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17)
관존 이강진 (117)
대들보에 가만히 누워 있은 지도 사흘이 흘렀다.
‘향아도 이 짓을 했을까?’
강진은 등허리가 뻐근함을 느끼며 십 년 넘게 자신을 비밀 호위했던 향아를 생각했다.
이건 할 짓이 못 된다.
사흘 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더니 등허리가 뻐근해지는 건 두루째 치고 배가 고팠다.
사전에 말린 견과류를 챙겨 왔지만, 이건 굶주려 죽는 것만 면해 줄 뿐이지 먹었다는 포만감 따위는 조금도 안겨 주지 못했다.
내가공부가 깊어진 후 배변의 조절이 가능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때려치우고 다시 밖으로 나가 기회를 봐서 하나씩 족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아무 소용 없다는 걸 확인했다.
단지 지루함 때문에 그 방법을 선택하면 자신이 멍청하다는 증명밖에 되지 않는다.
‘잠깐, 그러고 보니 향아는 그럼 몇 살인 거지? 최소 나보다 열 살은 많은 거 아닌가?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시간이 남아돌다 보니 강진은 누워서 별의별 걸 다 생각했다. 생각할 게 없으니 포도청 막내 어동이까지 생각이 났다.
‘이런 공부가 따로 있을까? 자객보처럼 말이야.’
분명 있을 것이다.
남에게 걸리지 않고 움직이는 방법, 잘 숨는 법 따위가 아닌, 무료함을 죽이는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강진이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말린 호두 한 줌을 털어 우물거리는 순간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급히 입에 잔뜩 문 호두를 대충 씹어 삼키니 문이 열렸다.
‘고수들!’
밑에서 전해지는 기운에 강진은 숨을 죽이고 기척을 죽였다.
사람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척으로, 그들의 이야기로 숫자를 헤아린 강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이 전각은 가문 회의가 열리는 곳이었다.
“속질 않는군요.”
“아예 자취를 감춘 듯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두 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포기했거나 아니면 이미 임무를 완수했거나.”
“놈이 계속 나타난 것뿐이고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임무 완수가 아닌 포기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강한 놈이다. 네 백부와 독수대를 그리 만든 놈이다.”
“괜한 일을 벌인 것일까요? 모습이라도 보여야 잡지 않겠습니까?”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그들도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자가 있었다.
“동원령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빨리 출발해야 합니다. 너무 늦으면 숙부님의 위신이 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 소리에 강진은 생각했다.
‘동원령? 당가가 사천 제일이라 했는데 누가?’
계속 말소리가 들렸다.
“맞습니다. 사천과 감숙을 지원하기 위해 발동된 동원령인데 우리가 늦어서 좋을 게 없습니다.”
“하필 마교가 이때 움직일 줄이야…….”
“마교가 그냥 움직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필시 숨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강진은 그제야 무림맹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곽노와 자신이 마교에 온 대가로 마교에서 사천과 감숙으로 대거 병력을 이동시켰다는 이야기를 향아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게 무슨 대가가 되는지도 모르고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지금 와서는 좋은 일이 된 것 같았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중심에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
강진은 돌아가 할 일이 많다고 느꼈다.
‘이 일부터 해결해야겠지만 말이야.’
강진은 그들의 말에 계속 귀 기울였다.
“시기가 너무 공교롭게 되었군. 그것에 대한 연구가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그것만 있으면 마교에 무조건 양보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러니 일단 이 시간을 넘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유추해 볼 수는 있었다.
엄청난 독 내지는 암기가 이곳에서 연구 중이었다. 그리고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동원령도 중요하지만 일단 이 일부터 처리하는 게 급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정중앙에 앉은 사람이 입을 떼자 모두가 숨을 죽이며 그를 보았다.
자리의 위치,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말투, 무엇보다 그 스스로의 기세만으로도 강진은 그가 이 당문의 가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놈을 감싼 내 실수였네. 가문의 명성에 내가 먹칠을 했어!”
자신의 실수에 대해 으레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고 책하는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에 정적이 흘렀고, 정적을 깬 이는 입을 연 당사자였다.
“숨기지 말고 대놓고 벌을 받게 해야 했어. 그게 놈한테도 좋았을 텐데.”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그리고 젊어서 한 번의 실수였습니다. 그 전만 해도 실수 한 번 없는 착실한 녀석이었습니다. 일단 일이 해결된 후에 다시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형님의 이야기도 옳지만 그 한 번의 실수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책임은 져야 할 겁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이 일 때문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도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또 떠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 실수를 했다는 녀석의 이야기였다.
강진은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힘 있는 놈의 논리이니, 있는 놈인 자신도 이해 못 할 건 없다.
하지만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통을 당했다.
‘무엇보다 힘 있는 내가 그 일에 휘말렸다는 게 너희의 문제지. 그냥 넘어가진 않아.’
궁금한 건 그 일에 어떻게 사천 태수까지 휘말렸냐는 것이다.
당문이 아무리 사천을 주름잡고 있어도 사천의 태수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뭐, 기가 약한 놈이었으니 당문의 독살 협박에 넘어갔을지도 모르나, 달리 생각하면 애초에 당가가 사천 태수에게 협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어찌 됐든 사천 태수는 사천에서 왕이잖아?’
순간 강진은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문이 태수를 움직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태수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 보면 되는 문제 아닌가?
‘아냐, 아냐. 지금도 벅찬데 더 넓히는 건 무리가 있다.’
강진은 생각을 멈췄다. 일단은 놈들의 대화를 듣는 것이 우선이었다.
“문조의 말대로 그럴 수는 없지. 일단 모두 조심들 하게. 아버님께서 이 일을 알게 되시는 날에는 모두 쫓겨나게 될 테니.”
순간 다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러고는 급히 회의를 마무리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음에도 강진은 꼼짝도 않고 생각했다.
‘가주의 아버지라…… 그 사람은 이 일을 모른다는 건가?’
강진은 순간 짜증이 났다.
그냥 나쁜 놈들이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모두 목을 치면 되는 일.
하지만 놈들도 후회를 하고 있었다. 또 피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 듯했다.
‘죽여도 될 조건에 맞아야 하잖아…….’
강진은 갈등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의 말대로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또 자신이 죽을 뻔한 일이었고, 사부도 위험했던 일이다. 그들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고 나름 후회하고 피해 배상을 하자던 놈들도 그 일을 만천하에 알려 죄를 받자고 하는 말은 안 했다.
결국 힘 있는 자가 양심에 걸려 하는 소리일 뿐이었다.
강진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그게 뭔지부터 확인할까?’
강진은 눈을 감았다. 일단 놈들의 감시가 좀 뜸해진 후에 움직여야 할 일이었다.
* * *
‘자! 이제는 그것을 만드는 곳을 찾으면 되겠군.’
강진은 몸을 낮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동원령인가 뭔가 때문에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빠져나가 움직이기도 편했다.
‘난감하군.’
자객보를 시전해 이곳저곳 염탐했지만, 모두 비슷한 전각이어서 어디를 살펴야 할지 몰랐다.
‘잠깐. 꼭 집 안에서 만든다는 보장은 없잖아?’
강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도 어디부터 뒤져야 할지 모르는데 수색 범위가 더 넓어진 것이다.
‘찾아야 한다면 찾아야겠지.’
강진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움직임들을 살폈다.
그러기를 이틀째, 강진의 눈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들어간 사람은 다섯인데 있는 사람은 셋이다?’
그냥 평범한 단층짜리 집에 다섯 명의 무인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는데 안을 살피니 셋밖에 없었다.
‘비밀 입구가 있다는 건데? 그렇지, 우리 집도 그렇잖아. 여기도 그런 거야. 경계 무사도 세워 두지 않아서 지나칠 뻔했잖아.’
이가장에도 만의 하나를 대비한 비밀 탈출구가 있었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었고, 통로도 각기 다른 곳이었다.
당가는 그런 이가장보다 더 큰 곳. 비밀 통로도 반드시 존재할 터였다.
강진은 창 넘어 벽에 바짝 붙은 채 기다렸다.
한참 후에 다시 다섯 명의 무인들이 밖으로 나오자 강진은 구렁이 담 넘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겉모양도 별거 없었지만 내부는 더 별거 없었다.
책이 빽빽이 꽂힌 책장과 가구만 몇 개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강진은 조심스레 가구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분명히 들어가는 입구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좀처럼 그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잠깐만!’
강진은 책장을 살폈다.
‘역시. 나름 신경을 썼다고는 해도 보는 수련을 한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매일 청소라도 하는 듯이 깨끗했지만 사람의 손때를 지울 수는 없었고 책 모서리가 닳는 것 또한 막을 수 없었다.
‘이거, 이거, 이건가?’
세 권의 책을 뽑아내는 순간 책장이 문처럼 열리며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하나 나왔다.
‘들어가야 해? 만의 하나라도 걸리면 외통수 아니야?’
강진은 잠시 갈등하는 표정을 짓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야명주 몇 개가 간신히 길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더 어두워도 상관이 없는 강진이었다. 문제는 통로에 경계를 서는 무인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강진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앞에 인기척이 있었다.
강진은 검을 들고는 천천히 다시 전진해 나갔다. 그리고 모퉁이 쪽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강진은 통로 모퉁이 끝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며 살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