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42)
관존 이강진 (142)
핏줄
“그런데 그때 아버지랑 정 총관이 집에 있었다면 어머님이 살 수 있었을까?”
정 총관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이가장은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서 사라졌을 확률이 높았을 겁니다. 잘하면 동패구사 정도. 그들은 강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방 때문에?”
“아닙니다. 주인어른께서 몇 년 전에 대성하셨으니까요.”
“정 총관은?”
정 총관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대답했다.
“여기서 방의 무인은 저 혼자입니다.”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의문이 풀렸다. 왜 자신이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왜 아버지가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폭주를 하는지, 왜 자신이 무공을 익히는 걸 싫어하는지, 왜…… 왜…….
많은 의문들이 한번에 풀렸다. 딱 하나를 제외하고는.
“왜 그랬대?”
“네?”
“왜 무림인이 우리를 공격했냐고.”
정 총관은 분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시 이가상단의 재력은 지금의 이가상단과 비슷했습니다.”
“돈? 겨우 그것 때문에?”
겨우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안다.
자신도 전방을 상대했고, 고순 같은 고수도 겨우 그것 때문에 움직였다. 정아를 치료할 목적이었다지만 겨우 그것이 그걸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강진은 돈을 겨우 그것이라고 표현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네. 겨우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목적이 아니었다면 흉수를 찾기 힘들었을 겁니다.”
“돈이 움직이는 자리에는 언제나 흔적이 남으니까.”
“네, 그렇습니다.”
강진은 숨을 쉬었다.
한 번 들이쉴 때에는 분노가 일었고, 한 번 내뱉을 때는 어떻게 해야 이 분노를 풀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강진이 말했다.
“그놈들에 대해 알아야겠어.”
“죄송합니다, 소주.”
“아버님이 반대하실까?”
“소주가 무공을 익히는 것도 주인어른은 무척 싫어하셨습니다.”
“이해해. 하지만 알아야겠어.”
“소주!”
“정 총관을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때가 되고 준비가 되면 내가 직접 여쭙도록 하지.”
정 총관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은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크게 숨을 쉬었다.
“후우! 할 게 또 늘었네.”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푸른 것 같았다.
맞다. 그 어느 때보다 파랬다. 그래서 가슴이 시린 것이다.
* * *
“대장님!”
포도청에 강진이 나타나자 포졸들은 반가워하면서도 동시에 좋은 날이 다 갔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크게 소리쳐 그를 부르고 다가오는 걸 보면 반가움 쪽이 더 큰 모양이었다.
어디를 다녀오셨냐는 둥, 대장님이라서 걱정은 안 했지만 그냥 보고 싶었다는 둥, 포졸들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그들을 향해 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반가운 걸 보니 그간 아주 편했나 봐, 그치? 하지만 걱정하지 마. 돌아왔으니까.”
“하하……하…….”
분명 농이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나도 살벌한 말에 포졸들은 없는 일까지 핑계를 대며 줄행랑을 쳤다.
강진은 다시 한 번 미소를 보이며 종사관과 포두들을 소집했다.
황실포두라는 직책을 받긴 했지만, 강진의 공식적인 직책은 신의현 포도대장.
강진은 그간 미뤄 뒀던 일 처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종사관이 빈틈없이 일 처리를 해 뒀고 포두들과 포졸들 역시 그가 있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앞으로 일이 바빠질지도 몰라.”
강진은 미보에게 전낭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그 전까지 좀 풀어 주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시켜.”
“다시 시작하시는 겁니까?”
“마무리를 해야 깔끔하지 않겠어? 정 포두만 남고 나가 봐.”
종사관을 비롯한 포두들이 우르르 빠지자 대청에는 강진과 정 포두만이 남았다.
강진이 물었다.
“어동이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놈에게 계속 붙어 있는 건가?”
“저기 대장님, 그게…….”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정 포두가 망설이자 강진은 역정을 내었다.
“뭐야,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본관은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거 싫어한다는 걸 잘 알 텐데.”
“어동이가 탈영한 것 같습니다.”
“탈영?”
“아무런 보고도 없이 무단이탈하고 종적을 감췄으니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돼?”
정 포두는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말이 안 되는 걸 알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순식간에 종적을 감춰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게 언제 일이야?”
“두 달 정도 됐습니다.”
강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송두이는 뭐라고 그래? 혹시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송두이가 먼저 물어 오지 않았다면 그 사실조차 몰랐을 겁니다. 어동이는 대장님의 명령을 받아 송두이만을 감시하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당장 송두이 잡아 와! 아니야, 내가 간다. 정 포두, 따라와.”
강진은 정 포두와 함께 말을 몰아 광주로 달리기 시작했다.
혼자 신법을 사용하면 훨씬 빠르겠지만 자리를 오래 비웠기 때문에 정 포두가 있어야 했다.
‘미영이랑 한 약속 지키기 힘들겠네.’
강진은 저녁에는 함께 있어 주겠다고 한 약속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동이가 사라졌다는 말은 믿기가 힘들었다.
“어동이한테는 가족이 있었잖아. 그들은 어찌 됐어?”
말을 달리며 묻는 말에 정 포두가 대답했다.
“모친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도 전혀 모르고 계시더군요.”
“미친! 정 포두, 어동이가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를 두고 도망칠 녀석 같아? 아니, 애초에 탈영할 이유가 없잖아. 그놈이 첫 녹봉을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두이 놈 말을 들어 보면 아무래도 욕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욕심?”
“어동이가 대장님의 명령이라고 돈을 상납받아 왔다더군요.”
“뭐?”
“어동이가 사라진 후, 놈이 와서 묻더군요. 정말 그런 명령이 있었냐고요.”
“그래서?”
“대장님이 어동이에게 따로 분부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멀쩡한 직업 놔두고. 녹봉 이외에 내가 또 따로 챙겨 줬잖아!”
정 포두는 또 우물쭈물할 뻔하다가 대답했다.
“생각보다 액수가 큽니다.”
“얼마나 되는데?”
“금 백 냥입니다.”
정 포두의 대답에 강진은 입을 다물었다.
금 백 냥은 웬만한 사람은 보지도 못할 거액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충분히 욕심낼 수도 있는,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도망칠 용기를 낼 수 있는 금액.
그래도 어동이라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 나갔다 와 본 후 깨달았다. 세상에는 은자 몇 냥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도 많다는 걸 말이다.
하물며 금 백 냥이라면, 은으로 따지면 이만 냥이 넘는다.
‘계속 돈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군. 돈이라……’
그렇게 말을 달려 광주에 도착한 강진은 객잔 하나를 잡았다. 그러고는 정 포두를 시켜 송두이를 불러오라 지시했다.
강진은 객잔에서 내온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그렇게 차를 몇 잔이나 마셨을까?
정 포두와 함께 송두이가 달려 들어왔다.
“나리!”
송두이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강진의 앞에 넙죽 엎드려 절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퍼억!
송두이의 몸이 허공을 날더니 벽에 부딪쳐 널브러졌다.
“어동이 어디 있냐?”
강진의 물음에 송두이는 몸을 세우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나, 무서워하질 않네.”
강진은 걸음을 옮겨 송두이에게 다가갔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걸음 소리에 송두이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리려 했다. 저 걸음 소리가 멈추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기 때문이었다.
송두이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객잔의 문이 박살 나며 험악해 보이는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형님!”
객잔 벽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송두이의 수하들이 몰려온 것이다.
“형님!”
사내들 중 하나가 송두이를 부축했고, 다른 사내들은 강진과 정 포두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미쳤구나! 감히 누구……!”
정 포두가 소리치는 걸 강진이 팔을 들어 막았다.
강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지 않아도 속이 답답하던 차였다. 이런 쓰레기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좀 하면 풀릴 것 같았다.
강진이 가볍게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송두이가 그의 앞을 막으며 소리쳤다.
“나리! 이놈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입니다!”
“형님, 이놈들이 누군데 이러십니까? 관청에서 목에 힘 좀 주는 놈들 같은데, 밖에 우리 애들이 많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면 탈도 없습니다.”
대머리 하나가 강진과 정 포두를 흘겨보며 하는 말에 송두이가 기겁을 하여 소리쳤다.
“야! 주둥이 안…….”
송두이가 털썩 자리에 쓰러졌다. 아까 맞은 충격의 여파가 남은 듯한 모습이었다.
“쳐라!”
대머리가 소리치자 열이 넘는 사내들이 강진과 정 포두에게 달려들었다.
“장소가 좁아서 다칠 수도 있으니까 구석에 있어.”
강진은 친절한 목소리로 정 포두에게 주의를 주고는 달려오는 사내들을 맞았다.
특별한 건 없었다.
오는 놈 때리고, 도망치는 놈 때리고, 넘어진 놈 때리고 기절하려는 놈 정신 차리게 때려 준 것뿐이다.
신 나게 몸을 움직였지만 화풀이는 되지 않았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육체적인 힘만으로 상대하고 있지만 한 대를 버티는 놈이 드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숫자가 많다는 것.
십여 명이 쓰러지자 새로운 십여 명이 나타났고, 또 때려눕히자 다른 놈들이 나타났다.
객잔은 이미 쓰러져 신음하는 놈 천지였으므로, 강진은 친히 밖으로 나가 폭력을 행사했다.
‘많네, 기쁘게도.’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왈패들을 때려눕혔지만 강진은 숨소리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강진은 송두이에게 다가가 그의 뺨을 쳐 가며 말했다.
짜아악!
“또 없냐?”
짜아악!
“아쉬워. 많이 도와줬잖아. 그런데 백 명도 안 되는 것 같아. 이러면 일 맡기겠어?”
그렇게 뺨을 다섯 대쯤 후려갈길 때 마침내 송두이가 정신을 차리고 울부짖었다.
“나리, 왜 이러십니까! 소인이 뭔 잘못을 했다고요.”
“한 번만 더 묻는다. 어동이 어디 있냐?”
“소인도 정말 모릅니다. 이 포졸이 사라진 걸 왜 저에게 따지십니까?”
“어동이에게 돈 줬다면서?”
“나리께서 지시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소인은 충실하게 그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황금 백 냥이 넘는다고 하던데? 그걸 어떻게 줬어?”
“그거야…….”
강진은 살기를 보이며 말했다.
“선을 넘었구나. 그렇지?”
송두이는 바닥에 몸을 바짝 낮추며 소리쳤다.
“나리께서 지시한 일 아니셨습니까? 최소한 소인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열심히 따랐을 뿐입니다.”
“본관의 성격은 잘 알고 있겠지? 거짓말이면 너는 반드시 죽어. 아니,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될 거야.”
“소인이 거짓말을 했다면, 그때에는 마음대로 하십시오. 소인도 억울합니다. 이 포졸의 말을 따르라고 하신 건 나리였습니다. 저는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요!”
“그럼 이놈들은 왜 다 데리고 온 건데?”
강진이 쓰러진 사내들을 보며 묻는 말에 송두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제 모두 나리의 명령에 죽고 살 놈들인데 나리의 얼굴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번 뵈라고 집합시킨 겁니다.”
“한번 해보려고 한 게 아니라?”
“절대 아닙니다! 소인, 다른 건 몰라도 주제는 알고 있습니다.”
송두이의 외침에 강진은 손을 멈췄다.
이어동이 정말 황금 백 냥 때문에 도망쳤다고 생각하기는 싫었지만, 사람은 유혹에 약하다.
‘시험이 약했던 건가?’
믿기 위해서, 믿어 주고 싶어서 시험을 했고, 이어동은 그것을 통과했다. 하지만 황금 백 냥의 욕심은 그 시험을 넘어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첫 녹봉을 타고 애처럼 좋아하던 그 얼굴이 생각났다. 그걸로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자신에게도 가르쳐 줬던 그 얼굴이 생각났다.
강진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송두이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증거가 없네.’
송두이에게 자신을 속일 담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놈도 보통 놈은 아니었다.
“선 넘은 거 다 수습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눈물 나게 했던 놈들 명단 작성해.”
“나리!”
송두이가 그제야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나리께서 시키신 일이었습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로 수하들을…….”
“정말 죽고 싶구나? 그 수하들 중 네놈을 대체할 만한 놈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네가 대신 들어갈래? 착한 일 한번 하고 싶은 거야?”
“아닙니다! 명령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송두이가 다시 고개를 처박으며 하는 말에 강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흘 준다. 원래대로 돌려놔.”
“네네.”
송두이가 급히 객잔을 빠져나가려 하자 강진이 그를 불렀다.
“니 새끼들 안 데리고 나가냐?”
송두이는 그나마 좀 성한 수하들과 함께 방에 널브러져 있는 수하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냄새 더럽네.”
강진은 송두이가 주변을 치우기도 전에 정 포두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