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41)
관존 이강진 (141)
“쉽지 않은 건 이미 이야기했지?”
“네, 형님.”
“그럼 매일 저 뒷산까지 달려갔다 오는 거야. 그렇게 몇 달만 해. 그럼 너에게 하늘을 날고 장풍을 쏘는 법을 가르쳐 줄게. 나처럼 나쁜 놈들 잡는다는 건 쉬운 게 아니야.”
“할게요. 할 수 있어요.”
“좋아. 그럼 그렇게 하고,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칠덕네나 여기 이 아저씨한테 이야기해.”
“네.”
아일이 힘차게 대답하자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시작해. 아이, 아삼이는 나가서 놀고. 먼 데서 왔다고 어디서 맞고 다니지 마. 너희는 이제 이가장의 아이들이니, 어디서 놀든 대장 노릇을 해야 한다.”
“네.”
아이, 아삼이도 힘차게 대답하고는 아일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강진은 아일 형제가 사라지는 걸 기다렸다가 정 총관을 보며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어. 향아한테 물었지만 알려 주질 않더군.”
정 총관도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먼저 소주를 찾아뵈려 했습니다.”
“아버님은 내가 알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거지?”
“주인어른께서는…… 네. 그러셨습니다.”
“하지만 알아야 해. 형제들이 많다면 모를까 아버지의 아들은 나 하나뿐이잖아.”
“그래서 더 알기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강진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알고 싶어, 아버지가 원치 않으셔도. 말해 줄 거지?”
“허락은 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소주.”
“응.”
“주인어른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 마음을 아들이 알아줘야지, 누가 알아주겠어. 뭘 걱정하는지 알지만, 걱정하지 마.”
“그럼 잠시…….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 총관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 * *
광동이가.
광동성에서는 나름 이름이 있는 가문이었지만, 천하에 알려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경우가 있는 집안, 남부럽지 않은 부를 가진 집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딱 백 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이가장이 광동에서만큼은 최고 가문이라고 알려진 건, 강진의 증조부 되는 이가 상재에 눈을 뜨면서부터다.
호상(好商)이라는 이름만큼 그는 상재에 뛰어났다.
이미 가진 부가 있기에 그는 그것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다른 상인들처럼 돈만 밝힌 게 아니라 적당히 베풀기도 좋아하는 성격이었던지라, 그는 이가장을 광동제일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강진에게 할아버지가 되는 이명안이 이가장의 사업을 천하를 상대로 확장했다.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가장에 있던 손님들만 삼백은 족히 되었습니다.”
“삼백? 그렇게나 많이?”
강진의 놀람에 정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큰어르신은 이가장에 찾아온 객들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으니까요. 하다못해 비렁뱅이가 찾아와도 한 상 거하게 차려 대접하셨지요.”
“공으로 삼백 명이나 먹였단 말이지?”
“상단은 잘나가고 있었으니까요. 본가는 물론이고 동업자들도 돈을 마구 긁어 대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 총관은 어울리지 않는 아련한 눈빛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때 주인어른이 마님을 만나셨지요.”
“어머님을?”
“네. 마님을 만나셨습니다.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었습니다. 감히 제가 연모의 정을 품을 정도로 말입니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강진은 흥분하며 말했다.
“그래서? 빨리 말해 봐.”
“현명하고 아름다우시고, 다 갖추신 분이었습니다. 딱 하나 병약하신 게 마음에 걸렸지만, 주인어른은 물론이고 큰어르신이 갖은 영약을 구해다 복용시키셔서 큰 문제는 없었지요. 거기에 소주를 임신하기까지 하시자 집안은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손이 귀한 가문이라고 하니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늘 궁금한 게 있었어. 아버님처럼 철두철미하신 분이 어머님을 병으로 돌아가시게 했다는 게 말이지.”
그때 정 총관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 굳은 표정을 넘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소주!”
“왜?”
“이제부터 드리는 이야기는 마음속에 담아 두셔야 합니다. 특히 주인어른께는 내색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심상치 않은 정 총관의 말에 강진은 크게 심호흡하며 말했다.
“약속해. 그러니 어서 말해.”
“소주께는 마님의 기억이 조금도 없으시지요?”
“그래. 그래서 내가 더 환장하는 거야. 분명 내가 세 살 때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조금의 기억도 없어. 다른 기억은 나는데 어머님 얼굴만 기억이 안 나!”
정 총관은 만근 같아지는 입을 열었다.
“소주께서는 마님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
“…….”
“그게 말이 돼? 내가 왜 어머니를 보지 못한 거지? 세 살 때 돌아가셨다면…… 말이 안 되잖아!”
한참의 침묵을 깨고 강진이 소리 지르듯이 하는 말에 정 총관이 대답했다.
“마님은 도련님을 한 번도 품지 못하셨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강진의 목소리가 커져 갔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원체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긴 하나 그날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커먼 먹구름에 온통 뒤덮여 폭우가 쏟아졌다.
“으아악!”
빗소리만 울리던 이가장에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적들이다!”
이가장의 호위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광동제일, 천하에 손꼽히는 상단의 본가인 만큼 호위 무사의 숫자는 쉰 명이 넘었다.
“으아아악!”
호위 무사들 중 삼류 소리 듣는 무사는 없었다. 하나같이 일류 수준의 무사였고, 강호에 이름이 알려진 고수도 다섯이나 되었다.
“보통 놈들이…… 으악!”
하지만 그들은 이가장에 잠입한 일곱 명의 도적을 막지 못했다.
일곱 명의 도적들은 호위 무사들을 베어 넘기고, 일하던 사람들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이가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가씨, 피하셔야 합니다!”
칠덕네의 울부짖음에 송아란은 태산만 한 배를 움켜잡으며 말했다.
“아아아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어. 아기가…… 아기가 나오려고 해…….”
“움직이셔야 해요. 빨리요!”
“다리에 힘이…… 허리가 너무 아파……. 일단 유모만이라도 피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이년이 어떻게 아가씨만 두고 간답니까? 잔말 말고 움직이세요. 아가씨가 이러면 아기씨도 죽는 겁니다.”
그 말에 송아란은 정신을 차린 듯, 끊어질 듯한 허리를 움켜잡으며 한 걸음씩 움직이려 했다.
아니, 마음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불가항력이라는 게 있었다. 마음은 움직이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쏴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비는 비가 아니라, 천근만근의 쇳덩어리가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가씨!”
칠덕네는 괴력이라고 표현될 힘을 발휘하며 송아란을 안았다. 그러고는 한걸음씩 확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칠덕네는 차가운 폭우 속에서 다리가 따뜻해짐을 느꼈다.
‘아이고, 부처님!’
칠덕네는 비와 함께 쏟아져 내리고 있는 송아란의 하혈을 보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이렇게는 안 돼…… 유모…… 날 내려놔. 아기 낳아야 해.”
“여기 있다가는 죽습니다.”
“아기에게 문제가 생겨도…… 죽어. 이렇게…… 저렇게…… 죽는다면…….”
칠덕네는 급히 주위를 살폈다.
집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도 이가장 안에서는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나마 비명 소리가 나자마자 밀도를 통해 아가씨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면 이미 저처럼 비명을 내지르고 죽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칠덕네는 송아란을 살폈다.
그녀의 말대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칠덕네는 송아란을 내려놓았다.
“아가씨,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시면 아가씨는 물론이고 아기씨도 죽습니다.”
“유모…….”
“힘주세요.”
“으…….”
“젖 먹던 힘도 내셔야 합니다. 두 분 다 죽기 전에 힘주셔야 합니다!”
“으……아……!”
두 여인은 또 다른 죽음의 경계에서 힘을 써야 했다.
“주인어른과 제가 돌아왔을 때는 칠덕네가 소주를 안고 울고 있더군요. 살아남은 자들은 스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삼백이 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큰어른도 그때…… 돌아가셨지요.”
정 총관은 말을 끝내고 조심스레 강진을 쳐다보다가 움찔했다.
강진의 안면이 일그러지고, 우그러지고, 찢겼다. 눈은 붉게 충혈되고 코가 벌름거렸으며 입술에서는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소주…….”
정 총관마저 두 번 보기 겁나는 듯 감히 눈을 마주하지 못하며 조심히 그를 불렀을 때, 강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는 웃고 있었다.
“칠덕네한테 벌을 내려야겠어. 예전에 내가 거짓말하면 크게 화를 내겠다고 했거든.”
“소주…….”
“그런데 나를 구했네. 그럼 용서해 줘야 할까?”
“…….”
“칠덕네는…… 그래. 나를 위해서이니까 용서해 주지. 하지만 다른 놈들은 안 돼!”
강진은 정 총관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 도적놈들…… 당연히 무림인이었겠지?”
“네.”
“당연히 누군지도 알아냈을 테고.”
“네. 오 년이 걸렸지만 알아냈습니다.”
“이미 끝냈나?”
정 총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들은 강한 놈들이었습니다. 세상에 명망도 있는 놈들이었고 세력도 있었지요.”
“그래서 방이라는 걸 만든 건가?”
“살무(殺武)입니다. 살무방. 무를, 무림을 죽이기 위한 단체. 그게 소주께서 알고 싶어 하시는 방의 정체입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