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13)
관존 이강진 (113)
“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희망 어린 눈빛으로 묻자 손을 든 사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상한 건지 아닌 건지는 몰라도, 마을에 거지새끼들이 몇 살고 있는데 수상쩍은 행동을 하덥디다.”
“거지요?”
“네. 어린놈들인데, 괜히 뭔가 숨기는 눈치를 보이는 것 같고, 뭐 그랬습니다.”
당건우가 촌로를 보며 물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모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촌로는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그 아이들은…….”
그러고는 사내를 보며 소리쳤다.
“정가야, 지금 아두의 아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냐?”
“맞소. 그놈들 이야기하는 거요.”
“이놈아, 그 아이들이 뭐가 수상해? 일이 없어서 쫄쫄 굶고 있는 아이들인데.”
정가는 촌로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도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보자 계면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협객 나리들이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야기하라지 않수. 내 눈에는 그놈들이 이상하게 보이더구먼.”
“그러니까 뭐가 이상하냐고.”
정가는 뭐가 이상한지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을 하면 자신의 속셈을 알고 나눠 먹자고 할 놈들도 있고, 몹쓸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놈들도 있을 것이다.
‘한때는 마을에서 알부자 소리 듣던 아두야. 또 알아? 아두 놈이 숨긴 돈을 녀석들이 찾아냈을지도.’
정가는 은두를 내밀며 음식을 사 간 아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은두를 받고도 고작 밥 몇 덩이에 고기 조금 주었지만, 끽소리도 안 하고 받아 갔다.
그건 분명 그런 게 더 있을 거라는 뜻이었다.
정가는 의문점을 제기해 저 협객들이 아이들을 조사한다고 갔을 때 집을 뒤져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본전이었다. 또 아는가? 정말 아이들이 그 살인범과 연관되어 있기라도 하면 소 열 마리를 받게 될지.
어찌 됐든 정가의 말에 당건우는 촌로를 보며 물었다.
“오지 않은 사람이 누굽니까?”
“별거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아비가 급살을 맞아 고아가 된 아이들이 있는데 지금은 거의 거지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신경 쓸 애들이 아닙니다.”
“그래도 한번 보고 싶군요. 혹시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결국 촌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먼저 앞장을 서자 당건우와 당건전이 따라갔고, 또 마을 사람들도 우르르 그 뒤를 따랐다.
“아일아!”
아일의 집에서 도착한 촌로는 큰 소리로 아일을 불렀다.
끼이.
나무 문이 조금 열리며 아일이 고개를 내밀었다.
“촌장님.”
아일은 촌로를 발견하고는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오더니 허리를 꾸벅 숙였다.
마을 사람들 중 가장 많이 불러 주고, 또 일한 값을 가장 후하게 쳐주는 사람이 촌장이기 때문이다.
“그래, 잘 지냈느냐?”
“네, 촌장님. 그런데…….”
아일이 많은 사람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촌로가 말했다.
“아! 여기 무사분들이 몇 가지 물어보실 게 있다는구나. 그냥 솔직하게만 대답하면 된다.”
촌로가 당건우를 보자 그가 물었다.
“꼬마야, 혹시 낯선 외지인을 보지 못했느냐?”
“못 봤는데요.”
“혹시 수상한 행동을 하거나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했던 사람은?”
“집에서 자주 나오질 않아요. 며칠 만에 밖으로 나온 건데요.”
아일의 대답에 당건우는 크게 실망했다. 결국 여기에는 살인범이 오지 않은 것이다.
그때 누군가 그의 허리를 찔렀고, 돌아보니 당건전이 고개를 미미하게 흔들고 있었다.
“왜, 뭐라도 발견했어?”
당건우가 작게 속삭이는 말에 당건전도 작게 대답했다.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입니다.”
당건우는 고개를 돌려 아일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당건전의 말대로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사람이 질문을 받으면 당연한 대답이라 하더라도 약간의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거지 소년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당건우는 아일에게 물었다.
“집 안을 한번 살펴봐도 되겠느냐?”
“우리 집이에요. 보셔서 뭐하시게요?”
당건우는 난처했다.
여태 이런 적이 없었다.
자신들이 뭘 원하면 사람들은 최대한 협조를 해 줬지,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성인이었다면 약간의 협박 내지는 재물로 구슬려 보겠지만, 상대는 아이였다.
그때 당건전이 품에서 은자 한 덩어리를 꺼내 아일에게 보이며 말했다.
“너희의 안전 때문이란다. 아저씨들을 도와주면 이걸 주마.”
아일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몇몇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자신들도 의심스럽다며 데려가서 도와주는 시늉을 했더라면, 저 은덩어리가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차라리 받고 보여 줘라. 그게 의심이 덜 가는 거다.’
벽 틈에서 모든 걸 보고 있던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전음이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전음은 고급 공부 중 하나였다. 지금 몸 상태로는 보낼 수가 없었다.
모두가 아일이 저 은자를 받고 집을 보여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일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거지가 아니에요. 필요 없어요.”
당건우와 당건전은 눈빛을 교환했다.
‘뭔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집을 바로 수색할 수가 없었다. 천하의 당가가 아이를 어찌하지 못해 강제로 집을 뒤졌다는 불명예는 안을 수 없으니까.
그때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놈들,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며칠 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어제 나를 찾아와 밥과 고기를 사 가지 않았느냐?”
정가였다.
정가는 거리낌 없이 아일에게 다가가 멱살을 움켜잡고는 소리쳤다.
“살인범을 숨겨 주고 있는 거 아니냐?”
“살인범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긴! 뭔가 수상했다. 그렇지 않다면 너희 거지새끼들이 그런 돈이 어디서 났겠느냐?”
“안에는 우리밖에 없어요.”
“그럼 돈은 어디서 났냐? 말해 봐라.”
아일은 멱살을 잡힌 채로 앙칼지게 소리쳤다.
“아저씨가 뭔데 나한테 대답하라고 하는 거예요? 나랑 뭔 상관이 있다고!”
“이 새끼가!”
정가는 그대로 아일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고는 마구 밟아 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고, 당건우와 당건전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을 돕겠다고 나서서 정가와 사이가 뒤틀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는 이 마을에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의 땅을 빌려 부쳐 먹는 사람도 몇 되었다. 또 당건우와 당건전은 어떻게든 저 집을 뒤져 봐야 했다.
그렇게 정가는 마음 놓고 아일을 짓밟았다.
아일은 그런 순간에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이 새끼야! 네가 뭔데 나를 때려? 네가 나한테 밥 한 덩어리 공짜로 줘 봤어? 아니면 일거리를 주기라도 했어? 네까짓 게 뭔데 나를 때려!”
“이 새끼가!”
정가가 더욱더 흥분해 아일을 짓밟아 대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모두의 이목이 쏠리는 순간, 아이와 아삼이 뛰쳐나오며 정가에게 달려들었다.
“우리 형 때리지 마!”
“이 거지새끼들이!”
정가는 손을 휘둘러 아이, 아삼을 단숨에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아이들을 번갈아 밟기 시작했다.
“내 동생 때리지 마!”
아일이 무슨 괴력이 났는지, 정가의 발을 붙잡고는 소리쳤다. 그러고는 입을 크게 벌려 그의 발목을 물었다.
“으아아악!”
정가는 크게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아일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일은 피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저 새끼를!’
모든 걸 지켜보던 강진은 살기 어린 눈으로 정가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가부좌를 튼 자세를 풀지는 않았다.
강진은 생각했다.
一. 내가 나간다?
二. 도움 될 게 없다. 나는 죽고, 아이들 역시 좋지 않은 꼴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
三. 나가지 않는다?
四. 애들이 심하게 당할 것이다.
五. 하지만……. 죽지만 않으면 된다. 죽지만 않으면 내가 고쳐 줄 것이고, 불구가 되더라도 평생을 책임져 준다.
六. 이게 가장 효율적이고 현 상황에서는 옳은 판단이다.
강진은 그리 생각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웠다. 꾸물꾸물하는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가는 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몸이 이렇게 됐지만 최소한 저 정가는 짓밟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진은 참아 냈다. 아니, 무시할 수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는 무사해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이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이놈, 솔직히 말해라! 네놈들이 돈이 어디서 났냐? 살인범을 본 거지?”
축 늘어진 아일을 잡아 올린 정가가 소리쳤다.
“쿨럭쿨럭.”
아일은 입에 가득 머금은 피를 토해 내며 말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거야…… 어차피 죽을 거…… 마지막으로 실컷 먹고 죽으려고 그랬다. 가서 뒤져 봐, 이제 돈은 없으니까, 이…… 새끼야!”
마지막으로 아일이 피를 가득 머금은 침을 뱉었다.
얼굴에 침을 맞은 정가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아일을 때리려 할 때, 누군가 소리쳤다.
“그만하게! 자네는 관원도 아니니 사람을 때릴 수 없네. 죄가 있으면 포도청에 가서 죄를 받아야지.”
정가가 고개를 홱 돌리니 촌로가 노기 어린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내 형편이 어려워 녀석들을 도울 수는 없었지만, 괴롭히는 것까지는 참을 수가 없구먼! 그만둬라, 이놈!”
촌로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도 조심스레 촌로의 말에 동조하며 수군거렸다.
“이…….”
정가는 촌로에게 한마디 하려 하다, 촌로의 가족들이 자신을 쏘아보는 걸 보며 아일을 내려놨다.
촌로는 아일을 부축하며 말했다.
“아일아, 그냥 보여 주면 되는 걸 왜 그리 고집을 부리느냐? 저 은자라면 앞으로 몇 달을 버틸 수 있는데.”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도움을 받았지만, 저도 일을 해 드렸잖아요. 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돈을 받으면 정말 거지가 되는 거잖아요. 저희는 고아지, 거지는 아니에요.”
촌로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일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주며 말했다.
“그래도 고집 부려야 할 때 부려야지. 나쁜 놈들을 잡으러 오신 분들인데.”
촌로가 말을 하며 무인들을 보았다.
그 눈빛이 마치 너희는 왜 말리지 않았냐는 책망 어린 눈빛 같아, 당건우와 당건전은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사실 그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다른 곳에서 어린아이를 때리는 사람을 보았다면 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사안이 너무 중요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었지만, 결국 불편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겨 집 안을 살폈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악취에 미간을 찡그렸다.
거지 소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 안은 엉망이었다. 천장 모서리마다 거미줄이 잔뜩 끼었고, 걸레보다 못한 천 조각들이 굴러다녔다.
악취도 그렇고, 의심할 만한 아무것도 찾지 못한 당건우는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있을 줄 알았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의 말도 안 되는 똥고집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당건우는 밖으로 나오면서 촌로에게 은자 두 냥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로 아이를 치료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로써 소동은 끝났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자 정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돌아갔고, 마을 사람들도 흩어졌다.
촌로가 집안사람을 시켜 아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려 할 때 아일이 말했다.
“저희는 여기 있을 거예요.”
“상처가 심하다. 의원을 부를 테니…….”
“필요 없습니다. 이런 건 침 몇 번 바르면 다 나아요. 그 돈은 저희 거죠?”
촌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은자 두 냥을 건네주려 하자 아일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가지고 있어 봤자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차라리 촌장님이 그걸로 저희에게 먹을 걸 사 주세요. 일거리가 생길 때까지 살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 이거면 충분하겠구나. 그런데 정말 우리 집에 가지 않을 테냐?”
“아뇨. 집이 더 편해요.”
“알았다. 먹을 건 바로 가져다주마.”
촌로의 식구들마저 돌아가자 아일은 동생들을 챙겨 집으로 들어왔다.
천장 위에 있는 강진이 뭐라 말할 줄 알았는데 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일 형제는 그렇게 쓰린 상처를 참으며 잠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