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21)
관존 이강진 (121)
서문우람과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지 열흘째.
배신감이 그만큼 컸다.
하지만 그 배신감만큼 의혹도 커지고 있었다.
이 일에 의문점은 두 개였다.
왜 사천 태수가 당문에 협조하고 있었는가?
또 하나는, 서문우람이 왜 자신에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가였다.
여전히 화가 난 상태에서 그 궁금증이 강진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一. 우람이는 꽉 막힌 녀석이지만 똑똑하다.
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절교라 이야기했음에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三. 당문은 물론이고 관병도 추적하기 시작했다.
四. 당문은 모르지만 관병은 이상하다.
五. 사천 태수는 죽었다. 그런데 누가 관병을 동원하는 것이지?
六. 현 한 개의 일이 아니다. 성문마다 검문검색을 하고, 우람이를 그린 그림을 가지고 있다.
七. 다른 게 아니다. 사천 관병이 전부 움직이고 있다.
八. 왜?
열흘의 고민.
그리고 열하루째가 되는 날, 강진은 머리가 환해졌다.
사천의 왕인 사천 태수를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황제가 아니면 진짜 왕뿐이다.
황제는 아닐 터이니 남은 조건은 하나.
왕이다!
그렇다면?
서문우람이 자신에게 왜 그렇게 사정을 숨기려 하는지도 이해되었다.
강진은 곁눈질로 서문우람을 보았다.
고문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지 않은 시간에는 수면약을 먹었기에 몰골이 형편없었다. 음식은 꼬박꼬박 챙기게 했는데도 여전히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놈! 그게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한 거냐? 나를 뭘로 알고!’
생각은 그리했지만 사실 경시할 일이 아니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문이 풍비박산 날 수도 있는 일.
‘그래도 용서가 안 돼!’
이해했지만 용서할 수 없는 기분.
극히 이성적이고 효율을 따지는 강진으로서는 그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다시 사흘이 지났을 때, 분노를 달랜 강진이 서문우람에게 말했다.
“왕이냐?”
강진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서문우람은 그가 입을 열자 반색을 했다가 그 물음에 금세 안색이 어두워졌다.
“왕 맞지? 사천에 누가 있지?”
“그게 무슨 소리냐?”
“말하지 않는 건 이해해도, 나한테 거짓말까진 하지 마. 그럼 절대 용서 못 해!”
“후우우우.”
강진의 단호한 말에 서문우람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냐?”
“너를 만나기 전에 관리 둘을 아작 냈거든. 그중 하나가 사천 태수였다. 이상하잖아. 아무리 당문이 사천의 강력한 호족이라 하나 태수가 나선다는 게.”
“그것만으로?”
“그리고 네놈이 입을 꽉 다물고 있고. 그럼 뭐겠냐? 나로서도 감당이 안 될 존재가 있을 거라는 거지. 그러니 말해라. 사천에 누가 있는 거냐?”
서문우람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휴우. 조명호. 황제 폐하의 네 번째 동생이다.”
이미 강진이 알고 있으니 서문우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정을 설명했다.
조명호.
황제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황자로서, 권력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친형이 황제에 오르게 뒤에서 은밀히 도왔다.
덕분에 지금의 황제는 그를 운남과 사천의 왕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공무를 관리들에게 맡기고 혼자 조용히 취미 생활만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의 취미 생활이었다.
그는 색을 탐했다.
왕이 색을 탐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 싶을까마는, 그는 확실하게 문제가 있었다.
그가 탐하는 상대는 바로 열네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이라는 것.
황실과 백성들 사이에서는 조용한 왕이지만 실제로는 추악한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의 최측근 몇 명만이 쉬쉬하며 조명호가 저지른 일의 뒤처리를 했고, 숨길 수 없는 건 관리들을 협박하여 덮었다.
하지만 협박에 굴하지 않는 관리가 있었다.
서문우람이었다.
시어사로 사천에 내려온 서문우람은 사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종 사건에 주목했다.
단서가 워낙 적어 포기할까도 싶었지만, 그 순간 왕부에서 조사를 그만두라는 협박을 시작했다. 그게 서문우람이 오기로 더욱 조사를 이어 가게 만들었다.
결국 서문우람은 수많은 실종 사건 중 그들이 숨기지 못한 증거를 발견했다. 단서 하나가 발견되니 그 뒤로는 일이 수월해졌다.
결국 서문우람은 사천뿐만이 아니라 운남에서 벌어진 실종 사건에도 왕부가 개입되었다는 증거를 잡았다. 그리고 그 증거를 황제에게 보고하려 했다.
하지만 그걸 황제에게 보고하기도 전에 당문에 납치당해 지금껏 밀실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미친놈! 황실이라니……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아무리 시어사라지만 파헤치지 말아야 할 일은 덮어야지. 목숨이 백 개쯤 되냐?”
모든 사정을 들은 강진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대인도 살아 있어야 대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거다. 목숨을 걸 만한 대가가 있는 일이라면 이해하지만 이건 그런 것도 아니다.
황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니 황제에게 보고를 한다 하더라도 그는 변방으로 쫓겨날 확률이 컸다.
그걸 알 텐데도 서문우람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 임무가 그거니까.”
“미친놈!”
강진은 다시 한 번 욕을 했지만, 내심 그런 그가 부러웠다.
자신처럼 억지로라도 대인이 되고 싶어 하는 놈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대인이었다.
강진은 그 사실이 부러웠고, 질투했다.
서문우람이 입을 열었다.
“나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알았다면 모른 체했을 거다. 나도 살고 싶으니까. 입신양명의 꿈을 꾸고 있으니까. 하지만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 해야만 하는 일이다.”
“생각을 바꿔.”
“생각만이라면 바꿀 수 있겠지만…… 이건 나의 신념이다.”
“젠장!”
대인으로서 그를 쫓아가기는커녕 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인간으로서의 본성의 문제였다.
아무리 훈련을 해도, 그렇게 노력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녀석을 돕는 것만으로도 나도 한몫하는 거니까. 저런 놈을 친구로 두고 또 살리는 것만으로도 나도 대인인 거다. 불가능을 쫓기보다는 할 수 있는 걸 쫓는 게 훨씬 낫지!’
강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다.
“그럼 당문도 왕부가 동원한 거냐? 아! 거기에도 미친놈이 있었지.”
질문과 동시에 상황을 이해한 강진의 말에 서문우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당씨 호족에도 미친놈이 있더군. 그놈은 남자아이를 탐했는데, 그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꽤나 어울렸다.”
“끼리끼리 만난 거지.”
“내가 증거를 찾자 왕부의 누군가가 당씨 집안에 연락을 했을 거다. 그들은 정말…… 대단하더군.”
서문우람은 무림을 몰랐다.
하긴, 당문의 특기인 독과 암기를 보지 않고 일반적인 신법과 무공만 봐도 대단하다고 감탄하기에는 충분했다.
강진은 이제야 앞뒤를 모두 파악했다.
“이제 다 알겠어. 그런데 너 잡히기 전에 병사 몇몇을 포섭해 뒀지?”
“혹시 몰라 반년 후에 무조건 개봉부를 향하게 한 병사들이 있다.”
강진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 때문에 그들이 죽었다. 그 일에 내가 휘말려 너를 이리 구할 수 있었던 거고.”
“죽었다고?”
“네가 살아 있는데 그들이 방심했을까? 네가 접촉한 관리는 모두 감시하고 있었을 거다.”
서문우람은 잠시 눈을 감고 그들을 애도했다. 그러고는 강진을 보며 물었다.
“이제 어쩔 생각이냐? 그들이 네 정체를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손을 떼라. 그러지 않으면…….”
“멸문당할 거라고?”
강진의 반문에 서문우람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이미 늦었다.”
“뭐가 말이냐?”
“아버지가 정화를 내 부인으로 삼겠다고 벼르고 계신다. 그것 때문에 너를 한참 찾았고. 지금 생각해 보니 네가 갇혀 있었으니 당연히 찾을 수 없었겠지만.”
“뭐라고? 정화를? 너랑?”
“뭐냐? 그 표정은? 네가 모자라다는 뜻이냐?”
서문우람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생만 고생한다. 성실한 사람을 찾아 짝지어 주는 게 낫지.”
“나를 뭘로 보고!”
당연히 서문우람도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강진은 발끈했다.
“나는 너를 알고, 너는 나를 안다. 설마 내가 정화를 네게 보낼 거라고 생각했냐?”
“내가 뭐 어때서? 나 정도면 특등 신랑이지. 준수하지, 능력 있지, 돈 많지!”
안색 하나 안 변하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던 강진에게 서문우람이 한마디 물었다.
“너 정화 사랑하냐?”
“…….”
“사랑한다고 하면 너에게 보내 주마. 네 입으로 사랑한다고 한마디만 해라.”
“그건…….”
“사랑 안 하지? 그런 너에게 내 동생을 보내야겠냐?”
강진은 말문이 막혔다.
잊고 있었다, 사부 다음으로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녀석이 눈앞에 있는 이 서문우람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안 된다!”
원래 정화를 동생처럼 생각하던 강진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처로 삼을 바에는 그래도 익숙하고 잘 아는 그녀가 낫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문우람의 말에 강진은 반드시 정화와 혼인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이미 늦었어. 신의현에서는 이미 정화를 내 마누라로 알고 있으니까. 우리 집안 하인들도 작은마님으로 대우하고 있고.”
“작은마님?”
“아! 너에게 이야기 안 했지만 나 결혼했다. 그리고 임신도 했다더라. 빨리 가 봐야 하는데 너 때문에 늦었잖아.”
서문우람이 잔뜩 성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처도 아닌 첩으로 들인다는 말이었던 거냐?”
“아니. 첩부터 들인 거지. 아버님이 못 박아 두셨거든. 본처 자리는 정화 몫이라고.”
“안 돼!”
“늦었다니까. 그리고 사부가 말하기를 사랑이라는 거…… 살 비비고 살면 생기게 된다더라. 해 보니까 정말 그런 게 생기는 것 같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리 다투던 끝에 강진이 말했다.
“어찌 됐든 내가 끼어들든 말든, 네가 잘못되면 우리 집안도 엮여 들어갈 거다.”
“뭔 사이라고!”
“정화가 아직 내 처가 아니라는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알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 일이 잘못돼서 놈들이 조사를 시작하면 내겐 부인이 둘이라고 생각할걸. 아니,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 집안까지 처리하려 하겠지. 그게 더 깔끔하지 않겠어? 힘 있는 놈들이 일을 어찌 처리하는지는 나도 잘 알아. 반드시 그렇게 된다.”
서문우람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부정하고 싶지만 분명 그러할 터였다.
“어찌 됐든 너에겐 안 보낸다!”
두 사람은 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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