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45)
관존 이강진 (145)
“아들이 아버지와 싸우는 건 패륜 아닙니까? 패륜을 배운 적은 없습니다.”
말은 그리했지만 강진은 이제원의 오른손을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쉬이익!
이제원의 오른손이 허공을 갈랐다.
“하앗!”
강진은 기합성과 함께 오른손으로 이제원의 손을 쳐 내고, 왼손으로는 그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
빙그르르.
그때 이제원의 손이 기이한 움직임을 보이며 회전했다.
손은 어깨와 팔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 말은 손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팔과 어깨도 움직여야 하고, 더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몸통이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원의 손은 그렇지 않았다.
그건 마치 하나의 생명체인 양, 강진의 왼손을 쳐 내고 오른손을 쳐 내고, 그의 뒤통수를 향해 움직였다.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움직임이었지만, 강진은 현명했다.
결국 손은 손이다. 또 손이 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면 그건 손이 아니다.
강진은 허리를 숙여 그 손을 피하고는, 자신도 손을 뻗었다.
스르르릉.
소리가 들리는 순간 검이 잡혔고, 이제원은 기겁을 하며 엉덩이를 뒤로 뺐다.
둘은 동시에 뒤로 물러섰고, 이제원은 놀란 눈으로 강진을 보았다.
‘검이!’
강진의 손에는 검이 없었다. 그 순간 이제원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샤르르르.
눈앞에서 검이 지나갔고, 그 검은 이제원의 앞 머리카락을 스쳐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의기상인(意氣傷人)!’
이제원은 기겁을 할 정도로 놀랐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경지라는 의기상인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초절정의 고수는 흉내는 낼 수가 있다.
생각을 하는 순간 저절로 기운이 일어나 시전자가 원하는 곳에 가 있는 것. 그게 빠르게 된다면 의기상인을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해 보여도 쉬운 게 아니었다.
그건 내공의 양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노련함과 끝없는 수련, 거기에 타고난 감각과 본능이 합쳐져야 가능한 일.
그런 걸 방금 강진이 해낸 것이다
애초에 검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고수들의 싸움에서 서로의 간격은 반 촌이 채 되지 못한다. 그런 간격의 싸움에서 순간 검 같은 것이 나오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겸손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이제원은 호통과 함께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두 손이 바람개비처럼 돌았다. 돌 수 없는 게 당연했지만, 이제원의 두 손은 그렇게 돌았다. 최소한, 그렇게 보였다.
이제원은 강진을 상대로 자신이 두 손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의 한 손은 병장기를 든 것보다 강했고, 두 손은 한 손보다 강했다. 예전 화산의 검성을 제거할 때도 무기를 사용했다. 그 탓에 비록 부상을 입긴 했지만 무공의 흔적을 지우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런데 강진에게는 손을 사용했고, 이제는 두 손을 다 쓰게 되었다. 그만큼 강진은 강했다.
퍼어엉! 퍼어엉! 퍼어엉!
이제원의 두 손이 움직였고, 오른손과 왼손은 번갈아 가며 대지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손은 보이지 않는데 흔적은 남는다?
보이지 않으면 전부를 막으면 된다. 강진의 몸에서도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강진은 낙양검의 초식인 산양(散陽)을 전개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앙!
보이지 않는데 강진의 검에서 폭음이 들렸고, 그때마다 기운의 파편이 튀기 시작했다.
‘막기만 해서는 아버지를 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막는 것도 버거웠다.
아차 하는 순간 아버지의 손은 대지가 아닌 자신의 몸에 흔적을 남길 터였다. 부자지간이라 하나 손에 사정이 없을 거라는 건 뻔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무공을 배우는 것을 싫어했고, 이번 일에 나서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아버지는 한다면 할 것이다. 자신이 누구를 닮았겠는가?
강진의 손에 힘이 점점 실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손을 막고 남은 힘은 검 한편에 축적되기 시작했다.
순간 이제원의 손이 다시 모였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힘이 실렸다. 번갈아 가던 손의 힘이 동시에 내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강진 역시 축적된 힘을 쏘아 냈다.
콰아아아아아앙!
귀가 순간 멀 정도의 폭음과 함께 강진과 이제원의 주변으로 엄청난 광풍이 몰아쳤다.
광풍이 사라졌을 때, 강진의 검은 이제원의 두 손바닥 사이에 있었다.
부르르르르르!
검이 떨리고, 이제원의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갔다가는 생사지투가 될 수도 있었다. 당태호와 그런 싸움을 벌인 적이 있는 강진은 서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검을 빼냈다.
“우우우욱!”
붉은 선혈이 허공에 뿜어졌고, 이제원이 바닥에 떨어지려는 강진을 잡아끌었다.
이제원은 강진을 잡은 채로 노려보았다.
강진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복수에 실패하신다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원은 강진을 직시하며 말했다.
“실패한다는 것은 곧 내가 죽는다는 것일 테고,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너의 일이 될 것이다.”
이제원의 입에서 죽는다는 말이 나오자 강진은 흠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도 인내의 고통은 압니다. 그리고 그걸 즐길 줄도 압니다. 아버지는 모르시겠지만 사부랑 매일같이 해 오던 일이 인내하고 선택하는 기쁨을 누리는 거였습니다. 내 일이 될 수 있는 확률이 천만분의 일이라도 있다면 저에게도 준비할 시간을 주셔야지요.”
이제원은 강진을 노려보듯이 하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네 말이 맞구나. 하지만 내가 누군지 알려 준다면 너는 이것이 나의 일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맞느냐?”
“인정합니다. 이건 아버지의 일입니다.”
이제원은 뭐라 말하지 않았다. 강진을 앉히고 그의 명심혈에 손을 올렸다.
쿨럭.
강진의 입에서 소량의 검은 피가 뿜어져 나오자 이제원이 입을 열었다.
“방금 그 수는 무모했다.”
“경험한 적이 있거든요. 아버지랑 그럴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누구랑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비를 너무 얕보는 것 같구나. 네가 걱정하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네.”
강진은 얌전히 이제원의 손길을 받았다. 가슴이 점점 편해져 갔다.
“그 당시 나는 몰랐지만 무림은 무척 힘겨워하던 시대였다. 사람이, 그리고 그 사람들을 부릴 돈이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이윽고 이제원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한때 관존이라는 자가 천하를 움켜잡은 시대가 있었다. 관존이라는 자는 추밀원의 부사였는데, 무림을 서로 반목하게 하여 견제했다고 하더구나. 돈도 쥐어짜고 그 돈으로 또 서로를 반목시키고. 그래서 돈들이 없었다고 하더구나.”
“…….”
“그런 흐름을 느낀 상단들은 저마다 줄을 잡으며 자신의 재산을 지켰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런 흐름을 알지 못했다. 네 조부께서 상재는 있으셨으나 무림과는 조금도 관련이 없었기에 생긴 일이었지.”
말하기가 힘든 듯 이제원이 띄엄띄엄 말을 하자 강진이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압니다. 누군지만 알려 주시면 됩니다.”
이제원은 네 명의 이름을 말했고, 강진의 얼굴은 굳어졌다.
* * *
“제가 말입니까?”
고순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묻자 강진이 말했다.
“알아,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거라는 걸. 하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닭 모가지를 자를 수 있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순은 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이유를 알아도 할 것이고, 몰라도 할 일이었다. 목숨을 빚진 건 둘째 치고 지금 이 생활을 버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고정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으며, 후에 무슨 일이 생겨도 이가장이라면 처리할 능력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고순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어찌해야 할까요? 그냥 다 때려 부술 수도 없는 일이고…….”
“그건 걱정하지 말게. 어차피 힘이 최고인 바닥이니, 고 무사만 감당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네.”
곽노가 끼어들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가장의 사업장부터 슬쩍 끼어들면 반응하는 놈들이 있을 걸세. 고 무사는 그놈들에게 쓴맛을 좀 보여 주고 적당히 얼러서 밑에 두면 돼. 그 후로는 그놈들이 알아서 할 걸세.”
고순은 강진을 보며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시끄러워지면…….”
“그럴 일 없어, 관청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이 귀찮아하지만 않으면 돼.”
“그런데 그런 식으로 제 얼굴이 알려져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이곳의 사람이라는 걸 알면…….”
“복면을 해야겠지. 당신이 목소리만 바꿔 주면 알아차릴 사람 그 바닥에서는 아무도 없어.”
“그렇겠군요. 그럼…….”
“정 총관에게는 미리 이야기해 뒀어. 지금쯤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고순이 나가자 곽노가 강진에게 물었다.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냐? 그 변권이라는 놈도 네 밑에 있는 놈이잖냐?”
“그놈, 믿을 수가 없어요. 지금 정도로만 유지한다면 상관없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면 그놈으로는 안 돼요.”
“그 계획이라는 거, 말해 주지 않을 거냐?”
곽노가 섭섭하다는 듯이 말하자 강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부도 나이가 있으시잖아요. 사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건 원치 않아요. 이제는 좀 즐기세요. 이제 행복이도 있는데 재롱도 보셔야지요.”
곽노는 더더욱 께름칙했다.
그에게는 숨기는 것이 없던 강진이다. 그런 녀석이 말하지 않는 건, 그가 알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일 터.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 뭔데?’
생각할 것도 없다. 절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것이냐? 나 아직 쌩쌩하다. 시시껄렁한 놈들은 한 방에 보낼 힘은 아직 있단 말이다.”
곽노가 이제 축 늘어진 팔뚝에 힘을 줘 보이며 하는 말에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부야 건강하시죠. 건강하셔야 하고. 술 좀 줄이시고 보약은 꼭 챙겨 드시는 것 잊지 마세요.”
“은근슬쩍 말 돌리지 말고. 정말 말 안 해 줄 테냐?”
“사부가 알면 머릿속 복잡해지실 거라니까요.”
“머릿속이 너무 단순해서 좀 복잡해지련다. 무슨 계획인 거냐?”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곽노에게만은 고집을 세울 수가 없는 강진이었다.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세력이 필요해요. 세력을 만들려면 돈이 필요하고요.”
“돈이라면 집에도…….”
“가문의 재산 말고, 따로 내가 쓸 수 있는 돈요. 이번에 확실하게 느꼈어요. 돈은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다는걸요. 고 무사도 결국 돈에 고용된걸요. 믿기세요? 저만한 고수가 돈에 움직였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냐? 무공이 고강한데 돈이 없으면 착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세상엔 착한 사람이 많지 않지.”
“그러니까요. 그래서 고 무사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곽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흑사회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거냐?”
“없앨 수 없는 거라면…… 그 돈줄, 내가 움켜잡고 있어도 되잖아요.”
“대인이 될 놈이 그런 거에 욕심내면 남 보기 좋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고 무사를 내세운 거잖아요. 그리고 악독하게 굴 생각 없어요. 제가 하면 절대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곽노는 약간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겠지만…… 갑자기 세력은 왜?”
“만약의 경우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혼자로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준비 좀 하려고요.”
“좋은 일은 아니겠지?”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네요.”
강진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순간 곽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서 알려 드리기 싫다고 한 거예요. 지금 머릿속 복잡해지셨죠?”
“복잡해졌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말하지 마세요. 제가 나설 경우는 희박할 것 같으니까요. 아버지가 제게 일을 넘겨주실 성격은 아니잖아요.”
곽노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강진이 이제원과 나눈 대화를 간략하게 말해 주자 그제야 곽노는 이해했다.
‘그 사람도 참…… 설득을 해도 어찌 이리했노…….’
또 그 설득에 넘어가 모친의 복수를 기다리는 강진도 이상했다. 이십 년 가까이 강진의 옆에 있었지만, 아직 그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곽노는 부자지간에 뭔가 통했을 거라고 정리하며 말했다.
“그래, 이해했다. 하지만 네 부친 정도 되는 사람이 그리 오랜 시간 동안 복수를 하지 못했다면 만만한 놈은 아닐 테고, 광동성 흑사회를 손에 넣은 것만으로 되겠냐?”
“그럴 리가 있나요. 광동성을 마무리하고 호남, 강서, 복건으로 세력을 넓혀야죠.”
“쉽지 않을 텐데. 광동은 네 지위도 있고 이가장의 후광이 있으니 가능하겠지만…….”
강진은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붉은빛의 몽둥이를 가리켰다.
“저에게는 이제 관할이 없습니다, 사부. 저는 그저 마음껏 나쁜 놈들만 처잡으면 된다고요.”
그제야 곽노도 강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네가 먼저 때려잡고, 고 무사가 정리하는 거로구나.”
“맞아요. 저는 공식적으로 나쁜 놈들을 잡아넣는 것뿐이에요.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대인이 되어 있지 않겠어요? 바로 저 이강진이라는 이름이 말이에요.”
“하하하하!”
곽노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묘안이다, 묘안이야. 하긴 왈패들 중 너랑 고 무사를 막을 수 있는 자들이 몇이나 있겠냐? 참으로 묘안이다, 묘안. 거기서 내가 도와줄 건 없냐?”
“건강하게만 제 옆에 계세요. 가능하면 백 살까지 살아 주시면 좋고요.”
곽노는 히죽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