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02)
관존 이강진 (102)
선유가 방에 들어오자 강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몸이 완전히 다 낫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인정하고 존중하기로 했으니 그만한 예를 보여 줘야 했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행동으로 말이다.
“교주를 뵙습니다.”
정중히 포권을 하며 하는 강진의 인사에, 선유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마주 포권하며 말했다.
“일어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강진은 허리를 펴고 물었다.
“교주, 제 무공이 약합니까?”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선유는 여전히 의외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천하에 몇 없을 겁니다. 귀하 나이에…….”
“그 귀하라는 말 좀 하지 마세요.”
“그럼 소협이라 할까요?”
“협 자는 저와 어울리진 않지만…… 귀하보단 낫겠네요.”
“그럼 그렇게 하죠. 하여간 소협의 나이에 그 정도의 무공을 가진 이는 몇 없습니다.”
“있긴 하다는 소리이니 제가 그리 강한 건 아니군요.”
“아니요. 몇 없으니 그만큼 강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교주께는 상대가 안되는군요.”
선유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뭔가 착각을 한 것 같군요. 소협은 강합니다. 그 나이 때, 저는 그만한 무공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굳이 비교를 한다고 하면, 서른이 되었을 때쯤에나 지금 소협의 무공 수준이었을 겁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걸요.”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것뿐입니다.”
“나름 많이 싸워 봤는데요.”
“아마 대부분 소협보다 약한 자들과 싸웠을 겁니다. 아닙니까?”
강진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선유가 말을 이었다.
“자신과 대등한, 또는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과 싸울 때는 달라야 합니다. 기다리고, 자신의 한 수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버텨야 합니다. 하지만 소협은 시야가 좁고 욕심이 앞섭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게?”
“자신의 공격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가장 자신 있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초식을 노리는 기회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며칠 전 소협과 손을 나눌 때도 그랬습니다. 소협은 변화를 기다렸고, 저는 그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분명 교주가 먼저…….”
강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변화가 아니지요. 소협의 초식의 변화를 유도한 것이지요. 제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건 확실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성공했지요.”
강진은 입을 다물고 선유의 말을 곱씹었다.
그가 뭘 말하는 건지 모두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으나 개념은 잡을 수 있었다.
“교주, 다시 가르침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여기서 머무르시겠다는 겁니까?”
“제가 원하는 걸 얻기 전까지만요.”
“편하실 대로. 저도 어르신과 더 있길 원했으니까요.”
강진은 물었다.
“그런데 부탁하실 일이 있으시다고요?”
“소협과 어르신에게 몇 가지 드릴 질문이 있었습니다.”
“사부와는 오랫동안 같이 있으셨잖아요.”
“귀하를 봐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뭘 확인하셨습니까?”
선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인했고, 머물러 주시길 원했습니다. 소협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럼 됐네요. 교주께서는 저와 대련을 해 주시고, 저는 교주께서 원하는 걸 돕고요.”
“맞습니다. 그러면 좋겠습니다.”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면서도 강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촌로보다 못한 기운을 지녔는데……. 천하제일인에 무림에서 가장 큰 단체의 수장이라고?’
힘이 있는 자가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강진은 아직 잘 몰랐다.
“그럼 제가 도와야 할 일이 뭔지 이야기해 주세요.”
강진의 물음에 선유가 반문했다.
“혹시 천살성(天殺星)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천살성요? 처음 들어 보는데요.”
“천살성이란, 태어날 때부터 살기를 지닌 이를 말합니다.”
선유는 강진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살기를 지닌다는 건 말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종종 그런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이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이들이, 뛰어난 재능까지 가지고 태어나지요.”
“…….”
“믿기 힘든 이야기고 주변에서 보기도 힘들지만, 찾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곳에도 있나 봅니다?”
“있습니다. 무려 세 명이나 있었지요.”
“있었다는 건, 지금은 없다는 뜻인가요?”
선유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지금은 한 사람만이 남았지요.”
“남은 두 사람은요?”
“한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살기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성은 무척 착했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지요, 살기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본성은 착하다는 것이. 하지만 그랬기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선유는 강진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또 한 사람은 제어하려 했습니다. 저 역시 옆에서 도우려 했으나 폭주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결국 제가 그의 숨을 거둬야 했습니다.”
“…….”
“못 할 짓입니다. 그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보아 온 제가 그의 숨을 거두는 것이 얼마나 더러운 기분일지, 아무도 알지 못할 겁니다.”
“교주가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건 저를 천살성이라 생각하고 계시다는 거겠지요?”
“아닙니까?”
강진은 잠시 생각했다.
‘살기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 내가 그 천살성이라는 건가? 어쩌면…….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강진은 스스로에게 답변하지 못했다.
곽노의 가르침에,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건 인정하고 있었다. 특별한 게 아닌, 다르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선유는 그걸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게 있다면, 그들처럼 두려워하기보다는 안타까워한다는 점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강진은 선유가 무엇을 부탁하고 싶어 하는지를 깨달았다.
강진은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이 남았네요. 그 사람은 어찌 됐습니까?”
“잃지 않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르신과 소협에게 도움을 청하려 합니다.”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의문이 있다면, 선유가 자신을 어찌 알았냐 하는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저를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극히 조심했는데 말입니다.”
선유는 약간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한도 때문이었지요.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한도는 보통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선천적으로 정력이 고강한 사람, 후천적으로 정력을 강하게 단련한 사람이 아니라면 한도의 영향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천하에 몇 되지 않을 겁니다.”
“단지 그것만으로 알아차리신 겁니까?”
선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한도의 행방을 쫓던 중 광동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단서를 잡았지요. 처음에는 한도에 홀려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조사하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되더군요. 그가 어릴 때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떠한지를. 영향을 받지 않았더군요. 오히려 한도를 두 동강까지 내었습니다.”
“저에 대해 다 아신 거군요.”
“확실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건 단지 한도 회수를 위한 조사 차원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소협을 보고,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뭘 말입니까?”
“제가 지켜야 할 사람도 한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린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강진은 말없이 선유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사부랑 이야기해 봐야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이해를 부탁드린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자제분과 그 어르신은 강제로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귀 방의 인사들이 언제든지 확인하셔도 됩니다.”
이제원은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거짓이 있다면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대가 너무 컸다. 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협력이 간절히 필요했다.
그런 사실은 사내도 아는 듯했다.
“윗분들은 교와 귀 방의 관계가 이 일을 계기로 더더욱 돈독해질 것이라 믿고 싶어 하십니다.”
사내의 말에 이제원은 분노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러길 바랐다면 진작 협조를 요청했어야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한도의 존재를 귀 방에서 몰랐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엄청난 물건이라는 건 방주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처음에 그 사실을 숨긴 건 귀 방이라는 걸 간과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원은 노려봄으로써 대답을 대신했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화산파가 날뛴 탓에 무림맹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희가 관에 협조를 요청했고, 오천군을 사천과 감숙으로 이동시켰다는 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내가 정중히 포권을 하고 사라지자 이제원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 총관이 뒤에서 나타나며 대답했다.
“거짓 같지는 않습니다. 신교의 교주가 교 역사 이래로 가장 온화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사람이긴 하나, 한번 결정한 일은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런 그가 직접 사신을 보내오고 무사들을 이동시켰다는 건 그만큼 소주와 곽 노사가 존중받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사천과 감숙으로 이동시켰다면, 놈들 바짝 긴장하겠지?”
“이미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던 놈들의 반수 이상이 사라졌다는 보고입니다. 특히 화산과 종남의 도사 놈들은 모두 철수했습니다.”
“감숙이 떨어지면 바로 섬서일 테니…….”
“덕분에 움직이기가 더 편해질 겁니다. 대계의 준비도 원활해질 테고 말입니다. 대계의 준비가 끝난 후 신교가 행동을 취해 준다면 성공 확률이 일 할은 올라갈 것입니다.”
이제원은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이 상황을 허락지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이다.
자신의 유일한 핏줄이고, 자신이 그녀와 같이 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단 하나의 연결 고리였다.
“소주는 현명한 분입니다. 그리고 향아가 옆에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른 곳이었다면 걱정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신교야. 마교라 불리는 그 신교란 말이야.”
정 총관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사람을 보낼까요?”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정 총관은 다시 뒤로 숨어들어 갔다.
“누구냐?”
“주인어른, 쇤네입니다.”
약간 흥분된 칠덕네의 목소리에 이제원이 말했다.
“잠시 후에 오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게……. 주인어른, 지금 꼭 알려 드려야 할 일입니다.”
이제원은 순간 역정을 내려다, 평상시 칠덕네의 목소리가 아님을 깨닫고는 말했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며 흥분한 표정의 칠덕네가 총총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이제원의 물음에 칠덕네는 대답 대신 넙죽 절을 하며 말했다.
“주인어른, 축하드립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마님이 근래 들어 부쩍 피곤해하고 음식도 잘 못 들기에…….”
“요점만 말하게. 그래서 뭔가?”
“작은마님이 임신을 했다고 합니다.”
칠덕네의 말에 이제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게 사실인가?”
칠덕네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방금 구 의원이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어디 있는가?”
“별채에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제원은 걸음을 옮겼고, 칠덕네는 싱글벙글하며 그 뒤를 따랐다.
이제원이 안채에 들어가니 곽노의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미영이 급히 자리에 일어났다.
“일어날 필요 없다. 얼른 앉거라.”
“아닙니다, 아버님.”
“앉으래도.”
이제원은 마구 손짓을 해 가며 미영을 앉히고는 물었다.
“얼마나 됐다고 하더냐?”
옆에서 곽 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두 달째라고 합니다. 사돈어른, 축하드립니다.”
“사돈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두 달째라면 무척 조심해야 되겠군요.”
“그래서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시비들이 사돈어른께 차를 올려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원은 자꾸 벌어지는 입가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래야지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사돈께서 신경을 써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돈어른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옆에 달라붙어 조심시키겠습니다.”
이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채라 하나 곽노와 이 씨가 머무르고 서문 남매가 있는 곳이니 특별히 신경을 쓴 곳이었다. 강진과 곽노가 자리를 비운 후 미영은 본채가 아닌 이곳에서 이 씨와 머무르고 있었다.
이제원은 미영을 보며 말했다.
“머무르기에는 아무래도 안채가 낫지 않겠느냐?”
“여기도 충분합니다.”
이제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채를 쓰거라. 거기가 볕이 더 잘 들고 바람이 적다. 거기를 쓰도록 하거라.”
순간 미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가장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이제원과 강진 부부가 같이 쓰는 구역, 곽노와 부인이 쓰는 작은 별채, 이가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건물 그리고 관리만 되고 아무도 살지 않는 안채라 불리는 곳.
그 안채는 원래 강진과 미영이 써야 할 곳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곳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원의 부인이 죽은 후 그곳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곧, 안채는 진정한 이가장 안주인이 쓴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제원이 첩이라 선을 그어 놓았던 미영이고, 아마도 서문정화가 강진과 혼인을 해야 그 안채를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원이 직접 그 건물을 쓰라고 하는 건 곧 자신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미영은 이제원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임신을 한 것만큼이나 기뻤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했으나 그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는데, 이제는 아닐 것 같았다.
이제원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시간 끌 것 없다. 사람을 불러 준비시킬 테니 당장 옮기거라.”
“네, 아버님.”
“그리고 강진이 걱정은 하지 말고. 녀석에게도 소식을 보내겠다.”
“네.”
이제원은 잠시 망설이다 다시 말했다.
“며늘아기야, 수고했다. 아니, 고맙다.”
미영은 눈물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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