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29)
관존 이강진 (129)
털썩.
바닥에 소리 나게 떨어진 그녀는 고통을 먼저 느끼기보다는 경악 어린 표정으로 강진을 보았다.
의뢰금이 높은 걸 보고 상대가 고수라는 걸 짐작했지만, 직접 본 목표물은 그저 건방진 서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허약해 보이는 서생과 아이들.
이건 그냥 거저먹는 거라 생각했다.
환희요공이 통하지 않았을 때 이상하다 싶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손이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혈을 짚이다니.
허공을 격하고 점혈할 수 있는 고수는 천하에 정말 많지 않았다.
‘반로환동?’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여인은 온몸이 뒤틀어지는 고통을 당했다.
하지만 비명은 지르지 못했다. 소리라도 실컷 질렀으면 좋겠지만 안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은 목구멍 끝에조차 올라오지 못했다.
꿈틀꿈틀, 몸이라도 뒤틀 수 있으면 좀 나을 것 같았지만, 마치 산송장인 양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다들 자는데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되지. 뭔 배짱인지 모르지만 혼자 온 거니 그렇게 좀 있으라고. 나도 한숨 자야 할 것 같으니까.”
강진의 그 말은 여인에게 있어서는 죽인다는 말보다 더한 협박이었다. 어떻게든 살려 달라, 아니 그냥 죽여 달라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입과 몸은 굳어 있었다.
강진은 정말로 자리에 누웠다.
피곤했다.
별 시답잖은 여자 때문에 소중한 휴식 시간을 뺏겼다. 그녀는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그런데 누구지?’
당문은 아닐 것이다.
이미 그들은 가문의 장자를 죽게 만들었다. 의심은 해도 그럴 확률은 극히 적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왕부뿐이었다.
‘그런데 여태 찾지 못했다가 찾았다? 그렇다면 일단 관병부터 보여야 하는데.’
몇 가지 가정이 떠올랐지만 확실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자신들이 노출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미 노출된 이상, 서문우람과 아일 형제를 데리고 다니는 한 그들의 추적을 뿌리칠 수 없다는 것.
방법은 있었다. 의심되는 자들은 무조건 죽이는 거다.
그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러자니 또 아일 형제가 걸렸다.
一. 녀석들은 이제 내 식구다.
二. 나를 알아야 하지만…… 아직은 이른 것 아닐까?
三. 어리다. 그때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四. 나도 사부를 만난 게 늦었다면…… 사부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五. 또 이 녀석들이 나를 우러러보는 이유는 내가 나쁜 놈들을 잡아 처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六. 그런데 내가 그냥 사람을 죽인다면?
七. 싫다. 남들에게도 그렇지만, 내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존경받는 사람이고 싶다.
강진은 복잡한 사실들을 단순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단순화를 시켜야 선택의 문제로 만들 수 있고, 옳은 선택을 할 수가 있게 된다.
‘남이라면 모르지만…….’
강진은 누웠던 몸을 일으켜 옆에 잠든 아일을 보다가 웃었다.
‘내 말에 책임져야지.’
그리고 다시 여인에게 다가갔다.
산송장처럼 누워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육체적 고통도 심하지만 언제까지 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기에 심적인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눈이 그 고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강진이 혈을 풀어 주는 순간 그녀는 누운 채로 몸이 튕기듯이 움직였다. 참고 참았던 고통에 대한 반발력만큼이나 높게 튕겼다.
“목소리 높이면 정말 잔다.”
강진이 말을 하며 아혈을 풀어 주자 그녀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녀의 오공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이다. 누가 보냈지?”
“전방! 전방에서 의뢰를 받았습니다. 의뢰를 받은 곳은 사천 성도였고, 그곳에 전방의 하급 관리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의뢰금은 황금 천 냥이었습니다. 같이 있는 자들까지 잡으면 오백 냥을 더 준다고도 했습니다. 그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코며 입이며 할 것 없이 묽은 물을 흘리고 있음에도 그녀는 숨까지 줄여 가며 강진이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을 털어놓았다.
그만큼 두려웠다. 정말 강진이 다시 자 버린다면, 그 오랜 시간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그 고통을 다시 맛보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아주 좋아. 본관은 약속을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다. 잘 대답했으니 살려 줄 거야. 그 전에 하나만 더 묻자.”
“소녀가 아는 거라면 조금의 거짓도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아, 네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걸. 그러니 실수로라도 허튼소리 하지 말고 대답해 봐. 나를 어떻게 찾은 거지?”
전방이 어떤 곳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곳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되었다.
문제는 자신들을 어떻게 찾았냐는 것.
“그들이 알려 줬습니다.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니 대협을 돈으로 찾았을 겁니다. 대협이 여기까지 오면서 누구를 만났는지 모르지만, 그 누군가가 말해 줬을 겁니다.”
“나를 어찌 알고?”
“그것까진 정말 모릅니다. 저는 정보를 받았고, 준비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니 고통 없이 죽여만 주세요.”
“살려 준다니까. 그래도 죽고 싶어?”
여인은 놀란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살려만 주신다면…… 이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똑똑해서 다행이야. 괜히 내가 자 버리면 다음 날 널 죽여야 하는데, 애들 교육상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좀 그렇잖아. 본관은 약속은 지켜. 그러니 살려 준다. 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어쩔 수 없을 거야. 그렇지?”
여인은 순간 얼굴이 굳었다.
강진이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은 강진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쉽게 말하지도 않았을 터.
“쉬운 게 아닐 거야. 그냥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할 테고. 그래서 말이야.”
강진은 입을 열며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의 품에서 나온 건 작은 약병이었다. 약병을 뒤집으니 짙은 빨간색의 단환들이 쏟아졌다.
“이거 먹어 봐.”
“이게…… 뭡니까?”
“몰라. 당문에서 가지고 있던 건데, 독이거나 해독제, 둘 중 하나겠지.”
여인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는 걸 보며 강진은 말을 이었다.
“걱정 마. 절독은 아닐 거야. 사람을 순식간에 죽이는 독은 그렇게 많은 게 아니더라고. 그러니까 이걸 먹고 당문으로 찾아가서 도움을 청해. 여기서 당문은 그리 멀지…… 좀 먼가? 하여간, 불구가 되지 않고 살 수도 있지 않겠어?”
여인은 부르르 떠는 손으로 빨간 단환을 집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는 것도, 그렇다고 불구가 되는 것도 싫었다.
여인은 빨간 단환을 삼키고는 강진을 쳐다보았다.
“내가 당해 봐서 아는데, 독 먹고 내공을 쓰면 독이 빨리 돌더라고. 그러니까 천천히 가야 할 거야. 뭔 소린지 알지? 네가 당문에 도착했을 때쯤이면 나도 이곳에 없을 테니…… 서로 좋잖아?”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은 손짓하며 말했다.
“이제 가도 돼.”
여인이 급히 사라지자 강진은 하품을 하며 자리에 누웠다. 이제는 정말 좀 자야 했다.
* * *
“그 예쁜 누나는요?”
잠에서 깨어나니 여인이 사라지고 없자 아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제 너희가 잘 때 그 여자가 알고 있는 사람이 지나가기에 보냈지. 서두르자. 잠은 편한 데서 자야지.”
강진은 아일 형제가 미처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그들을 재촉했다.
서문우람은 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이내 관심을 버렸다.
강진이 막나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있고 아이들도 있는데 그녀를 해코지할 사람은 아니었다. 뭔가 일이 있는 건 확실하지만 자신이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렇게 일행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강진이 걱정하고 주의했던 것과는 달리 섬서성에 들어설 때까지 특별한 일은 없었다. 별 시답잖은 자객들이 열 차례 이상 일행을 막았지만, 강진에게 어디 한 군데 부러지고 도망치기가 일쑤였다.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놈들이었다.
그렇게 다시 서안에 이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확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진의 경계심도 조금씩 풀어졌다.
아니, 경계심이 풀어졌다기보다는 여유가 생겼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서안에는 이가상단의 사업체가 몇 군데 있다. 또 이미 본가에 연락한 상태였다. 전해졌다면 자신을 돕기 위해 아버지가 손을 써 놓았을 터. 이제는 자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아버지의 조치가 먼저 이뤄졌는지의 문제일 뿐이었다.
강진은 상단의 사람들을 찾으면 일단 아일 형제부터 이가장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다니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한참 먼데 계속 데리고 다니기는 무리였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먼저 돌려보내는 것이 좋았다.
‘낭인들도 좀 고용해 볼까? 아님 표국을?’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이런저런 수단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면 고용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전방인지 뭔지가 살수들을 보냈다면, 그들이 크게 도움은 되지 못할지 모르지만 혼자인 것보다는 나았다.
“정 총관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에게 부탁해서 안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있다면 낭인들이나 표국에서 믿을 만한 무인들을 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좀 무리인가? 어디서 찾는다냐.’
광동에서 섬서는 너무 멀다.
이가상단이 전국구 상단이긴 하나 섬서에는 그냥 중계를 맡은 작은 지부 정도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버지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실 테지만, 시기가 맞지 않고 재수가 없는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도 좀 챙기는 건데.’
두둑하던 전낭에 돈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쓰기만 할 뿐 채워 넣지를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살면서 한번도 돈이 아쉬워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강진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였을 거다, 돈도 얼마 남지 않았으면서 서안에서 제일 눈에 띄는 객잔으로 들어간 것도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