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36)
관존 이강진 (136)
아는 것만 보인다
“감히 자객이 또! 이곳에 왔었단 말이지.”
분노로 이제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왕부라고?”
“네. 줄이 닿지 않은 듯, 별 시답잖은 놈을 보냈더군요.”
“강진이에게는?”
“그게, 아직입니다. 아무래도…… 사람을 동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부담이 돼. 똑똑한 녀석이니 잘할 거야. 그렇게 믿고 움직일 수밖에 없어.”
“어찌하실 생각인지?”
“가만히 당하고 있으면 또 오겠지. 그 자객, 어디 소속이었지?”
“혈살방이라고…… 사천에 자리를 잡은 놈들입니다.”
“지워.”
짧은 한마디에 정 총관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물었다.
“아이들을 더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이곳에만 머문다면 부담도 없습니다.”
“그래야겠지…… 차분한 아이들로만.”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슬슬 미끼를 풀어도 될 것 같다. 완공이 얼마 남지 않았어.”
정 총관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시작인 겁니까?”
“천천히. 이십 년을 참았는데, 순간의 조급함을 경계해라.”
“존명.”
정 총관이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가자 이제원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하긴 요새 일이 너무 잘 풀렸지. 한번쯤 삐꺽할 때가 된 거야.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거지? 녀석의 성격에 절대 손해 볼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대대적으로 찾지 말라고는 했으나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곽 노인이 옆에 없다는 게 더 걱정이 되는군.’
이제원은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언제 태어날까?’
걱정은 걱정이고 기대는 기대였다. 그는 안채로 걸음을 옮겼다.
* * *
고순의 딸인 고정은 어제 이생단을 먹었다.
구하자마자 바로 먹이려 했지만 서문우람이 말렸다. 이생단이 어떤 약인지는 모르나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릴 정도의 엄청난 약이라면 준비해야 할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고순도 치료해야 했기에 강진은 일단 고을에서 가장 큰 의원을 찾았다.
고순을 치료하며 고정도 의원에게 보였다.
다행이었다. 이생단은 그 약효가 너무 강해, 복용하는 자도 준비해야 할 게 있었다.
고순이 거동이 가능할 때쯤 고정이 이생단을 먹을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어제 그걸 먹은 것이다.
“효과는 좀 있는 것 같아?”
강진이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지나가는 말처럼 묻는 말에 서문우람이 웃으며 말했다.
“가서 보면 되잖아.”
“내가 왜? 뭔 상관이 있다고.”
“네가 살렸잖냐. 구해 줬으면 책임도 져야지.”
“지 아비가 그리 찰싹 달라붙어 있는데 내가 뭘.”
서문우람은 강진의 소매를 붙잡고는, 그를 끌고 가듯이 하여 고순의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 오셨습니까?”
정아의 옆을 지키고 있던 고순이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고순은 강진을 주인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은 그걸 말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노예니까.
“대인 아저씨.”
정아도 누운 채로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자, 강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웃지 마. 예쁘지도 않으면서.”
강진이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누가 봐도 정아는 예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 탕약을 입에 달고 산 아이였다. 비쩍 마른 몸은 그렇다 치고, 머리는 기름지고 치아는 누렇다. 햇빛을 보지 못하니 뺨에는 주근깨 같은 것이 수두룩하게 있었다.
“저도 예뻐질 거예요.”
정아가 웃으며 대답하자 강진은 심드렁하게 그녀를 보았다.
이렇게 못생긴 아이지만 웃을 때에는 좀 예뻐 보이기도 했다. 확실히 어제보다는 더 예쁜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은 얼굴에 홍조가 돌고 있지 않은가?
“행여나. 시집이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강진의 험담에도 고순은 옆에서 미소만 지을 뿐 뭐라 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말도 걸지 않던 딸아이다. 그런데 유독 강진에게는 말을 걸고 웃음까지 보인다.
정아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누가 자신을 구하고 위해 주고 있는지를 말이다.
“뭐, 잘 먹이면 조금 봐줄 만할지도 모르겠다. 쉬고 있어라. 내일부터는 움직여야 할 테니까.”
강진은 서문우람과 고순을 불러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이제 움직여야 해. 전방이 또 무슨 훼방을 놓을지도 모르니 여유가 있을 때 움직여야지.”
“어디까지 가시는 겁니까?”
고순의 물음에 강진이 그를 보며 물었다.
“내가 너를 믿어도 되나?”
고순은 흠칫하며 말했다.
“주인께 목숨을 걸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 생각이었고. 너도 그러기로 한 건가?”
고순은 대답 없이 강진을 직시했다.
강진도 피하지 않고 그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눈만 치켜떠서야 알 수가 없지. 나쁜 놈들도 연기력만 훌륭하면 그런 눈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야.”
“저는 그런 거 모릅니다.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었다면 살려 두셨겠습니까?”
물론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정아가 아무리 불쌍하고 살리고 싶어도, 죽였을 것이다.
“여유가 생겼나 보네, 자화자찬하는 걸 보니.”
강진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너를 믿을 수가 없어. 아직은 말이지. 시간을 두고 증명해. 증명만 하면 너에게도 나쁠 게 없어. 나는 확실한 사람이니까.”
고순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물었다.
“전방이라는 곳, 너 같은 고수를 몇 명이나 부릴 수 있는 거지?”
“알 수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는 모르니까요. 돈이 필요한 사람은 많습니다. 고수라고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돈 없는, 돈이 필요한 고수라…… 참 정확하지 않은 숫자네. 그런 건 싫은데 말이지.”
말은 편하게 하고 있지만 정말 싫었다.
간과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사실 전방이 고순 같은 고수 둘만 포섭해도 위험하다. 자기 하나 몸을 빼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킬 수가 없다.
다행인 게 있다면, 전방은 이번에 돈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확하지 않은 숫자이긴 하나 확실한 게 하나 있었다.
고순 수준의 고수가 절대 많지 않다는 것.
그 많지 않은 사람들 중 돈으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고순은 자신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 그가 좀 약삭빨랐다면 자신을 비싸게 팔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방은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돈을 더 써서, 고순 정도의 고수 하나를 더 포섭해 자신을 공격했어야 했다.
강진은 고순을 쳐다보았다.
‘믿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를 믿을 수만 있다면 아일 형제를 딸려 광동으로 보냈을 것이다. 지키는 자가 서문우람 하나라면 속도도 날 터.
강진은 말했다.
“모두를 데려갈 수는 없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는 정아를 데리고 광동으로 가라.”
강진이 결정한 건 고순과 정아를 자신의 집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이미 정아에게 이생단을 먹였으니 고순은 그에게 아쉬운 게 없을 터. 그럼에도 부녀가 강진의 집으로 간다면 고순을 믿어도 된다는 기반이 생긴다.
그를 믿게 되면 어찌할지는, 그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았다.
고순이 물었다.
“광동이라 하시면?”
“이가장이 내 본가다. 거기에서 내 이름을 말하고 정아를 보살피고 있어.”
“집으로 보내시는 건, 저를 믿으신다는 겁니까?”
“믿으면 너를 데리고 갔겠지. 네 힘이 필요하니까.”
“그럼 같이 가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증명하도록 하지요.”
“그래서 내가 후회라는 걸 하는 거야. 너를 믿을 수 없는데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지.”
그때 서문우람이 그를 불렀다.
“강진아.”
“왜?”
“네가 걱정하는 건 고 무사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 하나뿐이지?”
“그래. 내가 그를 살렸다 하나, 그것 하나로 믿기에는 무리가 있어.”
“그럼 믿을 수만 있게 하면 되는 거지?”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건.”
서문우람은 빙그레 웃어 보이고는 고순을 보며 말했다.
“고 무사님, 이 녀석은 이런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따를 마음이 있으신 겁니까?”
“정아를 살려 주셨을 때 이미 결정했습니다.”
고순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서문우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제가 방법을 알려 드리지요.”
서문우람은 두 사람을 끌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정아에게 말했다.
“정아야.”
“네.”
“저기 대인 아저씨랑 아버님이 약속을 하셨다는구나.”
“무슨 약속요?”
“두 분이 아주 친하게 지내시기로 말이다. 대인 아저씨는 아버님을 돕고, 아버님은 대인 아저씨를 돕고.”
정아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대인 아저씨는 원래 아버님의 친구분 아니셨어요?”
“원래 그랬는데, 앞으로도 쭉 그러기로 하셨다.”
서문우람은 강진과 고순을 보며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고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강진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우람이 웃으며 말했다.
“강진아, 이제 믿어도 되겠지? 고 무사님은 정아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
강진은 퉁명스럽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됐어. 다음 계획이나 생각하자고.”
요새 들어 표현 안 되는 감정이 자주 드는 강진이었다.
* * *
강진은 고순에게 아일 형제를 딸려 광동으로 보내기로 했다. 고순의 몸이 아직 다 낫지는 않았지만, 시답잖은 무인들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번 풀리면 다 잘 풀린다고, 그들을 떠나보내는 날 이가상단의 사람과도 접촉이 되었다.
“전방이라 하셨습니까?”
이가상단의 하남성 책임자인 지양곡은 강진의 말을 듣고는 확인하듯이 물었다.
“알고 있나?”
“우리 상단도 종종 이용합니다, 소주. 그런데 그들이 소주의 신분을 알고 있습니까?”
“아마. 아니, 지금쯤은 확실히 알고 있겠지.”
지양곡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알면서도 의뢰를 받았다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요.”
“아직 갈 길이 멀어. 우리 상단에서 손을 쓸 수 있겠나?”
“그 좋아하는 돈으로 짓밟아 놓겠습니다. 앞으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리 쉬운 놈들이 아니야.”
“어차피 돈으로 모든 걸 부리는 자들인 만큼, 그만큼 돈에 약한 조직입니다. 충성심이라는 게 없는 자들이지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양곡의 단호한 말에 강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돈의 위력은 놀랍다. 여기까지 오면서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우스워 보일 정도였다.
특히 전방이라는 곳을 상대로는 더더욱 그랬다.
어찌 됐든 강진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문우람과 함께 개봉으로 향할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