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22)
관존 이강진 (122)
도주
“개봉 쪽으로는 힘들겠어. 차라리 귀주로 가자.”
서문우람을 만나기 전에는 귀주에서 소양풍을 만나 곽노와 합류하려 했다. 하지만 서문우람의 일로 황성이 있는 개봉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왕부와 당문도 필사적이었다.
검문검색이 너무 심했다. 특히 섬서 쪽으로 가는 관도는 더더욱 그랬다.
강진 혼자였다면 문제없겠지만, 지금은 일반인보다 못한 체력을 가진 서문우람이 있었다.
그렇다면 애초에 계획을 바꿔야 했다.
‘길잡이를 구하면 좋겠지만…….’
사천 지리를 잘 모르는 강진이었다. 관군의 눈을 피해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길잡이가 필요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당문에 쫓기며 도망칠 때 뼈저리게 느낀 터였다.
‘강을 따라 남하해?’
그것도 쉽지 않다.
사천의 강은 크지 않았다. 작은 고깃배나 오가는 수준이었다.
사실 서문우람을 데리고 사천을 주름잡고 있는 당문, 관의 눈을 피해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가야 했다.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성급해서는 안 된다.’
강진은 당문과 관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성동격서? 조금만 똑똑하면 절대 길에서 물러나지 않을 거야. 무조건 길목을 지킨다. 그리고 조급해하던 상대가 결국 나타날 때를 기다린다.’
별다른 건 없는 일반적인 이야기였지만 사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확신만 있다면 절대 길을 열지 않겠지.’
순간 강진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잠깐, 그러면 빠져나갔다는 생각을 심어 주면 되는 거 아니야?’
이 순간 시간은 공정했다.
시간이 지나면 이쪽은 조급해질 것이다. 그게 도망자의 심리다.
하지만 그에게도 유리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저들 또한 불안해질 거라는 사실이다. 그게 추적자의 심리다.
확신을 갖고 포위했는데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을 때의 불안감.
불안감이 가중되면 확신이 흔들린다.
확신이 흔들리면 의심이 든다.
이미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얼마나 걸릴까?’
조금의 단서도 주지 않고 꼭꼭 숨어야 했다. 자신들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불안감이 점점 심해질 것이다.
‘돌아가자!’
판단이 섰으니 행동할 때였다.
‘똑똑한 놈들이니 등하불명의 우를 범하지는 않을 거야. 너무 가까워서는 안 돼. 의심이 들면 처음부터 철저하게 뒤질 테니까.’
강진이 향한 곳은 당문에 쫓길 때 숨었던 그 촌락이었다. 그리고 숨은 곳은 아일 형제들의 집.
강진이 서문우람을 데리고 아일 형제의 집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약속을 잘 지키고 있나 보네.’
아이들이 없다는 건 촌장이 잘 보살피고 있다는 증거.
물론 몰래 확인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람 일 누가 안다고, 혹시 모를 위험은 피해야 했다.
아차 하다가는 아일 형제들에게까지 피해가 간다. 그러니 지금은 꼭꼭 숨어 있어야 했다.
“불편하겠지만 잠시 여기서 몸을 숨기고 있어.”
다락으로 올려 주며 하는 말에 서문우람이 물었다.
“너는?”
“네 흔적을 지워야지. 혼동을 줘야 해. 하지만 너랑 있으면 내 움직임까지 제한이 된다.”
“네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위험해. 그리고 생각해 보니 열 받잖아.”
“뭐가?”
“원래 도망은 누군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치는 거야. 누군가는 추적자가 되는 거고. 그런데 지금은 반대가 되었잖아.”
“어쩔 생각인데?”
“생각의 전환.”
서문우람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강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의 약점은 바로 너란 존재다. 그러니까 책만 읽지 말고 같이 무공 수련하자니까. 네가 조금만 내 말을 들었다면 이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야.”
“잔소리가 늘었구나.”
“사실이니까. 여하간 네가 없는 나는, 조심은 할지언정 이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칠 필요까진 없단 말이야.”
그냥 들으면 마치 강진이 서문우람을 두고 혼자 도망치겠다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서문우람은 강진을 너무 잘 알았다. 그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진작 도망쳤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서문우람은 강진이 더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강하지. 숫자도 많아. 하지만 나도 강하다. 몇 명 봐 둔 놈들 빼곤 나를 어찌하지 못해. 이게 바로 고수, 그것도 고수 중의 고수인 나란 존재다.”
강진은 이 상황에서도 자기 자랑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단순히 무사의 숫자로 힘이 결정된다면 신교가, 그리고 개방이 무림을 지배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리하지 못했다.
고수들의 숫자, 절정 고수들의 숫자, 그리고 그들을 뛰어넘는 절대 고수들의 숫자가 단체의 힘을 결정한다.
강진이 혼자 당문을 멸망시키지는 못하지만, 강진의 능력을 수십 배 뛰어넘는 당문의 집단적인 힘으로도 강진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물론 강진이 눈여겨봐 뒀다는 고수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들만 피하면 강진의 말이 맞았다.
강진이 계속 말했다.
“또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끝이야. 맹수는 내가 돼야지, 그들이 돼서는 안 돼. 그들이 우리를 사냥감이라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기회지.”
서문우람은 더 이상 물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강진의 눈에 살기가 돌고 있었다.
* * *
타앙! 타앙! 타앙!
나이 든 석공이 돌을 부수고 있었다.
타앙!
규칙적인 소리에 이어 돌 부스러기가 일정량 바닥으로 떨어진다.
사실 그의 주업은 이렇게 돌을 부수는 일이 아니었다.
도굴.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이 그의 주업이다.
하지만 늙은 사내는 그 일에 죄의식은 별로 갖지 않았다.
산 자를 괴롭히는 사람도 많은 세상이다.
그가 도굴을 하는 무덤은 대부분 살아생전 부를 누리며 호화롭게 살던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에게서 사후의 재산을 조금 훔친다고 눈물 흘릴 사람은 없었다.
그런 자들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선량한가?
그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시간이 흘러 그 바닥에서 나름 명성도 쌓았다.
그런 그에게 큰 건이 들어왔다.
사실 그는 이 건을 거절하려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의뢰인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
자신이 나쁜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세상은 도굴을 범죄라 단정했다. 그리고 잡히면 곤장 몇 대 때리는 정도로 그치지 않았다.
당연히 조심해야 했고, 오랫동안 보아 오고 믿을 만한 사람과만 같이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지 못했다.
칼을 든 놈들이었다.
깔끔한 외모에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가지고 있는 분위기는 숨길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거절하면 죽을 거라는 느낌이 왔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작업에 들어가면서 그는 놀랐다.
작업은 자신만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 그중 반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또 몇몇은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사내는 죽음을 직감했다.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작업의 내용은 누구의 무덤을 도굴하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
엄청난 작업량을 요구하는 무덤이었다.
웬만한 갑부들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규모였다.
부지런히 해도 오 년은 걸릴 일거리였다.
하지만 작업 속도는 더디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작업이 끝나는 순간 죽을 거라는 생각은 사내만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때 한 사람이 왔다.
돈 많은 상인 차림에 점잖게 생긴 중년인이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이용해 먹을 대로 이용해 먹고 버리는 그런 놈들을 경멸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고 바로 원하는 대로 가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작업이 끝나고 딱 일 년 후, 여러분은 저희가 약속드린 돈을 들고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작업을 서둘러 주십시오.”
중년 사내의 말을 믿는 자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믿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나마 먼저 나서서 그런 말을 해 준 것에 희망을 걸어 볼 뿐.
그는 계속 망치질을 했다.
타앙. 타앙.
* * *
강진은 곧바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적지는 가장 경계가 심한 곳인 섬서성으로 빠져나가는 길목들이었다.
강진은 가는 곳마다 서문우람과 자신의 현상 수배지가 골목골목, 객잔 등에도 잔뜩 붙어 있는 걸 확인했다.
별로 비슷하지는 않았다.
하긴 자신의 얼굴은 자세히 볼 시간을 주지도 않았고 본 사람도 많지 않았다. 자신을 일부러 드러낼 생각을 했던 강진에게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용모보다 더 확실한 특이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말투다.
사실 외지인을 금세 알아볼 수 있는 것도 그 사람의 말투 때문이었다.
각 성마다 고유한 발음과 억양이 있고, 심한 곳은 말을 거의 못 알아들을 지경이다. 그러니 입을 여는 순간 모두가 자신이 사천 사람이 아님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강진은 태연한 표정으로 객잔을 돌며 방을 빌렸다.
둔한 자들은 그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붙어 있는 현상 수배범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낯익다고 생각했다.
눈치 빠른 자들은 강진을 알아봤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
관은 둘째 치고, 당문에서 쫓는 사람이다.
하늘을 날고 장풍을 쏜다는 무림세가에서도 잡지 못해 현상 수배한 자를 앞에 두고 놀라 소리 지른다?
그런 사람이라면 애초에 강진을 알아볼 수 없을 터였다.
그들은 태연하게 강진에게 방을 내주었고, 강진이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통해 도망칠 때 관과 당문의 무인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달렸다. 황금 백 냥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배금의 꿈에 부풀어서 말이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니 강진이 바라던 효과가 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움찔하기 시작했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궁금해할 것이다.
반드시 잡아야 할 서문우람은 어디에 두고 강진이 혼자 움직이는지 말이다.
혼동이 일어나니 서문우람의 흔적은 점점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중복된 보고에 잘못된 정보가 오갔다.
‘의심해라. 그게 너희가 할 일이다.’
강진은 서문우람이 완전히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때는 너희가 도망쳐야 할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