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25)
관존 이강진 (125)
거래
“너 누구냐?”
진기를 어느 정도 돌린 당태호가 강진을 향해 외쳤다.
“그런 영감은? 그 집구석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내가 있었다면 네놈이 그런 흉악한 짓을 하게 놔둘 줄 알았느냐?”
강진은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흉악? 지금 영감이 흉악을 입에 담아? 누가 누구보고 흉악하대? 보아하니 그놈들 할아버지뻘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집구석 단속 좀 제대로 하지 그랬어?”
“이놈아, 너는 웃어른 공경할 줄도 모르냐? 내가 너보다 나이가 서너 배는 더 많은데!”
“공경?”
강진은 두 무릎을 짚고 간신히 일어서며 말했다.
“어디 한번 받아 보든가.”
“이놈아, 지금 젊다고 자랑하냐? 일어날 힘도 없다.”
“절호의 기회네. 영감은 살려 두기에는 너무 강해.”
당태호는 약간 비틀거리면서 다가오는 강진을 보며 소리쳤다.
“뭐야, 정말 하자는 거냐!”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곤란해질 것 같으니 말이지.”
“이놈이! 정말 같이 죽고 싶은 거냐?”
“아니, 영감 혼자 죽으면 돼. 아직 한 방은 더 날릴 수 있으니까.”
“이 미친놈!”
당태호는 강진의 눈에 어린 살기를 보고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으로 바닥을 짚어서 엉거주춤 반쯤 일어난 게 다였다.
“억울해하지 마. 영감도 나를 죽일 수 있었으면 죽였을 거잖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당태호는 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만, 둘 다 이 꼴이 되었는데 정말 같이 죽고 싶은 거냐? 너만 한 방이 있냐? 나도 있다. 여기서 그냥 독 풀어 볼까? 지금 그 꼴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냐?”
품에서 나온 당태호의 손에는 정말로 검은 주머니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제야 강진은 걸음을 멈췄다.
당태호의 말대로 여기서 독을 풀면 벗어날 기력이 없었다.
“미친놈들. 나 하나 잡자고 독을 그렇게 풀다니. 그런 놈이 흉악을 입에 담고 공경을 입에 담다니.”
“우리가 그렇게 미친 줄 아냐? 몇 달 고생만 할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독이었다. 그것만 걸려도 네놈을 수월히 잡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그게 잘했다는 거야, 영감?”
“돈은 좀 많이 나가겠지. 보상은 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것뿐이다.”
강진이 당태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보상 좋아하네. 그럼 진작 죽은 아이들한테도 보상하지 그랬어? 그거 숨기려고 죄 없는 사람을 죽였잖아.”
“…….”
“얼씨구, 양심 있는 척하네.”
“얼마 전에 알았다. 알았다면 정말 이렇게 흐르게 두지는 않았겠지.”
“영감, 지금 와서 그런 말 해 봤자 늦었다는 생각 들지 않아?”
“늦었지. 그래, 엎질러진 물이지. 하지만 말이다.”
당태호는 강진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고 하지만, 걸레로 닦아 담으면 되지 않겠냐?”
“뭔 소리야?”
“좀 더러워지긴 했지만 엎질러진 채로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그렇게 생각 안 하냐?”
강진은 대답 없이 당태호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한참 후에야 마침내 강진의 입이 다시 열리자 당태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멍청한 적보다 똑똑한 적이 더 나은 것이다.
당태호는 입을 열었고, 강진은 들었다.
그리고 다시 강진이 입을 열었고, 당태호가 들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내가 영감을 어찌 믿지?”
“그러는 나는 너를 어떻게 믿냐?”
“그럼 이거 다 쓸데없는 소리잖아.”
“하나씩 하는 거다. 내가 먼저 보여 주마. 눈과 귀는 두고 가라. 그리고 내가 한 순간, 너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게 어긋나면 무슨 욕을 먹더라도 네 녀석은 반드시 죽일 것이다.”
노고수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강진은 수긍했다. 믿을 수는 없지만 증거를 그가 먼저 보여 주기로 했으니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악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 서로 한번 노려보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갈 뿐이었다.
* * *
“다 끝났다.”
강진이 돌아와 하는 말에 서문우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추적은 없을 거야. 아니, 여전히 관병의 눈은 피해야 되겠지만, 당문이 나서지 않으니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어떻게 한 거냐?”
“어떻게 하긴. 너 때문에 죽을 뻔했지.”
“무슨 소리야, 그게?”
강진은 사실대로 이야기해 줄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옳은 판단을 했지만 서문우람이 보기에는 절대 불가한 일일지도 모른다.
“잘 해결됐다는 소리야. 하지만 너도 내 말은 따라 줘야겠다.”
“뭘?”
“그냥 알았다고 해.”
“뭔지 알아야 알았다고 하지.”
순간 강진이 눈을 치켜뜨며 서문우람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너 때문에 두 번 죽을 뻔했어, 정말로. 이 내가 죽을 뻔했다고! 그뿐인 줄 알아?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경험도 했다. 아주 더럽더라고. 그러니 너도 그냥 날 좀 믿어.”
서문우람은 별로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를 믿기도 했지만 지금 강진에게 캐물어 봤자 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한다는 걸 안 것이다.
“그럼 나도 정리 좀 하자. 그 증거들 어디 있냐?”
“내가 조사한 거?”
“그래. 그것 좀 봐야겠다.”
“성도에 숨겨 뒀다.”
“잘했어. 그게 널 살렸을 거다. 성도로 가자.”
서문우람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따르기로 한 이상 따라야 했다. 기회를 봐서 물으면 말해 줄 녀석이기도 하니까.
“잠깐. 누구 좀 데려와야 한다.”
“누구?”
“나 죽을 뻔했을 때 살려 준 놈들. 가자.”
강진은 서문우람과 함께 곧바로 촌로의 집으로 갔다.
“형님!”
마침 밖에 나와 있던 아일이 강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소리치며 달려왔다.
아저씨에서 형님으로 바뀐 호칭에 강진은 약간 기분이 이상했지만 납득하기로 했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놈이었다.
“옷도 깨끗하고, 몸은…… 뭐야, 배만 나왔네.”
“어르신이 부족함 없이 해 주셨어요.”
“그래야지, 준 돈이 얼만데. 안에 있지?”
강진은 촌로의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일 형제를 데리고 나왔다.
“인사해라. 이 형님의 하나뿐인 친구다. 높은 관리분이니 잘 보여 둬서 나쁠 게 없다.”
강진이 서문우람을 소개시켜 주자 아일 형제는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안녕하세요!”
서문우람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강진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이 널?”
“그래. 이유가 좀 웃기긴 했지만, 어찌 됐든 목숨 걸고 날 지켜 준 아이들이다. 그러니 이제 네 동생들도 되는 거다.”
서문우람은 신기한 표정으로 강진을 봤다.
사교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자기 잘난 줄만 아는 강진이었다. 누구를 소개시켜 준 적도 없는데 자신의 동생이라 못 박는 걸 보니 어지간히 아끼는 듯했다.
서문우람은 이내 아이들에게 웃어 주며 말했다.
“서문우람이라 한다. 이제 자주 볼 것 같구나.”
그렇게 강진은 서문우람과 아일 형제를 데리고 성도로 향했다.
성도에 도착한 강진은 당문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골목골목마다, 그리고 객잔이며 상점마다 붙어 있던 현상 수배지는 여전했지만 그려져 있는 사람은 전부 바뀌어 있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그림의 인물과 강진과 서문우람이 비슷하다고 하지는 않을 정도였다.
‘영감, 잘하고 있어.’
당태호가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있긴 했지만 사실 그건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된다. 똑똑한 영감이니 전화위복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강진은 근 몇 달 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제대로 된 침상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 날.
강진은 뻘쭘해하는 성도 표국의 국주 이명계를 만났다. 그리고는 서찰 두 통을 귀주 소양풍이 있는 곳으로 보냈다.
한 통은 향아에게 모든 일이 잘 처리되었으니 사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으로 썼고, 또 한 통은 소양풍에게 직접 같이 가 달라는 부탁의 내용으로 쓴 것이었다.
일을 정리한 강진은 고개를 돌렸다.
‘이제 다음 일 해야지.’
강진은 다시 객잔으로 돌아갔다.
* * *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당건강은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님.”
들어온 사람의 정체를 안 당건강의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사내새끼가 목소리가 그게 뭐누.”
“…….”
“당문의 사내는 언제 어디서든 당당해야 한다.”
“네…… 할아버님.”
그래도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당건강의 모습을 보며 당태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우, 미안하다.”
“네?”
“너에게 참으로 미안하구나. 내 조부께서 나한테 그러했고, 내 아버님이 네 아비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너에게 신경을 써야 했다.”
“할아버님…….”
당태호는 다시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그런데 그러질 못했어. 나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받은 것만큼은 너에게 줘야 했는데…… 너무나 후회스럽구나.”
당건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할아버님…… 제가 큰 죄를…… 큰 죄를 지었습니다.”
“안다, 알아…….”
당태호의 눈에도 물기가 맺혔다.
가문에 무심했다 하나, 핏줄에 대한 정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 당건강은 장손자로 제일 기대했고, 표현은 못 했지만 속으로 제일 애지중지하던 아이였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 했다.
당태호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이 할아비가 방금 전에 당가의 사내는 어찌해야 한다고 했느냐?”
“언제 어디서나 당당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당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 아느냐?”
“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만 알면 된다. 그러면 당당하지 못할 게 없다.”
“…….”
“네가 당당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네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했다는 것!”
당태호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려 하며 말을 이었다.
“책임져 다오. 그래서 당당해 다오.”
정말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당건강의 입이 열렸다.
“손자가 어찌 책임을 져야 할까요? 죽으라면 죽겠고, 손가락질받으라면 손가락질을 받겠습니다. 그렇게 책임을 지고 당당해지렵니다.”
“그래…… 그래야…… 당가의 남…….”
천하의 당태호도 정말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하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시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서야 당태호는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두 가지를 다 해 다오.”
당건강의 고개가 들렸고, 당태호가 말을 이었다.
“미친놈으로…… 죽어 다오!”
* * *
“정말 이걸 다 보고할 거냐?”
강진은 증거물을 다 확인하고는 서문우람을 보며 물었다.
“해야지. 조사한 건 가감 없이 보고해야 하는 것이 시어사의 임무이니까.”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데, 이걸 보고하는 순간 네가 어찌 될지는 생각해 본 거지?”
“출셋길은 막혔다고 봐야 하나?”
“그 정도면 다행이지. 그때는 관리 때려치우고 나랑 일하자.”
“너랑 뭘?”
“우리 집안 사업 크게 한다. 머리 좋은 놈이 필요해. 딱 맞잖아.”
“나한테 맡기고 놀고먹으려고?”
“그것도 나쁘진 않고.”
서문우람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강진이 이리 실없는 소리를 할 정도면 사안이 크긴 큰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안이 너무 커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 말자. 그게 낫겠다.”
강진이 결국 속마음을 꺼내자 서문우람은 대답 없이 고개만 저었다.
강진이 말했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는 그럴 수 없다고 했지? 그래, 알아. 그런데 왜 그럴 수가 없지?”
“…….”
“이번 일, 출셋길만 막히면 그게 오히려 천운이다. 이거 보고하면 죽을지도 몰라. 아니, 반드시 죽는다.”
“…….”
“그 잘난 당문,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 온 그 가문도 참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황제가? 내가 황제래도 반드시 죽이려 들걸.”
“그렇겠지?”
서문우람의 힘없는 반문에 강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냥 죽겠다고? 너 정말 미친 거냐?”
서문우람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냥 담담한 표정으로 강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 후에야 서문우람이 강진을 불렀다.
“강진아.”
“왜?”
“정말 그럴 수가 없는 거다. 그래, 내가 죽으면 곤란해질 사람이 많을 거야. 동생들도 슬퍼하겠지. 너도 어쩌면 눈물이라도 흘려 줄지 모르지.”
“내가 죽여 주랴?”
강진이 이를 드러내며 하는 말에 서문우람은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말이다, 그 신념이라는 거, 그게 사라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
“너는 나보고 천재라고 했지? 그래, 공부한다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 정말 많이 노력했다.”
“알아. 그러니 억울하지 않냔 말이다. 이제 시작인데 죽을 걸 알면서도 하겠다는 것이.”
서문우람은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어찌 살아야 할지 결정했고, 동생들도 돌보지 않은 채, 뒤도 보지 않고 공부에만 매달려 왔다. 나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있었고, 출세할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이 모든 게 나의 신념이었다. 공부하고 출세하고 내 뜻을 펼치면서, 내 식구들 배 곯지 않고 살게 하겠다는 것.”
“…….”
“나보고 고지식하다고 했지? 맞아, 나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내 환경에 그런 게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내가 생각했던 것 중에서 하나라도 빠졌다면 여태 이렇게 버티지 못했다.”
“그래, 너 잘났다.”
강진은 더 말할 수가 없었다.
‘결국 거래는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거군.’
그렇다면 이야기를 꺼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모두 해 줄 필요는 없지만 약간은 해 줘야 했다.
“왕부의 일은 그렇다 치고, 당문의 일은 어찌 처리할래?”
강진의 물음에 서문우람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보고하면 관부에서 알아서 하겠지.”
“알아서? 너도 알 텐데? 호족은 건들지 않아. 특히 이런 변방의 호족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냥 호족도 아니지. 무림인이다. 처벌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거라 생각하냐?”
“그것까지는 내가 어찌할 수 없겠지…….”
“마무리는 지어야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강진은 의아한 표정의 서문우람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건…….”
강진의 말을 들은 서문우람의 안색이 변했다.
“그건 안 된다. 법에 따라서 대가를 치러야지.”
“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법에 따를 것 같냐? 이게 최선이다.”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야. 그래, 네 말대로 법에 따라야지.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아. 그래서 네가 더욱더 기를 쓰고 지키려 하는 걸 테고. 안다.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서문우람이 강진을 쳐다보았다.
“범죄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진 거지.”
“정말 그럴 거라 생각하는 거냐?”
“확인해 봐야지. 정말 그리되었다면, 대신 이 보고서에서 당문의 이름은 지우는 거다.”
한참을 생각하던 서문우람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도 하나의 거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는 영감 차례야.’
이 첫 번째 거래가 끝나야 두 번째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일단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 사흘만 더 쉬자.”
그렇게 강진은 객잔에서 사흘을 더 머무른 후 서문우람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이게 뭔 일이래?”
“아니, 저 공자는…… 어이쿠, 이게 뭐야?”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지?”
강진이 서문우람을 데리고 간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한군데를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나 당건강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가문에 피해를 끼쳤기에, 그리고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기에 목숨으로 그 책임을 집니다. 나에게 침을 뱉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장 중앙에는 그렇게 쓰인 푯말이 여러 개 박혀 있었다.
그 푯말 안쪽에는 한 사람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놈 맞지?”
강진의 물음에 서문우람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천에서 제일가는 호족, 당가주의 장자 당건강이었다.
절대 이런 곳에서 저런 자세로 죽어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서문우람의 확인은 필요 없었다.
사천에서 유명한 인사인 만큼 그를 알아보는 자는 많았다. 그래서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수군거리기만 하는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당가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으므로.
그래서인지 푯말에 쓰인 대로 침을 뱉는 간 큰 자는 없었다.
그때 얼굴에 두꺼운 천을 둘러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사람들을 헤치고 당건강의 시체에 다가가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을 뱉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사자(死者)가 침을 뱉어 달라고 했지만 정말 뱉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서문우람 역시 좋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됐다.”
“저 정도면 죗값을 치른 거지?”
“죗값을 치렀다기보다는 책임을 진 거다. 관련된 사람들은 이미 죽었으니까.”
“그 유족들에게도 보상을 한다고 하더라. 죽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안다면 위로는 될 거다.”
서문우람이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기자 강진도 그 뒤를 따랐다. 그 순간이었다.
-이놈!
강진은 멈칫했다.
-약속은 지켰다. 이제 네놈 차례다.
강진은 당건강에게 침을 뱉은 무리를 향해 전음을 날렸다.
-두 번째 거래나 잘 지키라고.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