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15)
관존 이강진 (115)
무림과 관은 불가침의 관계라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무림에 사는 사람들은 관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국법이란 없고 오로지 힘의 논리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러던 시대에 관인의 신분을 가진 천재가 나타났다.
강호.
황실 감사기관인 추밀원의 책임자로 발탁된 강호는 황제의 절대적인 지지와 전폭적인 지원 아래 무림 말살의 계책을 세우게 되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구파일방은 물론이고 송인이 아닌 변방의 무림 고수들까지 죽이고 많은 고수들을 뇌옥이라는 곳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이후로 무림은 더 이상 관을 무시하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국법을 따르지도 않았다.
강호가 더 살았다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너무 빨리 죽었다. 하지만 걸출한 후계자를 남기는 데 성공했다.
포졸 진가수.
포졸의 신분을 가졌던 그는 두 번째 무림 말살 계략을 세웠다.
그는 무림인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서로 죽이게 만들었다.
무림의 힘은 그때 크게 약화되었다.
거기다 진가수 본인은 천하오존 중의 한 사람일 정도로 무공이 뛰어났다.
그는 힘이 약화된 무림에 경고를 하나 보냈다.
싸움은 무림인끼리. 일반인을 건드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살시키겠다고.
그때부터 무림은 감히 국법을 어길 수가 없었다.
무슨 집회라도 할라치면 반드시 관에 보고를 해야 할 정도로 감시했다.
그럴 정도로 무림인을 싫어하던 그가 무림을 말살시키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송나라 사람이 아닌 무림인들 때문이었다.
서하, 금, 거란에 세력을 잡고 있는 무림인들을 관병으로 막아 낼 수 없기에 중원무림의 맥을 자르지는 않은 것이다.
어찌 됐든 진가수가 활동하던 시기까지는 그가 세운 규칙을 어길 만한 담을 지닌 문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겉으로는 평화로운 시기에 힘을 길렀다.
관존이라 불렸던 진가수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활동하지 않은 지도 이제 이십 년이 흘렀다.
무림은 힘을 찾았다.
무림혈사로 불리기 전의 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각 문파의 세대가 바뀐 시간이었다.
관의 통제에서 벗어났고, 무림맹의 영향력도 늘어났다.
구파일방, 오대세가연합, 사파연합 등으로 나뉘었던 무림인들은 어느새 무림맹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무림맹을 이끄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사천련의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화산혈사를 조사하니 이뤄진 조치였습니다. 분명히 마교 놈들이 한 짓이 맞습니다.”
화산 장문 나경문이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하는 말에 그 누구도 먼저 나서지 못했다.
화산혈사란 광동에서 죽은 화산파 무인들의 죽음을 말하는 것.
화산파에서 조사를 했으나 흉수를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서 무림맹에서 나서서 조사를 하며 단서들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마교에서 무인들이 사천과 감숙 경계로 이동했다. 그 숫자는 절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고, 전투부대인 오천군의 무인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보고에 모두가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림맹은 인원을 재배치해야 했고, 화산혈사의 조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좌중에 침묵만 흐르자 나경문은 답답한 듯이 군사 제갈교과를 보며 물었다.
“군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지목을 당했고 이미 생각한 것이 있었으나, 사안이 너무나 컸다.
상대는 마교였다.
설마 그들의 잘못이라 하더라도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마교가 화산혈사를 일으켰다는 십 할의 확신이 없으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 장문인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조사는 끝나지 않아,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는 문제로군요.”
“병력을 이동시켰다는 게 무슨 뜻이겠소? 그야말로 뻔할 뻔 자가 아니겠소?”
“만의 하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들이 관련되지 않았다면 골치 아파지게 됩니다.”
나경문이 답답한 듯이 말했다.
“병력이 이동했으니 우리도 대응할 수밖에 없을 터. 이제 조사하던 인원까지 빼낸 상황에서 더 이상 무슨 진척을 바란단 말이오.”
곤란한 제갈교과를 구한 건 무림맹주이자 팽가의 팽척돈이었다.
“나 장문 말대로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오. 본 맹주는 무림 동원령을 내릴까 합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모인 사람들의 반응은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표정과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뉘었다.
무림맹은 평상시에는 각파에서 파견된 소수의 인원만으로 운영되고, 운영 방향은 충분한 의논을 수렴한 끝에 투표로 결정된다. 하지만 동원령이 떨어지면 달라진다.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들은, 자파의 전력 중 삼 할을 파견하고 단체 행동을 해야 했다.
인원이 늘고 명령 체계가 상하 수직 관계로 바뀐다. 최고 회의에서 결정된 건 무조건 따라야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남궁세가의 소가주지만, 십 년째 폐관에 들어가 있는 가주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가문을 이끌고 있는 남궁오휘가 입을 열었다.
“병력을 동원해 사천과 감숙으로 보내면 그야말로 싸우자는 신호를 보내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럼 아무런 방비도 하지 말자는 소립니까? 그러다 선제공격이라도 당해 밀리기 시작하면? 남궁세가는 안휘성에 있다고 너무 편하게 말씀하시는 것 아니오?”
공동파의 장로 윤상서가 네 속내를 짐작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교가 움직이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은 감숙과 사천에 있는 문파들이다. 그리고 남궁세가는 안휘성에 있으므로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응할 수 있었다. 윤상서는 그것을 꼬집은 것이다.
남궁오휘는 윤상서를 쏘아보며 말했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좀 신중하자는 말이지요.”
“흥, 마교가 자신들의 코앞에 있었어도 그렇게 말했을까?”
남궁오휘는 눈을 치켜떴다.
윤상서에 비교해서 배분이 아래라 하나 자신은 엄연히 세가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가 그걸 기억한다면 이리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나는 윤 선배가 그리 함부로 할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뭐라?”
다른 사람들이 없다면 한판 하겠다는 듯이 날뛰는 두 사람을 보며 제갈교과는 고개를 저었다.
윤상서가 말은 심하게 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교가 정말 전쟁의 의지가 있다면 같은 지역에 있는 곤륜, 감숙의 공동, 사천의 청성, 아미, 당가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된다. 윤상서뿐만 아니라 해당 문파들은 신경이 굉장히 날카로워져 있을 터.
“잠시만!”
제갈교과는 군웅이 편을 가르기 전에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맹주를 보며 말했다.
“맹주님, 신중해야 할 일이나 미뤄서도 안 될 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안건이 하나가 더 있으니 거수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팽척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수로 군웅에게 찬반을 물었다.
의외로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평화가 너무 길었다. 대부분의 무림 문파들은 폭발하듯이 세력을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강해진 것 배 이상으로 마교의 전력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이 회의가 끝나고 바로 동원령을 내리겠습니다. 군사, 다음 안건은?”
팽척돈의 말에 제갈교과가 말했다.
“신도(神盜) 지선양의 무덤에 대한 단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순간 군웅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신도 지선양.
그는 도둑이었다. 그것도 일 갑자 전에 활동했던 도둑이다.
강호에서 대도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는 가장 유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한 놈들만 턴다.
그는 자신이 공언한 대로 강한 놈들만 털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말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했고, 그 이후로 아무도 그를 경시하지 못했다.
그래, 나도 털렸다. 이제부터 너 잡으러 간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의 그 어떤 고수도 능가하지 못한다는 전설의 고수, 마교 교주 천명훈이 그에게 도둑질을 당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정말 천명훈이 그를 잡으러 천하를 누비고 다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진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천하에서 손꼽히던 고수들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에게 깨끗이 당했다는 걸 인정했다.
그가 무엇을 훔쳤는지는 모르지만 손꼽히던 고수들을 털었으니 그 가치는 어마어마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떤 이는 황금으로 산을 쌓을 수 있을 거라 했고, 어떤 이는 고수들에게 훔친 무공 비급들이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울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게 사실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있었다.
“내가 다 가지고 간다. 하지만 전생에 천만 명쯤 구한 사람이라면 내가 가지고 간 것을 되찾을 수 있겠지. 참으로 복 받은 놈이라면 말이지.”
지선양이 사라지면서 남긴 말.
그 탓에 많은 사람들이 그가 홀연히 사라진 후에도 그의 무덤을 추적했다. 하지만 성공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제갈교과가 그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군웅의 눈빛이 제갈교과의 입으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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