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66
────────────────────────────────────────────────────────────────────────바라는 대로?
“이배우 잠시 괜찮아요?”
“형, 나 조금 있다 내려갈게요. 차 준비 되면 알려줘요. 네, 감독님. 무슨 일이세요?”
대본 연습이 순조롭게 끝난 뒤 감독이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태화를 불렀다.
‘무슨 일이지?’
태화는 매니저를 먼저 보내고 태우를 응시했다. 휴식 후 있었던 회의에서도 특별한 무언가가 없었는데, 끝나자마자 붙잡는 연유가 짐작되지 않았다.
‘아니, 짐작 가는 것이 한 가지 있지만······.’
그는 이상하다 여겼던 과거를 더듬었다.
쉬는 시간 내내 모습을 감췄던 감독은 반성회가 시작하기 전 작가와 함께 회의실로 돌아왔다.
당시 정아현의 표정은 무언가를 생각하듯 복잡하기 그지없었으며 태우 장면 연출이 대략적으로 그려진 종이를 뒤적이고 있었다.
하는 행동은 달랐으나 두 사람 모두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어 보였다.
‘아마 셋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것 같았는데······.’
감독, 작가, 여주인공이 삼박자로 좋지 않은 심기를 드러내고 있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광경이었다.
아직 크랭크인도 안 했는데, 혹여 외적인 이유로 인해 영화가 폭파당하는 아닌지 긴장됐으니까.
‘일단 사적인 거면 날 끼어 넣을 리 없으니까 너무 걱정 말자.’
셋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면 제 3자인 태화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는 감독의 입을 쳐다봤다.
아직까지 달싹이기만 하는 입술이 주인의 고민을 드러냈다.
“······이배우, 일단 사과부터 할게요. 대본이 좀 바뀔 거 같아요.”
“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고 들어가려고 리딩하고 크랭크인 사이를 좀 넓게 잡긴 했는데······. 그래도 오늘 보니까 좀 문제가 많······. 아! 이배우때문이 아니에요.”
어렵사리 입을 연 태우는 혼자 중얼거리듯 횡설수설 말을 뱉더니 곧 오해하지 말라며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골랐다.
‘아무리 그래도 감독이 돼서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태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한 쪽엔 자신보다 훨씬 오래 영화계에 눌러 앉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이, 다른 한쪽엔 자신보다 더 주목 받고 있는 친구의 딸이 붙어서 졸지에 쭈그리가 되어버렸지만, 이 의 선장을 맡은 것은 감독인 그였다.
아무리 훌륭한 선원들이 있어 기가 죽더라도 중심을 지켜 작품을 이끌어야 했다.
“오늘 배우들의 리허설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렸던 것보다 그림이 밋밋한 감이 없지 않더군요. 그래서 크랭크인 전까지 ‘오현수’의 대사와 행동이 많이 수정 될 것 같아요.”
“그런가요.”
“네. 대본 연습을 넉넉히 잡아둔 건 혹시나 있을 수정을 대비한 것이었거든요. 덕분에 늦어도 크랭크인 일주일 전엔 완성 대본이 나올 겁니다.”
“어떤 식으로 바뀔지 알 수 있을까요?”
어려움 난이도 이후 대본 수정을 바라며 아쉬워하던 태화다.
예상치 못한 희소식에 그는 약간의 기대를 담아 감독을 바라봤다.
“일단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는 그대로 유지하되, 현수 엄마가 입주 가정부였다던가 하는 설정이 빠질 거고······.”
태우는 쉬는 시간에 있었던 아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 *
효신의 매니저에게 불려온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방에 들어섰다가, 안에 태우만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었다.
“어? 감독님? 여기 김효신 배우 없어요?”
리딩 내내 뚱한 표정을 하고 있던 것과 달리 작가는 제 나이 또래 같은 맹함을 자랑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응, 너랑 단판 지으라고 몰아넣은 거거든.”
“헐? 설마, 김효신이랑 친해요? 헐, 헐. 저 싸인 좀 받아주세요. 나이 어린 티 안 내려고 팬인데도 새침하게 있었거든요.”
방방 뜨는 친구 딸을 보며 그는 진정하라는 진심어린 애정에서 사랑의 딱밤을 먹였다.
‘딱’아 아닌 ‘떡!’ 소리와 함께 정아현의 이마가 새빨갛게 부어올랐다.
“으악! 뭐예요! 이거 권력형 폭행이거든요! 작가는 머리와 손으로 살아가는 직업인데 어떻게 머리를 공격할 수 있어요! 내가 금감원에 고소할 거예요!”
“······금감원은 그런 일 하는 부서가 아니야. 너 오오미 작가 맞냐?”
“대중은 진짜 법 조항 몇 개 쓰고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꾸미면 다 믿는 우매한······! 아악! 폭력 반대! 깁업! 깁업!”
태우가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그녀의 이마에 조용히 손가락을 조준하자 아현은 기겁하며 이마를 가렸다.
“됐고, 너 한 가지만 묻자. 이거 각본으로 옮길 때 뭐 봤어?”
감독은 손에 든 종이 뭉치를 흔들며 물었다.
대사까지 완전한 대본이 만들고 투자 받게 되면 개봉까지의 진행이 너무 느리다.
게다가 그렇게 완성된 글이 100% 투자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감독이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첫 문서에는 영화의 가장 큰 골자, 즉 시놉시스와 필요한 예산 규모, 전작의 흥행정도 등 두루뭉술하고 간접적인 내용들이 포함된다.
그 서류가 무사히 통과되어 투자가 붙은 후, 뼈대만 있었던 간단한 줄거리에 행동과 대사란 살이 붙고 연출 방식이 결정되는 것이다.
태우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고 자신이 작성해서 돌린 개요에 덜컥 대형 배급사 GY가 붙었을 때 겁이 났다.
그는 좀 더 제대로 된 내용이 필요하다 여겼으며, 친구의 딸이 오오미 작가라는 것을 알고 그녀의 과거 작품들을 확인한 뒤 만족스레 계약했다.
작가 정아현.
열아홉이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라는 대박 작품을 쓴 작가.
그 전까지 로맨스 소설을 쓰며 그 쪽 업계에서 나름 이름을 알렸다는 네임드.
그런 그녀의 팬들이 입 모아 말하는 한 가지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작품 집필 중 다른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점이었다.
표절을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단지 복수물을 보고 있었다면 잔잔한 스토리에 뜬금없이 악역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각성하는 등, 산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생겼을 뿐이다.
물론 그런 부분들을 어느 정도 본래 궤도로 돌리는 능력이 있으니 팬층을 유지한 것이지만, 팬들 사이에서도 ‘이 작가는 집필 시작하면 한글하고 사전만 깔린 컴퓨터랑 군만두 주면서 키워야한다’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태우는 그녀에 대해 찾아보면서 그런 내용의 글을 읽었다.
그러나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설마’ 개요를 옮기는 도중에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그런 걱정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완성본을 보고 약간 올드하단 느낌을 받았지만 그냥 유행을 따른 정도라 생각했다. 글로 읽었을 땐 좀 고전적이면서도 잔잔한 게 나쁘지 않았으니까.
효신의 지적은 으레 하는 투정이라 믿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봐도 그녀는 꼭 한 번씩 투덜거리곤 했으니까.
‘근데 막상 실제 들어보니까 아니었단 말이지······.’
뚜껑을 열자 진실은 정반대였다.
효신의 말은 알맞은 안목이었고 오히려 아현이 대본을 쓰는 도중 다른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어, 음. 안 봤어요!”
“너네 아빠한테 다 물어보고 묻는 거야.”
“허억! 감독, 아니 아저씨! 저 진짜 많이 안 봤어요! 그냥 계약 전에 보던 거 딱 5편 남아서 본 것뿐이에요!”
태우가 그녀의 아버지를 팔자 아현은 기겁하며 손을 펴고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태우의 함정인 것도 모르고 말이다.
“거봐 봤네. 뭐 봤어?”
“······설마 뻥카였어요? ······ 봤어요.”
배신감 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던 아현은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시무룩한 얼굴로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어이쿠.”
감독은 그녀의 말을 듣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몇 달 전 종영한 는 결코 나쁜 작품이 아니었다.
단지 시대 배경이 와 100년 정도 차이 나는 일제강점기이며 의 잔잔함과 달리 엄청난 신파극이라는 게 문제였다.
“지금 효신······씨가 항의하고 갔어. 이렇게 올드해선 안 먹힌다고.”
“어, 헤헤. 저도 오늘 좀 느꼈는데······. 일단 너무 진부한 주인공 관계를 조금 가볍게 바꾸고 동시에 대사도 가볍게 하고, 남주인공 병풍화 막고, 후반부 클라이맥스 한두 개 더 추가하려고요.”
“말이 통해서 다행이네. 우리 쭉 이렇게만 가자. 응?”
아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이 방금 전 어설프다 느낀 부분들을 짚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앙증맞게 양손을 쥐어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그래도 역시 김효신이네요! 저도 오늘 듣고 아차한 부분을 이렇게 빨리 찾아내다니! 언니 진짜 멋져요! 근데 아저씨랑 무슨 사이예요? 설마 염치없이······.”
안도의 한숨을 쉬던 태우는 또 다시 시작된 오해에 짜증을 내며 아현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걔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다들 왜 그러냐! 그냥 사촌 동생이야! 사촌 동생!”
“헐. 계 탔어. 김효신이랑 친척이래. 완전 부러워. 저 싸인, 싸인 받아주세요! 네?”
“아! 떨어져! 반성회 들어가야 해!”
그렇게 일단락 된 후, 작가는 회의 내내 마음에 안 들었던 설정들을 대략적으로 고쳤고, 그것을 태우에게 건넸다.
고작 위에 찍찍 그은 뒤 한두 문장을 추가한 것뿐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습작 같은 분위기가 상당히 사라졌으며 몰입감이 높아졌다.
* * *
“······정도를 고칠 겁니다.”
“지금 연습과 상당히 분위기가 다르겠네요.”
‘너무 형편 좋지 않나?’
태화는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새로 찍은 재능이 순발력이 아닌 행운은 아닌지 잠시 고민했다.
어려움 난이도로 시연했던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수정될 내용에는 연인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고 남는 자의 괴로움과 떠나야 하는 자의 미련이 아름답게 표현되어있었다.
‘무엇보다 앞부분이 상당히 짧아졌어.’
혜련이 죽기 전까지 단조롭게 흘러가며 쓸데없이 분량을 잡아먹던 장면들이 상당수 가지치기 당했고 둘의 관계를 알려 줄 정도의 진행을 보인 후 바로 혜련의 장례식이 연결됐다.
앞쪽 전개가 아쉽다고만 생각했지 어떻게 고쳐야할진 몰랐던 태화에게 이 변화가 기꺼웠다.
“수정 대본이 기대되네요.”
“그리 말해주니 고맙네요······.”
태우는 안도하며 웃었다. 이런 식의 대본 변경을 좋아하는 배우는 별로 없다.
아무리 책대본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외웠던 것을 전부 바꿔야 하는데다 기간이 더 촉박해지니까.
게다가 이런 식으로 캐릭터까지 바꾸는 경우 쪽대본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 조연들도 상당히 바뀔 거 같고······. 아, 선배들은 그냥 돈도 안줬으니 맘껏 자르라했지만 그게 쉽나.’
그는 사라질 배역들과 파기해야할 계약을 떠올리며 배를 부여잡았다.
계약서에 미리 적어두긴 했으나 면전에서 알릴 걸 생각하니 위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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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의 수정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얼마나 순조롭냐 하면 일주일 만에 대본이 다시 나올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순식간에 수정되 도착한 90페이지의 책대본을 보고 태화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좋은 말로 옛날 느낌, 나쁘게 말하면 촌스러웠던 주종관계 대신 현대에도 있을 법한 고용관계.
다른 사람이 있을 땐 잠시 가라앉더라도 둘만 있을 땐 그 나이 또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
마지막으로 여 주인공을 위하면서도 예정된 헤어짐에 대한 슬픔을 군데군데 폭발시키는 남자 주인공.
내용도 마음에 들었지만 작품 내적인 부분만 변한 건 아니었다.
완성도 3.5 흥행성 4.0
보다 낮았던 완성도는 크게 올라 웬만한 수작 수준으로 바뀌었고, 흥행성은 불운의 사고가 끼지 않는 이상 순조롭게 성공할 수 있는 점수대로 올라갔다.
‘·········같은 작가 맞나?’
처음 대본을 받아든 그는 실행하겠냐는 창을 끈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글의 분위기가 세련되게 변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