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74
“안타깝게도 제가 있는 BGA는 중개업에 가까워서요. 현규 형은 SNS로 사고 나는 일이 많으니 회사에서 관리하는 수준이 아니면 지양하는 편이 낫다는 주의거든요.”
“틀린 말은 아니네. SNS는 정말 양날의 검이라서 익숙하고 자신 있지 않으면 기획사의 매니지가 중요해.”
효신도 자신의 SNS중 하나를 회사에 맡겨 두었다. 그녀의 일정을 올리고, 샐카를 올리고, 가끔 홍보도 올리며 이미지를 메이킹 하기 위한 공식 계정을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면 얼굴을 내밀 이유가 적은 배우란 직업을 가졌으니 다른 방식으로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여 팬들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나름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나저나 얘는 진짜 얼굴이 잘 변하네. 데리고 다니는 애가 메이크업 담당이 아니라 분장사인가? 회사에서 분장사를 붙일 일은 없으니 개인 고용일 거고······. 신인 출연료론 감당이 안 될 텐데, 금수저?’
태연한 얼굴로 귤을 먹으며 효신은 태화의 견적을 쟀다. 그녀는 그가 출연했던 월화 드라마를 봤고, 이번에 중국에서 찍은 장면도 확인했다.
‘진짜’ 실력이 있는 신인.
여배우였다면 아주 귀여워해주며 옆에 두고 견제했을 실력자.
정말 병신 같은 작품을 연속으로 찍어서 대대적으로 말아먹지 않는 이상 순조롭게 위로 올라갈 인물이었다.
거기에 금력까지 갖췄다면······.
좀 더 친절하게 굴어야겠다 생각하며 효신은 생긋 웃었다.
“이것도 인연이겠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후배를 돕는 것도 선배의 일이잖아?”
선배가 이끌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분명 소설 속에나 존재하는 관계일진데, 그녀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연예계의 인맥은 쓸모 있는가 없는가로 시작된다. 그것이 사적인 친교로 발전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였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 말을.”
예의 있게 미소 짓는 태화의 모습에 그녀는 곱게 눈웃음을 쳤다.
친해져야할 사람의 인품이 괜찮은 건 참 기쁜 일이었으니까.
“근데 너 귤 잘 까니?”
스텝이 부르는 소리에 움직이며 그녀는 가볍게 물었다.
* * *
“현수 오빠, 사온 사람이 까줘야지.”
“······넌 어째 가면 갈수록 어리광이 는다?”
“이런 거 받아주는 사람, 오빠 밖에 없잖아.”
현수가 예쁘게 벗긴 귤을 건네자 혜련은 받을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빤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벗긴 귤을 먹기 좋게 잘라 주자 그녀는 그제야 입만 벌려 낼름 귤을 받아먹고 입술을 오물거렸다.
“시다.”
“그래.”
“그래도 맛있어. 귤은 겨울 맛이 나.”
“겨울 맛?”
“응, 겨울 맛. 딱 눈이 올 때쯤 팔리다가 봄이 오기 전 들어가잖아? 그래서······. 어릴 적엔 내가 세상 귤을 다 먹어치우면 눈이 와도 밖에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녀는 그립다는 눈으로 검은 봉지를 바라봤다.
“나도 눈사람을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
‘다른 애들처럼’이란 말이 생략된 걸 알아차리고 현수는 잠시 안타까운 눈으로 혜련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런 눈빛은 그녀의 시선이 닿기 전에 사라졌다.
“언젠간 할 수 있을 거야. 그거 굴리는 게 더 힘들다?”
“만화 보면 혼자 굴러서 커지던데.”
“그건 만화고. 실제로 그렇게 굴리면 누에고치처럼 돼버려. 혼자 방향을 틀진 않으니까.”
“정말?”
스무 살이나 먹은 아가씨가 그런 줄 몰랐다고 동그랗게 눈을 뜨는 건 아무래도 백치미가 넘쳤다.
그리고 그런 상식이 없다는 건, 그만큼 그녀가 겨울에 무지하다는 의미였다.
“털실하고 똑같아.”
귤을 세 개 까 침대 위에 나란히 올려둔 현수는 곧 과도를 들고 사과도 깎아 내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혜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오빠한테 과일 참 예쁘게 깎는다는 말 했던가?”
“그래?”
“응.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오빠가 까고 있는 거 보면 뭔가 예술 같아.”
“너 깎아 주다보니 는 거지.”
“내가 엄청 시킨다는 거 같다?”
“사실이잖아. 나 원래 운전기사로 고용됐거든?”
“겨울 한정 가사 도우미 해. 간병인도 나쁘지 않잖아?”
짓궂게 웃던 그녀는 문 밖에서 들려온 노크소리에 얼굴에 떠있던 표정을 지웠다.
곧이어 진짜 간병인이 등장하자 혜련은 표정을 굳히며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죽은 눈으로 주변과 자신을 유리시키고, 그녀는 가면을 쓴 채 막 들어온 간병인을 응시했다.
“현수씨와 있을 때는 자주 들어오지 않아도 돼요.”
명백한 축객령을 들으면서도 간병인은 못 알아 들었다는 얼굴로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남자 분과 단 둘이 있는 건 보기 좋지 않으니까요. 아가씨는 편히 말 나누세요.”
“······고맙네요.”
간병인은 조용히 구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누가 봐도 대기를 타며 시간을 때우는 모습으로 보였으나 혜련은 여전히 웃음을 지운 채 현수에게 그만 가보라는 말을 전했다.
“컷!”
“이거 어디서 사온 귤이에요? 맛있네? 후배님도 좀 먹어봐. 그나저나 사과는 정말 잘 깎는다. 부인에게 사랑 받겠어.”
컷 소리와 함께 시들시들하게 죽어가던 효신의 얼굴에 생기가 흘렀다. 그녀는 태화가 깎아 둔 사과를 포크로 찍으며 감탄했다.
아까부터 먹을 것에서 손에서 떼지 않는 것이 의외로 식탐 많은 배우였다.
입을 오물거리던 효신은 침대에서 일어나 감독이 보고 있는 화면을 확인하고 반사판을 든 스텝에게 다가가 자신을 좀 더 신경 써 달라 요청했다.
“오케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 가겠습니다.”
그녀가 스텝을 닦달하는 사이 장면을 체크한 감독도 만족스러운 눈으로 오케이를 외쳤다.
태화는 정신없이 움직이는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중간에 갑작스런 애드리브가 있어서 걱정했는데, 자연스럽게 넘어간 탓에 NG가 걸리지 않았다.
‘······사과 잘 깎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는 과즙이 살짝 묻은 자신의 손을 응시했다.
어머니도 그렇고 다들 한 번씩 감탄하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태화야, 김효신 배우 스케줄이 갑자기 비어서 밤바다 촬영 분을 오늘 찍으면 좋겠단 이야기가 오갔거든? 괜찮을까?”
“전 괜찮아요.”
물수건을 들고 온 현규가 조심스레 태화의 의사를 물었다.
원래 예정이 아닌 만큼 배우가 피곤하거나 사적인 약속이 있다면 거절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매니저의 물음에 태화는 사양하지 않았다.
카메오로 채워지지 않았던 감질거림을 오늘 그녀와의 연기를 통해 해소하고 싶었다.
‘이만하면 오래 참았잖아?’
대본이 바뀌고 어려움에 입장해도 의외성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어졌다.
드라마 당시엔 안 그래도 계속되는 대본 변화 속에서 어려움까지 진행할 여력이 부족했으나 지금처럼 완성된 책대본의 경우 조금씩, 새로움을 찾으려는 욕심과 갈증이 피어올랐다.
그러니 대본 그대로의 이혜련이 아닌 ‘김효신이 만든’ 이혜련과 색다른 호흡을 오랫동안 맞추고 싶다.
효신이 부디 오늘 저녁까지 쌩쌩하게 대응해주길 바라며 태화는 준비가 끝난 병실 세트 안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회식 자리에서 (여기까지가 무료 분량입니다)노을이 붉게 물들인 모래사장 위에서 태화는 기지개를 켜고 있는 효신을 응시했다.
바닷바람이 찬 탓인지 얇은 옷 위에 두터운 점퍼를 입고 있었다.
“아직 겨울도 아닌데 상당히 춥네. 후배님이 부러운 걸?”
그녀는 셔츠와 양복바지 차림인 태화를 부러운 눈으로 훑었다.
환자복과 슬리퍼로 돌아다니기엔 상당히 싸늘한 날씨였으니 그런 시선을 보낼 만도했다.
“밤바다 촬영이라 기다리다가 완전 어둑해 진 다음 찍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일찍 끝났네요.”
효신의 뾰로통한 눈빛을 넘기며 태화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봤다.
해가 지기 전, 잠시 낮처럼 환해지는 시간답게 태양의 밝은 빛이 역광을 만들고 있었다.
“야간 촬영하게 되면 조명 수가 달라지거든. 그런 장비는 미리 예약하고 준비해야하는데 내 저녁 스케줄이 갑자기 나서 이렇게 된 거지.”
미안한 일이라며 중얼거리던 그녀는 자신의 매니저를 불러 무언가를 부탁했다.
옆에 있던 남자가 사라지고 효신은 팔을 쓸어내리며 태화를 바라봤다.
“후배님. 여기까지 왔는데 맛있는 거 먹고 가야지? 회 어때?”
“좋아하긴 하는데······.”
“다행이네.”
사라졌던 매니저가 작은 핸드백을 가져오자 효신은 그것을 뒤지더니 곧 네모난 무언가를 번쩍 꺼내들었다.
태양빛을 눈부시게 반사시키는 그것.
신용카드였다.
“오늘 제가 쏠게요!”
잠시 내려 앉았던 침묵은 곧 격한 환호가 되어 가을 바다를 채웠다.
* * *
‘······대단하네.’
구석에서 술을 받던 태화는 효신의 친화력에 감탄했다.
센 언니 같은 도도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딱히 권위를 세우는 타입이 아니며 스텝이나 조연을 무시하는 성격도 아니다.
외려 긴장하고 있는 주변을 풀어주는 동시에, 그대로 휘어잡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여왕님.
로코의 여왕이란 호칭을 들을 땐 거창하다고만 느꼈는데, 지금 보니 성격 자체가 여왕님이었다.
‘게다가 돈 쓰는 방식도 상당히 효율적이고.’
회는 회식 주제로 삼기엔 비싼 음식이다.
아무리 바닷가에 왔다고 해도 단순히 몇몇도 아닌 스텝 전체의 식비를 지불하는 건 웬만한 톱스타라도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러나 효신은 타이밍을 잘 쟀다.
에서 바다는 잠깐 스치는 장면이었기에 여기까지 온 스텝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덕분에 비싸게 회식해도 덜덜 떨며 카드를 내밀 수준은 못 됐으니까.
원래 예정대로 야간 촬영을 했다면 이야기가 달랐으리라.
카메라에 얼굴이 나오도록 도와줄 조명부터 어두운 밤, 혹시 있을 조수(潮水)의 위험을 대비한 안전 요원까지 상당한 인원수가 참여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주연 둘, 감독 하나, 따라온 스텝이 여섯, 거기에 배우 둘에게 붙은 보조 인원 다섯.
총 스무 명도 안 되는 인원이었기에 효신은 일반적으로 현장에 푸는 것보다 적은 비용을 들여 상당한 효과를 봤다.
“이 배우 한 잔 들어요.”
“감사합니다. 감독님도 한 잔 드세요.”
회무침을 먹고 있던 태화는 다가온 감독의 권유에 잔을 들고 술을 받았다.
그리고 잔이 차기 무섭게 태우가 들고 있던 병을 받아 들어 그의 잔도 채워주었다.
가볍게 건배를 나눈 태화는 한 모금 마신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감독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