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33)
관존 이강진 (133)
“어디 있냐고!”
강진의 추궁에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시진 전에…… 수적들이…….”
“그게 말이 돼?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고. 배에서 눈을 뗀 시간은 두 시진도 되지 않아!”
“물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오십 년을 넘게 물에서 살아왔지만…… 그놈들처럼 자맥질을 잘하는 놈들은 처음 봤습니다. 나타나고 공자님의 일행을 끌고 가는 데 걸린 시간은 반 각도 되지 않았습니다.”
강진은 난생처음으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랬다는 건, 자신의 시야 안에 있다 하더라도 성공해 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끈질기게 기다렸다. 자신이 배에서 눈을 떼는 순간을 말이다.
‘내가 놈들을 얕봤다!’
얕본 것이다. 아니,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시했다. 또 아니다. 분명 경계했고 조심했다. 다만 그놈들이 자신의 예상을 넘어선 뛰어난 놈들인 것뿐이다.
“그리고 이걸…….”
그때 사공이 서찰 하나를 건넸다.
강진은 급히 서찰을 확인했다.
한 시진 후, 상남에서.
“노인장, 상남이 어디지?”
강진의 다급한 물음에 사공이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상남이라면…… 여기서 한나절 정도 더 내려가야 합니다.”
강진의 표정이 굳었다.
‘배로 한나절이라면 이백 리 길이다. 그런데 한 시진 후에 만나자고 한다는 건, 내 능력을 알아보겠다는 것? 아니, 내 힘을 빼 놓겠다는 것인가?’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일단 가면서 생각해도 충분하다.
눈앞에서 강진이 사라지자 사공은 놀란 가슴을 움켜잡았다. 오늘 귀신들을 만났다.
“그나저나…….”
사공은 강진이 갖다 놓은 돈 상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받아도 되나…….”
사공이 그 고민을 하는 사이 강진은 극성으로 신법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백 리를 한 시진 안에 가는 건 강진으로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렵지 않은 일일 뿐이지 쉬운 일도 아니었다. 거기에 마음까지 다급하니 내공이 더 빨리 소진되는 것 같았다.
어찌 됐든 한 시진이 채 걸리지도 않아 강진은 상남현에 도착했다.
상남으로만 가라고 했지 장소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인적 드문 관도에 생뚱맞게 내걸린 커다란 붉은 깃발 한 개.
강진이 다가가니 거기에는 천 조각이 하나 묶여 있고, 확인하니 글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아까 그 장소로 한 시진 후.
“이 새끼들이!”
강진은 분노했다. 그러다가 아주 단순한 사실 한 가지를 밝혀냈다.
자신은 한 시진 내에 그 선착장에서 상남에 도착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것.
이건 서문우람과 아일 형제를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들을 데리고는 한 시진 내에 이백 리 길을 갈 수가 없다. 그건 아주 단순한 사실이다.
‘그래, 힘을 빼 놓겠다는 거 아니냐! 그럼 이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은 뭐지?’
일단 상황이 자신에게 너무 불리했다.
그들에게는 서문우람과 아일 형제라는 인질이 있었고, 자신은 그들을 찾아야 했다. 그들이 천 리 길을 한 시진 내로 오라고 해도, 자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은 가야 했다.
‘아니,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분명 자신은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여야 했지만, 또 그렇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강진은 충동적인 성격이지만 하고자 하는 일은 철두철미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걸 몰랐다, 강진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믿게 해 줘야 했다.
한참 고민하던 강진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불리한 건 사실이지만 유리한 것도 있잖아.”
그의 품속에는 사천왕부에서 저지른 죄들의 증거가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결국 자신이나 서문우람이 아닌 이 증거들이다.
강진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단순한 사실이다. 그들은 인질을 해칠 수가 없다.
“아쉬운 놈이 와야지!”
물론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서문우람과 아일 형제.
열이 되지 않는 자신의 사람들 중 반이다.
친구가 하나도 많다고 느끼는 강진이 서문우람을, 그리고 목숨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던 아일 형제를 포기할 리 없었다.
하지만 이건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다.
첫 번째가 자신이다.
아일 형제를 구하지 못했던 상황과 똑같은 거였다. 자신이 살아 있어야 그들이 있다.
강진은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신법을 전개하지 않았다. 그냥 걸을 뿐이었다. 소진된 진기를 보충하며 말이다.
* * *
“아빠!”
잘 챙겨 먹이려고 그리 노력했음에도 앙상한 손마디와 삐쩍 마른 팔뚝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딸아이가 자신을 향해 뻗는 두 손을 고순은 거부할 수 없었다.
“시간이 없네. 기회를 놓칠 셈인가?”
옆에서 노인이 하는 말에 고순은 딸을 가슴에 품고는 고개를 돌려 싸한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시간을 벌어 주기로 하지 않았소? 정아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요?”
“의원 말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하더군. 그러니 빨리 처리해야 하지 않겠나?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네.”
“아빠, 가지 마!”
그때 여아가 고순의 품에서 떨며 그의 옷자락을 꽉 붙들었다.
고순은 느낄 수 있었다.
딸아이는 겁을 내고 있었다. 이 손을 놓으면 다시는 자신을 만나지 못할 거라는, 그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가야 돼. 이번 일만 끝나면 건강해질 수 있다. 건강해지면 아빠랑 같이 좋은 곳에 놀러 다니자.”
“지금 같이 가요. 나 혼자 두고 어디 가지 마!”
고순은 몇 번을 설득했지만 여아는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그는 차마 힘으로 딸의 손을 떼어 놓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서질 듯한 느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고순은 노인을 보며 말했다.
“딸이랑 같이 갈 것이오. 이생단을 준비하시오. 일이 끝나는 순간 넘겨주시오.”
“그건…….”
노인이 곤란한 듯이 말하자 고순이 다시 말했다.
“약속한 것 아니오. 그렇게 해 주시오.”
노인은 잠시 망설였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는 여식의 병만 아니라면 이런 일에 나설 사람이 아니었다.
전괴(錢怪) 고순.
구괴 중 하나이지만 애초에 그는 구괴에 속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별호일 뿐.
그는 원래 광명정대했고, 그 성격만큼 고강한 무공을 지닌 무인이었다.
‘역시 이 건은 기분이 좋지 않아.’
노인은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준비하겠네. 시간이 많지는 않아. 어서 움직여야 할 걸세.”
고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딸을 꼭 품었다.
* * *
갈 때는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았지만 돌아올 때는 두 시진이 넘게 걸렸다. 선착장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붉은 깃발만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상남으로 한 시진이다.
시간에 맞추지 않는다면 그들은 죽는다.
강진은 천 조각에 적힌 글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자신이라면 이따위 협박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그들이라면 인질의 팔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서 깃발 대신 세워 놨을 것이다. 아니, 인질이 넷이나 되니 하나쯤은 시체로 만들어 세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정말 그랬다면 미칠 정도로 화가 났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이건 협박이 아니라 자신들의 약점을 노출시킨 것이다.
그래도 움직여 주기는 했다.
어찌 됐든 그들의 얼굴은 봐야 일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니 하라는 대로 해 준다. 다만 이렇게 똥개 훈련시키는 것처럼 움직이게 한 대가는 확실히 치르게 해 줄 것이다.
강진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미 날은 컴컴해져 있었다.
산속의 밤은 습하다. 땀을 흘리지 않더라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옷이 축축해질 정도였다.
강진의 옷도 축축해졌다.
당연한 일이다.
진기를 전혀 소모하지 않고 걷고 있으니 보통 사람과 같을 수밖에 없다. 다만 걸음이 보통 사람들이 달리는 것보다 빠를 뿐이었다.
그렇게 또 두 시진이 지나자 상남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깃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강진이 기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세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그 무리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겉모습만으로는 가장 강해 보이는 것 같은 사람들.
강진의 눈에는 별게 아니었다.
삼류 낭인들을 모아 온 듯했다. 그것도 알량한 용력만을 믿고 나설 데 나서지 않을 데를 구분 못하는 멍청한 놈들의 무리였다.
하지만 그 옆의 다른 무리는 좀 달랐다.
숫자는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칼 몇 번 휘둘러 볼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들이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사람이라면 좀 오랜 시간이 걸려야 처리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 무리.
무리라고 표현해야 하나?
척 봐도 부녀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
아일 형제가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여아는 그것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아를 품고 있는 사내.
‘강하다!’
강진은 검을 잡았다.
그와 싸운다면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무기를 맞댈 것이다.
물론 그보다는 자신이 더 강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또 다른 강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강진은 쉰이 넘는 사람들 앞에 섰다.
“내 일행은?”
강진의 물음에 노인 하나가 나섰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군. 덕분에 오래 기다렸어.”
“약속? 그걸 누가 했는데?”
강진이 퉁명스럽게 하는 말에 노인은 씩 웃으며 어디 한 군데를 손가락질했다.
“저기에 있지. 그리고 내 말 한마디에 생사가 갈릴 것이네. 됐는가?”
“아, 그럼 당신부터 죽이면 되는 거네.”
“어…….”
노인은 강진을 향해 ‘뭐라고?’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건 놀람의 외침뿐이었다.
강진이 어느새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월광에 희번득거리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강진의 행동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났다.
그는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인질의 안전을 확인하고 흥정 아닌 흥정을 하며 위축되고, 또 잡혀 줘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뭔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주변에 있던 어떤 사람도 반응하지 못했다.
오로지 고순만이 움찔하며 검을 잡았지만, 다른 한 손에 안고 있는 여아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다.
“인질은 나도 있는데 말이지. 일단 확인부터 하자. 데리고 오라고 해.”
강진의 손아귀에 목이 잡힌 노인이 캑캑거렸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강진의 손아귀를 잡으려 했다.
빙글빙글.
하지만 강진이 그대로 팔을 허공에 돌리자, 노인의 굳은 몸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허공을 돌았다.
강진은 팔을 멈추고는, 노인을 자신의 눈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맹수가 개새끼들과 이야기하는 거 봤어? 맹수가 개새끼들을 만나면 그냥 잡아먹을 뿐이야. 다른 거 없어.”
“…….”
“데리고 오라고 해. 다시 돌려 줄까?”
그 어떠한 대화도 허용치 않겠다는 강진의 말에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계획은 좋았다. 상대의 방심을 유도했고, 그의 주변 인물들을 생포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인질을 손에 넣는 순간 강진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무엇일까?
“개답게 나를 추적해 온 실력은 인정해. 아주 제법이었어. 하지만 딱 거기까지 해야지. 이게 뭐야? 뭘 믿고 내 앞에서 그렇게 방심했지?”
강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노인의 숨통이 죄여 왔다. 그러고는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나랑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내 일행을 인질로 흥정 내지는 협상을 하고 싶었다면, 맹수들을 불러왔어야지, 개새끼들이 아니라.”
강진은 고순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상처 입은 맹수 말고, 온전한 맹수를 말이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