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75
태우는 열정 대신 사욕이 넘쳤던 의 박창식 PD나 ‘난 예술가다’라고 얼굴에 쓰고 다닌 의 최지환 감독과 달랐다.
야심가나 예술가라기보다 성격 좋아 보이는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
그런 분위기는 그의 작품에도 묻어나 있어, 태우가 찍은 영화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을 닮았다.
데이지나 해바라기 같은, 평화로운 풍경에 어울리는 꽃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태화의 취향은 아니었다.
배우의 연기력이 날 것처럼 드러나는 연출을 좋아하는 태화와 달리 태우의 작품은 전체적인 화면의 미학을 추구했으니까.
그렇게 다른 취향을 가졌는데도 회귀 전 그의 이름을 기억했던 것은 감독이 찍은 한 작품 때문이었다.
왜 오케스트라에 지휘자가 필요하고, 영화를 찍는 데 감독이 필요한지 알게 해줬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한 편의 영화.
그 작품에 참여했던 배우의 연기력은 발연기를 넘어 참담하고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아보는 관객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에도 발연기를 선보일 줄 알았는데, 노력 많이 했다’라는 평을 배우에게 남겼다.
능숙한 포수의 프레이밍처럼 감독의 기량이 배우의 발연기를 숨긴 작품.
각본도, 대사도 아닌 오롯이 연출의 힘이었다.
취향이 맞지 않은 터라 그 이상 태우의 작품을 파진 않았지만 그 영화는 태화가 배우뿐 아니라 감독의 실력도 눈여겨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정식 크랭크인 첫 날부터 너무 늦게까지 잡고 있는 거 같아 미안하네요.”
“촬영을 위해서인데 배우로서 당연하죠.”
태화는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어차피 다른 일정이 있다면 모를까, 촬영을 위해 광고도 거절했기에 오디션을 제외하면 공식적인 일정은 뿐이었다.
집에 가도 대본 속에 들어가 연습이나 할 생각이었으니, 이런 식의 스케줄이 기꺼웠다.
“어머? 둘이 무슨 대화를 그리 나눠요? 감독님. 저기 스텝들이 감독님 찾아요.”
“응? 아, 그래.”
친근하게 말을 건 효신이 감독의 어깨에 손을 얹고 톡톡 두드리자 태우는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무리로 향했다.
감독이 일어난 자리에 냉큼 앉은 그녀는 씨익 웃으며 테이블 위의 새우튀김을 케첩에 찍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화는 다른 빈 잔을 뒤집어 효신에게 술을 따라줬다.
“······아무 것도 안 묻네?”
가만히 잔을 받은 효신이 모호한 미소를 지은 채 그에게 물었다.
로맨스 여주인공으로서 한창 노를 저어야 할 배우가 급까지 낮춰가며, 그녀 입장에선 무명에 가까운 감독의 작품을 기꺼이 찍는다.
그것만 하더라도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데, 효신은 여배우가 감독에게 하기엔 상당히 친밀한 행동을 태화의 앞에서 보였다.
자칫하면 스캔들로 이어질 모습을 말이다.
고양이처럼 웃는 그녀를 보고 태화는 어깨를 으쓱였다.
“작품 외적인 건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관여하지 않는 편이라 서요.”
사실 그라고 둘의 관계가 아주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다 문제가 터지면 배우의 음주운전으로 일 년이나 늦게 개봉한 모 영화 꼴이 날지도 몰랐으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봤던 감독의 성격과 자연스레 넘기는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별거 아닌 관계일 것이라 짐작했다.
문제가 생길 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런 사고를 거쳐, 태화는 본 것을 넘기기로 결정했다.
표정에서 그의 의도를 읽은 효신이 구김 없이 웃었다.
“좋은 습관이야. 이 동네는 오지랖 넓어봐야 단명하니까.”
짠.
잔을 부딪친 그녀는 잔에 담긴 술을 단 번에 마셨다.
‘신인답지 않은데 그래서 마음에 드네.’
효신은 오랜만에 사귈 맛 나는 후배를 만나 즐거웠다.
연예계는 구밀복검의 자세를 갖춘 것을 기본 소양으로 삼았다.
앞에선 헤헤 거리다가도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이용해 먹고 밟기 위해 안달이 난 세계.
어제까지 소울 메이트라 생각했던 이가 비밀로 했던 이야기를 기자에게 팔아먹기도 하고, 잘 지내던 사람들이 약점을 잡고 한 쪽을 끌어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도 한다.
그런 동네에 살다보니 효신은 태화와 한 걸음 더 친해지기 전, 그의 본성을 확인해 보기로 결심했다.
상대의 빈틈이나 약점을 악용하는 사람인지 시험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감독과 친척 관계라는 사실을 홍보시기에 극적으로 터뜨릴 생각이었다.
약간의 잡음을 일으켜 시선을 모으는 동시에 혹시나 남을 소문을 깔끔히 정리하기 위해.
감독인 태우는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끌어오는 것에 싫은 기색을 보였지만 험난한 세계에서 몇 년이나 생존한 효신에게 이런 방식은 정공법을 넘어 애교에 가까웠다.
“이번이 두 번째 작품이라고 했지?”
“네.”
“혹시 다음 작품도 생각하는 거 있어?”
훌륭하게 시험을 통과한 후배가 기특해, 그녀는 조언이나 건넬 요량으로 그의 계획을 물었다.
“지금 괴물 오디션을 준비 중이예요.”
“오. 괴물. 그거 준비하는 애들 내 주변에도 많던데······.”
입술을 세모로 만들던 효신은 슬쩍 태화를 훑었다.
“······꽤 힘들겠네. 거기 감독 말고 다들 매수 된 걸로 유명하거든.”
“그런가요.”
“응. 그런데 걱정할 필요 없을 걸? 그 아저씨, 성격 좋은 호인처럼 보여서 다들 착각하는데 화나면 무서운 인간이니까. 돈 쏟아 부은 인간들 돈 값 못하고 후회할 거야.”
그녀는 최지환 감독을 떠올렸다.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그의 이미지는 호구 예술가 또는 ‘착한’ 감독.
좀 떼어먹을 수도 있는 조연, 스텝의 임금을 언제나 제대로 지급한다던가, 배우들에게 갑질 할 수 있는 기회를 그대로 날린다던가.
그 정도 유명세, 급에서 흔히 할 수 있는 일들을 안 하니 비슷한 수준의 감독들에게 혼자 착한 척 한다, 그러니 우습게 보인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그 말 그대로 지금 거하게 통수 맞았고. 사람들이 참, 좋게 좋게 대하면 등쳐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양심 있는 감독들도 점점 물드는 거지. 쯧.’
그녀는 정화되지 않을 업계를 생각하며 혀를 찼다.
언제나 법규를 지키고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 피해를 보다보니 처음엔 깨끗하던 이들도 자신의 손해를 막기 위해 똑같이 더러워지는 길을 택했다.
‘이래서 갑질이나 을질이나······. 뭐, 그 감독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녀가 감독의 ‘그런 면’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효신 또한 그를 실력은 있어도 성격 때문에 성공하기 힘든 그저 그런 감독으로 생각했으리라.
“그 사람한텐 뒷공작을 안 한 게 정답이야, 그런 거 정말 질색하는 사람이거든. 벌써부터 어떤 식으로든 걸러서 떨어트릴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
태화가 알기 힘든 말을 남기고, 그녀는 장난스럽게 잔을 흔들었다.
“건배하자?”
“이미 많이 드셨는데, 너무 빠른 거 아니세요?”
태화는 그녀의 빈 잔을 응시하며 물었다. 아직 반도 마시지 않은 자신에 비해 효신이 마시는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너 꽤 아픈데 찌르는구나? 하아, 예전엔 이 정도도 거뜬했는데 서른 넘기니까 확실히 기력이 딸려. 아-. 나도 젊어지고 싶다. 내가 오늘도 너랑 비교샷 확인하고······.”
살포시 인상을 쓴 그녀는 나이에 대한 푸념을 중얼거렸다.
젊은 애한테 오빠라 부르는 건 좋지만 화면에서 늙어 보이지 않기 위해 엄청 노력하고 있다던가, 간 기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숙취가 심해졌다던가······.
경험과 진심 어린 충고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렇게 푸념을 중얼거리던 효신은 회식이 끝날 때쯤 차를 타고 돌아갔다.
태화의 스마트폰에 그녀의 전화 번호를 남긴 채.
────────────────────────────────────────────────────────────────────────
태화는 기계를 이용해 뿌려지고 있는 눈을 응시했다.
부러 쌀쌀한 날씨에 외부 촬영을 한다고 하더니 눈을 뿌리기 위해서였나보다.
확실히 눈이 뿌려진 자작나무 숲은 쉽게 잊기 힘든 낭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태화야 BGA에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대. 중국에서 제작중인 범죄 영화인데, 괴물 오디션에서 떨어질 경우 부디 참여해주길 바란다더라.”
그가 인공 눈이 흩날리는 숲을 폰에 담는 사이 따뜻한 커피를 든 현규가 다가왔다.
커피를 받아 든 태화는 온도가 내려간 손을 온기로 데우며 매니저를 응시했다.
커피를 사온다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니 아무래도 BGA와 통화를 하고 온 것 같았다.
“중국이요? 특이하네요. 대본도 있어요?”
“응. 일단 한자로 된 대본이 팩스로 먼저 도착했고, 한글 번역본도 이번 주 내로 보내주겠대. 어떻게든 너랑 하고 싶은 것 같다던데, 넌 어때?”
아무리 중국어 발음이 유려하고 감정 전달에 능숙해도 대본 전체를 파악할 때는 모국어가 편한 게 사실이다.
중국 제작사도 그런 사실을 아는지 아니면 더 와닿을 수 있도록 어필하기 위해서인지, 그들은 완료되는 대로 태화에게 한글 번역 대본을 보내겠다고 전했다.
어떻게 봐도 함께하고 싶다는 열망이 보이는 몸부림이었고 정성이었다.
‘초위 감독만 안타깝게 됐네······.’
태화는 며칠 전 봤던 배우들의 단체 인터뷰를 떠올리고 실망하고 있을 감독을 애도했다.
초위 감독의 의도는 크게 어긋났다. 그의 생각보다 더, 중국 배우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겁쟁이였으니까.
태화가 촬영된 영상이 방영되고 중국의 배우들, 특히 중국 거대 자본에서만 놀고 있던 이들은 단체로 중국의 기상을 고취하는 회담에 나섰다.
내용은 간단했다.
대(大)중화 시장이 침식당하고 있다. 역사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소국에 의해서.
그런 주제를 가지고 30분 넘게 떠들며 그들은 애국심을 강요했다.
물론 공권력도 아닌 연예계의 입김이 중국에서 통할 일은 없었다.
일부 과격파는 태화의 국적을 가지고 광분했으나 대다수는 ‘중앙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만다린어도 제대로 못하는 중국 배우들보다 더빙까지 자신의 목소리로 한 태화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한족도 아닌 소수민족주제에 어디서 중국을 들먹이냐는 댓글을 남긴 네티즌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배우들 사이에서 위협의 아이콘이 된 태화였으나 그의 가치를 알아 본 이들이 있었다.
바로 중국의 영화 제작사였다.
그들은 건너 건너 태화의 중국어 실력을 전해 듣고 대청제국에서 그의 연기력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러브콜을 보냈다.
태화가 지금 받기 과한 출연료로 압박 아닌 압박을 보내면서 말이다.
“주연으로 중국 영화를 찍는 건 아직은 이르다 생각하는데······. 형은 어떻게 느끼세요?”
그는 얼마 전 중국에서의 일을 떠올리고 현규의 의견을 물었다.
항상 뒤 따랐던 접대 권유와 사이사이 섞여있던 의외라는 눈빛, 초위감독의 말, 공항에서의 소동.
들썩이는 반응들 사이에서 돈은 될 것 같았으나 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음······. 태화 넌 돈보다 연기가 좋아서 배우가 된 거지?”
잠시 고민하던 현규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배우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뒤 말을 이었다.
“돈만 본다면 중국 시장은 나쁘지 않아. 장난으로 중국인 전부에게 팬티만 팔아도 돈방석에 앉는다고 하잖아? 인구 수 덕에 독자적인 시장 완성이 가능한 유이(有二)한 나라니까.”
그는 태화의 집이나 재산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그러나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동네에서 번듯한 집에 산다는 것과 사고가 났을 때 당연하다는 듯 변호사부터 데리고 나타난 그의 부모의 모습을 보고 돈 걱정 없이 사는 집안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 집에 사는 것 치고 검소하고 소탈하지만.’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그런 집에 사는 태화가 돈 때문에 배우를 희망하지 않을 거란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물은 태화의 의사도 그의 예상과 동일했다.
“근데 넌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거잖아? 그런 의미에서 중국 시장은 독이 든 성배야.”
중국 시장은 검열이 심하다. 그리고 배타성도 의외로 심하다.
중국 배우들의 인터뷰도 소수민족이 껴서 유야무야된 것이지 혈통 번듯한 한족 배우들만 모여 목소리를 높였다면 영화사들이 태화를 다시 데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지방, 소수민족 출신의 배우들도 덩달아 배척될 가능성이 높아 그들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그런 폐쇄성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에게도 적용됐다.
중국시장에 깊게 발을 들인 배우들은 어느 순간 그쪽에서만 활동하게 되었으니까.
한두 번이면 모를까 그 시장을 중심으로 잡고 움직이게 된다면 다른 나라의 진출은 반쯤 막히는 것과 같다.
같은 중화권으로 묶인 홍콩이 자신들은 중국 영화 시장이 아니라고 결사적으로 외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중국 캐스팅은 크게 한두 번 하고 털 생각으로 움직여야지, 그 시장을 목표로 하면 위험해.”
중국에서 사고가 난 뒤, 현규는 중국 시장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