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85
“그러니까 잠시 공놀이나 해 볼까요? 걱정, 마요. 공 역할은 당신이하면 되니까.”
민재는 잔인한 웃음을 띤 채 노숙자의 배를 발로 찼다. 슬슬 기절했을 거라 생각하던 찰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민재의 발목을 잡았다.
“아 더럽게.”
오물이라도 묻었다는 듯 거칠게 발목을 털어낸 그는 발만을 사용해서 노숙자의 몸을 뒤집었다.
“흠. 좀 망가지긴 했지만 이게 더 보기 좋네. 하여간 사람 속을 썩여요.”
구두코로 기절한 사람의 뺨을 툭툭 차던 그는 더 이상 반응 하지 못하는 남자의 모습에 만족하며 처음으로 허리를 숙였다.
“몸 쓰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정말 손이 많~이 가시네요.”
그는 취미 활동하기 참 힘들다고 투덜거리며 노숙자를 원래 기절해있던 위치로 끌고 갔다.
“컷!”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괜찮으세요?”
컷이 외쳐지기 무섭게 태화는 심사위원석을 향해 허리를 숙인 후 스턴트맨의 상태를 확인했다.
미래 맞춘 것과 다를 바 없었으나 ‘혹시나’라는 상황은 언제나 벌어질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후는 몸을 털고 일어나며 태화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기세 때문에 살짝 겁먹긴 했어도 미리 맞춘 것과 다르지 않아 신체적으로 큰 충격을 받진 않았다.
외려 오늘 맞춘 것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진행이었다.
이런 식으로 동작을 맞추고 들어오는 공방(攻防)은 화려함과 안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유서원을 상대할 때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다른 배우들과 맞출 때는 매가리 없는 몸동작을 화려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분투해야했다면 태화와 함께 한 연기는 제 몫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사람하고 찍으면 참 편할 거 같은데······.’
무술 감독이 투입되면 또 달라지겠으나 그래도 기초를 배웠던 배우와 합을 맞추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다.
스턴트맨은 마음속으로 태화를 응원하며 다음을 준비했다.
“뭔가 박진감 넘치던데요?”
“칭찬 고맙습니다.”
제자리로 돌아온 태화는 현태의 말에 웃었다.
그는 유서원처럼 논의 없이 화려한 연기를 펼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현태처럼 상대를 아무 때나 역할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화려하게 화면을 꾸며야 했다.
만족스러워하는 감독의 얼굴을 확인하고 태화는 긴장을 풀며 다음 연기를 구경했다.
끝
ⓒ 마늘소금
“죄송합니다! 감독님! 저희 지금까지 잘 해왔잖습니까? 네? 제발 한번만······!”
“그걸 먼저 배신한 건 길태씨지.”
“그, 배신이 아니라 좀 더 괜찮은 배우를······!”
“됐고. 길태씨가 마지막이예요. 이제 안 봤으면 좋겠네요.”
지환의 존댓말에 길태는 그가 완전히 미련을 끊어버렸음을 직감했다.
‘가족 같은 회사’라 쓰고 ‘족 같은 회사‘가 되는 경우가 많으나 감독 최지환은 지금껏 자신의 밑에 있는 제작진에게 의리를 지켜왔다.
그는 마치 집의 가장처럼 팀원들을 이끌었고, 그런 지환의 그늘 밑에 있으며 길태는 임금, 혹사 등 여러 문제가 산제한 다른 영화 촬영팀들과 달리 꽤 공정하고 불만 없는 작업 생활을 영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보니 슬그머니, 아니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이리라.
억 소리 나는 자본이 오가는 걸 보면서 거기에 수저를 꽂고 싶은 마음이 잠시, 아주 잠시 들었을 뿐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3년간의 정이 있는데······.’
그는 망연한 눈으로 감독을 응시했다. 이미 네 자리를 대신할 인물이 선정되었으니 더 이상 필요 없다 말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낯설었다.
수익이 나면 임금부터 챙겨주던, 항상 뒤에서 지지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지환의 태도는 냉정했다.
‘······여기서 나가면 난 끝이다.’
충격으로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으나 길태는 일단 감독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최지환은 업계에서 상당히 명망 있는 상업 영화 감독중 하나다.
눈에 띄는 엄청난 대박작은 없어도 찍은 영화마다 손익분기는 어떻게든 넘겼고 구성이나 연출 또한 나무랄데 없었으니까.
큰 자본을 투자받아도 손해 본 적은 없으니 투자자들의 신뢰도 상당했다.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서도, 지환은 갑질이란 걸 몰랐다.
다른 비슷한 위치의 감독들에게 호구 중 상호구라는 비웃음을 들으면서 그는 단 한 번도 스텝의 임금이나 배우의 출연료를 때 먹은 적이 없었으며 성희롱, 폭력을 행사한 적 없었고 상납금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니까.
영화 제작이라는 일을 위해 모였으니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는 자신의 팀원들을 ‘전문가’로 대접해줘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부당함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꿈의 직장.
그런 곳에서 퇴출당할 정도라면 누구도 받아 주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새로 굴러들어온 돌들이 혹시나 하는 걱정에 길태를 회귀 불가능한 벼랑으로 밀어버리려 들지 몰랐다.
혹여 감독이 다시 그를 찾으려 해도 재기해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감독님, 아니 형님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청탁이고 그 다음은 뇌물이에요.”
“조, 좋은 게 좋은 거라······! 그래도 정말 허황된 인물들을 고르진 않았습니다! 어차피 캐스팅······.”
“그래서 더 꼬였죠.”
투자자들의 등쌀로 참여 시킨 심사위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투자사와 관계있는 연예회사 배우들을 지지했다.
찔러보는 수준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지원하는 배우가 최종까지 갈 거라 생각하기보다 ‘ 본선까지 갈 정도로 실력 있는 배우’란 타이틀을 원했다.
그러나 제작팀에 속한 심사위원들은 달랐다.
그들은 정말 가능할 법한 배우들과 접촉했으며 청탁을 받았으니까.
그 덕에 이 정도로 큰 오디션을 벌이고도 자칫하면 쭉정이 같은 배우들과 작업할 뻔했다.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라 생각하며 인생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던 지환에겐 쓰디쓴 배신이요, 날벼락이었다.
“이 이상 질척거린다면 개싸움도 불사할 건데 그건 길태씨 커리어에 더 안 좋겠죠? 그럼.”
지환은 허망해하는 길태를 내버려둔 채 자리를 벗어났다.
그 동안 함께한 팀원에게 보기이기엔 상당히 매정했고 배신자를 항한다기엔 조금 상냥한 발걸음이었다.
* * *
BGA는 연예기획사이지만 ‘일부’ 계약에 한해 중계업소의 성격을 띤다.
더 높은 출연료, 좋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조언을 건네기도 하나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관여는 하지 못한다.
원하는 작품을 고르는 건, 따로 맡기지 않는 이상 오롯이 연예인의 재량이었으니까.
이제 적응을 마쳐 조타를 잡겠다고 말한 태화에게 십여 개의 작품이 도착한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BGA도 계약중계만으로 15%를 떼먹는 건 아니기에, 인지도와 인기에 비해 터무니없는 출연료를 불렀거나 작품 내외로 문제가 있거나 참여하면 이득이 될 작품 등에 따로 코멘트를 남겼다.
‘광고 16개, 드라마 2개, 영화 6개······. 올 초, 아니 회귀 전과 비교하면 감개무량하네.’
태화는 타블렛으로 정리된 목록을 확인하며 묘한 감상에 빠졌다.
회귀하고 고작 반년이 조금 지났는데 이젠 누구나 그를 ‘배우’라 부른다.
길거리에 나가면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며 손편지와 선물을 보내는 팬도 있다.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태화는 관객들에게 더 다양한 모습과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3월에 찍는 드라마도 한 발 걸쳐볼까? 이랑 촬영 시기가 겹치긴 하는데 형누님말로는 방영, 상영 시기만 다르면 그렇게 찍는 경우도 없는 건 아니라 그랬고······. 광고 스케줄을 우선적으로 뺄 거니까 차라리 작품 두 개를······. 근데 오민재 캐릭터가 강해서 찍게 되면 좀 코믹한 걸로 가는 게 좋을······.’
과자를 하나만 골라야하는 어린애처럼 그는 화면에 떠 있는 제목들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아직 1년도 안됐으니 너무 조급할 필요 없다 되새기면서도 이렇게 작품만 보면 하고 싶어 몸이 근질 거렸다.
‘이건 포기하기 너무 아까운데, 지를까? 코멘트에 찔러보기 성격이 강하다 써놨지만 보결 목록에 이름 올려 두는 게 후회가 덜 할 거 같은데······. 으······.’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역에 맞는 배우를 정할 때 제작진은 보통은 5명, 적어도 3명 이상의 후보들을 두고 결정한다.
배우들의 스케줄, 관계, 출연료 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일단 ‘찔러볼까’라는 생각으로 이미지가 맞는 적당한 배우들에게 대본을 돌리는 제작사도 없지는 않았다.
태화에게 도착한 대본의 반수도 여기에 속했다.
그가 선택 할 거라 생각은 안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보내진 시놉시스와 1, 2화 대본들.
문제는 조금만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살랑거리는 게 무척이나 신경 쓰인다는 점이었다.
‘······이건 사극 주제에 왜 18부작밖에 안 되서 사람을 심란하게 하는 거지?’
망작에 가까운 작품이나 문제가 있을 법한 것을 빼도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 세 작품이나 남았다. 링크로 첨부되어 제목밖에 안 보이는 주제에 앞 다투어 ‘이런 역은 안 해봤지?’라 유혹한다.
이제 딱 하나 남았다 떠드는 세일즈의 외침보다 더욱 포기하기 힘든 선택지였다.
“으음······.”
“이태화씨?”
고민에 빠져있던 그는 갑자기 불린 자신의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세미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살포시 미소 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위클리피플’의 한소희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태화입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며 태화는 앞자리를 권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3류 황색지 같은 이름을 하고 있으나 위클리피플은 ‘의외로’ 제대로 된 영화/배우 관련 전문 잡지다.
신뢰도가 높은 편이며 업계 관계자들이 캐스팅을 고민할 때 한 번쯤 확인하는 주간지.
알찬 내용 속에서도 관계자들이 특히나 주의 깊게 살피는 코너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매월 첫 주에 실리는 ‘라이징 스타’였다.
이름 그대로 막 떠오르는 별을 인터뷰한 섹션, 라이징 스타가 감독들의 시선을 끌게 된 것은 거기에 소개된 신인들이 한두 작품 내에 A급으로 발도움하기 때문이리라.
실력 보증 마크는 확실히 붙었는데 출연료는 평균가보다 훨씬 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품을 한 달에 한 번 소개하니 정기 구독을 하지 않는 이들도 월 초의 판매되는 잡지만은 구매해서 확인했다.
혹시나 자신들이 지금 계약하고 함께 작업하는 신인 배우가 ‘라이징 스타’는 아닐까 기대하면서, 혹은 타이밍 좋게 작품이 막 끝나 아직 늦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런 ‘라이징 스타’의 취재 기자가, 오늘 태화와 약속을 잡았다.
‘솔직히 이번 인터뷰가 나한테 올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그는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봤다.
지상파를 누른 케이블 드라마의 주역중 하나로 출연했으나 메인 커플은 아니었고 투자대비 300%를 찍은 영화의 주연이긴 해도 영화 제작 단가가 자체가 높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번 달 인터뷰이로 예상되던 이가 무려 올해 백종상 수상자임을 상기하면 참 의외의 연락이었다.
‘······뭐, 나야 좋지.’
복잡한 속내를 숨기며 태화는 환하게 웃었다. 어찌됐든 잡지에 실리는 건 나쁘지 않다.
그를 주시하지 않던 감독들이 한 번쯤 이태화란 이름을 떠올릴 계기가 되어 줄 테니까.
좋은 작품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면 이유는 괜찮았다.
“먼저 간단한 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올 배우 이태화입니다.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집중하게 만드는 울림이 녹음기를 채웠다.
* * *
‘······확실히 연예인은 연예인이네.’
한소희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태화를 살폈다.
부편집장에게 ‘이번 라이징 스타로 이태화를 인터뷰해와라’ 소릴 들었을 땐 이 인간이 일만하더니 드디어 미쳤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태화란 배우가 핫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생각하고 있던 배우에 비하면 뾰족하기만한 유리 파편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배우에 대해 조사하면서 실력파 배우도 아닌 화장빨 배우로 불린다는 걸 알았을 땐 라이징 스타가 배우의 재능이 아닌 성적만 보게 됐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참여한 작품들을 확인하자 실망이 느낌표로 바뀌었고 실제로 마주하니 느낌표 앞에 ‘오’가 붙었다.
이태화란 배우가 ‘나쁘지 않다’를 넘어 상당히 괜찮다 여겨졌으니까.
그 유명한 화장 탓인 진 몰라도 외모가 부족하단 생각이 안 들었으며 오히려 묘하게 시선이 끌렸다.
‘이 사람 작품 훑어보면서 특이하단 생각은 했는데······.’
일반적으로 신인 배우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가지고 1년 , 길게는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대중들에게 인지되는 데는 한 가지 이미지를 미는 것이 유리하니까.
세세한 설정만 다를 뿐 내용은 비슷한 작품이 수도 없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태화는 전작의 ‘박가람’을 완전히 지운 채 ‘오현수’란 남자를 연기했다.
성격도, 행동도, 분위기도 달라 두 작품을 모두 보고도 ‘같은 배우였어?’라 묻는 이가 있을 만큼 그는 각 작품마다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연기가 부족했다면 그저 그런 시도로 여겼으리라.
하지만 소희가 봤을 때 그는 정확히 배역을 이해했고 그 역할을 작품에 맞게 소화시켰다.
‘는 화제였던 만큼 분명 백상에 노미네이트 될 거고······. 음! 곧 상장될 우량주 맞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소희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스타의 탄생을 직전에 관찰할 수 있다는 건 묘한 우월감을 일으켰으니까.
잠시 부편집장의 안목을 의심했던 걸 반성하며 그녀는 조금 더 열성적으로 관계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질문을 던졌다.
끝
ⓒ 마늘소금
도중 뜻하지 않은 일주일 휴가를 받았을 때, 태화는 상당히 기뻐하며 이틀을 보내고 장렬하게 리타이어했다.
매도 맞아본 인간이 잘 맞고 호구짓도 해본 사람이 잘하듯 노는 것 또한 놀아 본 인간이 잘하는 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