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istrator Kang Jin Lee RAW novel - Chapter (147)
관존 이강진 (147)
방에 네 사람이 있었다.
이제원, 정 총관, 강진과 소양풍.
모두가 입을 열지 않고 표정만 굳어 있었다. 그중 소양풍의 표정이 제일 딱딱했다.
성질 같았다면 일단 뒤집어엎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문을 계승시킬 유일한 사람의 가문이었다. 그 점을 봐서 넘어가고도 싶었지만, 이번 일로 피해가 너무나 컸다.
귀마와 독마와 얼굴을 붉힌 건 둘째 치고, 얼마 남지 않은 사문이 이번 일로 아주 걸레가 되었다. 이 화를 풀 곳이 필요한데 넘어가자니 참을 수밖에 없고, 또 그걸 그대로 참자니 화병이 들 지경이었다.
그나마 강진이 평소와는 다르게 깍듯이 그를 대하며 맡겨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도 어떻게 행동할지 몰랐을 것이다.
살무방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칠마는 서로 돕는 관계였다. 거기다 귀마는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으니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다면 소양풍보다 더 날뛸지도 모른다.
한참의 침묵을 깨고 강진이 입을 열었다.
“사부, 미리 이야기해 두지만 저는 몰랐던 일입니다. 살무방이라는 게 우리 집안의 사업이라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사부의 사문, 아니 저의 사문이기도 한 곳이 피해를 입었으니 당연히 저도 나서야겠지만, 일이 아주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했는데, 사부…….”
소양풍이 대답 대신 시선을 돌리자 강진이 말을 이었다.
“제게 맡겨 주세요. 사문이 입은 피해, 제가 어떻게든 보상받겠습니다. 다만 그래도 우리 사문에서 죽은 사람은 없으니 결과가 어찌 됐든 피 흘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사부가 약속해 주세요.”
괴마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그래, 나야 네가 있으니 참는다 치자. 하지만 귀마는 가만있지 않을걸. 그리고 귀마가 나서면 다른 영감탱이들도 나설 거다. 그건 어쩔 거냐?”
“사부만 비밀을 지키면 되죠.”
“그들을 배반하라는 거냐? 귀마가 나랑 반목은 했지만 수십년지기다!”
“저는 앞으로 사문을 책임질 사람이잖아요. 당연히 제 편을 들어 줘야죠.”
“야! 뭔 말을 그렇게 하냐!”
“양보하지 않으면 일이 정말 복잡해지니까 그러죠. 일단은 무조건 제 편을 들어 주셔야 저도 사부 편을 들 거 아닙니까? 서로 양보 안 하면 저는 어떻게든 패륜을 저지르게 됩니다. 사부 편에서 싸우든 아버지 편에서 싸우든, 어떻게든 패륜이 되잖아요.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강진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소양풍이 이가장과 반목하면 강진이 어떻게 행동하든 못 할 짓이 된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싸우면 강진은 아비 편을 들 게 뻔했다.
군사부일체라 하나, 부자지간은 천륜이 아닌가.
“그래도…….”
소양풍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말끝을 흐리자 강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님도 제 편, 사부도 제 편입니다. 제게는 두 분만이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
“그래도 아버님이 먼저 공격을 하신 거니 협상에서는 사부 편을 더 들 겁니다. 아버지에게서 많이 얻어 낼 테니 그걸로 귀마 영감이 입은 피해를 조금이라도 보상해 주시면 되잖아요. 비밀만 지켜 주세요.”
“에이! 모르겠다. 어디 마음대로 해 봐라.”
소양풍이 뒤로 물러서자 강진은 감사를 표하고, 시선을 정 총관에게 돌렸다.
“정 총관도 아버지에게 전권을 받아.”
“소주…….”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랑 거래를 해. 그러니까 정 총관이 대표로 나서. 아버지도 허락하실걸.”
이제원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체하며 하는 강진의 말에 정 총관은 곤란해했다.
“군이, 네게 전권을 주마. 단, 어떤 경우에도 협상 내용은 외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때 이제원이 하는 말에 정 총관의 눈도 빛났다.
“그럼 협상이라는 걸 해 볼까요? 귀측의 조건을 말해 보십시오.”
사무적인 말투에 강진도 씩 웃으며 말했다.
“말뿐인 사과 따위는 필요 없지. 일은 귀방이 먼저 시작했고, 피를 흘린 것은 이쪽이니까. 어차피 비밀리에 이뤄져야 하니 물질적으로 보상을 원해.”
“조건은요?”
“황금 만 냥. 그리고 귀주에 있는 귀방 측의 사업장을 원해. 사문이 당한 피해를 복구하려면 돈은 물론이고 사업 기반이 필요하거든.”
“황당하군요. 황금 만 냥이면 수백의 일류 무인들을 죽을 때까지 고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귀측의 흘린 피는 지극히 적지 않습니까? 거기에 사업장의 가치는 또 황금 만 냥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우리는 귀마의 눈치도 봐야 하거든. 어느 정도 보상을 해 줘야 하니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무리입니다. 황금 천 냥과 귀주에 있는 객잔 두 개를 넘겨 드리지요. 이것 역시 황금 천 냥의 가치를 지닙니다.”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우기면 곤란하지. 만의 하나 실력 행사에 들어가면 귀방의 피해가 만만치 않을 거야. 칠마가 귀방과 적대시할 경우, 방은 물론이고 상단의 피해가 만만치 않을 텐데. 정말 해보겠다는 거야?”
“그건…….”
“내가 말한 조건에서 한 발자국도 양보 못 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이번에는 정 총관이 고개를 저었다.
“칠마와 적대시한다고 해도 상단이 피해를 입을지는 확실치가 않군요. 귀측은 이가장의 힘을 잘못 파악하고 있습니다. 칠마가 전력을 다하더라도 우리가 큰 손실을 입지는 않을 겁니다.”
“장담할 수 있어?”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칠마가 전부 뭉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순간 강진의 표정이 굳었다.
정 총관은 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이가장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거짓 정보로 거래를 하지 않는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거래가 이가장의 거래 방식.
지금 자신의 방식도 모두 어릴 때부터 그런 가풍에 길들여진 탓 아닌가?
‘뭔가 있어…… 뭘까?’
강진은 정 총관을 노려보았지만, 그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고 했다.’
이제원이 자신의 권리라 하며 말해 주지 않았던 복수의 방법. 어쩌면 그중에 칠마가 뭉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뭘까…… 뭘까…….’
그렇게 머리를 굴리다 보니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복수를 할 상대는 넷인데 이름은 살무방이다. 무를 죽인다는 단체. 잠깐만…… 그럼!’
강진은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눈에는 담담하게 차를 마시는 이제원이 한가득 들어왔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계시는 겁니까?’
강진은 평정을 찾으며 말했다.
“근거 없는 그런 말은 믿을 수 없어. 정말 서로 적대하겠다는 건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패를 보여 드릴 이유가 없지요. 확실한 건, 설혹 칠마와 적대한다고 해도 황금 이천 냥 이상의 피해를 보지는 않을 겁니다.”
정 총관은 패를 보이지 않았지만, 강진에게는 그 자신감이 패를 본 거나 다름없었다. 그 방식을 모를 뿐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협상을 하기에는 자신을 보고 있는 소양풍의 시선이 무겁다.
자신은 정 총관의 자신감의 근거를 알고 있으나 사부는 그걸 모른다.
‘내가 아버지 편을 든다고 생각하시겠지.’
강진은 사부가 그렇게 생각하게 둘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사부는 자신의 편이었다. 또 훗날 아버지의 복수가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강력한 조력자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다.
강진도 패를 꺼내 들었다.
“왜 적대시할 상대가 칠마뿐이라고 생각하지?”
“칠마는 타 세력과의 관계가 극히 적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귀측에 다른 조력자라도 있다는 소리입니까?”
“있지, 강력한 조력자가.”
“그게 누굽니까?”
강진은 스스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이강진. 황실포졸이라는 강력한 공권력을 가졌고, 무공 역시 이길 자가 열은 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는 내가 있지.”
“소주!”
정 총관이 소리 지르듯이 강진을 불렀다.
소양풍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강진을 보았다. 그러다 미소를 지었다. 이 모든 게 짜고 하는 연극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으려는 강진의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이다.
“진심이야. 나는 최대한 양보를 하려고 했는데, 귀방은 패를 정확히 보이지도 않으면서 협박하려 하잖아.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참 웃긴 것 같지만, 그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거래란 원래 공평하지 않습니다. 덜 아쉬운 자가 더 유리한 겁니다. 소주도 그걸 아실 텐데요?”
“알아. 그리고 지금은 우리 사문이 유리하다는 것도 말이지.”
“억지입니다. 소주는 이가장의 작은주인입니다!”
“잊지 말라고. 사문의 힘도 곧 내 것이 될 거라는 걸.”
정 총관과 강진이 팽팽하게 맞설 때, 뒤에서 차를 마시던 이제원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만.”
세 사람의 시선이 이제원에게 쏠렸다.
이제원은 강진과 소양풍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서로 양보하도록 하자. 정 총관의 조건대로 하고, 대신 네 사문에 도움이 될 한 가지 정보를 알려 주겠다. 칠마는…… 그건 소 문주의 설득력에 달렸겠군요.”
강진이 뭐라 말하기 전에 이제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소양풍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제대로 인사를 올리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요. 못난 자식 놈이 소 문주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알았지만 제 고집 때문에 이제까지 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원이라고 합니다.”
“소양풍이오.”
소양풍도 마지못해 예를 받자 이제원이 말했다.
“이 모든 게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못난 아비의 행동에 의한 결과. 그 결과는 제가 책임을 져야겠지요. 그래서 협상은 이걸로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
소양풍이 별말 없자 강진이 나섰다.
“아버님, 알려 주신다는 건 무엇입니까?”
“앞으로 삼 년간 네 사문이 봉문을 했으면 좋겠구나. 다른 칠마 쪽은 어찌해도 상관이 없다.”
“지금 장난하는가!”
소양풍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노기를 터트렸다.
어차피 사문의 인원수는 극히 적고, 그 인원 중에서도 마음 놓고 강호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미 봉문 상태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남의 입에서 함부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부, 제게 맡겨 주시기로 하셨잖아요.”
강진은 소양풍을 제지하고는 이제원에게 물었다.
“아버지, 이유가 뭡니까?”
“곧 피바람이 불 테니까.”
이제원은 그리 말하더니 소양풍에게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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