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03)
관존 이강진 (103)
마인
“그러니까 저 사람을 우리 강진이처럼 만들란 소리신가?”
“으어어어어!”
쇠창살 사이로 손을 뻗고 괴성을 지르는 사내를 보며 곽노는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동물도 아니고 사람을 쇠창살 우리에 가둔 것이 못마땅했지만, 딱 일각을 지켜보니 쇠창살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 손가락 세 개를 합쳐 놓은 것처럼 굵은 쇠 봉으로 만든 쇠창살들이, 사내가 움켜쥐고 흔들어 댈 때마다 약간씩 휘어지고 있었다.
“가끔씩 진정하고 이성을 되찾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어서 걱정이 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선유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사내를 보며 손을 내밀자, 창살에 갇힌 사내는 그 손을 잡으려고 발광을 했다.
“사부, 무슨 방법이 없겠어요?”
강진이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묻는 말에 곽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무슨 수로? 내 미친놈들을 꽤 봐 왔다만 저건 통제 불가능해. 거기다 무공도 배운 사람이라면서.”
전쟁터에는 미친놈이 많다.
성질이 더러운 놈이든 심성이 착한 놈이든, 전투를 몇 번 겪다 보면 미친놈이 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전쟁터에서는 생각이라는 게 존재할 수가 없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니까. 그저 무조건 죽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병사들의 정신은 붕괴된다.
그건 병사들만이 아니다. 직접 전투에 나서는 하급 장수들도 마찬가지다. 혼자 흥분해서 대열을 이탈해 적진에 뛰어드는 미친놈이 죄다 그런 경우다.
애초에 전쟁이란 게 미친놈들의 싸움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은 첫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보통 사람과 미친놈이 싸우면 미친놈이 이길 수밖에 없으니까.
곽노 역시 몇 번 미쳤다.
곽노는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친 만큼 살 확률이 높았으니 수백 번이라도 미칠 의향도 있었다.
미친놈이 몸 성히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전투에서 이기고 좀 덜 미친 놈이 진정시켜 주어야 한다.
하지만 영원히 미치는 놈도 있다. 눈앞의 사내처럼 눈이 반쯤 뒤집어져 괴성을 지르며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무기를 휘두른다.
신병이 그러면 죽도록 패 주고 정상이 될 때까지 묶어 두지만,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은, 그러니까 곽노 같은 사람들이 미쳐 버리면 방법이 없다.
그런 자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사람이다.
그만큼 제압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이건 단순하게 계산할 수 있는 거다.
하나의 힘을 가진 사람이 미쳐서 셋의 힘을 발휘한다면, 열의 힘을 가진 사람이 미치면 서른의 힘을 발휘하는 거다.
“방법 없어, 방법 없어. 유언이라도 남겼으면, 조용히 보내 주는 게 나을 걸세.”
곽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는 말에 선유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강진이 먼저 나섰다.
“그래도 생각해 내요. 사부는 할 수 있잖아요.”
“야, 이놈아! 내가 뭔 수로?”
“그래도 생각해 내세요. 제가 하면 된 것처럼, 사부도 생각하면 다 됐잖아요.”
“그건 너니까 한 거지, 다른 사람들이 뭔 수로…….”
“제가 할 테니까 사부는 생각만 해내요.”
강진이 이상할 정도로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자신을 보며 하는 말에 곽노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뭔 수로…….’
강진이나 선유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몇 번이나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었던 경험과, 미친놈을 전우로 둔 경험이 있을 뿐이다.
그게 우연찮게 강진을 가르칠 때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들어맞고 그런 우연이 몇 번이나 반복된 행운 덕분에 그가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것뿐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생각만 하면 되는 거고 실행은 강진이가 할 일이야. 녀석 말대로 여태 하면 다 됐잖아. 이번에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
곽노는 속 편히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선유를 보며 다짐시키듯이 말했다.
“저 사람 죽어도 난 책임 못 지네. 강진에게도 책임을 물어서는 안 돼. 약속해 주겠나?”
어차피 이대로 가다가는 또 자신의 손으로 숨을 거둬야 할 판에 곽노가 나서 준다니 다행인 선유였다.
“어르신, 최선만 다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나가 주게.”
“네? 어르신, 제가…….”
“저 사람, 자네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서? 보지 않는 게 나아. 이 방법이 통할지 안 통할지는 하늘이 알겠지.”
곽노의 단호한 말에 선유는 잠시 그와 광인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선유가 사라지자 곽노가 강진에게 물었다.
“이놈아, 나보고 어쩌라고 방법을 생각해 내라는 거냐? 못한다고 해도 해코지할 사람은 아닐 텐데.”
“…….”
“강진아!”
곽노가 다시 부르니 그제야 강진이 광인에게서 시선을 떼며 곽노에게 물었다.
“사부.”
“무슨 생각인 거냐?”
“저도 이렇게 됐을까요?”
“뭐가?”
“사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도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요?”
곽노는 기겁을 하며 대답했다.
“별 개소리를 다 한다. 네가 어떻게 저렇게 돼?”
“천살성이라는 게 있대요. 태어날 때부터 살기를 지니고 태어나는 운명이라대요.”
“그건 또 무슨 개소리냐?”
“그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 자들이 폭주하면 저렇게 된대요.”
곽노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킁, 개소리가 맞다. 신경 쓸 것 없다.”
“사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도 저랬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 넌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다.”
“왜요?”
“그야…… 너는 똑똑하잖냐.”
“저 사람도 똑똑하겠지요. 저리 보여도 저랑 비슷한 또래고, 저만큼 강하다는데요.”
곽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너는 저렇게는 안 된다. 그냥 안 돼.”
“엉터리라는 거 아시죠?”
“알아도, 저렇게는 안 된다. 사부가 배움이 짧아 생각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같은 조건에서 같은 배움을 받아도 사람마다 차이는 나게 된다. 그런 거다. 너는 안 배워도 저렇게는 안 됐을 거다. 어림없는 소리지.”
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부도 두려운 게 있거나 뜨끔한 게 있을 때 말 많아지는 거 아시죠?”
“그래도 틀린 소리는 안 하지.”
곽노는 혹시 강진이 절로 측은지심이 생긴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자신의 처지를 남과 비교한 적이 없는 강진이었다. 그리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성격도 아닌 그가 신경 쓸 이유는 그것밖에 없을 듯했다.
곽노가 물었다.
“그래서 생각해 내라고 한 거냐? 너도 저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저와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요, 뭘.”
“그런데 왜 그리 재촉했냐?”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의 하나 제가 저렇게 된다면 사부가 돌려놔야 하는데, 아무래도 한 번 경험하면 두 번째는 더 낫지 않겠어요?”
곽노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런 생각이었던 거냐?”
“왜요, 제가 저 사람이 불쌍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아니냐?”
“물론 불쌍하긴 하죠, 저렇게 사는 거. 하지만 저랑은 상관없는 사람이잖아요.”
기가 막히고 실망스러운 대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는 대답이었다.
“그래도 좀 좋게 생각해 봐라.”
솔직히 강진의 말대로 자신 입장에서는 강진이만 저렇게 안 되면 되는 문제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사람다워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다음에는 그렇게 해 볼게요. 자! 그럼 이제 제가 뭘 해야 되지요?”
곽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 * *
“외인에게 말입니까? 안 됩니다.”
화천군의 단호한 말투에 목천구도 그에 말에 동의하며 거들었다.
“무리입니다. 교 내의 무인들에게도 오행심법과 살행검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충성심을 몇 번이나 확인해야 하는데, 그런 무공을 외인에게 전수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백문점을 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반대만 하는 건 능사가 아닙니다.”
좌사가 선유의 눈치를 보며 하는 말에 우사가 거들었다.
“맞습니다. 일단 그를 구하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일이 끝나면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오행심법과 살행검을 전수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는 식으로 말입니다.”
“외인의 약속을 어찌 믿습니까? 그러다가 무공이 강호에 퍼지기라도 하면 우사가 책임지시렵니까?”
화천군의 호통에 우사도 발끈하며 말했다.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습니까? 저는 일단 사람을 구하고 봐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을.”
“그러니까 그 책임을 우사가 지겠습니까?”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 수천, 또는 수백의 무인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들. 자신의 의견을 내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고, 뜻이 다르면 힘으로써 그 의견을 관철시키겠다는 듯이 의지를 보였다.
좌중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 교의 수장 선유뿐이었다.
“나는…….”
마침내 그의 입이 열리자 좌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구해야겠습니다.”
선유는 좌중을 훑어보며 말했다.
“다른 의견 있습니까?”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중원의 무인들이 알면 모두가 놀랄 일이었다.
마교의 역대 교주들 중 가장 온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말 한마디에 아무도 이견을 내는 사람이 없다는 건, 그가 확실하게 교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
“우리 화군의 무인 중에 살행검에 능숙한 이들이 많습니다. 불러올릴까요?”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화천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대를 했던 자들도 그리고 찬성했던 자들도 오행심법과 살행검을 익힌 무인들을 소집하겠다고 나섰다.
상황은 금방 정리되었다.
살행검을 극성으로 익힌 무인 둘과 오행심법의 다섯 개 기운을 모두 다스릴 줄 아는 무인 셋이 소환되었다.
모두가 교 내에서 무공 서열 백 위 안에 드는 고수들.
마지막으로 선유가 말했다.
“여러분의 걱정은 모두 들었으니 그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럼 준비를 빨리 부탁드립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니까요.”
“존명!”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들의 예를 뒤로하고 선유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