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07)
관존 이강진 (107)
“커헉!”
강진의 손이 다시 움직이는 순간 현령은 거칠게 숨을 토해 내며 허리를 앞으로 꺾었다.
“나를 조사했다면 절대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텐데. 하긴, 너무 먼가?”
강진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현령의 턱을 쳤다. 그리고 현령이 자신을 보자 물었다.
“다시 묻는다. 어떻게 했지?”
현령은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제법 깡다구가 있다는 건가? 그런 걸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닌데. 대단해. 그리고 다시 기대할게.”
강진이 다시 그의 손을 잡는 순간 현령은 털썩 무릎을 꿇으며 울부짖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강진은 무릎을 굽혀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그럼 마지막 기회를 줄게. 어떻게 했지?”
“놈들은 풀어 주고, 시체는 묻었습니다.”
“왜?”
“그게…….”
현령이 대답하지 못하자 강진은 그대로 같은 수법을 전개했다.
현령의 눈이 다시 뒤집어지고, 바닥에 쓰러져 전신을 떨기 시작했다.
강진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다 그가 정신을 놓기 직전에 손을 놓았다. 현령은 오공에서 물을 쏟아 내며 여전히 몸을 떨었다.
강진은 일어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계속할까? 얼마나 버틸지 궁금하긴 한데.”
“제……발…… 살…….”
“대답해. 어떻게 된 거지?”
“살려…… 주십시오…….”
살려 달라는 말만 할 뿐 대답을 못 하자 강진은 이 일이 현령의 비리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에게는 지금 받고 있는 고문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는 것이다.
강진은 그를 일으켜 의자에 앉혀 주고는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그의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말했다.
“안 죽일 거야.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은 있을지언정 죽이지는 않아. 본관은 관대한 사람이거든.”
“누구십니까…… 정말 신의현 포도대장이 맞습니까?”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그럼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데?”
현령이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강진은 기다렸다.
마침내 현령의 입이 열렸다.
“혹시 시어사십니까?”
“그렇다면?”
“저는 죽을죄를 지었으나 가족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제가 모든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가족이란 말이지?’
그제야 강진은 그가 뭘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깨달았다.
‘그런데 누가 감히 현령에게 손을 대지? 그것도 가족 목숨을 걱정한다?’
국법이 엄하다고는 하나 연대로 죄를 묻는 건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황제에 대한 반역이다.
“설마 반역이라도 꾸미는 것이냐?”
“아닙니다. 소인은 절대 아닙니다. 소인은 그저 위에서 지시한 대로만 했을 뿐, 아무것도 모릅니다.”
“좋아. 살려 준다. 가족들에게도 해가 가지 않을 거야. 사실대로만 말해라. 그럼 너는 오늘 본관을 만나지 않은 것으로 처리해 주마.”
현령의 입이 열렸고, 강진은 몇 가지 물어 가며 현령의 말의 진위를 파악했다. 그러고는 그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럼 이제 살려 주시는 겁니까?”
“약속은 지켜. 다만 이대로 물러가서는 안 되겠지.”
현령이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짓자 강진이 말을 이었다.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는 현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남은 재산은 이번에 죽은 관병들에게 나눠 준다.”
“그건 너무……. 솔직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강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사람은 이렇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려 주기만 하면 뭐든지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이 굴다가도 막상 살려 준다고 하니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기 아까워하는 것이다.
‘멍청한 건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지.’
강진은 몽둥이를 들었다.
“일단 맞자.”
“네? 으악!”
현령은 내려치는 몽둥이질에 비명을 질렀다.
강진은 매질을 잠시 멈추고는 이유를 설명했다.
“누가 죽지만 않았다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사람이, 자신의 일에 충실하려던 자가 죽었다. 거기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겠지.”
“그걸 왜 제가……?”
“당연히 그들의 상관인 네가 책임져야지. 거기다 죽은 사람을 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몰래 묻었잖아. 죽은 관병들의 분은 풀어 줘야지. 그러니까 맞자.”
“그들이 어사님과 무슨 관련이라도…… 살려…… 으악!”
현령은 살려 달라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다시 시작되는 매질에 비명만 질렀다.
강진은 몽둥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며 말했다.
“물론 나와는 눈곱만큼도 관련이 없지. 하지만 나는 대인이거든. 대인은 힘없는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려야 하는 거고. 죽은 자들에게 뭔 칭송을 받을까마는, 그들의 분을 풀어 주면 죽어서 천당 가지 않을까?”
사후 세계를 조금도 믿지 않는 강진이었다. 하지만 말은 술술 잘 나왔다.
“현령이나 되어 가지고 아랫사람들을 그리밖에 못 대하냐? 최소한 상벌은 분명히 해야지. 억울하게 죽은 수하들, 잘 수습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대로 파묻어?”
현령이 딱 한 대만 더 치면 죽을 수도 있을 때가 되어서야 강진의 매질은 멈췄다.
“잘 들어. 자리에서 물러나고 재산, 죽은 사람들의 가족에게 주지 않으면 넌 반드시 죽는다. 본관은 거짓말 안 해. 살려 준다고 해서 정말 살려 준 걸 보면 알겠지? 그리고 오늘 일에 대해서 입 벙긋해도 죽는다.”
강진은 초주검이 된 현령의 머리를 들어 올리며 다시 말했다.
“그냥 말로만 끝내겠지, 하는 생각은 버려. 본관은 이거면 이거, 저거면 저거, 확실하다.”
“으…….”
“알겠다는 대답으로 알겠다.”
강진은 현령을 그대로 내팽개치고 밖으로 나왔다.
* * *
“정화 동생.”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화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왜 그렇게 놀라?”
미영이 다가와 어깨를 쓰다듬어 주며 하는 말에 정화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언니.”
“뭐가? 미안해?”
“이제는…….”
이가장의 화원은 안채에 딸린 곳이고, 안채의 주인은 이제 정해졌다. 그리고 그 주인이 자신의 정적(情敵)이라 할 수 있는 미영이다. 이제는 자신의 뜻대로 화원을 가꾸지 못할 것이다.
“설마 이곳이 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미영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동생의 오라버니께서 돌아오면 동생이 이곳 주인이 될 텐데 뭐가 미안해?”
“언니…….”
미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생, 나를 너무 멀리할 필요는 없어. 나는 형제자매가 없잖아. 그래서인지, 동생이 나를 멀리하면 너무 외로운걸.”
“…….”
“그리고 누가 뭐래도 상공의 본부인 자리는 동생의 것인데 뭐가 그리 걱정이야? 이건 아버님도 확실히 말씀하신 거잖아.”
미영의 말에 정화는 그녀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종종 자신을 찾아와 살갑게 굴긴 했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과 같은 여자다. 첩 자리에 만족할 여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강진과 그녀의 관계는 무척 좋았으며, 곽노와 그 부인의 수양딸이 되었다. 이제 임신까지 하여 이제원의 관심까지 독차지하였으니 더 이상 자신에게 이런 가식을 떨 필요가 없는데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정화가 대꾸가 없자 미영이 다시 말했다.
“설마 내가 동생의 자리를 넘본다고 생각하고 경계하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나는 이걸로도 충분해. 거기다 이씨 집안은 손이 귀하니 동생도 상공과 혼인을 하여 아이를 낳으면 나 같은 건 상대도 되지 않을걸.”
“…….”
“그리고 그런 걸 떠나서, 나는 동생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상공도 동생을 잘 돌봐 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는걸.”
정화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그러고 싶으신 거예요?”
“그럼. 어차피 이제 평생을 얼굴을 마주해야 할 텐데, 동생을 질투라도 해야 할까?”
미영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아이가 태어나면 동생도 이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거야. 같이 돌봐 주지 않을 생각이야?”
“아니에요, 그건…….”
“서로 의지하고 지내면 좋잖아, 안 그래?”
정화는 미영을 살폈다.
거짓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얼굴. 오히려 간절히 그러기를 바라는 얼굴이었다.
“언니만 좋다면 자주 찾아올게요.”
“매일 오는 게 좋지. 같이 아기 이야기도 하고 상공 흉도 보고 말이야.”
정화가 수줍은 듯이 웃자 미영도 마주 웃었다.
둘은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벌써……. 전 이만 돌아가 볼게요. 미아가 저를 찾을 거예요.”
“다음에는 미아도 데리고 와. 나야 동생이 많이 생기면 좋은걸.”
“그렇게 할게요, 언니.”
정화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별채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미영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화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미영은 손을 내리고는 표정을 굳혔다.
‘그래, 이렇게 지내는 게 좋겠지.’
사실 어떻게든 서문 남매를 이가장에서 떠나게 만들려고도 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이제원은 물론이고, 곽노 부부도 서문 남매를 아꼈다.
서문훈은 정 총관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고 있었고, 서문미는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정화 역시 온화한 품성으로 칠덕네가 무척 좋아했다.
그만큼 이가장에서 그들을 미워하게 만들기는 무척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강진의 유일한 친구라는 서문우람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를 한 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시어사라고 했으니 평범치 않은 사내일 것이다. 거기에 이가장이 그에게 투자를 하는 순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일 터.
“친하게 지내는 게 더 좋아. 어차피 이가장의 장자는 이 아이이니.”
미영은 이미 수십 년 앞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재색을 겸비한 여인들이 즐비한 광인루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여인이었다.
* * *
강진과 곽노 그리고 향아는 사천성의 성도(成都)에 이르렀다.
“사부, 다녀올게요.”
객잔을 잡은 후 하는 강진의 말에 곽노가 대답했다.
“조심해라. 상대는 태수다. 함부로 나서면 안 돼.”
“그런 건 제가 더 잘 알아요. 기다리고 계세요.”
강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객잔을 나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사천성에서는 황제 못지않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머무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수가 있는 관청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잠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관청에 잠입한 강진은 자객보로 태수의 집무실을 찾았다.
‘응?’
강진은 급히 건물 뒤로 몸을 숨겼다. 아무런 생각 없이 움직였다가 들킬 뻔했다.
‘무림인?’
태수의 집무실 앞을 오가는 사람들은 무림인들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고수.
군과 관에 은근히 고수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물며 태수가 머무르는 관청이다. 일하는 관인들 중에도 고수가 있을 터고, 태수가 따로 호위 무사를 데리고 있을 법도 했다.
‘몇몇은 천랑대 무인 정도는 되겠군.’
상당한 수준이라 하나 강진이 봤을 때는 모두 오 초 내로 제압할 수 있는 수준. 다만 숫자가 열이 넘었기에 은밀히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루 종일 지키고 있지는 못할 터이니, 저 정도 숫자의 고수들이 더 있다는 건데…….’
아무리 태수라지만 저만한 고수 스물 이상을 데리고 다니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가만. 그러면 혹시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는 건가?’
한 성의 최고 지휘자를 제압, 협박하는 골 빈 무림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미치면 뭘 못 하겠는가?
곧바로 태수를 만나려 했던 강진은 계획을 변경했다.
‘일단은 저놈들이 누군지 알아야겠는데.’
움직이고 있는 고수들의 얼굴을 기억하고는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강진은 객잔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잘 끝냈냐?”
곽노가 궁금한 듯이 묻는 말에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요. 잘됐죠, 뭐. 기왕 성도에 온 김에 이것저것 구경이나 좀 하세요. 드시고 싶은 음식도 마음껏 드시고요.”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늦어도 열흘이면 되지 않을까요?”
열흘이라는 대답에 곽노는 질색을 하며 말했다.
“구경도 좋고 진미도 좋지만 그래도 빨리 가야 하지 않겠냐? 미영이가 임신을…….”
곽노는 말을 하다 말고 강진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혹시 너, 애기 때문에 늦게 가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강진은 마음속 깊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자식이 태어난다는 것.
괜찮다고, 잘될 거라고 수십수백 번 생각했지만 두려워한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예 미영이 얼굴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
“아니래도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강진은 그런 생각을 부정했다. 결정한 일이고, 결정했으니 딴생각은 필요 없다고 다짐했다.
곽노도 그런 강진의 성격을 알기에 그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하지만 강진이 언제부터 무시하고 넘어가지 못할 일이라는 이유로 남의 일에 간섭을 했던가?
“정말 아니에요. 꼭 확인해야 할 일인 것 같아서요. 몰랐다면 모를까, 알았으니 확인해 봐야겠어요. 죽은 사람이 덜 억울하게요.”
강진이 다시 말하자 곽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미영이를 얼른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런 변화는 강진에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임신 문제만 아니라면 오히려 부추겨야 할 일이었다.
“하나도 조심, 둘도 조심, 셋도 조심이다.”
“사부도 늙었네요. 했던 이야기 계속 하는 거 보면.”
“늙으면 걱정만 든다더니 그런가 보다.”
곽노는 강진의 말을 인정하고는 향아를 보며 말했다.
“네가 도와줘야지. 그래야 빨리 끝낼 거 아니냐?”
향아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강진이 말했다.
“향아는 사부랑 있어야 해요. 광동성도 아니고,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쩌려고요.”
향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저도 어르신 덕분에 호강 한번 해 보겠네요.”
일취월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있는 강진이었다. 그가 못 당할 정도의 무인이라면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결과는 똑같다.
강진은 이미 그런 수준에 이르렀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곽노를 보호하여 곽노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판단.
일이 해결되자 강진은 다시 관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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