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23)
관존 이강진 (123)
“한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잡지 못했다는 게 말이 돼! 그것도 사천에서 말이야!”
당태호가 분노를 터트리자 좌중의 사내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눈치만 살폈다.
“그 흉수 하나 잡자고 가문의 삼 할에 가까운 무인이 움직였어. 또 관아까지 동원됐어. 그런데도 잡지 못해?”
당태호가 화를 낼 만도 했다.
사천에서 세가의 삼 할 이상의 힘을 집중했고, 관아의 도움까지 받고 있다. 그런데도 잡지 못했다.
당태호는 그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
“어떻게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지? 놈이 우리 세가를 공격했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 거 아니야! 모두 꿀 먹은 벙어리인가!”
당태호의 노성에 결국 세가에서 정보를 다루는 밀당의 당주 당문량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충 누구인지 짐작은 합니다. 그래서 이미 추적하고 있으나 놈의 무공이 고강하여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강하다 해 봤자 무슨 천하오존쯤 돼? 세가가 사람 하나 잡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당태호의 추궁 섞인 물음에 당문량이 대답했다.
“홀로 화수대와 독수대를 전멸시킨 놈입니다. 방수가 있을지 모르나 일단은 그렇게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순간 당태호의 얼굴이 굳었다.
‘화수대와 독수대를 홀로?’
그게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당태호의 머릿속에 몇 명의 이름이 스쳐 갔다.
적진 않다.
대문파와 오대세가에 은둔하고 있는 장로급 인사들, 오존과 칠마, 그리고 구괴 중 몇 명.
하지만 많지도 않다.
그런 자들은 움직이면 반드시 소문이 나게 마련이다.
무공이 고강할수록, 그 이름이 알려질수록 은밀하게 움직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그자들에게 원한을 산 적이 있던가?’
자신의 아들이자 지금의 가주는 남들과 그렇게 죽자 살자 싸울 만한 성격은 되지 못한다. 한마디로 독하지 못한 성격이다.
그렇다면 그가 가주로 있을 때의 원한이 지금에서야 나타난 건지도 모른다.
‘나 때는? 싸움의 싸 자만 보여도 피하던 때다.’
그가 가주로 있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가는 독과 암기의 세가가 아니라 의가로 불릴 정도로 의술에 집중했다. 두 번의 혈겁이 세가의 힘을 약화시킨 까닭도 있지만, 그 시기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게 맞았기 때문이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싸움을 피하고, 부상당한 이를 치료해 주었다.
효과는 오래 걸리지 않아 나타났다. 치료받은 이들에게서 받은 재물은 둘째 치고, 당가가 아직 무림에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그가 가주를 내려 놓을 때쯤의 당가는 전성기 때의 칠 할 이상의 힘을 갖고 있었다.
모두 당태호의 뛰어난 안목과 판단 그리고 의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왜 그 사실을 지금 알았지?”
당태호는 스스로 묻고도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다.
가주 지위를 내려 놓고 너무 무관심했다. 가주가 상의하려고 찾아와도 무시하고 돌려보내기가 일쑤였다. 거기에 집에 있는 시간보다 청루에 있는 시간이 더 많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이 년.
그래서 모른 것이다. 이렇게 큰일이 났음에도 말이다.
“휴우!”
고개만 숙이고 있는 사내들을 보며 당태호는 답답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고작 이 년 신경을 안 썼다고 이 지경이 돼? 내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 난 이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어찌 됐든 가주가 없는 이상 자신이 수습할 일이었다.
‘확실히 마무리하고 가문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죄를 물어 주마, 이놈!’
당태호는 이미 오십이 넘은 아들의 종아리까지 때려 줄 생각을 하며 좌중의 사내들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놈에 대해서 아는 게 뭐냐? 그놈과 어떻게 연관이 됐냐?”
당태호의 노기 서린 목소리에 사내들은 아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뭐라? 그럼 결국에는 강이가…….”
당태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평생 처음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맛봤다.
이 모든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애지중지하던 장손자의 변태 행위라는 사실.
한참을 침묵하던 당태호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죽여서 죄를 청했어야지!”
“태상가주님!”
“백부님!”
사내들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했어야지. 아무리 귀한 사람이라 하나 남의 집 귀한 사람들을 그리 만들었다면, 죗값을 받아야지. 그 한 놈 때문에 가문을 망가트리지는 말았어야지…….”
노기는 사라져 있었다.
안타까움과 자신이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어린 목소리.
하지만 사람들은 당태호가 그렇게 생각했고, 해야 한다면 그렇게 했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게 엉망이 된 당문을 사십 년 만에 제자리로 돌려놓은 당태호의 능력 중 하나.
‘이걸 어떡하지?’
당태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칫하다가는 가문은 풍비박산 난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떡하지?’
엎질러진 물.
엎질러지지만 않았다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살인멸구밖에 답이 없는 것인가?’
당태호는 짜증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멍청한 후손들 때문에 명이 십 년은 단축될 것 같았다.
“당장 나가! 그리고 잡아 와! 반드시 잡으란 말이다!”
당태호의 살기에 사내들은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고, 홀로 남은 그의 고민은 더 깊어져 갔다.
* * *
“으악!”
관병 하나가 부러진 팔을 다른 손으로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은 다른 이들이 질러 대고 있는 비명에 금방 섞여 들었다.
서른에 가까운 관병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 걸 보며 강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상관 하나 잘못 만나서…… 이래서 줄을 잘 서야 하는 건데 말이지.’
강진은 관병을 죽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죄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그랬듯이 이들의 상관도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르라고 지시했을 것이고, 이들은 임무에 충실한 것뿐이다.
그래서 팔다리를 부러트리는 것만으로 손을 쓰고 있었다.
좀 심하게 비틀었으니 최소 몇 달은 치료를 받아야 할 중상이었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정도는 해야 이 포위망이 풀렸다. 그나마 관군이 동원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동원되었으면 일이 더 힘들어질 뻔했어.’
사천에는 천호소가 열 군데 있었다.
농사와 병사 훈련을 같이하는 둔병들.
천호소가 열 군데가 있으니 관군이 만 명은 된다는 소리였다.
그들까지 동원되었다면 일이 아주 어려워졌지만 조명호는 그들을 동원하지 않았다.
물론 강진도 그 이유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게 관병과 관군의 차이다.
똑같은 것이지만 지휘 체계가 다른 것이다.
관병은 지역 현령, 태수의 명령으로 움직이지만, 관군은 황제의 명령으로 움직인다. 만약 조명호가 천호소에 명령을 내려 움직이게 만들었다면 조정 누군가에게 그를 탄핵할 꼬투리를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긴 해도 반란이라는 건 너무 어마어마한 사항이기에 조명호로서도 조심할 것이다.
어찌 됐든 덕분에 강진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수백 명 단위로 뭉쳐 있지 않은 이상, 수십 명의 관병들로는 그를 어찌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당문의 무사들이다.
강진에게 있어서는 힘 좀 쓰는 관병 수준에 불과하지만, 고수들이 뭉치면 좀 곤란했다. 특히 따라붙기라도 하면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것이 분명하니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보이질 않는단 말이지.’
처음에는 관병과 협조하면서 포위망을 구성했던 당문의 무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놓고 관병들의 팔다리를 부러트릴 수 있었지만, 무인들이 없다는 사실이 좀 찝찝했다.
‘다시 가 봐야 해?’
당가로 돌아가서 확인해 볼까도 싶었지만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러자면 서문우람과 너무 멀리 떨어져야 했다.
‘이 더러운 기분은 뭐지?’
며칠 계속 찝찝한 기분에 강진은 신경이 곤두섰다.
‘계획에는 문제가 없어. 그런데 왜?’
잘 진행되고 있었다.
벌써 수백의 관병들이 사라진 상태고, 반병신이 된 당문 무인의 숫자도 서른은 되었다.
그런데도 기분은 자꾸 더러워져 갔다.
‘상대가 의심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의심하면 곤란하지.’
괜한 의심에 일을 망칠 수는 없다.
꼬르륵.
기분이 더럽든 어쨌든 배는 고팠다.
그러고 보니 며칠 동안 먹은 거라고 말라빠진 육포 몇 조각이 전부. 무엇보다 목이 말랐다.
수통의 물은 다 마신 지 오래.
강진은 눈여겨봐 둔 시냇가로 걸음을 옮겼다.
수통에 물을 담으며 강진은 순간 더러운 기분의 정체에 대해 의심했다.
‘설마?’
강진은 품속에서 은으로 만든 젓가락 하나를 들어 시냇물에 담갔다.
“이…… 미친!”
젓가락이 희미하지만 검게 물들었다.
강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르는 물을 독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독을 풀었을까? 까딱하다가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중독될 터였다.
“정말 다 죽여야 할 놈들이로구나!”
자신 하나를 잡기 위해 시냇물에 독을 푼 놈들.
이제는 반병신이 아니라 확실하게 잡아 죽여도 모자랄 놈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또 의심이 들었다.
사천에서 당문의 평판은 좋았다. 사실, 좋은 정도가 아니라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문이 있기에 평온하고, 십 년 전 땅이 찢어지고 가옥이 파괴되었을 때에도 자신의 일처럼 나서 준 곳이 당문이라 했다. 그래서 사천, 특히 본가가 있는 덕양에서 당문은 그야말로 종교에 가까웠다.
자신을 추적할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민가에 피해를 입히는 짓은 철저히 피했다. 뭐든 협조를 구했고, 피해를 입혔다면 보상을 했다.
그래서 자신이 그토록 힘들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 놈들이 변했다.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건 필사적으로 변했다는 소리다.
“그래, 나라도 그런 놈이 집안에 있다는 걸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거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강진은 발길을 돌렸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당문 본가를 다시 한 번 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우물이 아닌 세가 정중앙에 독을 투척할 생각이었다. 그 수습을 하려면 당분간 자신을 쫓을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서문우람을 개봉으로 안전하게 데려가 그들의 죄악이 만천하에 알려지면 자신이 손쓰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지게 되리라.
강진은 품속을 더듬었다. 독을 약간 남겨 둔 게 다행이었다. 사실 독의 유용함을 알고 조금 배워 둘까 하고 챙겨 둔 것들이었다.
* * *
“젠장! 여기도!”
검게 물든 은젓가락을 뽑으며 강진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벌써 사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먹지 못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마시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다. 갈증에, 진기까지 메마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민가로 내려갈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나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자신이 있을 만한 위치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독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각 마을마다 감시의 눈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관병들은 만나도 당문의 무인은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벽에 수풀에 맺히는 이슬이라도 핥아 보려 했지만 주변에 곤충이 죽어 있는 걸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적이지만 정말 대단하구나!’
강진은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만큼 분노가 쌓여 갔다.
‘저건 또 뭐야?’
그때 강진의 눈에 뜨인 건 펄럭이는 하얀색 깃발이었다.
“이곳에서 십 리 위의 물은 마실 수 있다.”
깃발에 쓰인 글씨.
‘가지가지 하는군.’
물을 마시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다. 저 깃발은 함정임을 알면서도 오게 만드는 장치다.
‘미쳤냐? 그렇다고 정말 가게.’
강진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당문은 자신을 무슨 멍청이로 아는 듯했다.
‘오히려 약점을 노출시키는 행위지. 하긴 이 범위를 전부 중독시키는 걸 계속할 수 있겠어?’
감탄은 했지만 그들도 점점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갈증을 참을 수 있느냐, 아니면 그들이 먼저 나가떨어지느냐의 싸움인가?’
강진은 피식 웃으며 시냇물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싸움이라면 얼마든지 더 버텨 줄 생각이었다. 갈증은 심하지만 이틀은 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냇물을 따라 내려가던 어느 순간, 강진은 멈칫했다.
‘아차!’
강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건 정말 커다란 실수였다.
‘미친! 상류로 유혹한다고 거기만 지키고 있을 리가 없잖아. 반발심에 오히려 정직하게 밑으로 내려왔다!’
강진은 급히 시냇물 쪽에서 벗어나 수풀 사이로 몸을 날렸다.
씨이이이잉!
후회는 언제나 늦다.
수풀 사이에서 수백 개의 암기가 강진에게 날아왔고, 그는 몸을 비틀어 암기를 피해 내며 검을 뽑았다.
앞에는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당태호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