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72
그런 뜻을 이해한지라 태화도 어제 저녁 머리를 식힐 겸 호텔 라운지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냥 호텔 로비 근처에서 쉬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난 거예요.”
“너도 드라마 때문에 한류 스타야. 그런 장소에 있으면 사람들이······!”
“아무도 못 알아보던데요. 그리고 한류 스타는 좀 과장이죠.”
“······.”
다른 방송국도 아닌 CITV에서 방영한 드라마로 확 떴으니 상당한 팬층을 얻은 건 맞았다. 그러나 조연이란 한계가 있기에 주연들의 인기와 비교할 수준은 못 됐다.
다음 영화나 드라마를 찍으면 확실한 수요를 바라볼 순 있지만 그것이 태화 개인 팬으로 보기엔 모호한 상태.
그걸 붙잡으려면 다음 작으로 이름을 때려 박아야 했다.
‘그런 의미에선 이번 카메오가 나쁘지 않지.’
어제 하루 고민하면서 태화는 대청제국이란 드라마에 대해 찾아봤다.
황궁의 암투와 주인공의 사랑, 그리고 강호의 도리를 적절하게 섞은 장편 소설이 원작인 장편 드라마.
현재 중국에서 유행중인 선협물의 일종인데, 로맨스가 밸런스 있게 섞인 터라 남녀 모두에게 인기 좋은 작품이었다.
인기만큼이나 주연들 몸값도 어마무시했으며 그 덕에 장편 드라마는 종영하고 시즌제로 바꾸면서 주연들을 싹 갈아엎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튼 중국 자체 제작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작품이었고, 그런 만큼 카메오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를 보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도 이태화(李??)라는 이름을 새길 수 있는 기회였다.
‘근데 이거 등장하려면 그에 맞는 대비도 해야 하겠지?’
작은 광고의 경우 통제 가능한 범위이기 때문에 소문이 느리게 퍼진다.
그러나 세트장에 등장하는 순간 태화가 중국에 들어온 사실이 순식간에 알려질 것이기에 달라붙을 사람들과 안전을 위해 경호를 고용해야했다.
‘오래 있을 거면 고민했겠지만······.’
그런 번거로움이 생기더라도 어차피 지금 찍으러 가는 광고가 마지막 스케줄.
하루는 걱정을 놓고 관광할 예정이었으나 어제 돌아다니며 필요한 선물들은 다 구매했으니 일이 끝나자마자 하루 앞 당겨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근데 정말 찍을 생각이면 BGA랑 주변 관계자들한테 물어서 가드 몇 명 고용해야해. 이렇게 간소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네가 중국에 있는지 모르니까 가능한 일이야.”
태화가 생각한 문제를 매니저가 생각 못할 리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할래?’라는 눈빛으로 태화를 힐끔거렸다.
단순히 거동의 자유 때문에 묻는 게 아니었다. 그 비용을 지불해야할 사람이 태화이기 때문에 의사를 묻는 것이었다.
“안전이 우선이죠. 그리고 BGA에 물어서 관련 계약이랑 자잘한 것들도 준비해 주세요.”
“계약서 받아서 네가 어제 받은 번호로 연락 넣어 볼게. 그리고 네가 안한다고 했어도 요청 들어온 작품인 만큼 자료도 받아 뒀거든? 패드에 있으니까 이따 건네줄게.”
“감사합니다.”
가닥을 잡은 태화는 곧 있을 광고의 컨셉을 다시 한번 살피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짧은 종이 몇 장을 뒤적이던 것도 잠시, 태화는 가까운 곳에 집중됐던 시선을 떼고 턱을 괴었다.
오랜만에 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형, 전에 사고 난 것 때문에 그거 관련된 특집 프로그램을 따로 편성한단 말이 있지 않았어요?”
“아, 그거. 바빠서 잊은 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있었네?”
“사실 잊은 거 맞아요. 근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순식간에, 조용히 묻혀서요.”
한 달이 지난 지금 그 사고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다 잊은 듯, 사람들은 다른 이슈를 찾아 불타올랐다.
“그거 방송 금지 먹었어.”
프로그램이 취소됐다는 말에 태화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현규를 응시했다.
원한에 의한 방화, 범인은 연예인의 전 매니저.
정치 관련 주제도 아니고 기자나 방송관계자들이 딱 좋아할 소재인데 그걸 막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일단 자료 가진 곳이 tvM이잖아? 드라마면 모를까 그런 시사, 사고 터뜨리기엔 너무 작은 곳이지.”
“거기 GY계열이잖아요?”
GY.
의 최대 투자자인 동시에 배급사이자 멀티플렉스까지 갖춰 상영관까지 가진 거대 기업.
홈쇼핑 채널을 제외하고도 10여 개의 케이블 채널을 소유한 연예계의 공룡.
그런 곳인 만큼 자료만 있다면 그걸 이용한 편성은 다른 채널을 이용해도 괜찮았다.
운영하는 사장은 방송국마다 달라도 크게 같은 소속인 만큼 자료 이동이 다른 곳보다 자유로운 편이니까.
GY란 단어를 듣고 현규는 슬쩍 고개를 흔들었다.
운전 중인 탓에 작은 움직임이었으나 태화는 거기에서 부정을 읽었다.
“그 사고 난 소속사도 GY계열이잖아. 자숙 중이었다곤 해도 매니저 소속도 여전히 GY였고. 결국 소속사 힘이 더 크냐, 방송국 힘이 더 크냐의 문제인데 거기에 하승우가 끼면서 소속사 쪽이 이긴 거지.”
드라마가 대박나면서 하승우는 완벽히 A급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배우의 전 매니저가 일으킨 사고이니 초장부터 잡음이나 똥물이 튀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리라.
물론 전 매니저 노상식의 경우 법적인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단지 조용히, 대중들이 모르게 처리된 것뿐이었다.
꺼져가는 불씨를 키우지 않은 채 조용히.
“우리도 BGA를 통해서 고소하고 합의했잖아. 법률팀에 물어보니까 합의서에 적혀있던 ‘후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가 그런 의미로도 해석 된데.”
죽은 사람도 없는 데다 피해자가 아주 적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저도 다행이네요. 그 사고 소식 듣고 어머니가 상당히 놀라셨거든요. 이슈는 확실히 탈 수 있어도 제 연기력 때문도 아니고.”
태화는 그 프로그램에 나갈 내용을 어느 정도 알았다. 자신이 영웅적으로 표현되는 것도, 나가게 되면 다시 한번 실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것도 이해했다.
운도 실력이니 무명이라면 어떻게든 이용했으리라.
그러나 차기 작품도 정해진 상태에서 순탄을 항로를 좀 더 극적으로 바꿔보겠다고 부모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할 생각은 없었다.
“미리 알렸어야 하는데 타이밍이······. 미안.”
“아뇨. 저도 갑자기 바빠져서 들을 정신이 아니었죠. 그래도 다음엔 바로 알려주세요.”
“응.”
그런 대화를 나누며 광고를 찍을 스튜디오에 도착한 태화는 나래의 화장을 받고 ‘맛있게’ 라면을 먹었다.
* * *
라면을 3그릇 반을 비우고서야 광고 촬영이 끝났다.
촬영하는 동안 라면을 론칭한 회사에서 높으신 분이 부하를 이끌고 구경왔고 그는 태화가 먹는 모습을 보고 흡족해하며 사라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저희 이사께서 상당히 기뻐하셨습니다. 가시는 길에 저희 상품을 드릴까 하는데.」
「죄송하지만 비행기 짐이 다 차서요.」
「하하! 뭐 그런 걸로 고민하십니까? 그냥 추가 수화물로 등록하면 되죠! 걱정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호쾌하게 웃는 직원을 보고 태화는 조용히 감사를 표했다.
추가 비용을 내면서 라면 박스를 챙기는 사람은 몇 없으리라.
이렇게까지 해준다는데 기분을 상하게 하며 거절 할 순 없었다.
「혹여 이후 일정이 있습니까?」
「아, 드라마의 카메오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 일정을 끝내자마자 출국할 것 같네요.」
「이런, 안타깝군요. 중국은 술도 여자도 상당합니다. 다음에 오실 땐 함께 즐겼으면 좋겠어요.」
정말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하는 직원을 보고 태화는 표정을 관리했다.
접대 방식을 접할 때마다 이곳이 한국이 아님을 깨달았다.
「저희 중국은 ‘관계’를 중시합니다. 두이화 선생이 중국에서 활동할 거면 머릿속에 넣어두는 게 좋아요.」
「조언 감사합니다.」
꽌시(?系)를 언급하는 그를 보며 태화는 피곤함을 느꼈다.
배우에게 정말 돈이 되는 것은 작품 활동이 아닌 광고다.
영화와 드라마는 사실상 몸값을 유지하고 올리기 위한 장치.
그런 만큼 광고 관련자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어두는 것이 배우라는 상품을 위해선 더 좋았다.
그러나 그런 관리가 다채로운 역을 맡고 연기를 위해 살고 싶은 태화에겐 귀찮은 족쇄로 느껴졌다.
‘현규 형과 BGA에 광고는 최소로만 잡고 좀 더 작품에 집중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해야겠네.’
태화는 커다란 종이 위에 밑그림을 그렸다.
주변의 조언을 우선적으로 듣고 행동한지 이제 대략 삼 개월.
찍고 싶은 영화, 활동 방향 등 어렴풋이 생각하던 것들이 윤곽을 보였다.
슬슬 어떤 식으로 매니저와 에이전시를 다뤄야할지 이해한 그는 천천히 자신의 권한을 찾아갔다.
────────────────────────────────────────────────────────────────────────
독특한 캔버스
태화의 예상대로 드라마 촬영장에서의 일은 순식간에 SNS로 올라갔다.
대륙의 스케일답게 현장엔 수많은 관계자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단순히 감독의 주의만으로 그들 모두를 제어할 순 없었으니까.
그가 표준어 녹음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할 무렵엔 이미 방중 일정이 어느 정도 인터넷에 퍼진 상태였다.
“······살았네.”
무사히 비행기에 올라 자신의 자리에 앉은 그는 오는 길에 겪었던 상황을 떠올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은 인구수만큼이나 화력도 엄청나다.
‘중화권에 먹힌 한류 스타’가 경호를 고용하고 공항에서 팬들의 환영을 받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인구 퍼센트로 따지면 별로 되지 않는 팬 수가 머릿수로 따지면 꽤 많아지는 일도 드문 것은 아니었다······.
일정을 끝내자마자 바로 출국할 거란 소식이 퍼진 것인지 태화를 찾기 위해 공항을 방문한 팬들은 안 그래도 혼잡한 공항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직 인지도가 적으니 이번에 만난다면 배우에게 ‘특별한’ 팬이 될지도 모른다.
팬픽에나 나올 만한 전개였지만 그런 꿈을 꾸는 이들은 의외로 많았고 ‘구름처럼 많은’ 이라 표현 할 순 없어도 무시하기 힘든 수가 그를 찾고 있었다.
고용한 경호원으론 혹시나 있을 사고를 막기 힘들 정도의 인원이 말이다.
중국 공항 측은 이 정도 인원이라면 VIP대접이 힘들다고 전했다. 사람이 깔려 죽을 정도도 못 되는, 심해봐야 서넛 다칠 수준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미리 알리지 않았으니 따로 수속을 돕거나 공안을 보내는 등의 특별 대접이 힘들다는 뜻이기도 했다.
안전에 대한 문제보다 자존심이 먼저라는 의미였으며 어중간한 인기가 독이 된 케이스였다.
결국 태화는 공항에서 때 아닌 첩보 영화를 한 편 찍어야 했다.
공항 대신 항공사의 도움을 받아 따로 수속을 마치고 화장을 지운 맨 얼굴과 위장Ⅰ을 이용해 군중 속에 스며들었다.
연예인다운 분위기를 완전히 지운 탓에 급조한 피켓을 들고 지나가던 여성 무리도 태화를 발견하지 못했다.
헝클어진 머리, 자주 장거리 여행을 하는 듯 편하게 입은 추리닝, 일반적인 남성답게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거기에 장기간 비행으로 지친 듯 피로 밖에 보이지 않은 눈빛까지.
얼굴이 조금 잘 생기긴 해도 그들이 찾고 있는 인물과 표정 하나 닮지 않았으며, 때문에 태화를 찾던 팬들은 태연히 지나가는 그를 그대로 스쳐갔다.
가장 위기였던 보안 검색대의 경우 운 좋게도 태화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덕분에 그는 수월하게 게이트를 넘어 비즈니스 석에 올라탈 수 있었다.
‘······얼굴이 미묘한 수준이라 살았다.’
정말 잘 생긴 얼굴이었다면, 하다 못해 아버지 이우석의 수준만 되었어도 이런 조약한 작전을 사용하지 못했으리라.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면 일반인이라 생각하면서도 우연히 마주친 시선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그가 태화인 걸 알아차린 이들이 하나 둘 생겼을 테니까.
그러나 태화의 얼굴은 화장과 연기에 따라 분위기,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 졌으며 그 점이 사람들의 허를 찌를 수 있었다.
‘······그래도 이거 인터넷에 올라가겠지?’
물론 그렇다해서 모든 사람이 그를 몰라본 건 아니었다.
고작 두 명이긴 했으나 태화를 알아보고 입을 가린 이들이 있었으니까.
태화는 그녀들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곳으로 그녀들을 끌고 갔다.
그리고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도 해줬다.
그는 자신과 만났다는 이야기를 비행기가 뜬 후에 터뜨려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