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06)
관존 이강진 (106)
의문
청해를 벗어나 사천에 접어들 때쯤 곽노가 말했다.
“네가 이 사부를 그리 생각할 줄은 몰랐다.”
“새삼스럽게 뭘 그러세요. 제가 사부 생각 안 하면 누가 한다고요.”
“흐흐, 그렇지?”
“능글스러운 건 사부와 어울리지 않아요. 한 이야기 왜 자꾸 또 하세요.”
“좋으니까 그러지.”
향아도 옆에서 거들듯이 말했다.
“있을 때 잘하셔야 해요. 어르신에게 대답도 퉁명스럽게 하지 마시고요.”
“맞아. 우리 향아가 잘 아네.”
“그러게요, 어르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어르신과 이야기할 걸 그랬어요.”
곽노와 죽이 잘 맞는 향아를 보며 강진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말 없던 호위 무사는 어디로 간 거야?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자님 때문에 이야기할 새라도 있었나요.”
“강진이가 밖에 있을 때 매일 걱정했는데, 네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게 좀 아쉽네.”
“호호호, 제 실수랍니다, 어르신.”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걸 듣던 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지런히 말을 몰았다.
마교에서 제공한 말이었다. 곽노는 병 출신이지만 오래 전장에 있던 관계로 말을 잘 모는 편이었다.
그렇게 사천성에 들어와서 관도를 따라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곽노와 향아는 아직 눈치 못 챈 듯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지만, 강진의 귓가에는 확실히 들렸다.
‘병장기 소리.’
강진은 관도 옆 산 쪽을 흘낏 보았다. 분명히 싸우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내 자신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에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병장기 부딪는 소리가 멈추더니 관도 쪽을 향하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향아도 눈치채고는 말을 멈추고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말 한 필이 달려오고, 뒤로는 수많은 사내들이 그를 쫓고 있었다.
‘관군?’
달려오고 있는 사내의 복장이 관군의 복장이라는 것을 깨달은 강진은 그제야 관심 어린 눈빛을 했다.
강진 일행을 오십여 장을 두고 관군은 뒤따라오던 사내들에게 따라잡혀 금세 포위를 당했다.
히르르르릉!
사내들은 말부터 죽여 관군을 떨어트리게 하고는 그대로 공격했다.
강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몰았다. 상관하지 않으려 해도 자신도 관인이었고, 일말의 호기심도 들었다.
벌건 대낮에 누가 관인을 살해하려는지 말이다.
“쥐새끼 같은 놈들. 설마 다섯이나 될 줄이야.”
“빨리 처리하지요. 시간을 너무 끌었습니다.”
사내들은 대화를 나누며 그대로 관군을 베어 버렸고, 그 순간 강진이 관군의 옆으로 날아들었다.
“뭐냐?”
갑작스레 등장한 강진을 보며 사내들은 급히 그를 포위했다.
“이런…… 살려 주려고 했는데.”
강진이 보니 관군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그는 입에서 끊임없이 피를 토하다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강진은 입맛을 다시며 관군의 눈을 감겨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구냐?”
강진을 향해 칼을 들이밀고 있는 사내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지나가던 포졸.”
강진의 대답에 사내가 말했다.
“재수도 지지리 없지. 그냥 모른 체 있었으면 조용히 넘어갈 것을.”
사내들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이 강진에게 달려들었다.
“괜찮은 건가?”
멀리서 강진에게 달려드는 사내들을 보며 곽노가 놀란 눈으로 묻자 향아가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보아하니 공자의 일 초도 막지 못할 놈들인데요.”
이미 한눈에 사내들의 수준을 알아본 향아는 느긋한 말투로 곽노를 안심시키고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곽노를 지켰다.
하지만 혹시 모를 사태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강진이 휘두르는 몽둥이의 시원한 타격음만 들리더니, 스무 명이 넘던 사내들은 신음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강진은 습관처럼 포승줄을 찾다가 없는 걸 깨닫고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벗어라.”
고통에 바닥을 뒹굴고 있던 사람들이 강진의 말을 들을 리 만무.
“안 벗네.”
강진은 친절하게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에게 하나씩 다가가 차근차근 밟기 시작했다.
“으아악!”
“벗어라.”
사내들이 고통에도 급히 상의를 벗고 바지를 벗으려 하자, 강진은 다시 밟으며 말했다.
“웃도리만 벗어.”
잠시 후 상의를 탈의한 사내들이 강진의 앞에 줄지어 무릎 꿇었다.
강진은 사내 몇을 향해 상의를 찢어 길게 묶으라 지시하고는, 이내 그것들로 서로의 두 손을 묶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내의 두 손을 묶으니 굴비 엮듯이 하나의 대열이 만들어졌다.
“이대로 걸어 관청으로 간다.”
강진의 말에 사내들의 안색이 순간 일그러지더니 그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러면 좋을 게 하나도 없을 거다.”
강진이 손을 휙 저으니 장력이 입 연 사내의 안면을 강타했다.
“관인 살해는 뭔 수로도 용서가 안 돼. 죽을 준비들이나 하라고.”
강진은 고개를 돌려 살해당한 관군을 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직접 말안장에 시체를 올렸다.
“어쩌려고?”
곽노의 물음에 강진은 대답했다.
“이놈들은 관아에 넘기고, 이 사람은 묻어 줘야겠지요. 관청에서 조사하면 신분을 알 테니.”
“그래, 잘 생각했다.”
살해당한 관군이 아직 앳돼 보이는 얼굴이라 곽노도 안쓰러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굴비처럼 엮인 사내들의 뒤통수를 한 대씩 후려갈겨 줬다.
관군들 몇몇이 순간 곽노를 노려보았지만, 곧바로 강진이 뒤통수를 후려갈기니 감히 더는 눈을 부라리지 못했다.
일행은 그대로 관도를 따라 사천 성내 석집현에 들어갔다.
곽노가 피곤해하는 걸 본 강진은 여기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곧바로 객잔을 잡은 후 강진은 사내들을 끌고 석집현 현청을 수소문해 갔다.
강진이 수십의 사내들을 끌고 들어가니 현청을 지키던 관병들이 놀라 우르르 나오고, 잠시 후 현령까지 밖으로 나왔다.
“누구냐? 이들은 또 누구고?”
강진은 말에서 죽은 관병의 시체를 내려 관청 중앙에 조심스럽게 놓고는 말했다.
“광동성 신의현 포도대장 겸 기찰포졸 강진이라 합니다. 사적인 용무로 길을 지나가던 중에 이놈들이 관군 복장을 한 저 사람을 살해하는 걸 보고 모두 잡아 왔습니다. 현령 나리께서 조사하여 죽은 이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죄인들에게는 죄 주기를 청합니다.”
현령은 죽은 사람을 슬쩍 보고 다시 잡아 온 사내들을 보더니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았네. 내 처리하도록 하지. 그런데 광동성이라면 여기와는 끝에서 끝인데 여기까지는 무슨 일인가?”
“사적인 용무입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은 잡아 온 사내들을 모두 인계하고는 객잔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저녁이 되자 객잔 일 층은 식사를 하는 손님들로 바글거리기 시작했다.
“확 그냥 전세를 낼 걸 그랬어요.”
점소이에게 주문을 한 강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곽노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 구경도 하고 좋지 뭘 그러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사천까지 올 일이 있다고. 사천 음식이 맵긴 하지만 진미라던데, 다른 사람들이 뭘 시키는지 눈요기도 하고 좋지 않냐.”
“그냥 한 가지씩 다 시켜 드릴까요?”
“낭비지.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
주문한 요리가 나오고 일행이 매운맛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맛있게 먹을 때쯤 옆 탁자에 관병들 몇 명이 앉았다.
“에이! 기분 더럽네.”
“죽은 놈만 억울한 거지. 그러기에 나서면 안 된다고 그리 말했는데.”
“어리잖아. 뭘 모른 거지.”
“목소리들 낮추게.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관병들의 수다에 강진의 미간이 찡그러졌다.
기억력 좋은 그였다. 옆자리에 앉은 관병들은 오늘 관청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관병들은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말렸어야 했는데…… 그러면 그렇게 개죽음당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
“누가 알았나. 알았다면 말렸지. 이제 먹고살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현령도 그래. 아무리 그래도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묻어 버리라고 하다니…….”
확실했다.
저들이 말하는 건 자신이 직접 인계한 앳되어 보이던 관병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일어나냐, 음식이 잔뜩 남았는데?”
곽노의 물음에 강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드시고 쉬고 계세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어디 가시게요?”
“그럴 일이 좀 있어. 혹시 모르니까 사부 곁에 꼭 붙어 있어.”
강진은 향아에게 주의를 주고는 관청으로 몸을 날렸다.
관청에 도착한 강진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자신이 잡아 온 자들이 관청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지?’
다른 곳으로 이송하는 모양새는 절대 아니었다. 손이 자유롭게 풀린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걸 본 강진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이것 봐라.’
강진은 곧바로 관청 담을 넘고는 주변을 살폈다. 몇 명의 관병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지만 강진의 존재를 알아챈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강진은 자객보를 이용하여 그대로 현령의 집무실로 보이는 건물로 움직였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괜찮겠습니까? 다른 성 관리가 직접 잡아 온 건데…….”
“지금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현령의 목소리에 제삼자가 대답하고 있었다.
강진은 건물 위로 올라가 조심스럽게 기와를 걷어 내고 안을 살폈다. 안에는 현령과 중년 사내가 있었다.
“현령 나리의 수하 때문에 큰일을 그르칠 뻔한 겁니다. 위에서는 좋게 보지 않으실 겁니다.”
“아이고! 아시다시피 저희 관청은 확실하게 협조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이 귀신처럼 사람을 심어 두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건 위에서 결정할 일이지요. 그리고, 광동성 신의현 포도대장이라고 했습니까?”
“네, 분명 자기 입으로 그렇게 밝혔습니다.”
“그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여기에 왜 왔답니까? 좀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근처의 관리도 아니고 광동성의 관리가 이 일에 끼어든 것이? 혹시 그자와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요?”
“사적인 일이라고 하더군요. 바로 인계하고 간 걸 보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곧 조사가 들어갈 겁니다. 그런데 현령 나리께서는…… 으음, 조금 곤란하게 되었군요.”
“공 대인, 도와주십시오.”
현령이 작은 상자를 건네며 하는 말에 중년 사내는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급히 소매에 집어넣고는 말했다.
“제가 뭔 힘이 있겠냐마는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지요. 조사가 끝날 때까지 조심하고 계십시오.”
“공 대인만 믿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공 대인이라 불린 중년 사내가 나가자, 현령은 방을 왔다갔다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큰일이야. 자칫하다가는…….”
강진은 그대로 안절부절못하는 현령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누……!”
현령이 소리치기 전에 강진은 그의 아혈을 짚고는 의자에 앉혔다. 강진의 얼굴을 본 현령의 눈이 크게 치켜뜨였다.
“입 열면 죽는다.”
현령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은 그의 아혈을 풀어 주며 물었다.
“오늘 넘긴 놈들 그리고 죽은 관병, 어떻게 처리했지?”
“그건…… 놈들은 성도로 이송하고 죽은 관병은 가족들에게 인계…….”
찰싹!
현령의 고개가 홱 돌아갔고, 그의 뺨에는 도장이라도 찍은 것처럼 붉게 손바닥 자국이 났다.
“본관은 거짓말을 아주 싫어한다. 그리고 비리 관원도 싫어한다. 너는 본관이 싫어하는 걸 두 가지 다 가지고 있군.”
“감히…… 포도대장이면 본관보다 서열이…….”
짜아악!
현령의 반대쪽 뺨에도 손바닥 자국이 났고, 고개를 돌린 현령은 야차보다 무서운 표정의 강진을 봐야 했다.
“본관은 헛소리하는 놈도 싫어한다. 이제 세 가지네. 하나만 더 걸려라. 그럼 넌 반드시 죽는다.”
“…….”
“다시 묻는다. 오늘 넘긴 놈들 그리고 죽은 관병, 어떻게 처리했지?”
현령이 대답 대신 두 눈을 질끈 감자 강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호오! 말을 안 하겠다? 재밌네. 기대돼.”
계속 두 눈을 감은 채 버티는 현령을 바라보며, 강진은 그의 검지 손끝을 잡았다.
보통 사혈 부근을 누르거나 뼈를 뒤틀어 고통을 줬지만, 마교에서 오행심법에 대해 공부하면서 새롭게 익힌 것이 있었다.
“으어……!”
어딜 어떻게 한 것인지 몰라도 순간 현령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동시에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강진은 그의 아혈을 눌렀다.
계속 손을 놀리자 현령의 눈이 붉게 충혈되면서, 말 그대로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비명이라도 지르면 좀 나을 것 같았지만 소리가 나지 않자 숨만 막혀 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