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0)
관존 이강진 (10)
그때였다..
“것봐라! 틀렸잖냐.”
곽노가 강진의 등을 탁 치며 소리쳤다.
“으음, 잠시 딴생각을 한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집중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지.”
“실수였어요. 다시 해요. 이번에는 자신 있어요.”
강진의 항변에 곽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녀석아. 생각 좀 해 보고 말해라. 정말 자신 있어? 몇 시진 동안 그렇게 하는 게?”
“그러니까…… 독하게 마음먹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였어요.”
“쯧쯧쯧, 그것도 변명이라고.”
곽노는 다시 혀를 차고는 강진을 벌떡 안았다.
“뭐 하시게요?”
“날도 더우니 시원하게 해 주려고 그런다.”
곽노가 강진을 안고 간 곳은 작은 폭포였다. 하지만 높이도 있고 작은 물줄기라 하더라도 양은 꽤 되는지라 나름 운치가 있는 곳이었다.
“정말 물놀이하시려고요? 애도 아니고.”
“사부한테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잔말 말고 들어가기나 해라.”
강진은 옷을 홀딱 벗고 물웅덩이로 들어가 물었다.
“그다음은요?”
“저기로 가야지.”
곽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이었다.
“폭포 안으로 들어가라고요?”
강진의 물음에 곽노는 고개를 저었다.
“안이 아니라, 폭포를 맞아야지.”
“아플 텐데요?”
“참을 만할 거다.”
“거길 왜 들어…….”
“잔말 말고.”
곽노가 명령조로 말을 자르자 강진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폭포수 쪽으로 들어갔다.
“으! 차가워.”
강진은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서리를 쳤다. 아픈 것보다 차가운 게 먼저였다.
“자, 거기 앉아라.”
곽노의 목소리에 강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차가움은 적응이 되고 머리가 살짝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 내가 알려 준 호흡법을 하는 거다.”
“왜 여기서 해야 하는 건데요?”
“해 보면 알아.”
곽노의 계속되는 강권에 강진은 어쩔 수 없이 천천히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쓰아아아아아.
귀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귀 안에서 맴도는 소리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 소리였다.
“왜 폭포수 아래에서 도를 닦는 도인들이 많은지 아냐?”
그때 곽노의 목소리도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기가 집중이 기가 막히게 잘되거든. 이유가 뭐냐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집중이 잘된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거다.”
기가 막힌 말이었지만 강진은 참고 그대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 높은 대나무를 뛰어넘게 한 사부 아닌가 말이다.
쓰아아아아아아.
‘뭐, 그러고 보니 집중이 잘될 것 같기도 하고.’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던 강진은 사부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호흡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쓰아아아아 들리는 소리에 집중이 되다 보니 잡념이 들지 않았다.
“네 배꼽 아래에 작은 좁쌀이 있는 거다.”
하지만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강진은 눈을 뜰 뻔했다. 곽노가 그다음 말을 바로 잇지 않았다면 성질을 참지 못했을 터였다.
“없어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곽노의 말이 계속 들렸다.
“호흡에 신경을 쓰되 좁쌀도 만들어야 한다. 만들었지?”
“…….”
“그럼 그 좁쌀을 천천히 머리 위로 끌어 올려라. 정수리까지 올리는 거야.”
고수가 아닌 삼류 무사가 들어도 웃기지도 않을 소리였다.
내공을 처음 느끼는 게 좁쌀만 한 기운이라 하지만, 무슨 상상만으로 내공이 만들어지고 또 그 기운을 몸 안에서 일주천시키겠느냔 말이다.
기운을 만들고 움직이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세상에 고수 아닌 사람이 없고, 모든 문파들이 그렇게 비밀리에 자파 제자들에게만 호흡법을 전수해 주지 않을 터였다.
한마디로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강진은 곽노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르고 있었다.
‘좁쌀. 좁쌀.’
강진이 열심히 좁쌀을 만드는 사이 곽노는 생각했다.
‘그렇게 엉터리만은 아니야. 장군께서 이 건강호흡법만 열심히 하면 손자들과 칠순 잔치를 함께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까.’
좁쌀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이 만들어 낸 거였다. 내공이라는 게 좁쌀만 한 기운으로 시작해서 점점 커진다는 이야기.
하지만 제대로 하는 호흡법은 분명 그 장군이 가르쳐 준 것이다.
곽노는 그 장군이라는 사람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천 명의 병사를 끌고 있는 장군이었지만 그 능력만큼은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곽노는 그 밑에서 겨우 삼 년을 있었지만, 삼 년 동안 그 부대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는 세 자리 수가 넘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였다.
‘나도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장군은 때때로 병사들에게 호흡법과 몇 가지 무술을 가르쳐 줬는데, 곽노는 호흡법을 열심히 익히지 않았다. 무병장수할 거라는 말이 크게 와 닿지 않았고, 무술을 수련하는 데만도 크게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잘되고 있냐? 너는 할 수 있다. 만들고 올려라!”
그때의 아쉬움이 섞인 탓이었을까? 곽노는 열을 올려 가며 강진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지금 강진은 외부의 소리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상태였다. 쓰아아아 하는 소리까지 사라질 정도로 강진은 좁쌀에 집중하고 있었다.
생긴 것이다. 그 좁쌀이라는 것이 말이다.
‘위로 올려.’
강진은 좁쌀에 집중한 채로 위로 올리려 했지만 그때마다 좁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만들어.’
생기고.
‘위로 올려.’
사라진다.
그것이 수십 번 반복되었을 때 강진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왜 안 되는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곽노의 목소리도 들렸다.
실패였다.
“조용히 좀 하세요! 집중이 안 되잖아요!”
강진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소리치자 곽노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녀석, 정말 만든 건가?’
곽노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강진을 살폈다.
강진은 다시 집중하고 좁쌀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잡아 두자. 확실하게 생겨날 때까지.’
강진은 그렇게 집중했다.
…….
‘앗!’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인가?
강진이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달빛으로만 간신히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으, 추워!”
그리고 엄습해 오는 추위.
한여름이라지만 몇 시진째 폭포수를 맞으며 앉아 있었으니 당연히 추울 수밖에 없었다.
“사부!”
“왜 그러냐!”
곽노도 잠이 들었었던 듯 깜짝 놀라며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들어와서 저 좀 데리고 나가세요.”
“왜 그러냐? 설마 주화입마라는 걸 당한 거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추워서 몸이 잘 안 움직인다고요.”
곽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물로 뛰어들어 강진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어찌 됐냐?”
걱정과 기대감이 섞인 곽노의 물음에 강진은 자신을 살폈다.
‘있네.’
단전에 좁쌀, 아니 뭐 그렇게 표현할 만한 크기의 뭔가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 * *
“오늘은 예습을 열심히 해 왔구나.”
전인문은 자리에서 방방 뛰며 기뻐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말했다.
두 달 동안 똘망똘망한 눈으로 수업에 집중하던 강진이 드디어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더니 이제 예습까지 해 온 것이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이리 총명한 아이인데. 그동안 내 가르치는 방법이 모자랐던 탓이지.’
학식 높은 학사답게 전인문은 그동안의 강진의 불량한 태도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흐뭇한 눈빛으로 강진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키우는 재미는 난을 키우는 재미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도 강진처럼 총명한 아이를 가르치는 재미는 말이다.
‘좋은 게지. 하나가 아니라 둘씩이나 있으니까.’
전인문은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서문우람에게도 흐뭇한 시선을 돌렸다.
전인문은 두 제자와 성실하기만 한 또 한 명의 제자에게 신 나게 공자의 말씀을 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에서 침 튀겨 가며 논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정작 강진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될 것 같기도 한데.’
단전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던 좁쌀이 단전 주변을 맴돌아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두 달이었다.
그 좁쌀을 확실하게 자리 잡게 하고, 이렇게 움직여도 사라지지 않게 만드는 데에 걸린 시간이 말이다.
‘일단 수업을 듣고.’
강진은 곧바로 전인문의 설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글공부는 여전히 지겹고 재미가 없었지만, 이걸 잘하게 됨으로써 돌아오는 혜택을 무시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만 집중해 주어도 전인문의 잔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학우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집에서 아버님이 자신에게 약간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강진은 아버지의 관심을 절대 잃고 싶지 않았다. 용돈이 오르는 것보다, 말 몇 마디 더 건네주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업을 받는 시간에도 단전의 좁쌀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은 시도해 봐도 되겠어.’
수업이 끝나고 강진은 책 보따리를 싸며 생각했다.
계속되는 실패에 좁쌀을 확고히 만들기 전까지 시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여태 꾹 참았던 것을 폭발시킬 차례였다.
그 생각만으로도 강진은 흥분에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거지새끼 주제에 노사에게 가르침을 받으니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그때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강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래 봤자 출생이 천한 것들은 천하게 사는 거지.”
“흐흐, 너무 그러지 마라. 그래도 이게 희망이라고 죽자 살자 책만 파는 책벌레를 밟아 죽이면 우리가 너무 잔인해 보이잖아.”
비단옷을 입은 몇몇 아이들이 서문우람의 주변에 서서 모욕을 주고 있었다.
‘저 새끼들은 지치지도 않나? 억울하면 지네들도 코피 터뜨려 가며 공부하든가.’
솔직히 강진도 서문우람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자신보다 다른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고 전인문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로 그에게 모욕을 주는 저 아이들이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전인문이 사라지면 종종 생기는 상황인지라 강진은 그저 인상을 찌푸리며 책 보따리를 들고 일어섰다.
‘저 새끼도 멍청하지. 저렇게 당하고만 있으니 애새끼들이 더 덤벼드는 거 아니야. 죽을 각오로 한번 들이받으면 저렇게 함부로 못 하잖아.’
강진은 또 당하는 서문우람에게 욕을 해 주고는 신발을 신고 나가려 했다.
퍽. 퍽. 퍽.
그때 아이들이 서문우람을 둘러싸고는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여태 놀리기만 할 뿐 한 번도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지들 부모에게 또 비교당했나 보군.’
강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들이 서문우람을 때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어제 사부가 측은지심인가 뭔가를 한 시간 동안 설명해 주지 않았다면…….’
강진은 목을 좌우로 한번 꺾어 주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 시파! 니들 때문에 내 시간을 뺏겼잖아. 어떻게 보상해 줄 건데?”
강진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아이들의 눈앞에 별들이 번쩍이나 싶더니 하늘이 노랗게 변해 갔다.
퍽! 퍽! 팍! 팍!
딱 한 대씩이었다. 하지만 강진의 주먹 한 방을 견뎌 낸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곽노가 온 후로 체력 단련은 질릴 정도로 했고, 한 대를 때리더라도 죽일 기세로 날리는 강진의 주먹은 성인이 휘두르는 주먹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상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는 강진이니 주먹에 인정이라는 것은 없었다.
순식간에 쓰러진 네 명의 아이들을 향해 강진은 발을 들었다.
서문우람을 도와줬다는 생각보다, 저들로 인해 자신의 시간을 뺏겼다는 분노가 앞섰다.
그렇게 강진의 발이 아이들의 안면을 내려치려는 순간 누군가 강진의 발을 붙잡았다.
“뭐야?”
“안 돼. 하지 마.”
다른 사람도 아닌 서문우람이 강진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병신아, 너를 도와주려는 거 아냐.”
“알아. 그래도 하지 마.”
강진은 그 순간 서문우람의 안면을 발로 차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