? 물론 내가 오빠 재능을 진즉에 알아서 이번 영화 돕겠다고 나선 거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다고요.”
효신은 곱게 미간을 좁힌 채 말을 쏘아붙였다.
사촌지간으로 어릴 적부터 나이차이 많이 나는 남매처럼 지내 온 그녀는 태우가 찍은 영상을 보며 상당히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다.
그가 고등학교, 대학 시절 찍었던 영상들을 인상 깊게 봐왔으며 그 때문에 상업 영화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곤 ‘친척이니 돕겠다’라는 핑계로 영화에 참여했다.
로맨스 영화, 드라마만 일 년에 두 편 이상 찍는 만큼 효신은 그 쪽 분야의 안목이 상당히 높았다.
그녀는 처음 를 봤을 때 ‘영상미는 있을 수 있어도 흥행 면으로 부족하고 무엇보다 너무 올드하다’라는 혹평을 내놨으며 당장 고치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태우는 그녀의 명령 같은 조언을 듣지 않았다.
“이거 대본 짠 게 아까 옆에 있던 새파란 어린애죠? 걔가 고집 부려서 안 바꾼 거예요? 무슨 관계예요? 설마 스······.”
“아니야! 친구 딸이라고. 엄한 소리 하지 마.”
효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그는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물론 그의 부정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지금 친구 딸이라서 데려온 거예요? 영화가 애들 장난이에요?”
그녀는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태후를 쏘아봤다.
독립 영화만 몇 번 찍어 이름이 아름아름 알려지는 수준이지, 아직 흥행한 상업영화가 한 편도 없는 초짜 감독주제에 낙하산을 데려왔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친구 딸이라 데려온 게 아니고······. 걔가 그렇게 보여도 쓴 작가야.”
“······그 핏덩이가 오오미 작가라고요? 그렇게 어린데?”
힐난의 눈초리를 보이던 효신은 의외라는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물론 의심은 가셨어도 표정과 눈빛은 여전히 곱지 못했다.
는 여검사 ‘오오미’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로맨스가 살짝 부족했으나 상당이 잘 만든 법정 드라마였다.
아니, 단순히 잘 만들었다기보다 법정물이란 새로운 장르 하나를 개척한 대단한 작품이었다.
“이 바닥에 나이는 재능이랑 상관없잖냐? 그래도 친구 딸이라서 대박 작간데도 싸게 데려온 거야.”
“하, 싸긴 무슨. 한 편 성공시켰다고 대박이면 이 바닥에 대박이 넘칠 걸요? 적어도 세편까진 물음표인 걸 내가 몰라요?”
그녀는 코웃음 치며 그의 말을 비웃었다.
허풍을 치다 들킨 태우는 할 말을 잃은 채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친척 오빠가 죄인처럼 쪼그라들어 있자 효신은 약간 불편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라고 망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단지 배우인 그녀보다 한번 대박을 친 작가의 의견을 존중한 것이리라.
물론 친척인 그녀보다 친구 딸의 말을 더 잘 들었다는 게 짜증났지만 그래도 서른이나 먹어서 그런 티를 내는 건 그녀도 쪽 팔렸다.
“······오빠가 애들 데리고 엄한 짓을 하든, 뭘 하든 상관은 없는데, 지금부터 기분 내진 마요. 신인 감독들이 하는 가장 멍청한 실수가 지 잘난 줄 알고 나대다가 스캔들로 훅 가는 거니까.”
“야, 넌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릴 하냐. 나 그런 사람 아니거든?”
“아무튼. 매니저보고 그 핏덩이 불러오라고 할 테니까, 설득시켜서 대본 바꿔요. 오빠도 들으면서 대충 눈치 챘잖아요. 아무리 요즘 트렌드가 복고라고 해도 이거 엄청 과해요.”
새침하게 말을 남긴 그녀는 태우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휙 몸을 돌렸다.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태우는 오늘도 도도한 사촌 동생을 향해 깊게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