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19)
관존 이강진 (119)
사정
그들이 가리킨 건 밀랍에 싸인, 메추리 알만 한 크기에 검붉은 색을 띠고 있는 단환이었다.
“이거 한 알의 위력이 어찌 되는데?”
강진의 물음에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중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사방 이십여 장으로 퍼지게 된다. 기후에 따라 바람이 불면 그 범위는 더 넓어질 수도 있다.”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는 건가?”
“지금은. 독성이 너무 강해 더 손봐야 한다.”
“하긴 해독약이 있어야 독으로서의 가치가 더 있을 테니까. 아직 해독약은 만들지 못했다고 했지?”
“…….”
강진은 십여 개의 그것들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러고는 다른 단약들도 몽땅 한 주머니에 쓸어 넣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찌하려고 그러는 것이냐?”
중년 사내가 놀라 묻자 강진은 그를 보며 말했다.
“이것들을 몽땅 밖에다 던져 버리려고 그러지.”
“왜! 안에서는 쓰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랬지. 그래서 그건 안 쓸 거야. 하지만 다른 것도 안 쓰겠다고 하지는 않았잖아. 왜, 혹시라도 만들었다는 그걸 잘못 알려 주기라도 한 건가?”
중년 사내의 안색이 다시 하얗게 변해 갔다.
“얼씨구, 정말인가 보네. 나는 약속을 지키려 했는데 너는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았단 말이지?”
강진은 중년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래서 너희가 싫은 거야. 이 순간에도 거짓말을 했단 말이지? 네놈 가족들을 담보로 말이야.”
사실 정말 이 독들을 가문 안으로 던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들이 진실을 말했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사실이라면 그냥 갖다 버리려 했을 뿐이다. 당가와의 싸움이니 그들에게 최대한 타격을 입혀야 하지 않겠는가?
만들어진 단환을 버리고 이 연구실을 불태울 생각이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니.
강진은 일말의 감탄까지 했다.
방금 전만 해도 세상이 무너진 듯, 더 이상 어쩔 수 없이, 더 이상의 모든 수단을 포기하고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내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의 마지막 한 수였다. 자신도 속을 뻔했던, 혼신을 다한 연기.
당문의 무인은 분명 강진을 속여 넘겼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몰랐다, 광동 흑사회 조직을 제거하면서 강진은 별 힘들지 않은 일에도 이어동을 수없이 시험하고 감시할 만큼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그에게 믿음이란 사실을 지켜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후에야 만들어지는 결과물일 뿐이었다.
‘사람은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 돼. 나 스스로도 내가 한 말을 지킬 수 있을지 확신 못 하는데 남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믿어?’
강진은 주저 없이 중년 사내의 목을 그었다.
데구루루루.
그 수급은 바로 옆에 있던 젊은 사내의 무릎 옆으로 굴러갔다.
“숙부님!”
그러나 젊은 사내는 슬픔과 분노를 토할 수가 없었다.
강진은 젊은 사내의 턱을 움켜잡고 자신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너도 본 바와 같이 나는 분명 기회를 줬고, 약속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는 내 믿음을 저버렸고 거기에 걸맞는 대가를 치렀다. 너는 어쩔 생각이지?”
“이…….”
“저도 저 위에 있는 친족들의 생명을 대가로 거짓을 말할 생각인가? 뭐, 나도 그게 깔끔해서 좋긴 해. 그냥 다 갖다 던져 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강진은 자신이 자른 수급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사람 말대로 죄 없는 사람들도 휘말릴 거야. 그래도 좋아?”
젊은 사내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강진을 노려보았다.
강진은 그 정도는 참아 주기로 했다.
죽은 놈의 말대로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에게 피해가 가는 건 원치 않으니까. 그는 이미 대인이므로 책임질 만한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니까 말이다.
그러려면 대답을 들어야 했다.
마침내 젊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제 막 성공한 거라 단환은 시험용으로 만들어 둔 두 개밖에 없소. 독성은 확인했으나 범위는 확인하지 못했지.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백 장 내의 사람은 모두 죽을 거요. 바람이 불면 바람이 멈추는 그곳까지 피해가 갈 테고.”
엄청난 독이었지만 강진은 별 놀라는 기색 없이 물었다.
“그게 어느 건데?”
강진은 젊은 사내의 눈빛으로 단환 두 개를 골랐다. 하나는 푸른빛이 돌았고, 하나는 푸르지만 검은빛도 같이 돌았다.
“똑같은 독인데 왜 색이 다르지?”
“검은빛이 도는 건 끝에 화약을 섞어 넣어 일반인들도 폭발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고, 푸른색은 아직 화약을 섞지 못해 내공을 주입해서 터트려야 하오.”
“이번엔 정말이지? 아니, 물을 필요가 없군. 남은 것들은 모두 저 위의 마당에 던져 버릴 테니까.”
젊은 사내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강진은 다시 두 개의 단환을 보자기에 싸서 품에 넣고 나머지 것들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사내가 뭐라 하건 말했던 대로 다 던져 버릴 생각이었다. 만의 하나 젊은 놈의 말도 거짓이라면, 죄 없는 사람의 죽음은 자신이 아닌 놈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 생각하며.
강진은 이제 밀실에 불을 지르려 했으나 이곳이 공기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그냥 장법을 날려 시설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다 부순 후에 젊은 사내를 그 폐허 위에 던지고는 문을 닫았다.
‘혹시 다른 곳에도 연구 자료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강진은 기왕 손을 쓴 거 확실히 하자는 생각으로 밀실 문을 하나씩 열어 안을 확인했다.
특별해 보이는 건 없었다. 침상이 있고 탁자와 의자가 있고 어떤 방은 책장들도 있을 뿐, 일반적인 실내 풍경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방문을 열었을 때, 강진은 흠칫했다.
방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침상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그는 이렇게 확인하기 전까지는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대로 검을 들고 다가가 놈을 확인하는 순간, 강진은 멈칫했다.
비쩍 마른 모습에 커다란 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그곳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우람아!”
강진은 놀라 그에게 달려들었다.
* * *
당태호.
두 번의 혈사로 가세가 크게 기울었지만 당태호는 가문의 성세를 복구하는 데 사십 년간 정열을 기울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문세가의 태상가주로서 모든 의무를 내려놓은 상태.
대부분 가주 자리를 내려놓은 사람들은 자신의 심득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거나 아니면 새로운 독과 암기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놀았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마셨고, 자고 싶으면 잤고, 먹고 싶으면 먹었다.
또 일흔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색을 무척 밝혔지만, 청루만 즐겨 찾아갈 뿐 여염집 여인을 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몇몇 장로들이 태상가주의 체면이 있다면서 말릴 때에도 그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사십 년을 봉사했으면 됐다. 이제 가주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좀 하자.”
사실 사십 년 이상을 금욕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생활하던 당태호다.
그런 그가 좀 놀겠다 하니, 당연히 아무도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아니, 말릴 사람이 없었다.
가문의 최고 연장자가 그였고, 가주직을 내려놓은 지금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였다.
어찌 됐든 청루를 즐겨 찾는 것은 남의 입에 오르내릴지언정 손가락질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는 지극히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당태호는 청루에서 엿새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상시라면 바로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 기분 좋게 잠을 청할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집 근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에 가내에 있던 사람들은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항상 웃는 얼굴인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는 건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마침내 당태호는 자신이 인상을 찌푸렸던 이유의 근원지를 찾아냈다. 그리고 기겁했다.
“어떤 놈이 물건을 저따위로 함부로 다루었느냐?”
당태호는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몸을 허공으로 날렸다. 그리고 그의 손이 움직이는 순간 녹색과 갈색의 연기가 강렬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기겁을 했다.
당태호가 손을 쓴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독을 펼친 곳에는 절대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댕! 댕! 댕!
가문의 위기를 알리는 종소리가 세가를 넘어 당씨 집성촌에까지 울렸다.
“혹시 모르니 아이들부터 대피시켜!”
당태호는 마른 우물터에서 올라오고 있는 검은 연기를, 자신의 녹색 연기로 짓누르며 소리쳤다.
당문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조금씩 독을 먹어 면역력을 키운다. 덕분에 당문에서 외부로 내보내는 무인들은 만독, 천독불침까지는 아니어도 백독불침까지는 되는 신체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 올라오고 있는 검은 연기는 그런 성인도 감당 못 할 독기였다.
당태호가 필사적으로 독기를 막고 있을 때 상황을 파악한 중장년층의 무인들이 몰려들었다.
“청독, 홍독, 황독이다!”
당태호의 외침에 무인들도 동시에 녹색의 독연을 우물 쪽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수십의 무인들이 같이 손을 쓰자 한숨 돌릴 시간을 번 당태호는 물러나며 소리쳤다.
“어떤 놈이! 내 서른 이전에는 대량의 독을 다루지 못하게 일렀거늘!”
당태호는 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이 누군가의 실수일 거라고 확신했다. 저 검은 연기는 당문의 혼합 독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또 적이라면 지상에 풀었지, 저렇게 마른 우물에 풀어 범위를 줄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당태호는 마음 놓을 수가 없어 세가에서 가장 높은 곳인 천독전 건물 꼭대기에 올라 세가 전체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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