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14)
관존 이강진 (114)
각성
‘다 됐다!’
중독되기 전보다 더 강력한 힘을 느끼며 강진은 눈을 떴다.
당문의 무인들이 다녀간 후 이틀이 지난 시간이었다.
강진은 약하게 장력을 날려 구멍에 잔뜩 낀 거미줄을 제거하고는 밑으로 떨어졌다.
“아저씨!”
아일 형제들은 반갑게 강진을 맞이했다.
“배고프시죠?”
아일이 따로 챙겨 둔 음식을 강진에게 내밀었다.
강진은 고개를 숙여 음식을 바라보았다.
식은 밥 덩어리와 쉰내가 살짝 나는 나물, 식어서 하얀 기름이 굳은 고기 조각들이었다.
사흘을 굶은 상태였다.
강진은 굶주림에 익숙지 않았고, 그런 걸 경험하려 하지도 참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건 이레를 굶어도 먹지 않을 음식들이었다.
그러나 강진은 손을 뻗어 밥 덩어리를 잡았다.
절대 먹지 않을 음식들.
하지만 강진은 위에서 독기를 빼내면서 아일 형제를 자신의 사람, 식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들은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자신을 숨기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 보상을 받아야 했다.
강진은 식은 밥 덩어리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식구(食口)라는 거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자신도 먹을 수 있다. 아니,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서문우람네서 거친 음식은 충분히 경험했지만, 그래도 거기는 나름 깨끗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이건 차가운 껄끄러움이 입안을 맴돌아 잘 넘어가지 않았다.
혓바닥에 닿을 때마다 역함이 올라왔지만, 강진은 생고기를 씹듯이 이를 놀리고 부서진 내용물들을 꾸역꾸역 식도로 밀어 넣었다.
강진은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고, 성격은 이기적이라 자신에게 해될 건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성격만큼이나 주고받는 게 확실한 사람이다.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들이다. 먹어야 아일 형제들과 말을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음식을 다 씹어 넘긴 강진이 입을 열었다.
“왜 이야기 안 했냐?”
“먹을 걸 사 주셨잖아요.”
“그거면 된 거냐?”
“뭐가 더 필요해요?”
“내가 나쁜 놈이래도 먹을 것만 사 주면 되는 거냐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저씨가 아무런 대가 없이 처음으로 먹을 걸 준 사람이에요. 쓰레기 음식도 아닌 돈을 줘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해 준 사람. 그런 아저씨가 왜 나쁜 사람이에요?”
“…….”
자신에게는 쓰레기 같은 음식이어도 아일 형제에게는 제대로 된 음식이었나 보다.
“입구에 거미줄, 머리 잘도 썼더구나.”
아일은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거미를 잡지 않는 한 금방 거미줄을 쳐요. 거기가 먹이가 제일 잘 걸리나 봐요. 그런데 아저씨.”
“왜?”
“사람을 죽였어요?”
아이의 물음에 강진이 반문했다.
“그렇다고 하면?”
“정말요? 정말 사람을 죽였어요?”
“죽였지.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왜, 후회되냐, 나를 살려 준 게?”
강진의 물음에 아일이 그의 눈을 직시하며 물었다.
“아저씨, 나쁜 놈들 죽인 거죠?”
강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죽일 놈들 죽인 거 맞지?’
강진은 금세 결론 내렸다.
죽인 놈들은 모두 죽일 놈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죽여야 했다.
“제 말이 맞죠, 아저씨?”
아일이 확인하듯이 다시 묻는 말에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포졸이기도 하고 포도대장이기도 하다. 내 직업이 바로 나쁜 사람들을 옥에 처넣는 일이지. 네 말이 맞다. 나는 나쁜 놈들을 잡아 죽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아일 형제는 기뻐했고 강진은 그들의 말에 묘한 안도감을 얻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그걸 아이들에게 확인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받을 이유가 또 생겼다.
강진이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아일이 먼저 말했다.
“아저씨, 우리도 데려가 줘요.”
“왜? 밥 먹고 싶어서?”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단지 밥을 먹고 싶어서냐?”
“배불리 먹는 건 좋아요. 그건 항상 옳은 일이에요. 그리고 아저씨를 따라다니면 저도 나쁜 사람들을 잡는 사람이 될 수 있잖아요.”
강진은 그들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의현에는 굶주린 사람이 없다. 아니, 있어도 이 정도로 굶주리고 사는 사람은 없었다.
순간 머리에서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이유를 깨달았다.
신의현에는 왜 그런 사람이 없는지를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굶주린 자에게 먹을 걸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먹고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를 받게 만들었다. 시장에서는 흑사회 놈들에게 뺏기지 않게 만들었고, 그만큼 사람들은 더 여유로워졌으니 남들에게 시선을 돌릴 수가 있었다.
‘대인이 하는 일이지, 이거?’
대인이 되려고 기를 쓸 필요가 없었다. 이미 자신도 대인이었다. 최소한 신의현의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이 녀석들도 우리 현에 살았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까?’
강진은 문득 서문우람이 한 말을 떠올렸다.
“대인? 아!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들의 힘에 닿지 못할 수도 있겠지. 천자께서도 모든 백성들을 살피지는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최소 내가 그런 마음을 품고 실행에 옮긴다면 그래도 조금은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서문우람의 말이 지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깨달은 걸 놈은 그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건가?’
확실히 잘난 놈이었다. 녀석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배워야 할 걸 뽑아 먹어야 했다.
‘이 잘난 놈은 어디서 뭐 하는 거냐.’
강진은 서문우람이 걱정되었다. 벌써 일 년 가까이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천에 있다는데, 설마 녀석도 휘말린 건 아니겠지?’
현령이, 태수가, 그리고 암기와 독을 사용하지만 명문 정파인 당문이 이 일에 왜 이리 무리수를 쓰는지 알게 된 강진이었다.
강진은 어쩌면 이 일에 서문우람이 휘말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아저씨?”
생각에 잠겨 있는 강진을 아일이 불렀다.
“응, 왜?”
“아니요. 아무 말씀도 안 하셔서요.”
“너희에게 뭔 상을 줄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일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안 주셔도 돼요. 이미 먹을 걸 주셨는걸요. 그리고 올해는 무사히 넘길 식량도 생겼고요.”
“그건 놈들이 준 거지, 내가 준 건 아니지. 다만…….”
당장 아일 형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강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아저씨는 일 좀 봐야겠다. 그동안 촌장이 너희를 돌볼 거다.”
강진은 아일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뭔가가 필요하면 그에게 요구하면 된다. 그의 눈치를 볼 거 없다. 내 가기 전에 그에게 말을 하고 갈 것이니.”
“어디 가시게요?”
“잘 쉬었으니 나쁜 놈들 잡아야지. 나쁜 놈들 다 잡아 처넣고 찾아오마. 그때 너희는 나를 따라가는 거다.”
“정말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사람이 거짓말하면 안 되지.”
강진은 아일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다시 올 때는 깨끗한 곳에서 좀 보자. 청소도 하고, 목욕도 좀 하고. 냄새나서 죽을 뻔했다.”
아일이 씩 웃자 강진도 웃으며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필요한 게 있으면 촌장에게 떳떳하게 요구해라. 너희에게 돈을 좀 주고 가고 싶지만 너희는 아직 그걸 제대로 쓸 능력이 없어서 촌장에게 주고 가는 거니까.”
강진은 아이들이 뭐라 하기도 전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몸을 돌려 문을 열고는 물었다.
“그 정가라는 놈 집이 어디냐?”
* * *
“어이쿠!”
촌로가 깜짝 놀라며 방문을 닫으려는 순간, 바람이 확 불어 문짝을 날려 버렸다.
“아이고! 살려 주십시오.”
촌로의 외침에 두 아들 내외가 급히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뭔가를 발견하고는 순간 움찔하며 조심스레 촌로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촌장 맞지?”
“네, 맞습니다. 대왕님께서는 무슨 일로…….”
강진은 바닥에 질질 끌고 온 정가를 그의 앞에 던지며 말했다.
“일이 있으니 왔겠지.”
강진의 말에 촌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겁에 질려 떨었다.
‘이놈이로구나, 그 무사들이 찾던 살인범이…….’
촌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려움에, 그리고 또 자신의 앞에 내동댕이쳐진 정가의 상태를 차마 볼 수가 없어서였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데, 나 살인범 아니다.”
강진은 정가를 발로 톡톡 차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도 죽지는 않았어. 반병신이 되었을 뿐이지.”
“필요한 건 가져다 쓰시고 제발 사람만은 살려 주십시오.”
강진은 대답 대신 그에게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촌로가 이게 뭐냐는 눈빛으로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강진이 말했다.
“축하한다. 너는 오늘 재신을 만났다.”
“네?”
“열어 봐.”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여는 순간, 촌로는 두려움도 잊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머니 안에는 족히 두 냥은 되어 보이는 금원보와 한 냥짜리 은원보가 다섯 개나 있었다.
“대왕……님…… 이건…….”
촌로의 떨리는 목소리에 강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 양심이 여기 사람들을 살리고 재물을 불렀다.”
사실이었다.
아일 형제 중 누구 하나라도 불구가 되었다면 마을 사람들 모두를 불구로 만들어 버리려 했다. 자신이 아일 형제를 구하지 못했다는 거리낌 때문에라도 더 그랬을 터였다.
“그걸로 아일 형제들 배불리 먹이고 새 옷도 사 입혀. 집도 수리해 줘야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하고도 남을 테니 남은 건 당신이 쓰면 된다.”
“네네, 알겠습니다.”
돈을 주지 않아도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해야 할 입장이었다.
강진이 살기를 내뿜어 보이자 촌로는 물론이고 아들 내외까지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욕심 부리면 죽는다.”
“네네.”
“허튼수작을 부려도 죽는다.”
“네.”
“다음에 아이들을 데리러 올 때 그 아이들이 살이 안 쪄 있어도 죽는다.”
“네…….”
계속되는 협박에 촌로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 모습에 강진은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는 살기를 없앴다.
“대신 이야기한 걸 다 지키면 돌아왔을 때 상을 주지.”
촌로와 그의 식구들은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위아래로 주억거리기만 했다.
고개도 못 들고 그렇게 일각 가까이 있었지만 더 이상 말소리가 들리지 않자 촌로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강진은 사라지고 없었다.
촌로는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리에 일어섰다. 그러고는 아들 내외를 보며 말했다.
“당장 음식을 만들어서 애들 갖다줘라. 너희는 집수리에 필요한 것들 구해 오고.”
아들 중 하나가 물었다.
“아버지, 당장 신고해야 되지 않습니까?”
촌로는 그를 홱 쏘아보며 말했다.
“뭘로? 어느 괴인이 돈을 주면서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아들이 고개를 숙이자 촌로는 정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꼴 나기 싫으면 허튼 생각 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해라. 그게 오래 사는 길이야. 에효! 일단 의원부터 불러라. 저리 죽게 둘 수는 없으니.”
멀지 않은 곳에서 촌로를 지켜보고 있던 강진은 만족한 표정으로 신법을 전개했다.
방향은 당가의 본가가 있다는 덕양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