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91
그도 두터운 팬층을 지닌 배우가 한 명은 필요하다 여겼고 지금껏 밀고 있던 현태를 멀리할 구실을 위해 5차를 계획한 만큼 그와 충돌한 배우에게 불이익을 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단지 이런 식으로 쇼를 한 건 떡잎부터 노란 투자자들이 촬영 내내 참견하며 자신의 작품을 누더기로 만들려 들 게 뻔했기 때문이다.
좋은 구실인 생긴 만큼 이용하는 게 당연했으며 그의 뻥카는 훌륭하게 성공했다.
‘길욱이한테 양보한 건 좀 쓰리지만······. 그래도 그런 시트콤이 그한테는 좋겠지.’
믿을 만한 친구에게 맡겼으니 아무 작품이나 덜컥 맡아 오염될 확률은 없으리라.
잠시 ‘쓰다가 마음에 들었다고 뺏어가지 않을까’란 걱정이 들었으나 친구의 눈은 장식이니 그럴 리 없다 애써 생각하며 지환은 밖으로 내보냈던 스텝들을 다시 불러 마지막으로 의견을 조율했다.
일주일 후, 주연 삼인방의 캐스팅 소식이 전면 기사화됐다.
끝
ⓒ 마늘소금
‘됐네.’
태화는 오디션 3일 뒤에 도착한 문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5차를 진행하면서 어렴풋이 이렇게 되진 않을까 생각했었다.
5차까지 남궁현태를 남겼던 감독이 갑자기 팀을 이뤄 무난한 대본 진행을 시킨 것이 수상했으니까.
4차를 끝으로 후보들의 연기력이 증명된 상태였기 때문에 마지막 심사로는 어떤 것을 확인할지 궁금했으나 아무래도 내전(內戰)을 위한 심사였던 것 같았다.
‘심사위원들이 반수가 새로운 얼굴이었고······.’
그는 5차 때 모습을 감췄던 유서원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갈등하던 감독이 자신을 고른 이유를 고민했다.
연기력으로 비등하긴 했지만 오민재에 대한 이해는 남궁현태 쪽이 높았다. 감독판을 두고 볼 때 감독의 구미에 맞는 배우는 자신이 아닌 그였으리라.
‘그런데 5차에서 내 쪽에 힘을 실어줬단 말이지······.’
답은 알 수 없다는 게 살짝 걸리긴 해도 결과는 태화가 원했던 대로다.
의 어려움 난이도의 진입이 풀린 것을 확인한 뒤 그는 이란 제목의 대본을 꺼냈다.
본래 1월까지로 예정됐던 오디션이 일찌감치 끝나자 태화는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1월 중순 사전 제작되어 3월에 방영되는 작품을 하나 골랐다.
두 달 전 80화로 완결된 웹툰을 원작으로 둔 드라마로 총 1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팬들의 ‘시어머니질’을 방지하기 위해 순수 100% 사전 제작된 뒤 방영되는 현대 판타지 로맨스물이었다.
100% 사전 제작을 자랑하는 만큼 이미 대본도 완성되어 있었으며 작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덕에 조금씩 던져지는 정보들 아래엔 기대된다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지상파는 웹툰하고 안 친하던데······. 하긴 원작이 상당히 인기 있었지.’
케이블과 달리 어느 정도 고정 시청자를 보유한 지상파는 이래저래 복잡하고 욕먹을 일 많은 원작의 드라마화를 지양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들도 케이블이 뺏어간 시청률에 욕심나긴 했는지 2월 방영 예정 드라마로 덜컥 웹툰 원작의 현로판을 배정했다.
태화는 그 특이함에 끌려 원작을 확인했고, 80화나 되는 장편을 하루 만에 독파한 뒤 캐스팅에 응하고 싶다는 말을 BGA에 전했다.
‘나는 월화 드라마랑 인연이 있는 편인가?’
웹툰 드라마화란 카드는 2, 30대의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작전이다.
충성 층의 연령대가 어느 정도 있는 만큼 지상파 입장에서 도박에 가까웠으며 때문에 는 원래부터 시청률이 저조한 월요일 화요일 저녁 시간을 할당받았다.
‘대본도 확실히 재미있어.’
그는 어제 저녁 확인했던 대본을 떠올리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계약 당시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자랑을 했을 땐 참 자부심이 크구나 정도로 평했는데 직접 확인한 16권의 대본은 그럴만했다.
원작자가 직접 검수를 한 작품답게 짧은 회차 안에 중요한 내용들이 알차게 들어있었고, 사이드 스토리를 쳐내 부족해진 볼륨은 오리지널 이벤트 및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었으니까.
‘드라마화하면서 심의에 걸릴만한 건 수정했지만 교묘하게 잘했지.’
은 어느 날 봉인에서 깨어난 구미호 해조가 연인의 환생을 찾아 도시로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냄새를 통해 인간인 여주인공 서아영을 찾아내며 때마침 귀신에게 괴롭힘 당하던 그녀를 구해준다.
고전적인 로맨스의 시작이지만 이런 고전은 연출만 잘하면 대부분 통한다.
작화가 뛰어나다면 더더욱.
잘 생긴 남자가 위기에 처한 것을 구해주고 애틋하게 바라보는데 순간적으로 혹하지 않을 여자는 없다.
게다가 해조는 작중 색기를 담당하는 구미호. 그런 그가 작정하고 함께 있고 싶다 유혹하니 순간 홀려버린 여주인공은 무의식중에 그를 집으로 데려온다.
‘외모가 신뢰도라니. 되게 부러운 설정이네.’
물론 해조가 찾아온 것이 전생의 연인인 만큼 현대인인 아영은 자신을 누군가에 투영하는 그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내쫒으려 한다.
그런 거절 속에서 해조는 담담히 알았다고 수긍하며 그래도 인연인데 여주인공의 영안(靈眼)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준 다음 가면 안 되냐고 묻는다.
우수에 찬 눈으로 색기를 폴폴 풍기면서 말이다.
영안 때문에 지금껏 고생했던 아영은 결국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채 해조와 한 지붕 아래서 살며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
정리하면 위기를 거쳐 사랑을 깨닫고 마지막엔 백년해로하며 행복하게 사는 전형적인 로맨스지만 캐릭터들의 톡톡 튀는 매력과 구미호 전승 등을 잘 섞어 중반 이후부터 완결까지 토요 연재 순위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웹툰이란 게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지.’
물론 원작에서 고등학생이던 여주인공의 나이는 방송 심의 상 회사원으로 바뀌었고, 남동생까지 4인 가족이 함께 살던 배경은 그녀가 홀로 살던 오피스텔로 변경됐다.
그에 따라 해조의 위치도 현혹으로 가족들을 홀려 은근슬쩍 눌러 앉은 군식구에서 집에서 기르는 애완 여우로 변했다.
대본 보통 난이도를 진행한 태화가 혀를 차며 ‘이거 꾼이었네’할 정도로, 해조는 자신의 외모를 잘 이용해 여주인공을 구슬렸다.
여러 작품 속 환수들이 오랜만에 내려온 인간 세상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촌스러운 반응을 보였다면 천년 만에 봉인이 풀려 서울로 온 해조는 참으로 ‘잘’ 적응해 나아갔다.
“저, 태화야? 도착했는데······. 정말 혼자 가도 괜찮아?”
“물론이죠. 오히려 다른 사람이 있으면 제가 좀 그렇거든요.”
약속했던 건물 앞에 도착하자 태화는 바로 차에서 내려 제 시간에만 와달라는 말을 전했다.
불안한 얼굴로 주저하던 현규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장소를 떠났다.
매니저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그는 뒤를 돌아 건물의 지하로 향했다.
‘솔직히 이런 중개가 있는 줄 몰랐는데······. 역시 BGA.’
BGA는 계약이나 법률, 홍보에 관련된 업무를 제외하고 중개에도 상당히 힘썼다.
단순히 감독과 작가, 배우 등을 연결하는 중개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고객들이 자신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독특한 중개도 도맡았다.
흔하게는 연기 선생이나 트레이너, 매니저를 중개해줬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연예계와 상관없이 연기를 위한 중개도 도와줬다.
방언을 구사하는 미국인이라던가, 연변의 조선족, 무속인, 특수 직업 종사자는 애교였다.
필요만하다면 마약쟁이, 카사노바, 화류계 인사도 그들은 중계해줬으니까.
물론 특수하면 특수할수록 가격이 높아졌지만 따로 알아보고 접촉하는 것보다 안전하며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가르쳤다.
에서 섹시함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사실 태화는 색기와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내내 김효신의 연기를 보며 겉으로만 배웠을 뿐이지 메인으로 연기하기엔 조금 조잡했다.
해조를 맡아 연기하게 된다면 빠르게 밑천이 드러나 버리리라.
따라서 그는 해결책으로 전문가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와, 안녕하세요.”
연습실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남자는 태화를 보며 과장되게 감탄했다.
BGA 쪽에서 연결해준 이로 오늘 하루 동안 태화를 도와줄 사람이었다.
‘그냥 선해 보이는 사람인데······?’
“지금 착해 보이는 제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유혹했는지 의심하셨죠?”
생글생글 웃으며 태화의 심리를 꼬집은 그는 코앞까지 다가와 태화의 얼굴을 빤히 살폈다.
키 차이가 10센티 정도 났음에도 태화는 긴장한 눈으로 갑자기 다가온 남자를 내려다봤다.
“피부 좋네요. 화장이 잘 먹을 것 같고······. 눈썹이나 인중도 깔끔하게 다듬어져있고. 흠.”
그는 태화의 눈 가장자리를 몇 번 당겨보더니 만족했다는 얼굴로 웃었다.
“화장이 잘 먹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얼굴상이 정말 좋네요. 근육 좀 빼내면 여장도 가능할 거 같고. 아티스트들이 태화씨 얼굴만 보면 환장하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뭐라 반응하기 힘들었던 태화가 침묵 끝에 감사를 표하자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눈매를 휘었다.
참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에이, 고용주신데 말 편하게 하세요. 사실 저도 를 봐서 외모는 크게 걱정 안했지만 그래도 제 의뢰에 배우가 오는 일은 드물거든요. 화장 잘 먹는다는 말 듣고 한번 생얼도 보고 싶었어요.”
남자, 박길동은 돈만 주면 누구든 유혹하는 일종의 연애 해결사였다. 주로 하는 작업은 애인 대행과 불륜녀를 유혹해 떼어내는 일이었고 가끔 특수한 취향의 분들 의뢰도 받았다.
그는 고객과 타겟의 기호에 따라 때로는 순진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또는 섹시한 가면을 쓴 채 사람들을 유혹했으며 그의 성공률은 다른 라이벌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돈을 좀 많이 밝히긴 해도 상도덕을 지킬 줄 아는 남자라 그와 한번 거래한 사람은 다음에 비슷한 일이 있을 때도 길동을 애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BGA는 그럭저럭 괜찮은 고객이었다.
많아봐야 두 번 만나 연기에 필요한 무언가를 도와주는 것만으로 한 달 내내 작업해서 받을 보수를 현금으로 지불했으니까.
가끔 밑천을 욕심내는 인간도 있었지만 길동의 언변에 넘어가 어느 순간 알맹이를 잊었다.
“일단 기본을 확인해봐야 하니까 절 여자라 생각하고 한번 최대한 색기 넘치게 유혹해보세요.”
순한 인상이긴 해도 길동은 누가 봐도 남자였다. 추녀를 미녀 보듯 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법인데 남자를 여자, 그것도 유혹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건 상당히 어려웠다.
그러나 길동은 모두가 극찬하던 태화의 연기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얼마나 잘났으면 의뢰 내용에 ‘현장에 있는 이들 모두가 색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란 말을 포함했는지, 정말 그 정도 능력이 돼서 그런 말을 담은 건지 알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잠시 떨떠름해하던 태화는 눈을 감고 상황을 상상했다. 눈앞에 있는 이는 의 아영이며 그는 그녀의 집에 얹혀살기 위해 잠시간 그녀의 사고를 흐려야한다.
거기까지 생각한 태화는 천천히 눈을 뜨고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레 길동의 볼을 손등으로 쓸었다.
“······안 될까?”
평소보다 살짝 낮은 목소리가 기분 좋은 울림을 만들었다.
“······얼굴은 의외로 방어하려는 여성이 많아요. 급소기도 하도 무엇보다 화장을 하고 있어서 얼굴에 타인의 손이 닿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친하지도 않으면 더더욱요. 이럴 땐 차라리 손가락 끝을 끌어 올려서 작게 키스하거나 시선만 뚫어지게 컨택하는 편이 낫죠.”
담담하게 설명하던 길동이 슬쩍 시선을 치켜올린 채 고양이처럼 웃으며 ‘······좋아?’라고 물었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와 살짝 파인 보조개가 선하기만 했던 인상에 붉은 색을 입혔다.
“이렇게요. 한번 거울보고 확인해보세요.”
“네.”
태화는 순식간에 변한 인상에 놀라워하며 진지하게 거울을 보고 얼굴 근육을 움직였다.
화장의 도움 없이도 저 정도로 바뀔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연습하고 있는 태화의 등을 보며 길동은 가늘게 눈을 떴다.
‘이거 미래가 두렵네······.’
솔직히 말하면 그는 안 되냐는 물음에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고작 1초에 불과한 시간이나 그 방면으로 프로인 길동이 그리 쉽게 당했다는 건 태화에게 소질이 있단 의미였다.
‘내가 지금 호랑이 이빨을 갈아주고 있는 것 같은데······. 아, 몰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당하지 내가 당해?’
대충 여자한테 통하는 동작 몇 개, 표정 몇 개 알려주고 끝내려던 길동은 심술궂게 웃었다.
미래의 섹시 꿈나무를 보자 왠지 키워서 다른 이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 * *
“남자도 여자랑 마찬가지예요. 무턱대고 벗는다고 섹시한 게 아니죠.”
“무언가를 할 땐 시선은 살짝 아래로. 아뇨, 그건 졸린 눈이고 눈동자만 살짝, 그래요. 그렇게.”
“목소리 울림은 좋은데 조금 더 천천히, 한 힘 한 힘을 담아서 말하세요. ······솔직히 발음이 좋아서 그 이상은 건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길동은 무의식적으로 관능미를 뽐내는 방법을 전수했다.
연기에 쓸 것이기 때문에 화면 너머로 넘길 수 없는 후각은 제외했지만 그 밖에 많은 것을 단시간 내에 몰아치듯 주입시키고 교육했다.
태화에게 꼬리 세 개가 생길 때쯤, 그는 시계를 확인하며 태화의 어깨를 툭툭 쳤다.
“여기까지. 기억력이 좋으셔서 해드릴 말은 전부 해드렸네요. 이제부턴 개인 수련의 과정이니까, 열심히 갈고 닦으세요. 수고하셨습니다.”
길동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두 번 박수를 쳤다. 마지막에 갈고 닦으라는 말은 했지만 그가 이 쪽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니 연습할 만한 대상은 상대 배우정도일 것이리라.
이런 기술은 꾸준히 다듬어 일정 경지에 다다르지 않으면 순식간에 어설퍼진다.
태화가 축복으로 연습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그는 상식선에서 생각하고 돈 값은 했다고 여겼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견문을 넓혔네요.”
태화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웃음을 갈무리하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노골적인 장면이 없어도 야할 수 있다는 건 익히 알았지만 이렇게 신세계를 겪자 경험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집에 가서 연습부터 해야겠다.’
의 어려움 난이도를 떠올리며 그는 배운 것을 빨리 써보고 싶어 하는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끝
ⓒ 마늘소금
192번이란 번호가 스크린에 뜨자 세미 양복을 입은 남자가 상담원이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스마트폰이란 걸 개통하려 왔는데.”
그는 책상을 두어 번 톡톡 두드리고 안내원을 보며 웃었다.
슬쩍 올라가는 입 꼬리를 응시하던 여성의 눈이 풀리며 화장기 있는 뺨이 홍조로 물들었다.
“네, 네.”
안내원의 표정이 몽롱해진 것을 확인하고 그는 그녀의 쪽으로 몸을 숙인 뒤 아까보다 작은, 하지만 여전히 듣기 좋은 중저음을 내뱉었다.
“내가 신분이라 할 게 없어. 그래도 만들고 싶거든? 이름은 대충 서아현 정도가 좋을 거 같아. 가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