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69
회귀하고 을 준비하면서 태화도 그 기록들을 전부 읽어 봤다.
그러나 대부분 살인을 준비하는 과정과 살해 장면으로 이뤄진 대본을 연습하며 그런 기본적인 부분들을 넘겼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에서 밋밋하게 표현될 모티브의 행동을 상황에 어긋나지 않을 수준으로 재해석했다 표현하는 것이 맞았다.
그가 찍는 것은 재연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였으니까.
‘하지만 감독의 호(好)는 이쪽인가 보네······. 연출도 그렇고, 설마 유가족인가?’
태화는 현태를 응시하는 지환을 바라봤다.
단순히 만족을 나타내던 아까와 달리 현태의 연기를 본 그의 얼굴엔 묘한 놀람이 섞여 있었다.
기뻐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예상보다 더 힘들겠어.’
무대에서 내려와 헤프게 웃는 현태에게 마주 웃어주며 태화는 머리를 굴렸다.
영화로 본 장면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현태보다 완벽하게 표현하겠지만 그 밖의 감정이나 심리 연기는 감독 기준에서 눈에 차지 않는 구석이 많을 것이다.
그는 오재빈이란 인간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미친 인간의 정신을 누가 알까 싶지만 바로 앞에 그 인물이 있었다.
아직은 어설픈 구석이 남았으나 새싹 정신병자 마냥 오재빈, 아니 오민재의 심리에 싱크로를 맞추는 배우가 말이다.
‘역시 굉장하지만······. 아직 3차일 뿐이니까.’
태화는 결심을 다졌다.
첫 발을 내디딘 이상 세세한 설정은 자신이 구상한대로 밀고 나가 감독과 심사위원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모티브는 모티브일 뿐이라고.
이것은 흥행을 바라보는 상업 영화임을 어필해야했다.
* * *
‘······이쪽은 메소드인가.’
지환은 부엌으로 꾸며진 세트장 위에 서있는 남궁현태의 연기를 주시했다.
메소드 연기.
대중들은 ‘실제 같은 연기’를 뭉뚱그려 메소드라 부르지만 실제 메소드는 연기라기보다 ‘감정을 이끌어 오는 방식’이었다.
배역의 실생활을 따라하며 그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고, 그러면서 느낀 것을 자연스럽게 연기로 표출하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다리가 없는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 자신의 다리를 묶고 생활하여 그 감정을 절절히 느낀 다음, 그 심정을 카메라 앞에서 토하는 방식.
현대판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직접 느껴봤기 때문에 좀 더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해지는 기법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 정도로 빙의되는 경우는 드문데······.’
메소드 연기라는 말이 대중들 사이에서 유명해 진 후, 어설프게 등장인물의 생활을 따라하며 폐를 끼치는 배우들이 늘었다.
가끔은 그 단어를 핑계로 역할구상 시간이 모자랐다 우기는 멍청이들도 생겼다.
그러나 눈앞의 배우는 제대로 된 메소드 기법을 사용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어설프게 한두 사람 썰어본 소시오패스 냄새가 났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오재빈’과 같은 인간으로 성장할, 될성부른 떡잎 같은 느낌말이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지환은 부러 컷을 외치고 현태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얼굴엔 역할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 * *
밤늦게 회의가 끝나고 지환은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물었다. 아파트가 금연 아파트로 지정된 탓에 미리 니코틴을 충전하고 싶었다.
‘오늘로 구건우 역 30명은 다 추렸고. 오민재역은 넉넉하게 25명 줄 세웠고······.’
오늘 심사위원들이 본 오디션은 형사 ‘구건우’역 20명과 살인마 ‘오민재’역 60명.
동일한 역할들을 하루에 다 함께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심사위원들도 사람이다. 의견 충돌과 조율, 피로 등을 고려해 일정을 유동적으로 조정해야했다.
“역시 여기 있었네.”
“찾았냐?”
“딱히.”
옥상에 발을 디딘 무진은 담뱃갑을 흔들었다. 자신도 담배 피러 온 것뿐이란 제스처였다.
“무진이 넌 어떻게 생각해?”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담배를 피던 감독이 휴대용 재떨이에 담뱃불을 끄며 물었다.
목적어가 떨어진 질문이었으나 촬영 감독은 찰떡 같이 알아 들었다.
“난 19번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넌 딴 놈이 마음에 들었겠지.”
덤덤한 목소리에 지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렌즈를 통해 배우들을 바라보던 무진이 그의 생각을 정확히 짚어냈으니까.
지환이 영화를 기획한 것은 피해자를 위한 헌정의 의미였다. 어릴 적 그를 귀여워해주던 아저씨가 오재빈에 의해 살해당했으니까.
그런 의미를 생각하면 남궁현태만한 배우가 없었다.
그라면 크랭크인을 할 때쯤 완벽한 살인마 오민재를 만들어 올 것이고 그 완성도는 지금 구상한 것보다 완벽할 테니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의 끔찍했던 기분을 느끼고 의도한 대로 오재빈을 향한 말도 안 되는 콩깍지를 벗을 것이리라.
오민재라는 역에 완전히 동화되어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배우이니 연출과 촬영이 똑바로 한다면 바로 앞에서 피어나는 악의를 완벽히 담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우 본인은 우울증이나 트라우마······. 심하면 정체성 혼동을 일으키겠지.’
태화는 모르는 사실이지만 회귀 전 최지환 감독은 남궁현태를 두고 상당히 고민했었다.
이 영화를 찍음으로써 남궁현태라는 배우가, 아니 ‘인간’ 남궁현태가 망가질 확률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작품만 생각하는 감독이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환은 상당히 양심적인 축에 속하는 감독이었다.
그는 99000원이 있으면 1000원을 빼앗는 대신 가진 99000원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임금이나 출연료를 제때제때 지급했으며, 한번 영화가 수익분기를 못 넘었을 때마저 시간을 들여 전부 지불했다.
많은 감독들이 저지르는 스텝 폭행이나 배우 성희롱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었고 자신의 밑에 있는 이들을 ‘인간적으로’ 대했다.
그런 사람인만큼 지환은 자신의 작품을 위해 희생당할 가능성이 높은 배우의 미래를 저울질하고, 다른 대체가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과 약간의 가책을 느끼며 최종적으로 남궁현태를 오민재 역에 집어넣었다.
‘완숙한 배우면 고민도 안 했겠지만······.’
만약 남궁현태가 몇 번의 큰 역할을 겪은 배우였다면, 오디션에서 완벽히 완성된 ‘오민재’를 연기했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작은 역이나 전진했던 메소드 배우가 처음으로 맡을 ‘큰 역할’로, 오민재는 상당히 위험한 역에 속했다.
그 깊고 어두운 감정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베테랑에게도 힘든 일이었으니까.
‘결정적으로 이태화 배우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단 말이지.’
회귀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속 오민재를 통해 연기를 연습한 이태화의 존재였다.
평범한 감독이면 그냥 화면에서 반짝이는 배우 정도로 그를 이해했겠지만 지환은 그의 매력을 정확히 이해했다.
태화는 현태처럼 메소드 연기를 펼치지 않았다.
실제 같은 연기를 펼치긴 했으나 거기에 스민 감정은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얻어진 감정을 배경과 카메라까지 고려해가며 완성시킨 연기.
계산에 계산이 더해진 만큼 그가 표현한 감정은 다이렉트로 관객들을 때릴 것이고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사실 같다’란 느낌을 받으리라.
경계가 흐릿하고 분간하기 힘든 감정의 채도를 확 올려버린 것이니 당연했다.
‘남궁현태만한 섬뜩함을 느끼게 할 순 없어도 시선을 끌어 모으는 건 그보다 뛰어나겠지.’
태화라면 현태처럼 120퍼센트의 완성도를 보이진 못해도 예상 이상의 흥행을 이뤄낼 지 모른다.
무진이 ‘재미있을 것 같다’라 말하는 점도 그런 부분이었다.
연출과 촬영의 의도를 이해하면서 그것을 이용하고 가볍게 비틀기까지 하는 배우는 제대로 메소드 기법을 쓰는 배우만큼이나 희귀했으니까.
지환은 부엌 세트장을 거치며 그 가능성을 느꼈다.
그가 생각했던 연출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묘하게 유려하고 시선을 떼기 힘들게 만드는 연기.
관객들이 오재빈의 잔인함을 상기하고 눈살을 찌푸리길 바라며 기획한 장면이기에 따로 구상중인 감독판에나 들어갈 부분이었으나 태화의 연기로 표현된 장면은 굳이 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그런 묘한 마력을 품었다.
‘게다가 멘탈도 튼튼해 보였지.’
감독이 태화를 완전히 제끼지 못한 연유에는 그의 단단한 정신력도 포함되어있었다.
배역에 감정이 먹혀 촬영이 끝난 후에도 바로 돌아오지 못하던 남궁현태와 달리 태화는 계산된 연기를 표현하였기에 강렬한 역할 감정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으니까.
그가 우울증 같은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아주 낮으리라.
“······20번이 오민재를 연기하면 네 의도는 완벽히 들어맞겠지만 작품적으로 보면 19번이 더 나아.”
배우가 관객한테 욕도 덜 먹을 거고.
생각에 잠겨있던 지환에게 그런 말을 남기며 무진은 옥상을 벗어났다. 담배도 다 피웠겠다, 떠드는 것에 질린 것이리라.
무진의 등을 보며 지환은 결정을 보류했다.
아직 3차가 막 끝났을 뿐이다.
둘의 모습을 조금 더 관찰한 다음 결정해도 늦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19번이랑 20번이 다섯 명 넘게 있었······.”
“다 알아들었으면서 그런 말 하니까 니가 미움 받는 거다.”
“너야말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겉돌고 있잖아. 분명 지금 따로 모여서 호들갑떨고 있을 걸?”
“예상했으면서 잘도 말하시네.”
그는 재빨리 무진에게 따라 붙으며 잡기적인 이야기를 떠들었다.
그런 지환의 행동을 귀찮아하면서도 무진은 꼬박꼬박 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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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찍으러 왔을 뿐인데
캐스팅이 결정되고 크랭크인이 시작 될 때까지 배우는 무엇을 할까?
사실 이 기간에 배우가 할 일은 별로 없다.
대본 리딩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감독와 조감은 투자자들 모으기에 정신없으니까.
홍보를 위한 영상, 포스터, 유인물은 촬영 최후반이나 크랭크업 이후의 문제이니 이 시기부터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렇기 때문에 태화도 ‘영화 에 관해선’ 할 일이 없었다.
「리두이화(李??)선생 대본은 확인하셨나요?」
「네. 근데 저분······. 진짜 유라씨를 닮았네요.」
그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는 상대를 힐끔거리고 감탄하자 스텝은 턱을 추켜세웠다.
「큼, 13억 중화인민들 중 그녀를 대역할 사람이 하나 없을까요. 그나저나 보통화가 정말 능숙하시군요.」
「감사합니다.」
자랑스럽게 말하던 스텝은 태화의 발음을 다시 한번 새겨들으며 이채를 띠었다.
중국에서 광고를 찍는 한국인 배우는 많았어도 이 정도로 완벽하게 발음해서 더빙 없이 진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쪼록 창지앙(가람)의 분위기를 잘 살려서 연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이죠.」
가 한국에서 종영된 지도 벌써 일 개월.
국내에선 이미 그 열기가 다른 드라마로 옮겨갔지만 중국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판권을 사고 뒤늦게 방영을 시작했던지라 저번 주에나 정규방송이 종영했고 그 인기는 여전했으니까.
특히 방영 예정이던 가 사고로 인해 취소되면서 기대하고 있던 중국 팬들은 다른 방향으로 그 갈증을 해소하려 들었다.
바로 주연들의 전작이나 팬 상품을 사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팬들에겐 불행이도 신인 중 신인인 태화는 그렇다할 작품이 없었다.
영화 소개에도 안 뜰 조그마한 단역에나 몇 번 참여했으니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