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11)
관존 이강진 (111)
함정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드리겠습니다.”
태수가 눈물에 콧물, 거기에 침까지 흘리며 울부짖는 걸 보고 강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태수가 안쓰럽다거나 마음이 편치 못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품위 없게시리.’
복날 개 패듯이 패긴 했지만 상대는 태수다.
세 번의 과거를 뚫어 중앙에서 임명하는 관리가 되고, 십 년이 넘는 경력을 쌓아야 간신히 현령이 된다. 그렇게 또 수십 년을 굴러야 태수가 될 수 있다.
그것도 이론만이다.
실질적으로는 중앙에 줄이 있어야 하고, 그 줄을 바탕으로 황제에게 눈도장을 받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매 시각 달라지는 황제의 마음을 잘 읽어 신임을 얻은 자만이 될 수 있는 자리가 태수다.
수십의 현령을 거느리고 성에 따라서 몇만이나 되는 관병들의 수장인 자가, 너무 품위가 없었다. 고작 구타에 못 이겨 저런 모습이라니.
‘아첨과 뇌물로 올라온 자로구먼.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겠지만.’
강진은 냅다 발길질을 하며 으르렁거렸다.
“비명 지르면 또 맞고 시작한다.”
“으!”
태수는 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두 손으로 막았다.
그런 그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한 번만 묻는다. 허튼소리하거나 시간을 끌려고 하면 그대로 죽는다. 믿어도 좋다.”
태수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묻는 말에 빠르고 정확하게만 대답하면 반드시 살려 준다. 믿지 못해도 어쩔 수 없지만, 네 목숨 하나 거두는 건 내겐 일도 아니야.”
태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은 석집현의 일을 이야기하고는 물었다.
“자초지종을 그대로 설명해라. 생각은 내가 할 테니 일의 가감 없이 그대로만 말하면 돼.”
태수의 입이 열렸다.
일각 가까이 태수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사실대로 모두 말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정말 모두 사실대로 말한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발…….”
강진은 다시 태수의 아혈을 짚었다. 그리고 다시 구타를 시작했다.
태수는 맞으면서도 억울한 눈으로 강진을 보다가, 이내 고통에 눈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강진은 구타를 멈추고 그의 아혈을 풀어 주며 말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봐.”
“으…… 아까 다 말씀드렸습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비명을 참으며 하는 태수의 말에 강진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을 거야. 네놈이라면 그랬을 거라는 걸 믿어. 그러니 다시 한 번 말해 봐.”
태수가 다시 입을 열었고, 강진은 아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비교했다.
만약 그가 거짓말을 했다면 뭔가 다른 부분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품위 없는 놈이라는 생각처럼 거짓은 없었다.
‘뭐든지 세 번은 확인해야 한다고 하던데.’
강진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지 고민했고, 태수는 그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애원했다.
“정말입니다. 또 말해도 조금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사실이 그러니까요.”
“좋아, 믿어 준다.”
얻어야 할 것을 얻은 강진은 몸을 돌렸다.
태수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찰나, 강진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
강진은 그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깜빡했는데, 이대로 갈 수는 없겠다.”
“살려 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살려 줄 거야. 하지만 나를 본 그 눈과 내 목소리를 들은 그 귀, 나에 대해 지껄일 그 입 그리고 나에 대해 쓸 그 손은 어찌해야 하지 않겠냐?”
태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절대 아닙니다. 누구신지는 몰라도 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고, 말하지도 않을 겁니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만약이란 게 있잖아. 어떤 놈이 나처럼 너를 패면 너는 그대로 말할 것 같거든. 너 그런 놈이잖아.”
“그런 말도…….”
“나도 그냥 가고 싶어. 하지만 넌 태수잖아. 그 권력이라면 천하를 한번 뒤집어 볼 수도 있는데 그냥 두고 간다고? 위험하지. 너무 위험해.”
태수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강진은 그의 아혈을 다시 짚었다. 그러고는 손을 써 그를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근맥을 손상시켜 팔다리를 쓰지 못하게 했다.
강진은 이제 사람이라 할 수 없는 태수를 별다른 표정 없이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다 너는 우두머리잖아. 책임을 져야지. 억울하게 죽은 관병, 반병신이 된 현령 그리고 죽은 무인들. 또 이제 쫓겨날지도 모르는 많은 관원들. 무엇보다, 이 일에 휘말려서 중독당한 사부님에 대한 책임.”
강진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이제는 듣지 못하지? 이 말을 해 주고 손을 썼어야 했는데. 내 실수다.”
강진이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어린놈이 손 속이 과하구나. 그리고 기왕 손을 쓸 거면 깨끗하게 죽이지, 왜 살려 두나?”
천장에서 들리는 소리에 강진은 등골이 찌릿함을 느꼈다.
콰다당.
강진은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
혈을 짚어 놓았던 관병들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걸 보며 강진은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벌써 도착한 것인가?’
강진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절정 고수라 하더라도 자신의 이목을 속이지는 못한다. 듣는 훈련은 무공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
신교의 교주도 자신의 이목을 속이진 못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자신의 이목을 속인 것이다.
‘자객도 있는가?’
전문적으로 자객 수련을 받은 무인이라면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당문이라는 곳은 명문 정파 중 하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객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각은 나중이었다.
잘못되었으니 일단 몸을 빼고 상황을 파악하기로 하고, 강진은 몸을 날렸다.
신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질 생각이 없는 강진이었다. 엄청난 내공과 근육이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몸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마음은 앞에 있는데 몸이 따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쯧쯧, 보아하니 경험이 부족한 놈 같은데, 어쩌다가 너 같은 놈에게 화수대가…….”
그 순간 복면을 한 흑의인이 강진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 곧바로 십여 명의 같은 복장을 한 무인들이 담장을 넘어왔다.
‘독인가?’
강진은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자각하고는, 자신이 중독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런 낌새도 없었다. 적어도 용독을 하려면 어느 정도 거리까지 다가와야 하지 않는가?
‘얼마나?’
강진은 급히 천단공을 운기하여 몸 상태를 살폈다.
‘삼 할? 어쩌면 이 할?’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것이었다.
눈가에 주름이 잔뜩 낀 걸 보니 노인이 분명한 듯한 흑의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네 손을 빌려 태수 놈도 처리하려 했는데……. 손을 쓸 거면 확실히 써야 하지 않겠느냐? 어쩌겠느냐, 지금이라도 손을 써 주겠느냐?”
“어쩌지? 이미 살려 주기로 약속했는데. 본관은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거든.”
“손을 쓰든 안 쓰든 너는 살인범으로 지목될 것이다. 어디서 온 놈인지는 모르지만, 네놈 때문에 네놈이 온 곳은 초토화되겠구나.”
강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관인이었다. 용모파기가 전 성으로 퍼지면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아버지가 관과의 관계를 위해 수만금을 쏟아부었을지라도 자신이 태수 살인죄를 뒤집어쓰면 손쓸 방법이 없을 터였다.
이제는 자신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가장 전체에 큰 타격이 올 것이다. 특히 아버지에게는 반드시 문제가 생길 터였다.
‘여기서 죽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현행범으로 끝나고 만다.’
강진은 딴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탈출해야 했다.
자신이 여기서 잡히지만 않으면 증거가 부족하니 살인범이라고 우기지 못한다. 무조건 빠져나가야 한다.
“많이 어지러울 텐데 제법 버티는구나.”
“노인장 말대로 어차피 그렇게 될 거라면 알고나 죽읍시다. 어떻게 알았소,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죽으면 다 알게 되지 않겠냐?”
“알고 죽는 게 마음 편하지 않겠소?”
노인이 흑의인들에게 눈을 돌리자 사내 하나가 나오며 복면을 벗었다.
“너는?”
강진은 그자를 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복면인은 바로 이명계였다.
“표물에 대한 비밀을 지켜야 하는데 미안하게 됐다. 하지만 사천에서 그 약병을 표물로 보내다니, 성도 표국이 당가의 사업체 중 하나라는 걸 몰랐던 네 짧은 경험을 탓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 그래서였군.”
강진은 이름표도 없던 약병들이 당가가 공통적으로 쓰는 약병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 강진이 재수가 없었다.
이명계는 그때 본가에서 연락을 받아 관청에서 당가 무인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객잔에 들른 것이었고, 거기서 표사와 강진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강진의 표물인 그 약병을 당연히 알아봤고, 당가의 무인들은 그것들을 절대 몸에서 떼 놓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본가의 무인들을 살해한 놈이 누군지 안 것이다.
그는 급히 본가에 연락을 취하고 근처에 있던 당문 고수들을 불러모았다. 당문오수 중 하나인 당문수가 성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시간에 맞춰 나타날 수 있었다.
이명계에겐 다행이었고 강진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표국의 전력으로는 화수대를 전멸시킨 강진을 절대 상대하지 못했을 터였다.
“자, 이제 너도 노부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가서 태수를 죽이고 너도 곱게 죽어라. 그러면 시체는 곱게 남겨 주마.”
절망적인 상태였지만 강진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쓸 수 있는 힘은 분명 삼 할이 안 되었지만 천단공이 익히기 어려우면서도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있었다. 천단공은 육체가 버틸 수 있는 한계 내에서 폭발시킬 수 있는 힘을 축적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쓸데없이 말을 붙이고 하며 힘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이곳이 바로 성도이고 관청이라는 점.
이곳만 벗어나면 관병들의 눈에 띌 테고, 또 관청을 벗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을 터. 놈들도 사람 많은 곳에서는 행동에 제약을 받을 터였다.
강진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있자 노인은 그제야 강진에게 뭔가 딴 수가 있다는 걸 깨닫고는 급히 손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강진의 몸이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올라갔다.
축적한 힘을 폭발시킨 것이다.
“아아아아아!”
강진은 관병들이 몰려와 주길 바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들의 포위망을 뚫고는, 담 하나를 날듯이 넘었다.
몸이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달리는 것 하나는 잘하지 않았는가?
운만 조금 따라 주면 승산이 있었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은 강진은 담 넘어 풍경에 그만 진기를 이어 가지 못할 뻔했다.
관병들이 자신을 바라봐 주길 바라며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많은 관병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강진은 그제야 그들이 자신의 이목을 어떻게 속였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멀리서 독을 쓴 것이다. 관청 전체를 목표로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자신이라 하더라도 눈치챌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똑똑한 놈들!’
보통 사람이라면 당문의 무인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은 그러지 않았다.
강진이 생각하기에는 그들은 아주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썼다. 이렇게 훌륭히 먹혀든 것이 그 증거다.
‘앞으로 전혀 주저하지 않아도 되겠군.’
똑똑하지만 죽이면서도 조금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될 놈들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강진은 신법을 전개해 계속 움직였고, 당문의 무인들은 강진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