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39)
관존 이강진 (139)
살무방
“보기 좋지 않냐?”
강진은 붉은 포승줄과, 역시 붉은빛이 감도는 몽둥이를 들어 보였다. 가는 내내 만지고 쓰다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황실포두.
황제가 강진에게 내린 상이었다.
황실포두란 관직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가진 권한은 웃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관할을 초월하고, 황족을 제외한 그 누구라도 죄를 저질렀으면 잡아넣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어사나 추밀원 소속의 관리들과 별다를 바 없는 권력이었다.
하지만 시어사는 보고를 할 뿐 추포할 권한이 없으며, 추밀원은 공식적으로 황제의 명령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조직.
그런 걸 생각하면 황실포두는 대단한 권력을 가진 거나 다름없었다.
“뭘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거야?”
강진의 물음에 서문우람은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아니야.”
“이제 관할 따위는 필요 없단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태수에게도 머리 숙일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지.”
“그리 좋으냐?”
서문우람의 물음에 강진은 그를 빤히 보며 말했다.
“이건 그냥 물건이 아니잖아. 힘의 상징이라고. 이제 목표에 더더욱 가까워졌어.”
“대인이 된다는 목표 말이냐?”
“응. 대인이 되고 무공으로는 천하제일인이 된다. 근사하지 않냐?”
보기 드물게 좋아하는 강진을 보면서도 서문우람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 힘의 상징이란 게 어찌 강진의 손에 들어왔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왜 자꾸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거냐고.”
서문우람은 속내를 숨기는 법을 몰랐고, 그 탓에 또 강진에게 들켰다.
“너도 입신양명이란 꿈에 한 걸음 다가갔잖아. 네 나이 때 벌써 군승*이라면 태수도 꿈이 아니야.”
[*군승 : 태수의 보좌관에 해당하는 직위.]“아니래도. 나도 기쁘다.”
서문우람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에, 강진도 씩 웃으며 말했다.
“추밀원부사란 자와의 거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냐?”
서문우람이 흠칫하자 강진은 몽둥이와 포승줄을 허리춤에 꽂고는 말했다.
“왜,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너는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내가 놀라게 하는 게 아니라 네 표정에 다 드러나서 그런 거다. 이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권력을 휘두를 텐데, 앞으로는 표정 관리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아무래도…….”
서문우람이 말끝을 흐리자 강진이 물었다.
“거래 내용이 뭔데 그리 고민하는 건데? 말해 봐. 네가 관리할 능력이 될 때까지 도와주마.”
“묻지 마라. 대답 못 해 괴롭다.”
“뭐, 대충은 짐작이 간다만. 괴롭다면 묻지 않으마. 하지만 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작자들이 속아 넘어가 주고, 이 몽둥이를 준 이유는 너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서문우람은 강진이 귀신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에는 어린애보다 더 순진함을 보이지만, 어떤 일에는 당사자보다 더 속내를 잘 알고 있다.
강진은 그걸 있는 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일 뿐이라고 했지만, 그걸 뛰어넘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너도 모를 것이다.’
서문우람은 이 비밀만은 들키지 않기로 했다.
강진만의 일이라면 이야기해 주었겠지만, 이건 강진뿐만이 아니라 그의 가문에 관련된 일이기도 했다. 그건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가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그들은 움직이지 않아. 우리도 목숨이 달린 일이었으니까 살인 멸구할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아. 그들이 나를 안다면 말이지.”
서문우람은 속으로 뜨끔했다.
강진의 말대로 추밀원은 이강진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부친 이제원을 알고 있었다.
서문우람은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를 깨달았다. 세상일에는 우연으로 포장된 것들이 많지만 뜯어보면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물려 돌아간다는 것을.
서문우람은 입을 열었다.
“약속 기억하는 거지?”
“또 그 이야기냐? 나도 너를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 그거면 됐다.”
서문우람은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약속했지만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그게 뭔 소리냐고!”
“약속 하나 해 다오.”
“뜬금없이 갑자기 그게 뭔 소리냐?”
“내가 너를 믿는 것처럼 너도 나를 믿어라. 그러니 알았다고 해!”
“들어 보고. 뭐, 백의 구십구는 알았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무조건 알았다고는 말 못 한다. 잃고 싶지 않다면 나에게 강요하지 마. 그런 건 우리 사부도 못 하는 거야.”
서문우람은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서문우람은 말했다.
“간단한 거다. 앞으로 나를 속이지 마라. 나를 속이지 말고 이야기해라. 그러지 않으면…….”
강진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진도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뒷말은 안 해도 돼. 약속한다. 다시는 너를 속이지 않겠다.”
“상황과 시기를 막론하고!”
“그래, 상황과 시기를 막론하고, 네 녀석의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속이지 않으마. 대신 원망은 하지 마.”
* * *
“이놈아!”
“사부!”
강진은 날아가듯이 달려간 게 아니라, 정말 날아가서 곽노를 안았다. 이미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계속 신경 쓰였다.
“괜찮은 거죠? 어디 아픈 데는? 그래도 독에 중독된 건데, 후유증은 없는 거죠?”
질문과 동시에 강진은 곽노의 몸에 손을 대며 기를 뿜어 몸 상태를 확인했다.
곽노도 어느새 환갑이 넘었다. 심각한 건 아니지만 이곳저곳 통기(通氣)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이제 자주 안마를 해서 혈도를 열어 드려야겠네. 그냥 두면 큰 병이 올지도 몰라.’
강진은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기다리신 거예요?”
“이놈아, 아침이면 도착한다면서, 지금이 아침이냐? 무려 세 시진이나 기다렸어.”
“뼈에 바람 조심해야 할 나이시면서. 어련히 잘 올까?”
“이놈이, 사부한테 말본새 하고는. 아주 곤란했다면서. 너야말로 괜찮은 거냐?”
“사부, 제가 어디서 맞고 다닐 놈으로 보이십니까?”
“허허, 그래. 네가 어디서 맞고 다닐 놈은 아니지. 어여 들어가자. 미영이도 마중 나온다는 걸 간신히 말리고 나왔다. 배는 태산만 해 가지고 어딜 나온다고. 지금쯤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뒤늦게 따라온 서문우람이 곽노에게 인사했다.
“어르신,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너는 좀 아파 보인다. 내가 예전부터 그러지 않았냐, 잘 좀 먹고 다니라고. 동생들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둘 다 얼른 가자.”
곽노는 강진과 서문우람을 양옆에 세우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가장으로 향하면서 강진이 물었다.
“사부, 고순이라는 자와 그 딸아이도 집에 있나요?”
“네가 보낸 그 부녀 말이지? 사내는 듬직하니 괜찮고, 여자아이는 좀 병약한 게 흠이긴 하다만 미아랑 잘 어울리더라.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물을 게 있다.”
“뭘요?”
“정 총관이 그들이 이가장 내에서 사는 걸 심하게 반대했다. 사람 좋은 정 총관이 그 불쌍한 부녀를 그렇게 내치려 하는 걸 보면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단 말이야.”
곽노의 말에 강진은 의아해했다.
‘내가 보증했는데 왜 그랬지? 설마 정 총관이 고순의 무공을 알아보고 경계하는 것인가? 고순이 기세를 내보였을 리는 없을 터인데…… 정 총관이 그렇게 고수였나?’
집에 돌아왔다는 설렘에 잠시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방이라고 했지, 사업과는 별개의 단체.’
무림과 관련되어 있는 건 눈치챘다. 정 총관이 무공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을 속일 정도의 엄청난 고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순을 알아보았다면 자신의 생각이 틀린 것이다. 정 총관은 고수, 그것도 엄청난 고수인 것이다.
‘할 게 많아.’
강진이 돌아와서 할 것 중에 방에 대해 알아보는 건 최우선이 아니었다. 그것 말고도 할 게 많았다.
“뭔 생각을 그리 하냐?”
곽노의 물음에 강진은 대답했다.
“돌아오니 할 것들이 생각나서요. 고순 부녀의 일은 제가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일단은 얼굴부터 보고 이야기하자.”
그렇게 일행이 이가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모두 밖에 나와 있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미영이 볼록 튀어난 배를 만지는 모습을 보며 강진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미영의 배를 만지려고 손을 뻗었지만 만지지는 못했다.
“여기에?”
슬그머니 쳐다보며 던지는 강진의 물음에 미영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여기에 당신의 아기가 있습니다. 아야!”
“왜 그래, 갑자기?”
“아기가 아빠를 알아보는지 배를 차네요.”
“배를 차?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미영은 손을 뻗어 강진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 손을 자신의 배에 갖다 대며 말했다.
“여기 만져 보세요.”
보근보근.
손끝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강진은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냥 진동이 아니다. 수만 자의 글자를 알고 있고 수많은 문장들을 외우고 있으나 지금의 이 느낌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게…… 아기가 배를 차는 거란 말이지?”
강진이 미영의 배에서 손을 떼지 않으며 중얼거리는 말에 밖에 나와 있던 모든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강진이 저렇게 방심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사람들의 미소에 미영은 그제야 부끄러운 듯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버님께 먼저 인사드려야지요. 아침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잠깐만. 더.”
강진은 중얼거리듯이 말하며 미영의 배에 닿은 자신의 손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보근보근. 보근보근.
“이거…… 아니, 이 녀석 사내 녀석이겠지? 계집애가 이렇게 발로 차 대면 곤란하지 않을까?”
강진의 말에 곽노가 웃으며 말했다.
“허허, 누가 되든 미영이를 닮았다면 예쁠 거다.”
“얼굴만 아니라 성격도 닮으면 좋겠네요.”
강진의 말에 모두가 웃었지만 곽노만은 웃을 수가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