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34)
관존 이강진 (134)
변명
사부 말은 역시 틀린 게 없었다.
무림인 중 강하면서 가난하면 착한 분이고, 무공도 더럽게 약하면서 부자면 나쁜 새끼라고 했다.
물론 강진 자신은 강하면서도 부자였으니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착한 분일까, 나쁜 새끼일까?
* * *
“형님!”
일행이 사내 둘에게 끌려왔다. 사내들이 강진에게서 오십 보쯤 떨어진 곳에서 멈추자 아일이 먼저 강진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다친 데는?”
별로 힘줘서 말한 것 같지 않았지만 소리는 반경 십 리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다.
“없어요. 형님, 그런데 이 사람들 뭐예요?”
“나쁜 놈들이겠지. 기다려.”
강진은 노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너랑 교환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노인은 처음에는 강진의 이외의 반응에 당황하고, 목을 잡혀 고통스러워 반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정리되니 여유가 생겼다.
여전히 자신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지만 결과는 달라질 게 없었다.
“내 목숨이 황금 삼천 냥의 가치는 되지 못하지.”
“황금 삼천 냥? 그게 내 목에 걸린 액수인가?”
“저기 있는 이들까지 말이지. 물론 쟤네들은 오백 냥 가치도 안 돼. 하지만 자네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는데?”
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늙은이 당신의 가치는?”
“물론 나에게 있어서는 억만금의 가치가 있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판단해 주지 않아.”
“그래서 죽겠다?”
“살고 싶지. 아니, 살 거야. 협상은 그런 거 아니겠는가? 서로 용납할 수 있는 점을 찾는 것.”
강진은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 재미있어. 그리고 말하기가 아주 편해. 좋아, 한번 말해 봐.”
“저들을 풀어 주지. 그리고 자네는 잡히는 거야.”
“그리고?”
“간단한 거지. 자네를 생포해서 데리고 가면 우리 일은 끝나. 자네 실력을 보건대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어떻게 보면 무척 재미있는 제안이었다. 귀가 솔깃할 정도였다.
하지만 말을 뜯어서 보면 아니다.
일에는 시작과 결과가 있다. 그사이에 어떻게 내지는 과정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결국에는 어떠한 일은 결과만이 남게 된다.
노인의 말은 결과를 중시하는 듯하지만 그사이의 과정이 빠져 있었다.
일의 시작과 결과.
인질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시작했고, 아무리 말을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 인질을 이용해 강진을 생포하겠다는 말이었다.
“몇 가지 문제가 있어.”
“뭔가?”
“당신 말은 그럴듯해. 맞아, 잡혀가도 나는 빠져나올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이미 거래 중이야. 시간이 지나면 안 되는 일이지. 또 하나는 당신의 가치야. 당신은 내 손에 목숨을 맡기고 있고, 당신을 죽여도 이 거래는 성사될 수 있지. 그럼 내가 손해 보는 거 아닌가?”
“그건…… 내 따로 보상하지.”
“또 하나. 이게 가장 중요해.”
노인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무인들도 강진의 입에 집중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믿지?”
순간 강진의 신형이 움직였다. 물론 노인을 손에 움켜쥔 채였다.
협상 중에 강진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아니, 알았다 하더라도 그의 움직임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고수는 몇 되지 않았다.
하나 있었지만 역시 그는 상처 입은, 약점 있는 맹수였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강진은 단숨에 오십 보를 격했다. 그리고 노인을 무기 삼아 서문우람과 아일 형제를 둘러싸고 있는 두 무인을 처리했다. 그러고는 고순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 있는 거겠지. 뭘 해도 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흔들리지 않는 확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적이라는 것?
그것도 문제는 아니었다.
강진은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숨기고, 포장하고, 모른 체해도 그는 적을 만드는 성격이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딱 하나였다.
그가 바로 고수라는 것!
그 누구라 하더라도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면 살려 둘 수 없다. 아니, 단순한 개새끼라면 살려 둘 수도 있다. 개새끼가 덤벼 봤자 몇 대 때리면 깽깽하며 물러날 뿐이다. 하지만 맹수는 아니다. 죽여야 한다면 반드시 죽여야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짜증이 솟구친 강진은 무기 역할을 하느라 어디 몇 군데 부러진 것이 분명한 노인을 향해 말했다.
“일단 너부터 죽자. 그냥 두기에는 너무 찝찝해.”
강진이 손아귀에 힘을 주는 순간 엄청난 풍압이 그의 발끝을 향해 일었다.
콰쾅!
강진이 발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풍압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고순에게 돌아갔다.
그는 손을 들고 있었다.
단순히 그 동작만으로 무려 오십 보에 가까운 거리를 격하여 장력을 날린 것이다.
‘오십 보라…… 나도 할 수 있어!’
강진 자신도 장력을 쏘아 내려는 순간, 꼼짝도 하지 않던 고순이 미끄러지듯이 다가왔다. 품 안에는 여전히 여아가 있는 상태였다.
강진이 손을 거두자 고순은 십 보 앞에서 멈춰 서더니 말했다.
“그를 죽일 수는 없다.”
“왜? 당신이 그의 가치를 물어 줄 텐가?”
강진의 물음에 고순은 담담한 표정으로 노인을 보며 말했다.
“결정하시오.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오? 뭐가 됐든 이생단은 반드시 받아야겠소.”
“이놈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이생단은 네 손에 있게 될 것이다.”
“당신도 보지 않았소? 그는 절대 내 아래가 아니오. 운이 좋아 그를 사로잡는다 하더라도 당신을 구할 수는 없소. 어찌할 것이오?”
“그래서 방수들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닌가?”
고순은 고개를 돌려 낭인들을 보는 대신 강진을 보며 말했다.
“저들은 도움이 되지 않소. 인질이 있어도 당신을 잡은 것처럼. 그건 내 장담할 수 있지.”
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이 통하네. 그런데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이런 자들과 어울리는 것이지?”
고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 잡힌 노인을 보며 결정을 요구할 뿐이었다.
“내가 죽더라도…… 이놈은 잡아야 한다. 그래야 네 손에 이생단이 떨어진다.”
고순의 눈빛이 떨렸다. 그리고 한참을 강진을 보았다.
강진은 고순을 기다려 주었다.
그의 사정을 헤아리는 게 아니라, 강진 역시 계산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숫자가 가장 많은 낭인 떨거지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다른 무리의 고수들은…… 약간 귀찮을 터였다. 서문우람과 아일 형제 보호도 같이 해야 한다는 걸 생각한다면 약간의 수고스러움을 피할 수가 없었다.
역시 문제는 눈앞의 사내였다.
그가 일행을 노리면 서문우람과 아일 형제는 죽는다. 그건 확실하다. 그 허튼 수로 자신이 약간의 우위를 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기다려 주었다.
자신은 방법이 없지만 그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도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때 고순의 입이 열렸고, 그 내용은 기다려 준 보람이 있는 것이었다.
“일이 어찌 됐든 서로 지켜야 할 사람은 건드리지 않기로 하세.”
“그게 뭔 소린가?”
“결국 자네와 내가 결단을 내야 할 일. 나는 자네 일행에게 손을 대지 않을 테니 자네도 내 딸에게 손을 대지 않기로 하지.”
“우리 둘이 붙자는 건가?”
고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가 이기면 나는 원하는 것만 받고 가겠네. 자네가 이긴다면 막을 자는 아무도 없지 않겠나?”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손해야. 당신이 이기면 우리는 잡혀가지만, 내가 이기면 당신만 빠질 뿐 다른 놈들은 어떡하고?”
“이건 비무가 아니니까. 애초에 자네가 불리한 싸움이니 자네가 감당해야겠지.”
“으음.”
강진이 다시 머리를 굴릴 때 고순이 노인을 보며 말했다.
“결과가 어찌 됐든 이생단으로 딸을 치료해 주시오.”
“자네가 이겨야 가질 수 있을 것이네.”
고순은 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기면 상관이 없지만 지면……. 당신들은 전방이지 않소. 나도 당신네들처럼 생각하기로 했소. 이건 내 목숨값이오.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결과가 어찌 됐든 그만한 대가는 받아야 하지 않겠소? 또한 저 사람은 황금 천 냥으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오. 애초에 당신네들 계산이 틀렸소.”
노인도 계산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천 지부에서는 어떻게 계산을 한 거야! 이건 만 냥을 받아도 모자라잖아!’
고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순도 일대일로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라는 건 알지 못했다.
고순이 일대일로 상대하지 못한다면 천하백대고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자를 황금 삼천 냥에?
계산이 잘못되었다.
그 돈으로 백대고수 중 하나를 제거할 수 있다면, 천하제일고수는 돈이 가장 많은 놈이 되는 것이다. 전방이 존재하는 한은 말이다.
노인이 말했다.
“자네 말이 맞아. 우리가 계산을 잘못한 게 맞아.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리 공평하던가? 누군가에게는 황금 천 냥짜리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에는 철전 한 푼짜리 가치도 되지 못할 수도 있지.”
“무슨 뜻이오?”
“자네는 장사꾼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지. 원래 흥정이란 느긋한 놈이 훨씬 유리한 법이지. 그래서 상인들은 속내를 내보이지 않아. 하지만 나는 자네를 잘 알지 않는가? 자네는 승률이 일 할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싸움을 할 거야. 자네는 급하니까. 반드시 해야 하니까.”
고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노인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사람이 있었다.
“멋지네! 뭔지는 모르지만 다 계산을 할 수 있다니. 하지만 지금 흥정 상대가 틀렸잖아. 늙은이의 흥정 상대는 저 사람이 아니라 나야. 그리고 맹수와 개새끼의 흥정에는 언제나 맹수가 유리한 법이지, 안 그래?”
강진이 노인을 마구 흔들며 하는 말에 고순의 눈빛이 묘하게 흔들렸다.
“자네, 하나만 약속해 주겠는가?”
고순의 물음에 강진은 노인을 구타하던 손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서로 지켜야 할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는 걸로. 그럼 자네가 손해를 보지 않게 해 주지.”
“어떻게?”
“약속부터 해 주게.”
“약속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약속도 잘 지켜. 하지만 믿을 수 있겠어?”
고순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 딸아이가 상처를 입으면 자네 일행도 상처를 입을 테고, 딸아이가 죽으면 자네 일행도 죽을 테니까. 이래도 믿음이 필요한가?”
“훨씬 말하기 편한 상대로 바뀌었네. 좋아, 당신 생각은 뭔데?”
“일단 저 사람들부터 처리하지. 그리고 우리 둘이 승부를 내세. 그럼 되지 않겠나?”
고순의 말에 노인은 고통으로 혼미한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고순은 노인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내가 받은 의뢰는 저 사내를 제압하는 것, 나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소. 그럴 바에는 내가 지더라도 그가 내 딸아이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이 좋지 않겠소?”
“하지만!”
빠악!
그때 강진이 노인의 뒤통수를 갈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지. 나도 아는 걸. 그리고 급한 건 저 사람뿐만이 아니잖아. 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도 흥정을 하려고 하냐?”
강진은 노인을 점혈하고는 고순을 보며 말했다.
“좀 잘 먹이지 그랬어? 내 동생들보다 더 비쩍 마른 것 같은데.”
고순은 순간 흠칫하다가 이내 딸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쓴웃음만 지었다.
“아일, 저 아이 잘 데리고 있어.”
강진의 말에 아일이 엉거주춤하며 고순에게 다가갔다.
고순은 어느새 잠이 든 딸을 조심스럽게 아일에게 건네며 말했다.
“깨지 않게 조심해 다오.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이니.”
“걱정 마세요. 그런데 아저씨, 안 싸우면 안 돼요? 아저씨도 엄청 셀 것 같지만 우리 형님도 엄청 세거든요. 그리고 나쁜 놈들 잡는 사람이니까, 뭔지는 모르지만 우리 형님에게 도와 달라고 하세요.”
고순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강진이 옆에서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
“아일, 주제넘다!”
아일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자 강진이 고순에게 말했다.
“싸워야 할 상대끼리 말을 나누어 봤자 좋을 게 없더라고. 죽일 놈 살릴 놈 정했으면 그리하면 되는 거야.”
고순은 고개를 끄덕였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리둥절해하는 낭인들과 무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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